[한경 머니 = 김수정 기자]매해 각종 가족 분쟁으로 붕괴 위기에 놓인 가정이 늘고 있다.
그중 상속 분쟁 사례들을 통해 현재 화두가 되고 있는 가족의 위기 실태를 알아봤다.
[big story]상속 분쟁 10년 새 6배…가족 행복의 ‘걸림돌’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옛말이 무색할 정도로 상속재산을 둘러싼 가족잔혹사가 끊이지 않고 있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상속재산분할청구 건 접수가 2015년 1008건, 2016년 1223건, 2017년 1403건, 2018년 1710건으로 늘어났으며, 이는 10년 전인 2008년(279건)에 비해 6배나 늘어난 수치다. 그만큼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끼리 상속재산을 두고 소송을 제기하는 일이 그저 ‘남의 일’만은 아닌 세상이 돼 버렸다.

여기에 평균수명이 늘어남에 따라 발생하는 가족 간 상속 분쟁도 증가하는 실정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65세 이상 고령인구 비중은 2019년 14.9%로 세계 51위다. 그런데 2045년이면 이 비율이 37.0%를 웃돌아 일본(36.7%)을 추월하게 될 예정이다. 또한 이런 초고령화 흐름에 비례하듯 치매 발병률도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중앙치매센터에 따르면 2018년 국내 65세 이상 노인인구 중 치매 환자는 약 75만 명에 달한다. 85세 이상에서는 2명 중 1명이 치매 환자로 추정된다. 이런 추세라면 치매 환자가 2025년에는 100만 명, 2050년에는 300만 명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된다.

3남매의 막내인 50대 사업가 A씨는 오늘도 홀로 계신 80대 노모 걱정에 마음이 불편하다. 3년 전 남편과 사별하고 급격히 건강이 쇠락해지시더니 지난해 건강검진에서 치매 초기 진단을 받았다. 다들 각자의 이유로 어머니를 돌보지 못하는 상황에서 최근 A씨의 형이 어머니를 자신의 집에서 모시겠다고 했다. 단, 요즘 경기가 어렵다며 부친으로부터 상속받은 어머니 재산을 자신의 사업자금으로 증여해 달라고 한 것. A씨와 누나는 과연 형의 의도가 진정성이 있는 건지 영 마음에 내키지 않았다. 결국 며칠 전 오랜만에 가진 가족 식사자리에서 이와 관련, 형과 큰 말싸움이 오갔고, 어머니는 더 이상 식사를 하지 못하셨다.

실제로 부모의 치매 간병은 물론, 부모 부양을 원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전통적인 효의 개념이 옅어지고, 1인 가구 및 핵가족화가 보편화되면서 치매 간병을 두고 가족 간 갈등도 심각해지는 양상이다.

지난 5월 4일 한국보건사회연구원과 서울대 사회복지연구소의 ‘2019년 한국복지패널 기초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 참여 10가구 중 4가구꼴로 부모 부양의 자녀 책임에 대해 반대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연구팀은 2019년 2~5월 복지패널 6331가구를 대상으로 부모를 모실 책임이 자녀에게 있다는 데 동의하는지 조사했다. 그 결과, ‘부모를 모실 책임은 전적으로 자식에게 있다’는 견해에 대해 ‘반대’ 응답이 40.94%(반대 35.14%, 매우 반대 5.80%)로 ‘찬성’ 대답 23.34%(찬성 20.21%, 매우 찬성 3.13%)보다 훨씬 높았다. ‘찬성도 반대도 하지 않는다’는 대답은 35.73%였다.
[big story]상속 분쟁 10년 새 6배…가족 행복의 ‘걸림돌’
보고서에 따르면 통계청의 2002∼2018년 사회조사를 분석한 결과, ‘부모 부양을 누가 담당할 것이냐’는 물음에 ‘가족’이라고 답한 비율이 2002년에는 70.7%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시대의 변화에 따라 부모 부양 책임자로 ‘가족’을 꼽는 비율은 2006년 63.4%, 2010년 36.0%, 2014년 31.7%, 2018년 26.7% 등으로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반대로, 국가와 사회 등에 의한 공적 부양 의식이 확산하고 부모 스스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는 양상이다. ‘사회 혹은 기타’가 부모 부양에 책임이 있다는 응답은 2002년 19.7%에서 2006년 28.8%, 2010년에는 51.3%로 증가했고, 2014년 51.7%, 2018년 54.0%로 급증했다.

즉, 부모 부양 등 전통적인 가족의 의무가 이제는 개인이나 가족만의 책임이 아닌 국가나 사회로 이전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100세 시대 노인 요양, 치매질환자 간병 등을 가족의 위기, 국가적 난제로 확산시키지 않기 위해서는 정부나 지방자치단체 지원의 노인 복지나 인프라 구축 외에도 신탁 등을 활용한 가족 안전망을 마련하는 것도 좋은 대안이다.

배정식 하나은행 리빙트러스트센터장은 “일본의 경우 초고령사회가 급속히 진행되면서 치매인구의 자산관리 문제가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는데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며 “유언장의 경우 본인 사망 직후 수증자에게 소유권이 넘어가지만, 신탁은 나의 노후도 관리하면서 미성년 손자녀, 장애인 자녀가 있는 경우 연속성 있는 재산 관리가 가능하다는 게 강점이다”라고 말했다.

배 센터장에 따르면 1994년도에 이미 고령인구(만 65세 이상) 비율 14%를 넘겨 고령사회가 된 일본은 2000년대 이후 상속 분쟁을 겪고 미리 대비해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가파르게 증가했다.

가령, 금융기관에서 유언장을 보관해 주는 유언장 보관 서비스가 1990년 후반부터 시작됐고, 문방구에서 유언장 키트가 유행하기도 했다. 특히, 일본 금융기관들의 상속 관련 상품의 흐름을 보면 ‘유언장을 작성하자’는 사회적 분위기와 맞물려 유언장을 보관하고 상속 집행을 해 주는 유산 정리 업무가 자리 잡고 있다.

배 센터장은 “신탁은 본질이 계약이다 보니 본인들이 원하는 내용을 계약에 담기 위해서는 대면 상담과 다양한 컨설팅 과정이 필요하다”며 “하지만 우리의 현실적인 제도 운영상 한계도 있다. 금전신탁을 가입하기 위해 아직도 대면 신규를 해야 하는 것도 그 예다. 고령자들이 가입한 치매 대비 관리자금과 같은 경우에는 단순 관리 기능에 일본처럼 조금 효율적인 운용을 통한 금리 혜택을 줄 방법이 있다면 운용 방법도 개선되면 좋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황혼이혼, 재혼↑, 상속 갈등도↑
이혼 및 재혼의 증가도 상속의 셈법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고 있다. 통계청에 따르면 1970년 국내 조이혼율(인구 1000명당 이혼 건수)은 0.4건으로 1980년 0.6건, 1990년 1.1건, 2000년 2.5건, 2016년 2.1건으로 꾸준히 증가하며 재혼도 늘었다. 주목할 데이터는 황혼이혼이 급증했다는 점이다. 통계청의 ‘2019년 혼인·이혼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20년 차 이상 부부의 이혼율은 전체의 34.7%로 가장 높았다.
[big story]상속 분쟁 10년 새 6배…가족 행복의 ‘걸림돌’
이와 함께 중·장년의 재혼율도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2019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2018년 기준 65세 이상 고령인구의 재혼 건수는 총 4106건으로 이 중 남자의 재혼 건수가 2759건으로 전년 대비 2.8% 증가했고, 여자의 재혼 건수는 전년 대비 12.1% 늘어난 1347건으로 집계됐다. 남녀 모두 이혼 후 재혼이 사별 후 재혼보다 많았다.

그렇다면 황혼재혼을 한 배우자의 상속분은 어떻게 될까. 황혼재혼을 한 후 배우자가 바로 사망했더라도 생존배우자의 상속분은 민법에서 규정한 대로 자녀의 1.5배다. 다시 말해 자녀가 2명이라면 새 배우자의 상속분은 자녀가 각각 1일 때 1.5의 비율이기 때문에, 새 배우자는 3.5(1+1+1.5)분의 1.5, 자녀들은 각각 3.5분의 1의 비율로 상속재산을 나누게 된다.

만약 황혼재혼한 배우자가 또다시 이혼하는 경우, 재산분할청구권은 인정된다. 그러나 재산분할 대상은 혼인 중에 취득하거나 형성된 재산이므로 혼인 중에 취득하거나 형성된 재산이 없는 경우에는 재산분할이 인정될 여지가 없을 것이다. 단, 혼인 기간이 상당하고 배우자가 상대방의 혼인 전부터 있었던 재산에 대해 재산을 유지하거나 가치를 증가시키는 데 기여했다면 혼인 전부터 있었던 재산에 대해서도 재산분할이 인정된다.

점입가경 유류분 분쟁
이 밖에도 가족 간 갈등은 유류분(遺留分) 전쟁에도 드러난다. 대법원 자료를 보면 가족 간 재산 분쟁의 하나인 ‘유류분(遺留分)반환청구 소송’은 2008년 295건에서 2018년 1371건으로 10년 사이 약 4.6배 급증했고, 소송까지 진행되지 않은 분쟁도 상당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처럼 자식들 간 재산 다툼이 사회적 문제로 확대되고 있는 것은 이혼과 재혼 등으로 가족 형태는 다양해지는데, 부모들은 유류분 비율대로 재산을 배분하지 않아 가족 갈등의 불씨를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재혼이 늘면서 전처와 이혼 후 후처와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에 대한 재산 분배에서 드러나는 갈등의 골은 더욱 깊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세대와 가족 구성의 급격한 변화는 상속 문제를 더욱 복잡하고 치열하게 하고 있는 만큼 관련 법령의 보완이 시급해 보인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1호(2020년 06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