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앙정보국(CIA)이 디지털혁신부를 신설했다. CIA는 이번 조직 개편을 위해 베테랑 요원 9명으로 구성된 팀을 만들어 3개월간 연구를 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인 CIA가 67년 만에 조직 개편을 단행한 속사정을 알아봤다.
[GLOBAL MONITOR] 디지털혁신부 신설한 미국 CIA의 노림수
미국 CIA가 창설 이후 67년 만에 조직을 전면적으로 개편한다. 존 브레넌(59) CIA 국장은 전 세계적으로 복잡하고 다양한 안보 위협과 사이버 등 각종 기술의 발전에 대한 대응력을 높이기 위해 전면적인 조직 개편을 추진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CIA 조직 전면 개편 계획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점은 작전 부서와 분석 부서를 통합하는 것이다. 전통적으로 CIA에서는 현장에서 뛰는 작전 요원과 이런 작전 요원들이 모아 온 정보를 분석하는 사람들이 완전하게 분리돼 있다. 그런데 앞으로는 두 부서 요원들을 임무와 지역별로 분류된 부서에 함께 배치할 계획이다.

브레넌 국장은 테러리즘을 비롯해 중동, 아프리카, 동아시아 등 현안이나 지역별로 이른바 ‘미션센터’ 10개를 새로 만들고 부국장들이 각 센터의 작전과 첩보, 정보 분석 등을 총괄하게 할 방침이다. 해외에서 운영되는 CIA의 지국 시스템은 그대로 유지할 계획이다. 그는 작전과 분석 부서 간의 오랜 칸막이를 없애 두 부문의 전문 요원들을 한 조직에서 함께 근무하게 함으로써 상당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해외서 운영되는 지국 시스템은 유지
CIA의 조직 개편 모델은 9·11테러 이후 만들어진 대(對)테러리즘 센터다. 이 센터는 CIA의 다른 조직들과 달리 작전과 분석 요원들이 협업해 10년 동안의 노력 끝에 오사마 빈 라덴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브레넌 국장은 필름 카메라 시절 업계 선두였던 코닥이 디지털 카메라 시대에 뒤처진 사례를 들며 CIA 조직 개편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CIA는 미국 16개 정보기관들 가운데 가장 유능한 조직이라는 말을 들어 왔다. CIA의 전신은 제2차 세계대전 때 활동해 온 전략사무국(OSS)이었다. OSS는 스파이 활동과 적국의 저항세력을 지원하는 임무를 수행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해체됐다. 이후 해리 트루먼 미국 대통령은 지난 1947년 백악관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만들고 국가안전보장법에 따라 대통령 직속 정보기관으로 CIA를 창설했다. CIA는 비밀공작부(National Clandestine Service), 과학기술부(Science and Technology), 정보부(Information), 지원부(Support) 등 4개 부서가 있다. 주요 임무는 국가 안전 보장을 위해 정보를 수집, 분석하는 것이다.

CIA는 냉전시대에 구소련과 치열한 첩보전을 벌이며 세계 최고의 정보기관으로 성장했으며, 1990년대까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 왔다. 하지만 CIA의 위상은 냉전이 종식된 이후 하향세를 걸어 왔다. 특히 국제 테러 조직 알카에다가 감행한 9·11테러를 사전에 알아내지 못하면서 CIA의 정보 수집 능력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기도 했다. CIA는 또 알카에다 조직원들을 비롯한 테러 용의자들을 불법으로 고문해 문제가 되기도 했다.

게다가 이라크 전쟁의 원인이 됐던 대량살상무기(WMD) 보유 여부에 대한 잘못된 정보 수집으로 비판의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CIA 본부는 수도 워싱턴 인근 버지니아 주 랭리에 있는데, 이 때문에 CIA는 흔히 ‘랭리’라고 불린다. 예산은 공개된 적이 한 번도 없지만 연 440억 달러 이상인 것으로 추정된다.

CIA 요원들은 전 세계적으로 2만여 명에 달한다. CIA는 그동안 위성이나 첨단 도청장비 등을 이용하는 이른바 ‘엘린트(Electronics Intellig ence, ELINT)’에 첩보 활동을 상당히 의존해 왔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얻을 수 있는 고급 정보를 놓치는 경우가 종종 일어났다. 이에 따라 ‘휴민트(Human Intelligence, HUMINT)’, 즉 사람에 의한 첩보 활동을 대폭 강화해 왔다.

CIA가 최근 들어 한국어, 중국어, 아랍어를 ‘중요 임무 언어’로 분류하고 이들 언어 구사능력자를 채용할 때 특별 보너스 지급을 약속하는 등 인재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특히 CIA는 중국의 군사와 경제 정보 수집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기 때문에 중국에 정보력을 집중하고 있다. CIA는 상사원, 연구원, 언론사 특파원, 평화봉사단원, 종교인 등 다양한 신분으로 요원들을 해외에 파견하고 있다.


한국어·중국어 능력자 특채
조직 전면 개편을 주도하고 있는 브레넌 국장은 2013년 1월 CIA의 총책임자로 임명됐다. CIA에서만 25년간 활동한 정보통인 그는 대테러 활동에서 뛰어난 성과를 보였다. 브레넌 국장은 2011년 5월 알카에다 지도자이자 9·11테러 주범인 빈 라덴 사살 작전에서 핵심 역할을 했다. 특히 파키스탄과 예멘의 테러 용의자에 대한 무인공격기와 특수부대 작전을 총괄 지휘하기도 했다.
[GLOBAL MONITOR] 디지털혁신부 신설한 미국 CIA의 노림수
아일랜드 출신 이민 2세인 그는 포드햄대에 다니던 중 뉴욕타임스에 게재된 CIA 요원 채용 광고를 보고 첩보원이 되려고 결심했다고 한다. 이집트 카이로 있는 아메리칸대에서 아랍어를 배웠고 텍사스대에서 중동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은 브레넌 국장은 CIA에 들어간 이후 유창한 아랍어 실력을 인정받으며 사우디아라비아 리야드 지부장을 지냈다. 조지 테닛 CIA 국장 수석보좌관 등을 역임했으며, 2005년 대테러센터 소장을 마지막으로 CIA를 떠났다. 이후 국방·안보 분야의 컨설팅업체 대표로 활동하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취임과 함께 백악관의 대테러·국토안보 담당보좌관에 임명됐었다.

역대 CIA 국장은 이름만 들어도 쟁쟁한 사람들이 많다. 그중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은 조지 H. 부시 전 미 대통령이다. 조지 W. 부시 전 미 대통령의 부친이기도 한 부시 전 대통령은 CIA 국장 출신으로 유일하게 대통령에 올랐다. CIA는 부시 전 대통령의 업적을 기리는 의미에서 1999년 본부 건물을 ‘조지 H. 부시 센터’로 개명하기도 했다.

현재의 CIA를 정착시킨 인물은 한국전쟁이 끝나 갈 무렵인 1953년 2월부터 1961년 11월까지 9년간 CIA 국장으로 장수하면서 기초를 닦은 앨런 덜레스다. 최초의 민간인이자 최장 CIA 국장 타이틀을 달고 있는 덜레스 전 국장은 1953년 이란의 모사데크 정권 전복과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 암살 공작을 벌이기도 했다. 그는 카스트로 암살에 실패하자 책임을 지고 물러났다. 1991년부터 1993년까지 CIA 국장을 지낸 로버트 게이츠 국방장관과 오바마 정부 출범과 함께 2년간 재직한 리언 패네타 CIA 국장도 업무를 무난히 수행했다는 말을 들었다.

특히 CIA는 이번 조직 전면 개편 계획에서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및 스마트폰이 발달한 시대 흐름에 걸맞게 사이버 능력을 강화하기 위해 새로운 부서를 신설한다. 신설 부서의 명칭은 디지털혁신부(Digital Innovation)다. 브레넌 국장은 “빠르게 변하는 디지털 환경이 CIA에 도전이자 기회일 수 있다”면서 “디지털혁신부가 첩보 활동 방식을 크게 바꾸는 동시에 사이버 기술 발전에 주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첩보 방식의 변화 불가피
CIA에서 다섯 번째 부서가 된 디지털혁신부는 사이버 해킹과 해킹에 대한 방어 등 사이버 안보와 관련된 모든 사항을 전담한다. CIA가 디지털혁신부를 신설하게 된 것은 북한의 소니 영화사 해킹과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인 이슬람국가(IS)의 해킹 공격이 직접적인 계기가 됐다. 기존의 4개 부서는 그대로 존속하는데, 과학기술부와 지원부는 이름을 그대로 두고 비밀공작부는 작전부로, 정보부는 분석부로 이름을 바꾸기로 했다.

CIA는 이번 조직 개편을 위해 베테랑 요원 9명으로 구성된 팀을 만들어 3개월간 연구를 하는 등 상당히 공을 들였다. 이 팀은 요원 수천 명을 직접 면접하고, 전직 국장과 부국장들의 자문을 구했다. 브레넌 국장은 개편안을 백악관과 의회는 물론 다른 정보기관들에도 설명했다. CIA를 지휘, 감독하는 국가정보국(DNI)의 제임스 클래퍼 국장은 “안보 환경이 새롭게 바뀌고 있는 만큼 정보 조직도 바뀔 수밖에 없다”면서 “새로운 조직 개편은 바람직한 방향”이라고 개편안을 지지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번 조직 개편 계획은 의회 승인이 필요 없으며 CIA의 현재 예산 내에서 이뤄질 예정이다.



일본, CIA와 비슷한 대외 정보기관 창설 추진
일본 정부가 미국의 CIA와 같은 대외 정보기관 창설 계획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일본 정부는 지난 2월 이슬람국가(IS)에 의해 두 명의 자국민이 참수됐을 당시 이에 대한 독자적인 정보를 수집하지 못해 전혀 대책을 마련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일본 정부는 대외 정보기관 창설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현재 일본에서 해외 정보를 수집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것은 총리 직속의 내각정보조사실이다. 이곳을 중심으로 외무성, 방위성, 경찰, 법무성 공안조사청 등의 정보 조직이 각각 수집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다. 내각정보관 밑에 국내, 국제, 경제, 총무 등 4개 부서와 내각정보집약센터 및 내각위성정보센터가 설치돼 있다. 하지만 인원은 170여 명인 데다가 예산도 적어 정보 수집 능력이 다른 선진국들의 정보기관에 비해 크게 뒤떨어진다는 평가를 받아 왔다. 일본 정부는 현재 IS의 참수사건에 대한 검증위원회를 구성해 당시 문제점들을 조사하고 있다. 검증위원회는 참수사건에 관한 보고서를 낼 때 대외 정보기관 설치를 제언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일본 정부는 이르면 가을 임시국회 회기 중에 CIA 같은 대외 정보기관의 창설 법안을 발의할 계획이다. 물론 아베 신조 총리와 일본 정부가 대외 정보기관을 창설하려는 진짜 속셈은 군사대국화를 지원하기 위한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일본 정부는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요시다 시게루 총리(1946∼1947년, 1948∼1954년 재임)가 CIA와 같은 대외 정보기관을 만들려 했지만 군국주의 시절 내각정보국의 부활이라는 비판에 부딪혀 1952년 현재의 내각정보조사실을 만드는 데 그쳤다. 대외 정보기관을 신설하려면 이런 문제 제기를 극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상당한 예산과 인적 자원이 필요하다. 일본 정부가 말 그대로 ‘숙원사업’인 대외 정보기관을 창설할지 주목된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truth21c@empa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