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용섭 기자의 금융레시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3월 기준금리를 연 1.75%로 0.25%포인트 전격 인하하며 1% 금리 시대에 접어들게 됐다. 2%대 물가상승률을 고려하면 사실상 마이너스 금리 시대가 된 것이다. 이제 은행 예·적금과 일부 수시입출식 통장은 금리만 놓고 보면 별반 차이가 없을 정도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부터 저금리 시대의 역설은 시작된다.
[INSIDE MONEY] 저금리 시대 新풍속도 수시입출식 통장의 반란
1%대 금리에 2%대 물가. 사실 은행에 돈을 넣어도 수익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는 이야기다. 하지만 뭉칫돈의 흐름은 결코 간단한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 저금리 시대 사실상 제로(0)금리에 가까웠던 수시입출식 통장에 돈이 몰리고 있는 것만 봐도 그렇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어느 정도 기준금리의 추가 인하 가능성이 이야기되던 2월 시중은행의 수신잔액은 전월 대비 10조3000억 원 증가한 1282조6000억 원을 기록했으며, 수시입출식 예금은 전월 대비 18조4000억 원이 증가했다. 반면 정기예금은 7조7000억 원이 감소하는 수모를 겪었다.

돈을 넣고 빼기가 자유로운 수시입출식 예금은 그동안 푸대접을 받아 왔다. 각 은행들은 제로금리에 가까운 0.1~0.2%의 기본 금리만을 제공했고, 각종 수수료를 빼고 나면 수익은커녕 손해를 보기 일쑤였다.

이 같은 풍속도는 저금리 시대에 상당한 변화를 겪고 있다. 일반 예·적금 상품들이 기준금리 인하 등의 영향으로 조금씩 금리를 내리는 동안 고금리로 무장한 수시입출식 금융상품들이 속속 등장하며 금리 격차가 순식간에 좁혀진 것이다.

실제로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하를 전격 결정한 3월 12일 전국은행연합회 홈페이지에 게시된 각 은행들의 금리를 살펴보면 예·적금과 수시입출식 상품 간 금리 차이는 크지 않다. 물론 기준금리 인하 이후 각 은행들이 추가로 금리를 인하하게 되는 부분은 감안해야 한다.

적금 중 1년 만기를 기준으로 가장 높은 금리를 제공하는 상품은 수협은행의 ‘파트너가계적금’으로 2.60%(2월 23일 기준)였으며, 그 뒤를 전북은행의 ‘JB다이렉트적금’(자유적립식)과 하나은행의 ‘오!필승코리아적금’(정액적립식)이 각각 2.50%(2월 16일 기준)와 2.40%(2월 23일 기준)로 바짝 쫓는 구도다. 이외 국민은행 ‘e-파워자유적금’(2.20%, 2월 27일 기준), IBK기업은행 ‘新서민섬김통장’(2.10%, 2월 27일 기준) 등 대다수 은행들이 2.00% 초반대 금리를 제공했다.

예금도 별반 다르지 않아 KDB산업은행의 ‘KDB다이렉트 하이정기예금’이 1년 만기 기준으로 2.30%(2월 23일 기준)로 가장 높은 가운데 하나은행의 ‘고단위플러스 금리연동형과 금리확정형’이 2.00%(2월 23일 기준), 우리은행의 ‘키위정기예금’이 2.00%(2월 17일 기준)로 2.00% 초반대 금리가 형성됐다.

수시입출식 예금은 이에 조금 못 미치지만 2%대 전후의 금리를 제공하며 일반 예·적금 상품을 압박하고 있다. 한마디로 금리만 놓고 보면 예·적금과 수시입출식 통장 간에 차별점을 쉽게 찾을 수 없다는 소리다.

3월 초 출시된 한국씨티은행의 ‘참 착한 플러스 통장’은 매일의 최종 전체 잔액에 대해 최고 연 2.20%(3월 12일 기준)의 금리를 제공해 눈길을 끌었고,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의 ‘마이심플통장’은 연 1.70%(3월 12일 기준)를 제공하고 있다. 또 산업은행(KDB 하이입출금통장)과 전북은행(JB다이렉트 입출금통장)의 경우 2월과 3월에 금리를 내렸지만 각각 3월 12일을 기준으로 연 1.85%와 1.90%로 금리를 유지하며 여전히 시장에서의 매력을 유지했다.


갈 곳 없는 유동자금 수시입출식 통장에 ‘주차’
한은이 발표한 올해 물가상승률 전망치는 1.90%. 기준금리가 1.75%까지 내려가며 마이너스 수익률을 낼 수도 있는 상황에서 예·적금과 금리 격차를 좁힌 수시입출식 통장에 유동자금이 빠른 속도로 흡입되고 있다는 점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씨티은행의 ‘참 착한 통장’은 출시 7개월 만에 수신고 2조 원을 돌파하더니 최근 잔액기준으로 2조3000억 원을 훌쩍 넘어섰다. 계좌 수는 4만2000여 좌로 계좌당 평균 잔액은 약 5500만 원에 이른다. 아직 실적을 논하기는 이르지만 후속 주자로 나온 ‘참 착한 플러스 통장’도 씨티은행 측에 따르면 계좌당 평균 금액이 5억7600만 원이라고 한다.

‘단 하루만 맡겨도 높은 금리를 제공한다’는 다소 자극적인 광고문구를 내세워 승승장구하고 있는 SC은행의 ‘마이심플통장’도 3월 들어 잔액이 4조7000억 원을 넘어섰으며, 계좌 수는 17만7000좌로 계좌당 평균 금액은 2600만 원이다.

이처럼 수시입출식 통장에 돈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중은행 관계자들은 이를 ‘주차효과’라고 부른다. 마땅한 투자처를 찾지 못한 자산가들의 뭉칫돈이 단기 부동 자금으로 수시입출식 통장에 머문다는 뜻이다. 최근 미국의 금리 인상 가능성 등으로 그 어느 때보다 변동성이 커지며 안전성을 선호하는 고액자산가들이 단기간 돈을 묶어 두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금리를 받을 수 있는 수시입출식 통장을 선호하는 이유도 한몫했다.

은행들이 앞다퉈 고금리 수시입출식 상품을 강화하는 이유도 이 같은 부동 자금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고금리 수시입출식 상품의 대표 격인 ‘마이심플통장’은 까다로운 조건을 내세우지 않고 일별 잔액이 300만 원 이하이면 일반 예금 금리인 연 0.01%를, 300만 원 초과 금액에는 연 1.70%의 금리를 제공하며, 자산가들의 단기간 목돈 굴리기 수단으로 인기를 모으고 있다. 무엇보다 선입선출법이 적용되지 않고 예치한 그날 바로 이율이 적용되도록 한 점도 매력적이다.

씨티은행이 최근 출시한 ‘참 착한 플러스 통장’은 전작인 ‘참 착한 통장’의 인기에 힘입어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선보이고 있다. ‘참 착한 통장’이 500만 원 미만, 500만 원 이상, 1000만 원 이상, 3000만 원 이상 및 5000만 원 이상의 구간을 정해 잔액별 이율(연, 세전)을 적용했다면 ‘참 착한 플러스 통장’은 좀 더 고액자산가에 초점을 맞춰 매일의 최종 잔액에 대해 1억 원 미만(0.01%), 1억 원 이상(1.70%), 2억 원 이상(1.75%), 5억 원 이상(1.80%), 10억 원 이상(2.00%)으로 그 규모를 키웠다.

이와 더불어 시중은행에서는 시장금리부 수시입출식예금(MMDA)의 수요도 점차 증대되는 상황이다. MMDA는 고객이 은행에 맡긴 자금을 단기 금융상품에 투자해 얻은 이익을 이자로 지급하는 구조다. 보통예금처럼 입출금이 자유롭고 예금자 보호가 적용되면서도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률을 올릴 수 있는 것이 강점이다.

MMDA 상품 중 1억 원 이상 기준으로 수협은행의 ‘스페셜플러스예금’이 연 1.80%의 금리(2월 23일 기준)를 제공하고 있으며, 산업은행의 ‘KDB드림다모아 어카운트’(1.50%, 2월 23일 기준), 우리은행의 ‘고단백 MMDA’(1.30%, 2월 17일 기준) 등이 시장의 호평을 받고 있다. 하지만 MMDA 상품의 경우 500만 원 이하에는 대부분 금리를 제공하지 않거나 0.10% 수준의 기본 금리를 제공한다는 점은 유의해야 한다.

저금리 시대에 수시입출식 통장에 돈이 몰린다는 것은 그만큼 투자처가 변변치 못하다는 방증이다. 과거 도서관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자리 주인이 나타날 때마다 떠돌아 다녀야 했던 일명 ‘메뚜기’처럼 현재 시중의 유동자금은 안정적인 투자처를 찾지 못해 방황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