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 시중은행인 KB국민·신한·우리·하나은행의 수장이 작년 하반기와 올해에 걸쳐 모두 교체되며 시중은행의 지존을 가리는 ‘리딩뱅크 전쟁’이 본격화되고 있다. 공교롭게도 재무 담당 출신이 수장을 맡은 KB국민은행과 하나은행, 영업맨 출신이 은행장에 오른 우리은행과 신한은행의 대결은 또 다른 관전 포인트를 제공하고 있다는 평가다.
[INSIDE MONEY] 4대 은행 뉴리더 ‘리딩뱅크 전쟁’ 재무통 VS 영업통 정면 충돌
4대 시중은행 중 가장 먼저 작년 11월 KB금융지주 회장 겸 KB국민은행장에 오른 윤종규 은행장은 올해 초 전 경영진에게 ‘리딩뱅크 탈환’의 의지를 강조했다.

KB에서만 두 번 퇴사하고 세 번 입사한 윤 행장. 그가 KB국민은행의 재무기획본부장으로 있었던 2002년은 신한은행과 조흥은행이 통합도 되기 전이었고, 2001년 주택은행과 통합을 통해 탄생한 KB국민은행은 당시 압도적인 1위 은행이었다.

이에 대한 화답이었을까. 4대 시중은행장 중 가장 늦은 지난 3월에 취임한 조용병 신임 신한은행장은 취임사에서 “흔들림 없는 리딩뱅크의 위상을 확립하겠다”고 다짐했다. 작년에도 거침없는 순항을 거듭하며 타 은행들과 격차를 보여준 은행대장주로서 결코 추월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작년 12월 취임한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강한 은행이 되겠다”고 피력하며, “시장점유율(MS)이 1등이 아닌 부분도 앞으로 증가분만큼은 반드시 1등이 돼야 한다”며 직원들을 독려하고 나섰다. 작년 은행에 대한 민영화 추진이 또다시 불발에 그치며 어수선해진 내부 분위기를 다시 다잡아보겠다는 의중으로 풀이된다.

하나은행의 김병호 은행장도 마음이 바쁜 것은 매한가지다. 하나은행과 외환은행의 연내 통합이 법원의 제지로 늦춰지게 되며, 지난 2월 은행장 직무 대행 딱지를 뗐지만 타 은행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진한 수익성을 끌어올려야 하는 제1과제가 발등에 불로 떨어졌다.

작년 신한금융지주가 금융권에서는 유일하게 2조 원 순이익을 돌파하며 여전히 변함없는 ‘1등 DNA’를 보여주었지만, 은행부문만 놓고 보면 신한은행이 잠시 주춤하는 사이 경쟁 은행들이 무서운 속도로 추격전을 펼치는 모습이 역력했다.

2014년 순이익을 보면 신한은행이 전년 대비 6.0% 증가한 1조4552억 원을 기록하며 은행권 중 선두를 지켰으며, KB국민은행은 장기간 조직의 발목을 잡았던 경영진 간 내분의 아픔을 수습하며 전년 대비 23.9% 증가한 1조290억 원의 순이익을 내 만만치 않은 저력을 보여줬다.
가장 놀라운 반전을 보여준 곳은 우리은행. 지주사 체제였던 2013년 5377억 원의 적자를 기록하며 부진했으나, 은행 체제로 바뀌며 작년 1조2140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한 것. 하지만 이 같은 급격한 실적 상승에는 작년 2분기 계열사 민영화와 관련 법인세 환입 효과(6043억 원)가 상당 부분 작용했다.

또한 하나은행은 작년 8561억 원의 순이익을 기록하며 2013년 대비 21.2% 상승하는 모습을 보여주었으며, 연내 통합이 불투명해진 하나금융의 ‘두 지붕 한 가족’ 외환은행은 전년 대비 17.8% 증가한 3651억 원의 순이익에 그쳤다. 하지만 이 같은 실적은 불과 1년 전만 해도 신한은행과 많게는 두 배가 넘게 순이익 차이를 보였던 격차를 상당 폭 줄인 것으로 일단 신한은행의 일방적인 독주체제에 이상 신호가 감지되고 있다.

간격이 좁혀진 만큼 추격 의지는 강해질 수밖에 없는 법. 윤종규 은행장은 우선 신한금융지주 사장을 지낸 최영휘 씨를 삼고초려 끝에 KB금융 사외이사로 영입하는 등 파격을 보였으며, 영업점을 예고 없이 방문해 직원들을 독려하며 한동안 잊고 있었던 ‘1등 DNA’의 불씨를 살리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다.

KB국민은행의 한 임원은 “윤 행장님이 지난 3월부터 업무그룹별로 보고를 받고 있는데 주말에도 출근해 꼼꼼하게 보고서를 살피는 통에 직원들이 바짝 긴장하고 있다”며 “영업력 회복을 위해 현장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작업에 상당히 공을 들이고 있다”고 전했다.

이광구 우리은행장은 매년 15조 원 이상의 자산 증대와 1조 원 이상의 이익 목표를 내걸었다. 또 경영전략 회의 때는 항상 ‘내 몫 완수’와 반걸음 앞서 나가야 한다는 ‘영선반보(領先半步)’라는 구호를 강조한다. 특히 ‘강한 은행’을 전면에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강력한 변화를 주문해 눈길을 끌고 있다.

우리은행의 한 부행장은 “(이광구 행장은) 영업의 달인 소리를 듣던 분답게 직원들에게 ‘동네 축구 하듯이 영업하지 말라’고 주문한다”며 “이곳저곳 우르르 몰려다니지 말고 각자의 포지션을 지키는 영업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고 전했다.


내실있는 조직 VS 강한 현장
리딩뱅크라는 미션은 하나이지만 이를 풀어가는 4대 시중은행장들의 경영 스타일은 확연히 갈린다. 재무통으로 분류되는 윤종규 KB국민은행장과 김병호 하나은행장이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조직의 내실 다지기에 공을 들이고 있다면 영업통에 속하는 이광구 우리은행장과 조용병 신한은행장은 ‘강한 현장’을 강조하며 고객 확보나 글로벌 공략 등을 강력하게 주문하고 있다.

윤종규 은행장은 삼일회계법인 출신으로 은행권 최고의 재무총괄임원(CFO)으로 불렸던 인물. 윤 행장은 서두르지 않고 조직의 내실을 다지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윤종규표는 중요하지 않다. KB표가 중요하다’며 자신의 색을 조직에 무리하게 입히기보다 KB의 실질적인 성과를 높이기 위해 KB금융의 지배구조 개선 작업이나 LIG손해보험 인수 등 밑작업에 공을 들였다.

이후 그는 리딩뱅크 탈환을 위해 재무 전문가다운 처방전을 내놨다. 수익성 제고를 위해 대손비용을 줄이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실 2014년 실적을 놓고 보면 KB국민은행의 영업이익(이자 이익+비이자 이익)은 신한은행에 비해 8778억 원가량 더 많았으나 대손충당금 전입액, 판매관리비, 영업외 이익 등 누수되는 금액이 컸다. 또 수익성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의 하락을 주시했다. 4대 은행 중 NIM이 5년 내 1.0% 이상 하락한 곳은 KB국민은행이 유일하다.

윤 은행장은 4월 초 회사를 통해 “금융환경 변화로 인해 NIM이 하락하는 현재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신용대출, 소호와 중소기업 시장에 대한 마케팅을 강화하고 비이자 수익 창출에 집중함으로써 약화되는 수익성을 회복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윤 은행장은 ‘똑부(똑똑하고 부지런한)’로 불릴 만큼 매사 맺고 끊는 것이 정확한 인물로 불린다. 조직에 대한 진단과 판단이 섰다면 향후 반전의 카드도 여럿 생각해 두었을 것이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윤 은행장이 자존심을 숙이고 리딩뱅크 탈환을 전면에 내세웠으면, 아마도 나름대로의 수익성 회복 방안도 상당 부분 고민했을 것”이라며 “올해 1년은 골프도 치지 않겠다고 선언했다는데 무섭게 파고드는 조용한 그의 전략이 시장에서 어떤 반향을 일으킬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고 전했다.

미국공인회계사(AICPA) 출신으로 하나금융의 재부 담당 부사장(CFO)을 지낸 김병호 하나은행장도 재무통답게 수익성 개선을 위해 주판알을 굴리듯 조용한 포석을 준비 중이다. 사실 하나와 외환은행의 통합을 앞두고 그에게 주어진 최대 과제는 경쟁 은행에 비해 수익성이 떨어지는 부분을 치료해 ‘원 뱅크’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 하나은행은 2015년 1분기에 전년 동기 대비 182억 원(6.5%) 감소한 2608억 원의 순이익을 거두며 시장의 당초 예상치를 상회하는 선전을 펼쳤다.

그가 선택한 수익성 제고 방안은 슬림화와 효율화다. 취임 후 첫 행보로 10그룹 16본부 1단 48부였던 조직을 10그룹 12본부 45부로 줄여 효율성을 제고토록 했다. 또 기사 공유제를 시행해 임원들의 운전기사 수도 절반으로 줄이는 등 아주 세세한 부분에 이르기까지 허리띠를 졸라매는 ‘짠물 경영’을 도모하고 있다.

더불어 김 은행장은 선제적인 리스크 관리를 위해 현장 중심의 리스크 심사 지원을 강화하고, 거액 부실여신 예방을 위한 사전적 여신감리 기능도 강화키로 했다. 또 신성장 동력 강화를 위해 연구개발센터를 신설해 핀테크(fintech) 등 신기술을 활용한 신규 사업 기회를 창출하고, 모바일뱅킹 및 결제 서비스를 차별화하겠다는 구상도 제시했다.

김 은행장이 국제센터지점장, 뉴욕지점장을 거친 국제통이고 최연소 은행장(1961년생)이라는 측면에서 패기 넘치게 글로벌 공략을 위해 보폭을 넓혀 나갈 것이라는 관측도 있지만 당분간 수익성 강화라는 급한 불을 끄는 데 더 집중할 것이라는 전망이 조금 더 우세하다.


영업통 행장, 글로벌 적극 공략
이처럼 재무통 출신들이 허리띠를 졸라매며 드러나지 않게 수익성 제고에 집중할 때 영업맨 출신의 이광구 우리은행장과 조용병 신한은행장은 글로벌 공략 등을 외치고 있어 대조를 이룬다.

이광구 은행장은 “매년 15조 원 이상의 자산을 증대시키고 안정적으로 1조 원 이상의 이익을 실현하겠다”며 24개의 프로젝트, 경쟁력 제고 3대 방향, 6개 기본 방침, 5대 경영지표 등을 뜻하는 24·365 프로젝트를 제시했다.

특히 개인영업전략부장, 개인마케팅부장 등을 거친 영업통답게 충성고객 100만여 명을 확보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특유의 ‘뭉텅이 영업’을 강력하게 주문해 눈길을 끌고 있다. ‘뭉텅이 영업’은 대학이나 병원 등 주요 거점을 주거래 고객으로 유치한 뒤 개인을 고객으로 흡수하는 영업 전략을 말한다.

국내 성장의 한계를 해외시장에 대한 적극적인 공략으로 정면 돌파해 나가겠다는 글로벌 구상도 구체적인 밑그림으로 제시하고 있다. 이 은행장은 작년 6%에 머문 해외 영업수익 비중을 내년까지 10%로 확대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이에 우리은행은 미국에서만 애틀랜타, 캘리포니아 등에 세 개 이상의 지점을 오픈하고, 인도네시아에서는 다섯 개 이상의 지점을 늘리는 등 글로벌 영업망 확충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영업추진그룹 부행장을 지내기도 한 조용병 신한은행장도 소극적인 리딩뱅크 수성이 아닌 적극적인 영토 확장을 다짐한 상태다. 그는 취임식에서 “수익성과 건전성,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겠다”고 밝힌 뒤 “강한 영업력을 발휘해 우량 자산 위주의 성장을 이어가고 신시장 개척을 통해 미래 수익원 발굴에 매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영업맨으로서 조 은행장이 강조한 것은 ‘플랫폼 경영’이다. 그는 “금융 분야에서 온라인 지급결제 시스템, 자금 수요자와 공급자를 연결하는 크라우드 펀드 등 플랫폼 사업이 점차 두드러지고 있다”면서 “플랫폼 경영을 은행 경영에도 적극적으로 도입하겠다”고 밝혔다.

신한BNP파리바자산운용 대표이사 출신답게 초저금리 시대 자산 운용의 중요성도 꿰뚫고 있었다. 그는 3월 18일 취임식 직후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인하로 은행 고객들은 자의건 타의건 자본시장으로 옮겨갈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은행 경영 전략도 자산 운용 중심으로 판도가 급격히 바뀔 것”이라고 내다봤다.

해외시장도 예의주시하고 있다. 초저금리 시대 수익성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해외 공략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이기 때문. 신한은행은 지난 3월 20일 필리핀 마닐라지점을 개점했는데 이를 교두보로 삼아 필리핀 시장의 공략을 본격화할 계획이다. 이밖에도 연내 호주 시드니에 지점 설립을 추진 중이며, 멕시코 사무소도 올해 내 현지 법인으로 전환하는 등 해외 공략에 가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현재 신한은행의 해외 수익 비중은 8.3% 수준인데 이를 올해 10%까지 끌어 올리겠다는 복안이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