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농부 박영옥의 투자 칼럼-마지막 회

장은 묵어야 제 맛이라는데 주식투자도 무조건 장기투자를 하면 수익을 낼 수 있을까? 기업의 주기를 보지 않는다면 보유 기간에 관계없이 투기에 가깝다고 봐야 한다.
[Back  to the Basic] 무늬만 장기투자 안 된다
3년 넘게 모은 돈으로 주식투자를 한 사람이 있었다. 회사에서 권유를 했는지 어쨌는지 모르겠지만 자금의 절반으로 자사주를 샀다. 나머지는 직장 동료가 추천하는 종목 하나에 투자했다.

부하 직원이었던 직장 동료는 입사했을 때부터 주식투자를 하고 있었고 쉬는 시간이든 술자리에서든 주식 이야기를 했다. 전문가 수준의 언변을 보였던 그는 지금까지 정기적금의 이율보다 서너 배는 높은 수익을 냈다고 했다. 그는 늘 장기투자를 강조했다.

“형님, 우리 같은 개미들은 단타를 하면 안 돼요. 장은 묵어야 제 맛이라고, 사놓고 잊어버리고 있으면 수익이 나게 돼 있어요. 샀다 팔았다 해봐야 증권사만 좋고 수익도 안 난다니까요.”

한 번도 주식투자를 해본 적 없지만 장기투자가 정답이라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개미들의 가장 큰 문제가 단기투자라는 이야기는 언론을 통해 충분히 들었던 터였다. 그래서인지 그가 하는 말은 신뢰가 갔다. 그가 언론과 다른 이야기를 했다면 만기가 다가오는 적금을 깨지 않았을 것이다.


워런 버핏의 장기투자 의미는
결과적으로 그는 장기투자자가 됐다고 했다. 기간으로만 보면 거의 워런 버핏 수준이다. 버핏은 “10년 이상 보유할 주식이 아니면 10분도 보유하지 말라”고 했는데, 그 역시 10년 넘게 그때 샀던 종목을 보유하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그가 비자발적 장기투자자라는 것이다.

그가 자신이 투자한 종목에 관심을 가진 것은 3년 남짓밖에 되지 않는다. 그 무렵 투자금은 이미 원금의 50% 수준까지 떨어져 있었다. ‘알뜰살뜰’이 경제 철학이었던 그에게 막대한 손실은 심리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것이었다. 이제 와서 팔수도 없고, 관심을 가지자니 스트레스가 너무 컸다.

2~3년 전에 한두 다리 건너서 들은 이야기라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다. 이런 이야기는 한 개인에게는 절절한 사연이지만 주식시장에서는 진부한 에피소드다.

그가 투자한 종목을 알지 못하므로 주가가 어떻게 떨어졌는지는 모른다. 단기간에 급락했을 수도 있고 계단을 만들며 떨어졌을 수도 있다. 간간히 며칠씩 오르면서 희망을 주기도 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손실이 났어도 장기투자를 해야 하니까 참고, 좀 더 떨어졌을 때는 이제는 오르겠지 싶어서 참고, 설마 여기서 더 떨어질까 싶어 참고 있다가 심리적으로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손실을 입고 자포자기하지 않았을까 싶다.

실천 여부를 떠나 모두들 장기투자가 정답이라고 한다. 필자 역시 그렇게 말하곤 한다. 그런데 왜 장기투자를 해야 성공할 수 있는가? 그전에 장기와 단기를 나누는 기준은 몇 년(혹은 몇 개월)인가?

버핏의 보유 기간은 기본 10년이다. 연간 회전률이 수백 퍼센트에 이르는 개인투자자들은 농담처럼 ‘6개월이면 초장기’라고 이야기한다. 이렇게 보면 장기투자라는 말의 의미는 참 모호하다. 의미가 이렇게 모호하다면 장기투자는 성공 투자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 앞에서의 사례처럼 누구나 장기투자라고 인정할 만한 기간 동안 보유했음에도 불구하고 손실이 나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기업의 성장도 계절처럼 주기가 있다
장기투자는, 성공 투자라는 결과의 원인이 아니라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현상일 뿐이다. 주식투자는 기업과 동행하고 소통하면서 성장의 과실을 공유하는 것이다. 기업이 성장하려면, 즉 기업의 가치가 투자한 시점보다 높아지려면 일정한 시간이 필요하다.

기업의 성장에도 계절처럼 주기가 있어서 여름처럼 외형이 쑥쑥 자라는 때도 있고, 가을처럼 열매가 익는 시기가 있고, 겨울처럼 내년 봄을 준비하는 시기가 있다. 다만 기업의 주기는 계절처럼 일정하지는 않다. 봄에서 끝나버리는 기업도 있고, 긴 기간 동안 여름인 기업도 있다. 적지 않은 기업이 겨울을 넘기지 못한다.

제조업을 예로 들어 그 과정을 간단하게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연구·개발(R&D)을 한다. → 획기적인 상품을 출고한다. → 매출이 크게 상승한다. → 공장을 증설한다. → 경쟁 제품이 쏟아진다. → 초기에 비해 이익률이 줄어든다. → 새로운 제품을 위한 R&D를 한다.’

이 같은 과정이 교과서처럼 전개되지 않고 업종에 따라, 개별 기업에 따라, 경기에 따라 달라지지만 기본적인 흐름은 이렇다. 이 흐름의 주기를 필자는 4~5년으로 보고 투자를 한다. 물론 예상보다 길어질 때도 있고 줄어들 때도 있다. 그러니까 4~5년이라는 투자 기간은 장기투자가 아니라 ‘적정한 투자 기간’이다. 이 기간이 일반적인 투자 기간보다 길기에 편의상 장기투자라고 하는 것뿐이다.

여러분이 주식투자를 한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그냥 긴 시간을 보유하는 게 아니라 투자하는 기업의 성장주기를 예측하고 그에 따른 투자를 해야 한다. 기업이 예측한 주기에 따라 성장해 간다면 목표가까지 보유하고, 아니면 투자를 철회하는 것이다. 만약 주기를 보지 않는다면 보유 기간에 관계없이 투기에 가깝다.

현재 여러분이 보유하고 있는 자산은 여러분이 보유하기를 원하는 자산에 비해 턱없이 적다. 아마 60세까지 아끼고 아껴 저축해도 그 돈은 만져보지 못할 것이다. 그래서 주식투자를 하려는 것일 테고, 하는 것이 맞다. 그러나 사냥하듯이 해서는 안 된다.

호랑이도 잡고 곰도 잡고 맘모스와 공룡까지 잡아 한밑천 잡은 다음에 농부처럼 투자하겠다는 마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예로부터 ‘만석꾼 농부는 있어도 천석꾼 사냥꾼은 없다’고 했다. 인류가 수렵과 채집을 때려치우고 농경생활을 한 데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기업이라는 나무의 미래를 알고 싶다면 농사짓듯이 하면 된다. 1~2년 지켜보면 3~4년 후에 어떤 열매가 얼마만큼 열릴지 안다. 필자가 1~2년 지켜보고 확신이 서면 과감하게 베팅한 후 2~3년을 기다릴 수 있는 이유다. 오래 보유하고 있어서 장기투자인 것이 아니다. 인내심만으로는 기다릴 수 없다. 내년에 매화가 필지 안 필지 모르는 어리석은 농부는 마치 어리석은 투자자처럼 가지를 꺾어 그 안에 꽃이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것이다.

가지 안에는 꽃이 없다.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뱃속에는 황금알이 없듯이. 잠깐 봐서는 매화나무인지 잡목인지 모르고, 황금알을 낳는 거위인지 때가 되면 날아가 버릴 철새인지 모른다. 그래서 1~2년의 시간이 필요하다. 지켜보면 때를 알게 되고 때를 알면 기다릴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