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전문은행 탄생의 시나리오가 나왔다. 국내 최초로 1897년에 한성은행이 설립된 이후 118년 만에 점포 없는 은행 시대가 예고된 거다.
[Zoom In] 인터넷은행의 공습 태풍일까, 미풍일까
말만 무성했던 인터넷전문은행(이하 인터넷은행)의 빗장이 풀렸다. 정부에서는 6월 18일 연내 인터넷은행 한두 곳에 시범인가를 내주겠다고 발표했는데 금융권은 물론 핀테크(fintech)를 앞세운 정보통신기술(ICT) 업체까지 엉덩이를 들썩거리며 분주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정부가 보따리를 풀어낸 인터넷은행의 모습은 가히 파격적이다. 최저 자본금은 1000억 원에서 500억 원으로 완화됐고, 산업자본 지분은 최대 50%까지 허용됐다. 물론 상호출자제한기업집단(자산 5조 원 이상 대기업집단)은 제외시켰으므로 대기업이 참여하는 삼성은행이나 현대은행 등은 일단 논외로 빠지게 됐다. 영업 범위에도 제한을 없애 일반 은행과 동일한 경쟁을 펼칠 수 있게 됐으며, 자본 비율이나 유동성 비율 등도 일정 기간 완화된 규제를 적용하는 특혜를 받았다.

벌써부터 첫 번째 인터넷은행에 이름을 올릴 후보들에 대한 추측이 무성하다. 금융위원회가 기존 은행이 자회사로 인터넷은행을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의 의견을 밝힌 터라 후보군들은 ICT 업체나 제2금융권 중에서 나올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23년 만에 은행업 인가…합종연횡 분주
당국의 의지가 확고하다면 지난 5월에 중금리 신용대출을 주력으로 하는 은행권 최초 모바일 전문 은행 ‘위비뱅크’를 출범시키며 일찌감치 공을 들여온 우리은행이나 인터넷은행 수준의 서비스 제공을 위해 모바일 통합 플랫폼 ‘i-ONE뱅크’(원뱅크)를 최근 출시한 IBK기업은행의 경우 ‘닭 쫓던 개’의 신세를 면하지 못하게 된다.

신한금융그룹 중심으로 인터넷은행 태스크포스(TF)를 구성했던 신한은행이나 한국형 인터넷은행을 표명했던 KB국민은행도 정부의 행보만 주시하고 있는 상태다.

은행권 안팎의 관계자들은 네이버나 다음카카오, 인터파크, 다우기술 등 ICT 기업과 키움증권, 미래에셋증권, OK저축은행, SBI저축은행 등 제2금융권의 다양한 합종연횡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인터넷은행이 연내 예비인가를 받은 뒤 내년 상반기 본인가를 받으면 1992년 평화은행(우리은행에 흡수 합병)이 은행업 허가를 받은 후 23년 만에 새로운 은행이 탄생하는 것이다. 시범인가 대상은 오는 9월부터 신청을 받게 된다.

정부의 발표 이후 가장 적극적으로 움직이는 곳은 ICT 기업들이다. 우선 다음카카오는 인터넷은행 설립 추진을 공언하며, 속도를 내고 있다. 하나은행 등 금융권과의 접촉도 활발한데 역으로 금융권에서 다음카카오에 대한 러브콜도 쇄도하고 있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의 귀띔이다. 다만 작년 전자결제 전문 업체인 한국사이버결제를 인수하고 올해 7월 전자결제 서비스 ‘페이코’를 출시한 네이버의 경우 수익성이 불확실한 인터넷은행보다는 당분간 전자결제 서비스에 주력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다.

다우기술도 유력한 인터넷은행 후보다. 그동안 온라인 복권, 게임, 배달 애플리케이션 등으로 고객 데이터 확보에 주력해 온 다우기술은 키움증권의 최대 주주로서 증권과의 연계 방안을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전자상거래 기업인 인터파크도 인터넷은행을 만지작거리고 있다. “아직 내부 검토 중”이라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만 전자상거래 시장에서 G마켓이나 옥션 등에 막혀 활로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에서 수익성 확보를 위해 인터넷은행을 도모할 수도 있다는 관측이다.

이외에도 지불결제시스템(PG) 전문 업체인 KG이니시스, 휴대전화 간편결제 전문 기업인 KG모빌리언스, 휴대폰 결제 전문 기업 다날 등도 인터넷은행 후보군에 거론되고 있다.
[Zoom In] 인터넷은행의 공습 태풍일까, 미풍일까
증권사와 ICT 기업의 연합도 가능성이 큰 시나리오다. 정부의 인터넷은행 발표 이후 주가가 큰 폭으로 뛴 KDB대우증권, 미래에셋증권, 메리츠종금증권, 대신증권, 키움증권 등이 ICT 기업과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방안인데, 실제 키움, 미래에셋, 대신증권 등이 내부 TF팀을 운영하며 사업 진출 여부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지방은행 중에서는 부산은행을 자회사로 갖고 있는 BNK금융이 상당히 적극적이다. 부산은행의 목표는 일본의 라쿠텐은행처럼 유통 채널을 활용한 인터넷은행인데 파트너로 삼은 롯데그룹이 금산분리 규제의 벽을 넘을 수 있을지가 변수다. 금융당국에서 금산분리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밝힌 부분에 희망을 걸고 있지만, 대기업집단군에 속하는 롯데로서는 낙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실제 신격호 롯데그룹 회장은 2001년 SK텔레콤, 코오롱, 안철수연구소(현재 안랩) 등과 함께 국내 최초의 인터넷은행 ‘브이뱅크’ 설립을 시도했다가 정부의 반대에 부딪혀 좌초한 아픈 경험이 있다.

당초 인터넷은행 설립에 적극적이었던 저축은행들은 잠시 뒤로 물러앉은 상태다. 저축은행업계 1위인 SBI저축은행은 “인터넷은행 진출 계획이 없다”고 선을 긋고 나섰고, OK저축은행 역시 뚜렷한 입장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들은 앞서 우리은행에서 선보인 모바일 전문 은행 ‘위비뱅크’가 10% 이하의 낮은 금리로 하루 평균 3억 원에 가까운 대출을 취급하며, 저축은행의 주 고객(4~7등급)을 빼앗아 갔는데 인터넷은행을 함께 운영할 시 고객들이 중첩돼 오히려 실익이 없을 수 있다는 고민이 발목을 잡은 것으로 분석된다.


인터넷은행, 성배일까 독배일까
인터넷은행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지만 새로운 은행업 진출이 성배가 될지 독배가 될지에 대해서는 의문이 많다. 최근 은행업을 둘러싼 상황이 새 은행에 호의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한국은행이 6월 기준금리를 연 1.50% 인하해 저금리 기조는 더욱 확고해졌고, 올해 국내 18개 은행들의 수익성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1.63%로 역대 최저 수준을 기록했다. 더구나 정치권 등의 기류도 심상치 않다. 김기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등 일부 정치권과 참여연대 등 시민사회단체에서는 “인터넷은행 도입이 금산분리의 본질을 외면하는 것”이라며 은행법 개정에 반대하고 있어 험난한 국회 처리 과정을 예고하고 있다.

물론 해외에서 거둔 인터넷은행의 성공 사례는 고무적이다. 세계 최초 인터넷은행인 시큐리티퍼스트네트워크뱅크(SFNB)는 1995년 미국에서 설립돼 2014년 말 기준 총자산이 4582억 달러(507조6856억 원), 총예금 3267억 달러(361조9836억 원)에 이른다. 국내에서 리딩뱅크 경쟁을 펼치는 KB국민은행과 신한은행의 올해 1분기 총자산이 각각 313조 원과 280조 원임을 감안하면 엄청난 규모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이 같은 성공을 일반화시키기는 힘들 것 같다. 성공사례로 꼽는 미국의 경우 2000년 초반까지 30개 내외의 인터넷은행이 설립됐지만 낮은 브랜드 인지도와 기술력으로 고객 확보에 실패하면서 문을 닫는 사례가 속출했고, 홍콩과 싱가포르에서도 인터넷은행의 실패 사례는 쉽게 찾을 수 있다.

인터넷은행의 형태도 우리나라와 직접적인 비교가 어렵다. 미국의 경우 GM이나 BMW 등 자동차 회사가 세운 인터넷은행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반면 우리나라는 현대자동차 등의 은행업 진출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 또 미국 최대 인터넷은행인 찰스슈바프는 종합자산관리 서비스에 중점을 두는 전략으로 성공을 거뒀지만 아직까지 한국의 인터넷뱅킹이나 모바일뱅킹 등 비대면 채널은 계좌이체나 조회관리에 주로 사용되고 있어 인지도 면에서 떨어지는 인터넷은행이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초창기에 들고 나오기는 쉽지 않다.

일부 정치권에서 정부의 인터넷은행 추진을 곱지 않게 보며, 기업들의 사금고화를 우려하는 것도 이 같은 배경 때문이다. 2008년에도 정부는 은행법 개정을 통해 인터넷은행 설립을 추진했지만 야권의 반대로 무산된 바 있다.

인터넷은행의 출범이 최악의 수익성을 겪고 있는 은행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주목된다. 한국금융연구원은 5월 17일 ‘글로벌 100대 은행 경영 성과의 비교 및 시사점’이라는 보고서(이수진 연구위원)에서 국내 주요 은행의 성장성과 수익성에 큰 우려를 표했다.

대표적인 수익성 지표인 총자산수익률(ROA)의 경우 국내 4대 시중은행이 평균 0.53%를 기록하며, 100대 은행의 평균치인 0.8%에 크게 못 미치는 모습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이자이익 비중이 높은 국내 은행의 취약점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라는 게 보고서의 지적이었다.

비대면 채널을 중심으로 영업을 펼치게 될 인터넷은행의 경우 중금리 대출 시장에 초점을 맞출 가능성이 높으며, 이는 은행권의 고질적인 이자수익 경쟁에 부채질을 할 가능성이 높다. 인지도가 낮은 인터넷은행이 종합자산관리나 해외 시장 진출 등을 도모하기도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인터넷은행의 입장에서 기존 시중은행의 인터넷뱅킹과 차별화해 틈새시장을 개척하기도 만만치 않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3월 기준 현재 인터넷뱅킹 서비스 등록 고객 수는 1억861만 명(동일인이 여러 은행에 가입한 경우 중복 합산). 하지만 아직까지 인터넷뱅킹은 주로 조회 서비스 및 소액 자금이체 중심으로 이용되고 있고, 사용 연령대도 젊은 층이 주류다. 이런 상황에서 시중은행과 경쟁하며 점포 없이 비대면 채널에서 차별화된 수익 모델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더구나 현재 금융권에서는 칸막이를 없애는 복합점포 열풍이 불고 있다. 단순한 중금리 대출 상품만으로 고객 확보를 장담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때문일까. 인터넷은행을 바라보는 업계의 반응은 의외로 냉정하다. 정길원 KDB대우증권 애널리스트는 “기존 시중 은행들의 수익성도 금리 하락과 함께 약화되는 가운데 후발주자들은 많은 마케팅 비용과 역마진을 초기에 감수해야 한다”며 쉽지 않은 시장 데뷔전을 예상했다.

은행권의 한 관계자는 “당국의 의지에 따라 인터넷은행은 점차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면서도 “최근 악화된 영업환경 속에서 인터넷은행이 본궤도에 오르기까지는 상당한 기간이 필요한데 시장 상황이 그다지 녹록지 않은 것이 문제다”라고 말했다.


한용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