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중소기업 오너들에게는 큰 고민이 하나 있다고 한다. 과거 관행적으로 발행했던 주식 명의신탁에 대해 정부가 중과세 의지를 밝히며 기업 경영에 큰 부담을 느끼고 있는 것이다.
[Tax Focus] 명의신탁 세금 위헌 논란 근본적 해결책 뭘까
지난 4월 주식시장에 큰 소란이 있었다. 부산과 경남을 거점으로 한 고속버스 운송 회사 천일고속의 박남수 명예회장(82)이 38년간 숨겨 온 차명 주식 지분 68.77% 전량을 손자 2명(박도현, 박주현)에게 증여했다고 공시한 것. 전체 주식의 3분의 2를 훌쩍 넘는 이 같은 차명 주식의 실명 전환은 상장 회사에서는 전례를 찾기 힘들다.

천일고속은 2009년 박남수 명예회장의 차남인 박재명 씨를 대표에 이름 올리며 당시 일가친척들의 주식을 박재명 전 대표의 아들인 박도현 씨와 박주현 씨 등에게 매도한 바 있으며, 한동안 박재명·박도현 공동대표 체제로 운영해 오다가 지난해 들어 박도현 대표이사 단독 체제로 변경했다.

박남수 명예회장이 명의신탁한 주식 98만2944주를 실명으로 전환해 손자인 박도현 사장(37.13%)과 박주현 부사장(31.76%)에게 전량 증여한 것은, 박도현 사장의 지배구조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한 상속·증여의 마무리 단계로 보인다. 박도현 사장은 주식 실명 전환으로 지분율이 43.09%(61만5825주)로 치솟았다. 하지만 명의신탁이 된 주식을 실명으로 전환해 손자들에게 회사의 지배권을 넘기는 과정에서 약 400억 원의 세금을 낼 것으로 추산되는 등 출혈이 너무 크다. 30억 원이 넘는 증여 재산에 대해서는 세율 50%가 적용되고, 자녀가 아닌 손자·손녀에 대한 증여 시엔 여기에 30%가 할증되기 때문이다.

천일고속은 2013년 영업이익 13억3576만 원을 올리며 겨우 흑자 전환을 한 곳이다. 2014년에는 영업이익이 26억3164만 원이었는데, 결국 영업이익의 15배가 넘는 세금을 토해 내게 된 것이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올해 초 주당 4만8000원 정도였던 천일고속의 주가가 주식 실명 전환 발표 이후 최고 12만 원대로 치솟았다가 최근 9만 원대 후반에서 거래 가격이 형성되는 등 주가가 급등해 세금 마련을 위해 주식을 대규모로 처분하더라도 경영권 방어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관측되는 점이다.


주식 명의신탁, 기업 경영 시한폭탄
주식 명의신탁은 쉽게 말해 자신의 주식을 타인 명의로 하는 것으로 사법적으로는 유효한 행위이지만 세법적으로는 사법적 효력과는 별개로 주식을 수탁자에게 증여한 것으로 보아 증여세를 부과 받는다.

쉽게 말해 400억 원의 주식을 차명 주주에게 신탁했다면 사실상 증여와 동일한 효과가 있는 것(증여의제)으로 봐 50% 정도의 세금을 내야 하는 것이다. 또 절반으로 줄어든 주식을 자녀에게 상속이나 증여를 할 때도 또다시 세금을 물게 되니 그동안 모아 온 재산의 거의 전부를 국가에 헌납하는 꼴이 된다.

이처럼 차명 주식을 실명 전환하지 않고 방치하는 경우 추후 증여세나 법인세 등 페널티 부과 대상이 되며, 가업승계나 청산 등의 절차에도 악영향을 미칠 수 있으니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으로서는 오랫동안 묵혀 둔 주식 명의신탁의 경우 기업 경영권을 위협할 수 있는 시한폭탄과 다르지 않다.

기업에서 주식을 타인 명의로 돌려놓은 경우가 많은 것은 구(舊)상법 규정에 의무 발기인수를 충족토록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1인 기업이나 비상장 기업의 경우 친인척으로 구성된 차명 주주들로 주주 명부를 채운 경우가 많았다.

사실 정부에서 주식 명의신탁에 증여의제를 적용해 세금을 부과했던 것은 국세 체납처분 면탈, 상속 재산 누락, 배당소득 합산과세 회피, 과점주주 취득세 회피 등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실제 국세청이 2008년 대대적인 세무조사를 통해 대성산업을 이끌고 있는 대성합동지주 차도윤 사장의 장모와 처제 등이 주식을 팔아 33억 원의 양도차익을 남긴 데 대해 해당 주식은 사실상 차 대표에게 명의신탁으로 물려받았다고 봐 ‘명의신탁 증여의제’ 규정을 적용, 각각 9억 원과 23억 원의 증여세를 추징한 것도 명의신탁을 악용한 세금탈루를 막겠다는 의지였다.
하지만 이 같은 법 취지에도 불구하고 명의신탁 증여의제는 실질과세에는 어긋난 제재적 증세 성격이 강하며, 그동안 5번 이상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여부가 판단 대상에 오르는 등 논란이 상당하다.

문제는 명의자가 조세 회피 목적이 없다는 점을 입증해야 하는데 법원에서 너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 실제 조세 회피 목적이 없다고 인정받은 사례가 드물며, 징계에 있어서도 무상몰수에 가까운 과도한 세금을 부과한다는 점이다.

1989년 헌법재판소에 위헌 여부가 올라갔을 당시만 해도 다수의 재판관들은 “무차별한 증여의제로 인한 위헌의 소지가 있으므로 예외적으로 조세 회피의 목적이 없음이 명백한 경우에는 이를 증여로 보지 않는다고 해석해야 한다”는 의견을 냈었다. 또 “그 목적이 조세 회피 방지를 위한 것이라 하더라도 정도가 지나쳐 모든 국민의 재산권과 재판청구권을 평등하게 기본권으로 보장하고, 부득이 기본권을 제한하는 경우라도 그것을 최소한도로 그치게 하려는 헌법 이념에 반한다”고 밝혔다. 당시는 회피 대상의 조세를 증여세에 한정하는 것으로 해석했으나, 이후 법 개정 등을 통해 조세에 증여세가 아닌 국세, 지방세, 관세 등 다른 조세가 포함되는 것으로 해석하게 됐으며, 점점 제재적인 성격의 법 규정으로 변해 갔다.

소순무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는 “명의신탁을 규제하는 것이 세법상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 행위에 비해 부과되는 세액은 턱없이 많다”며 “명의신탁 증여의제에 의한 증여세는 전형적인 약탈적 조세이며, 세금이라는 이름을 가진 무상몰수와 다름이 없다”며 문제점을 지적했다.

이 같은 법조계 일부의 지적을 의식한 듯 국세청도 2014년부터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명의신탁 주식 실제 소유자 확인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당시 국세청은 제도 시행 이유와 관련해 “명의신탁 주식을 실제 소유자에게 환원할 때도 이를 인정받지 못해 실소유자에게 증여세가 부과되는 사례가 많았다”며 문제점을 인정하기도 했다.

국세청은 7월 9일에는 균등 증자로 인해 명의수탁자가 추가 취득한 주식에 대해서도 실제 소유자 확인 대상에 포함되도록 하는 내용의 ‘상속세 및 증여세 사무처리규정 일부 개정안’을 행정 예고하는 등 제도 보완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납세자에게 가혹한 명의신탁 증여의제 적용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법조계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송호 김앤장 법률사무소 변호사는 “명의신탁 주식을 본인 명의로 환원하지 못하는 주된 이유는 실제 소유자임을 입증하지 못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명의신탁 주식에 대한 증여세 등 조세 부담이 크기 때문”이라며 “1997년 일시적으로 명의신탁 환원 시 증여세를 과세하지 않았던 것처럼 유예 기간을 두어 실명 전환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소순무 변호사도 “중소기업을 대상으로 사전에 신청을 하면 검증을 통해 명의신탁 재산임을 확인해 주는 ‘명의신탁 주식 실제 소유자 확인제도’가 시행 중인데 이 제도는 명의신탁 주식 여부를 가려 주는 역할을 할 뿐 다른 혜택이 부여되지 않는다”며 “기존 명의신탁으로 인한 납세자의 불안을 해소하고 과다한 조세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서는 일정 시점 이전의 명의신탁을 문제 삼지 않는 조세사면 입법을 검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용섭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