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렌틴 발데라바노 한국씨티은행 개인금융상품&세그먼트 본부장

[banker]발렌틴 씨티은행 본부장 “자산관리 명성 지킬 것”
한국씨티은행이 자산관리 명가(名家) 재건의 기치를 내걸었다. 국내에 웰스매니지먼트(WM) 서비스를 도입하며 선도적인 금융 서비스를 제공했던 옛 명성을 되찾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밝힌 것이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 8월 부유층 고객을 세분화해 차별화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포부를 전했다. 1억 원 이상부터 제공했던 자산관리 서비스를 5000만 원 선으로 확대하고, 한국 자산가에게 맞게 개발된 모델포트폴리오를 통해 맞춤형 자산관리의 새 지평을 열겠다는 것이다.

박진회 한국씨티은행장은 8월 19일 가진 기자간담회를 통해 WM 역량 강화를 발표하며 “씨티은행은 1980년대부터 시중은행의 모델이 된 프라이빗뱅킹(PB)을 구현한 원조 자산관리 은행이라고 자부한다”며 “목표 시장을 자산관리로 특화하고 수익률을 극대화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겠다”고 의지를 불태웠다.

그의 말대로 씨티은행은 1989년 씨티골드 1대1 자산관리서비스에 이어 WM사업을 국내에 도입한 은행으로 지금도 은행, 증권, 보험 등 금융회사의 PB팀장 상당수가 씨티은행 출신이어서 ‘PB사관학교’로 불릴 정도다.

WM 역량 강화라는 미션을 수행할 책임자는 바로 발렌틴 발데라바노(44) 한국씨티은행 개인금융상품&세그먼트 본부장이다. 그는 그리스씨티은행에서 최고운영책임자(COO)를 역임하며 자산관리 및 신용카드 상품 조직을 비롯해 개인금융영업 및 DM 분석을 총괄했으며, 그리스 소비자금융 부문의 스트레스 뱅크 대표를 역임하기도 했다.

발데라바노 본부장은 족히 180cm 중후반대에 이를 것으로 보이는 큰 키를 자랑하는 ‘키다리 아저씨’다. 깔끔한 외모에 세련된 매너로 전 세계 12개국에서 다양한 금융 경험을 터득한 그이지만 지난해 11월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는 식당에서 밥을 주문하며, ‘쌀(rice)’을 달라고 보챘을 정도로 엉뚱한 면도 지니고 있다.

그는 씨티은행의 강점으로 1926년부터 90년간 축적된 글로벌 리서치 역량과 다양한 나라에서 진행한 투자 노하우를 꼽으며 이를 통해 고객의 미래 수익 극대화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또 그는 틈이 날 때마다 한강에서 달리기를 즐긴다고 하는데, 시간이 오래 걸리고 분명한 목표점이 있다는 점에서 달리기와 자산관리는 닮아 있다고 자신 있게 말한다. 국내 언론 최초로 발데라바노 본부장을 만나 한국씨티은행의 자산관리 서비스 행보 등에 대해 들었다.

한국씨티은행은 국내에 PB 서비스의 개념을 도입한 곳으로 이른바 ‘PB사관학교’로 불리고 있지요. 하지만 최근에는 과거의 명성에 못 미친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데 최근 WM사업 강화는 명가 재건의 의지로 봐도 되나요.
“과거 한국씨티은행은 자산관리 측면에서 리더였지요. 그러면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느냐고 물을 수 있을 텐데 변화된 자산관리 전략으로 과거의 명성을 되찾을 거예요. 저성장, 저금리, 고령화 흐름에 맞추어 자산관리 전략도 변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과거처럼 특정 상품이나 자산군에 집중된 투자 전략이 아니라, 고객의 투자 성향에 맞춘 포트폴리오 관리가 필요하다는 거죠. 한국씨티은행은 이러한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한국 투자자를 위한 모델포트폴리오를 개발했고, 포트폴리오 투자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전문가로 구성된 포트폴리오 카운슬러(portfolio counselor) 및 포트폴리오 360도 서비스(1대1 맞춤형 투자 보고서)를 새롭게 도입했어요. 이를 통해 고객들의 리스크 성향과 재정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파악해 고객별로 특화된 모델포트폴리오를 제안하려 합니다. 아울러 모든 상품과 혜택은 고객군을 바탕으로 재설정해 기존 상품 위주의 서비스에서 고객을 위한 서비스 제공으로 전환할 겁니다. 오는 11월에는 서울 반포에 태블릿 PC 등 디지털 기기를 갖춘 신개념의 ‘스마트 골드 허브지점’을 새롭게 론칭할 계획입니다. 이곳에서 고객들은 터치스크린을 이용해 편리하게 은행 상품을 구매하고 자산관리 전문가들을 통해 한층 업그레이드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어요.”

최근 한국씨티은행은 기존 1억 원 이상부터 제공됐던 자산관리 서비스를 5000만 원 선으로 확대하고, 부유층 고객군을 세분화해 특별 관리하겠다는 전략을 밝혔는데 그 배경은 무엇인가요.
“저희가 하려는 것은 고객을 더욱 세분화해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거죠. 우선 씨티 프라이어리티(Citi Priority, 수신고 5000만~2억 원) 서비스를 신설해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키로 했고, 씨티 골드(CitiGold, 2억~10억 원)와 씨티 골드 프라이빗 클라이언트(CitiGold Private Client, 10억 원 이상)로 고객들을 나눠 특화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거예요. 씨티 프라이어리티 고객군은 신흥 자산가를 말하죠. 지난 몇 년 동안 투자자들의 성향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는데 기존 자산가는 저성장·저금리 환경 속에서 보다 안정적인 투자 방법을 찾고 있는 반면 경제활동이 활발한 신흥 자산가는 다양한 글로벌 자산에 상대적으로 높은 관심을 가지고 있어요. 변화하는 고객의 니즈에 맞춰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고객군에 대한 정의를 재정비한 것이죠. 특히, 한국씨티은행의 글로벌 자산관리 서비스를 보다 다양한 고객에게 제공하고자 조건을 하향 조정한 겁니다.”

2012년에도 2000만 원 이상 예치 고객을 ‘신흥 부유층’으로 분류하고, 전담 자산관리 직원을 배치하는 VIP급 서비스를 확대한 바 있었죠. 당시와 현재 전략의 차별점은 무엇인가요.
“과거에는 상품과 연계된 금리나 혜택에 초점을 맞추었다면 이번에 추진하는 서비스는 각 고객군에 최적화된 종합적인 금융 가치 제공에 초점을 맞추었다는 데 그 차이를 두고 있죠. 그 일환으로 저희는 신흥 부유층 및 부유층에 대한 정의를 재정립하고 세분화된 고객군별로 고객들이 필요로 하는 금융 니즈를 파악하는 데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어요. 고객의 현재 재무 상태보다는 미래의 가능성에 보다 집중해 단계별 니즈에 맞춘 효율적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통해 고객 수익을 극대화하고 WM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저희의 목표입니다.”

한국은 심각한 고령화를 겪고 있고 이에 다른 시중은행들은 은퇴 지원 금융상품 개발 등에 공을 들이고 있는데, 한국씨티은행도 이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나요.
“먼저 강조하고 싶은 것은 씨티은행이 가진 강점이에요. 가치 제안이 그중 하나라고 볼 수 있는데, 씨티은행은 글로벌 리서치 역량이 뛰어납니다. 투자에 있어서도 오픈 아키텍처(open architecture)를 추구해 투자의 편향성도 없으며, 다른 나라에서 진행했던 상품이나 투자에 대한 노하우도 많다고 자부합니다. 분명 한국은 노령화 사회로 접어들고 있고 은퇴 이후의 삶과 그것을 위한 은퇴 설계가 필요하다는 점은 저희도 인식하고 있어요. 다만, 시중은행처럼 은퇴 브랜딩을 통해 제한적인 금융상품 판매에 집중하기보다 은퇴라는 생애 단계에 접어든 고객 한 분 한 분의 상황에 맞는 포트폴리오를 제안하고 안정성을 갖춘 상품을 준비하는 것이 더 적절하지 않나 싶습니다. 실제로 지난 3~4년 동안 저희는 안정성과 수익성을 동시에 갖춘 상품 라인업을 제안했었죠. 고수익 채권 펀드라든지 월 지급 구조의 상품, 원금 보호 구조화 상품 등과 같은 원금 보존의 가능성을 높인 상품들에 대한 고객들의 호응이 상당히 좋았어요. 앞으로 저희는 모델포트폴리오 접근법 도입을 통해 지역별, 자산군별 밸런스를 강화하고 분산 효과를 통한 안정성을 추구할 겁니다. 이러한 시도는 은퇴 이후의 삶을 준비하는 고객들에게도 충분히 어필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사실 모델포트폴리오는 한국에 특화된 거예요. 한국 투자가들의 행동 패턴을 감안해 가치 제안을 할 수 있도록 돼 있는데 저희 자산관리 서비스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죠.”

지난해 11월에 한국에 오셨는데 낯선 환경에서 겪은 에피소드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
“개인적으로 일을 하면서 12개 국가에서 살았어요. 한국은 싱가포르에 이어 아시아에서는 두 번째죠. 한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사실 솔직히 말하면 아직 많이 어렵습니다. 한 가지 웃긴 일이 있었는데 한번은 저녁을 먹으러 바비큐 집에 갔는데 구글 번역기를 돌렸더니 라이스가 쌀이더라고요. 그래서 주문받는 사람에게 ‘쌀 주세요, 쌀’ 그랬더니 거기 주문받는 사람이 이상한 표정으로 ‘쌀이요? 아마 밥일 텐데요’라고 하는 거예요. 이제는 한국어를 배우니까 그런 일은 없을 겁니다. (웃음)”

씨티은행에 들어오시기 전에 코카콜라라는 제조회사에 있었고, 미국 조지아공과대에서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공대 출신이라는 점이 이채롭습니다.
“코카콜라에서는 10년 정도 일을 했어요. 그런데 경영에 대해서 좀 더 집중적으로 배워봐야겠다고 생각하고 학교로 돌아갔는데, 1년 차에서 2년 차 사이에 씨티은행 신용카드그룹의 CFO그룹에서 인턴십을 하게 됐죠. 그게 전환점이 됐던 것 같아요. 과거에는 소비재 쪽에 관심이 있었는데 그때를 계기로 금융 서비스 쪽에 관심을 갖게 됐거든요. 그 이후로 벌써 1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네요. 그래서 첫 호기심이라는 것이 중요한 것 같아요. 한국뿐 아니라 다른 국가에 근무하는 씨티은행 직원들을 보면 굉장히 다양한 배경을 가지고 있어요. 이러한 배경과 경험은 어떻게 보면 씨티은행의 파워풀한 강점이라고 볼 수 있죠.”

한국에서의 일상생활이 궁금합니다. 업무 시간 외에는 어떻게 보내시나요.
“좋은 질문이네요. (웃음) 제가 감히 한강을 발견했다고 말할 수 있어요. 한강은 항상 있는데 무슨 발견이냐고 물을 수 있지만 한강을 제대로 발견했다고 할 수 있죠. 3~4개월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어요. 처음에는 한 5km 정도 뛰자고 했던 건데 그건 이미 달성했고, 앞으로 10km를 뛰려고 합니다. 한강을 뛰면 에너지가 충만해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어요. 거기 가면 여러 종류의 사람들이 걷거나 뛰거나 자전거를 타는데 그런 걸 보는 것으로도 힘이 나요. 늦은 저녁이나 주말이 되면 항상 한강에 가서 뛰는데 다음에는 자전거에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사실 달리기는 시간이 걸리는 것이고 현실적인 목표를 추구한다는 점에서 자산관리와 닮아 있어요. WM의 경우 고객들과 함께 앉아서 니즈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고 재무적인 목표가 무엇인지를 파악해야 하는데 그런 것들은 다 시간이 걸려요. 또 달리기처럼 자산관리 역시 고객을 이해해야 하고, 고객 니즈에 맞게 솔루션을 제공해야 한다는 점에서 분명한 목표가 있어요.”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