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focus]포연 자욱한 은행 자산관리 전쟁
은행권이 생존을 위해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저금리의 장기화로 예대마진율이 곤두박질하는 상황에서 고객 이탈을 우려하는 은행들이 자산관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점포 성형에 적극 나서고 있는 것이다.

최근 은행 점포에 대한 고정관념 파괴가 화두다. 은행에 들어서 번호표를 뽑은 뒤 길게 늘어져 있는 창구에서 순서에 맞춰 업무를 보는 모습이 조만간 추억으로 소환될지도 모를 일이다.
국내 PB사관학교로 불리는 한국씨티은행은 2015년 11월 26일 씨티골드 반포지점을 개설하며 은행에서 창구를 없앴다. 이에 고객들은 번호표를 뽑아 창구에 줄을 서는 대신 스마트존에서 터치스크린을 활용해 다양한 은행 업무를 볼 수 있다.

마치 백화점에서 서비스를 받듯이 4명의 유니버설 뱅커(UB)의 안내를 받아 고객들이 원하는 거래를 진행할 수 있다는 점이 이채롭다. 또 고객이 직접 전산입력을 하기 때문에 행원들이 일일이 처리했던 잔액확인 등 서류 작업도 필요 없게 됐다.

특히 반포지점은 자산관리 서비스의 허브 역할을 수행할 예정이다. 스마트존 안쪽으로 들어서면 자산 2억 원 이상, 10억 원 미만의 씨티골드 고객들에게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는 ‘씨티골드존’이 있으며, ‘씨티프라이빗클라이언트(CPC)센터’에서는 자산관리, 채권, 보험, 외환 등 분야별 전문가 13명이 상주하며 10억 원 이상 고액자산가군에게 맞춤형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한다.

아예 행원이 없는 무인점포도 등장했다. 2015년 12월 2일 신한은행이 선보인 무인스마트점포 ‘디지털 키오스크’는 국내 최초로 바이오 인증 서비스(손바닥 정맥 인증 방식)를 활용해 무려 107가지의 영업점 창구 업무가 가능하도록 했다. 단지 손바닥을 기기에 갖다 대는 것만으로도 입출금계좌 신규 등 실명확인 업무, 인터넷뱅킹 신규·변경, 각종 통장·카드 등 실물 발급 관련 본인 확인 업무 등을 할 수 있게 된 거다. 더구나 무인점포인 키오스크는 24시간, 연중무휴로 가동된다는 점에서 고객들의 편의성 제고도 기대된다.

신한은행은 여기에 더해 아예 은행창구에 가지 않고 계좌 개설까지 가능한 모바일 특화 금융 서비스 ‘써니뱅크’도 내놨다. 현재는 휴대전화 문자메시지(SMS) 인증을 한 뒤 신분증을 촬영해 써니뱅크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전송한 후 상담원과 영상통화를 해 신규 계좌를 발급받는 방식인데, 향후에는 홍체, 안면 등 바이오 인증과 기존 계좌 이용 등 다양한 방식이 활용되며 고객 친화력을 높일 것으로 보인다.

은행점포 무한변신의 배경은
국내 은행들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고액 연봉의 상징이었던 은행권에서 2015년에만 3000명이 넘는 직원들이 짐을 쌌으니 말이다. 은행권에 따르면 KB국민은행은 2015년 상반기에 실시한 5년 만의 대규모 희망퇴직을 통해 1122명이 퇴사했으며, 매년 임금피크제 진입 직원들을 대상으로 정기적인 희망퇴직 신청을 받기로 했다. 또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2015년 11월 실시한 특별퇴직에서 전체 직원의 20% 정도에 해당하는 961명의 퇴직을 승인했다.

신한은행도 2015년 희망퇴직을 받아 310명의 퇴직자를 확정했으며, KEB하나은행도 225명(옛 하나은행 60명, 옛 외환은행 165명)이 특별퇴직을 했다. 우리은행의 경우 퇴직지원 프로그램인 전직지원제도를 통해 2015년에 205명이 회사를 떠났다. 여기에 통상 150~300명 정도 규모로 희망퇴직 신청을 받는 NH농협은행(희망퇴직 344명)과 IBK기업은행(2015년 12월 22일 현재 희망퇴직 신청 188명, 상반기 100여 명)을 합칠 경우 희망퇴직자 수는 3000명을 훌쩍 넘기게 되는데, 이는 2013년 661명, 2014년 1576명이었던 전체 시중은행의 희망퇴직자 규모와 비교해 배 이상 늘어난 수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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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시중은행들이 유례없는 인력 조정에 나선 이유는 비대면 채널 확대, 인터넷은행 등장,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도입 등으로 인해 업체 간 경쟁이 과열되며 몸집 줄이기를 통한 선택과 집중이 절실해졌기 때문. 무엇보다 은행들의 고민은 은행창구를 찾지 않는 고객으로부터 출발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스마트폰 기반 모바일뱅킹 등록 고객 수(2015년 9월 말 현재)는 6008만 명(16개 국내 은행 및 우체국 고객 기준, 동일인 여러 은행 가입 시 중복 합산)에 이른다. 이처럼 비대면 채널이 확산되며 입출금 및 자금이체 거래 기준으로 대면 거래는 10.7%, 비대면 거래는 89.3%를 기록했다. 10명 중 9명이 창구 방문 없이도 은행 업무를 보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여파로 국내 은행 점포 수도 매년 100개 이상씩 줄고 있다. 은행권에 따르면 2012년 하반기 7835개였던 점포 수는 2015년 상반기 7480개로 감소했으며, 시중은행 점포 수는 2013년 5308개에서 5117개(2015년 12월 10일 현재)로 줄었다.

이른바 무점포 서비스를 지향하는 인터넷은행의 등장도 시중은행의 점포 전략에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하고 있다. 카카오은행은 3500만 사용자가 이용하는 카카오톡을 적극 활용한다는 계획이고, K뱅크는 제휴사인 GS리테일 편의점 1만 개의 현금입출금기(ATM)를 접점으로 전국 7만 개 공중전화부스를 ATM화하는 방안도 모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2016년 3월경 도입이 예상되는 ISA도 은행들의 점포 구상을 복잡하게 하는 요소다. ISA는 예금, 펀드, 주가연계증권(ELS) 등 다양한 금융상품을 한 계좌에 담아 운용하는 금융상품으로 비과세 혜택이 있어 새로운 주거래 계좌로 인기를 끌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문제는 업종을 넘나드는 여러 상품을 한 계좌에 담을 수 있기 때문에 은행, 증권, 보험 상품의 경계가 사실상 무의미해졌다는 점이다. 금융사마다 주거래 고객들을 뺏기지 않기 위해 업권을 넘어서 자산관리의 강점을 어필해야 하는 무한경쟁의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최근 시중은행들은 충성고객들을 붙들기 위해 치열한 자산관리 전쟁을 치르고 있다. 자산관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영업 채널이나 점포 형태의 변신은 기본이 됐다. 우선 신한은행은 모바일, 비대면 채널, 오프라인 점포 등 다양한 채널 전략으로 리딩뱅크 수성에 나섰다. 무인스마트점포 ‘디지털 키오스크’와 모바일 특화 금융 서비스 ‘써니뱅크’를 통해 비대면 채널을 강화하는 동시에 영업창구를 찾는 고객들을 위해 종합자산관리 서비스의 보폭도 넓혔다.

2015년 7월 서울, 경기, 부산, 울산 등 16곳에 신설한 ‘신한 프라이빗 웰스 매니지먼트(PWM)라운지’는 기존 PWM센터에서 금융 자산 3억 원 이상의 자산가들에게 초점을 맞춘 반면 이를 1억 원 이상 준자산가로 확대해 충성고객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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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WM라운지는 은행 영업점에 신한은행 프라이빗뱅킹(PB) 담당직원과 신한금융투자 직원을 함께 배치해 은행창구를 찾는 고객에게 방카슈랑스 외에 주식, 펀드 등 다양한 상품을 소개하고, 전문 상담사가 자산 포트폴리오를 설계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2011년 국내 최초로 은행과 증권의 협업 모델인 PWM센터를 선보인 이후 현재까지 총 27개의 PWM센터(수도권 22개, 부산 2개, 대전·대구·광주 각 1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에는 PWM강남센터에서 보험 업무까지 한 곳에서 볼 수 있도록 해 큰 호응을 얻고 있다.
KB국민은행 역시 PB센터 22곳에서 집중관리를 받을 수 있는 자산 기준을 대폭 낮췄다. 기존 금융 자산 5억 원 이상에서 받을 있는 종합자산관리 서비스를 일선 지점의 요청이 있을 경우 3억 원 이상 고객도 관련 서비스를 받을 수 있게 범위를 확대한 것.

현재 KB국민은행은 22개의 PB센터(서울 14개, 수도권 3개, 광역시 5개)를 운영하고 있으며, PB센터 수준의 차별화된 상품 및 서비스를 제공하는 ‘스타 테이블 라운지’ 29개, 고자산 고객을 위한 전용 서비스 공간인 ‘VIP라운지’ 853개와 전용 ‘VIP창구’ 76개를 운영하고 있다. 또 복합점포로 BIB(계열사 영업점 내 부스 형태 입점) 8개, BWB(2개 이상 계열사가 동일 공간 또는 동일 건물 내 복수 지점의 독립적 운용) 6개를 갖추고 있다.

2015년 12월에 오픈한 도곡스타PB센터는 은행, 증권, 보험의 원스톱 자산관리 서비스가 가능한 융합형 신복합점포다. 이곳에서는 기존 은행에서는 가입할 수 없었던 자동차보험, 종신보험 등 보험 상품에 가입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기존 PB센터보다 한 차원 업그레이드 된 자산관리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외환은행과의 합병 시너지를 노리고 있다. 현재 KEB하나은행은 25개의 골드클럽(서울 22개, 분당권 3개)을 운영 중이며, 전국 168개 영업점에 VIP클럽이라는 자산관리 상담창구를 두고 1억~5억 원의 자산가들을 위한 전담 서비스를 실시하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4개의 PB 채널을 두고 있는데 웰스매니저(WM)는 예치 자산 10억 원 이상, 골드 프라이빗뱅커(PB)는 5억 원 이상, VIP PB는 1억 원 이상, 행복파트너는 3000만 원 이상의 고객을 담당하고 있다.

KEB하나은행은 타 은행들과 차별화된 PB 서비스를 구현하기 위해 상속증여센터, 행복한 부동산자산센터 등 다양한 서비스를 펼치고 있다. 특히 2015년 6월에 서울 역삼동에 오픈한 인터내셔널 PB센터(IPC)는 국내 첫 외국인 전용 PB센터로 중국 자산가들을 타깃으로 삼고 있다. IPC는 옛 하나은행의 PB센터, 옛 외환은행의 외국인직접투자(FDI)센터, 하나대투증권의 투자은행(IB) 전문가들이 역량을 모았다는 데 업계의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시중銀, 자산관리에 사활 걸다
우리은행은 총 591개 지점(PB특화점포 45개, FA서비스점포 546개)에 PB(자산관리)·FA(재무설계) 담당 직원을 배치해 금융 자산 1억 원 이상의 고객을 대상으로 자산관리를 상담해주고 있다.

여타 은행들이 비교적 최근 들어 준자산가(수신자산 1억~3억 원 고객)에게 주목한 반면 우리은행은 이미 2005년부터 수신자산 1억 원 이상 보유 고객에 대해 PB 서비스를 펼쳐 왔다. 이들 준자산가들이 은행 수익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고 거래 심화에 따라 상위 고객군으로 이동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일찌감치 간파했던 것이다.

우리은행은 전문적인 자산관리(재무 진단, 자금 운용, 금융상품 투자 등) 외에도 은퇴설계나 유학·해외이주 서비스, 은행 거래와 관련된 모든 비밀을 보장하는 시크릿 뱅킹 서비스 등 다양한 서비스로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과거 PB사관학교의 명성을 되찾기 위해 파격적인 변신을 시도하고 있다. 2015년 11월 26일 차세대 자산관리 센터로 리뉴얼해 공개된 씨티골드 반포지점이 그 신호탄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한국씨티은행의 행보가 주목을 받는 이유는 다른 은행들이 일반 지점에도 전문 상담 인력을 배치해 PB 서비스의 영역을 넓히고 있는 것과 달리 허브 지점 개념을 도입해 일반 지점의 고객들이 허브 지점에서 고품격 PB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도록 PB 인력 집중화 전략을 쓰고 있기 때문. 한국씨티은행은 2016년 상반기 10개의 허브 지점을 추가로 개점할 예정인데, 지점 특성에 따라 최대 25명의 전문가(자산관리, 채권, 보험, 외환 등)를 상주시킬 계획이다.

반포지점은 스마트 지점과 PB 서비스가 결합된 신개념의 점포로 주목을 받고 있다. 은행창구를 과감히 없앤 뒤 고화질 미디어 월과 터치스크린 방식의 스마트존을 만들고, 내부에 자산 2억 원 이상, 10억 원 미만의 씨티골드 고객과 10억 원 이상의 씨티프라이빗 클라이언트(CPC) 고객을 위해 특화된 서비스 공간을 두는 콘셉트가 획일적인 국내 점포 형태에 어떤 변화를 줄지 관심을 끌고 있다.

그동안 자산관리 서비스 부문에서 다소 주춤한 모습을 보였던 은행들의 역습도 눈에 띈다. NH농협은행의 경우 과거 강남권 PB센터에서 금융 자산 5억 원 이상 고객들을 대상으로 자문관리 상담을 실시했으나 현재는 PB센터를 운영하지 않고 있다. 하지만 최근 자산관리 역량을 끌어올리며 주목받고 있다. NH농협은행은 현재 개별 자산관리 상담과 자산관리 시스템을 운영하며 PB 서비스를 간접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영업본부에 35명의 WM을 배치하고 영업점에서 자산관리 상담 요청이 올 경우 이에 대한 지원에 나서고 있는 것인데, 자산관리 전문 인력으로 라운지매니저(LM)를 적극 활용해 2015년 6월 현재 861개 영업점에서 PB 고객관리 업무를 수행토록 하고 있다.

또 2014년 11월부터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해 은퇴설계에 대한 마케팅 조직을 통합하고 은퇴설계 전문가 양성을 도모해 왔는데 2015년 5월에는 은퇴설계 비즈니스를 수행할 자산관리 전문가를 일컫는 ‘NH All 100 플래너’로 총 136명(영업본부 35명, 거점 점포 101명)을 지정하기도 했다. 은퇴설계 마케팅 강화를 위한 특화점포인 ‘All 100 플랜 라운지’는 기존 101개소에서 202개소로 확대, 운영한다. 더불어 NH농협은행은 신복합점포인 NH농협금융플러스센터를 5곳(광화문, 여의도, 삼성역, 분당, 부산)에서 운영 중인데 2016년 지방 거점 도시에 최소 5개소 이상 신복합점포를 확대, 개설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은 기존 3곳에서 운영하던 PB센터를 2곳(강남, 광화문)으로 줄이며, 자산관리 서비스에서 다소 소극적인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프라이어티 뱅킹(Priority Banking, PrB) 서비스를 은행 자산 1억 원 이상에서 연소득 1억5000만 원 이상으로 낮춰 고객 범위를 확대하고, 고객들이 총 204개 지점(PB센터 2곳 포함)에서 RM(Relationship Manager)의 1 대 1 상담이나 통합적 패밀리 금융 케어(주요 고객의 직계 패밀리에게 금리우대 등 금융 혜택 제공) 등의 고품격 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자산관리의 범위를 넓혀 나가고 있다.

IBK기업은행도 평생설계 개념을 도입해 그동안 미진했던 자산관리 분야에서 의지를 다지고 있다. IBK기업은행은 PB센터 5개와 복합점포 4개를 운영하고 있다.

지난 2014년 8월 은퇴 브랜드 ‘IBK평생설계’를 선포한 후 영업점마다 은퇴금융 전담 직원인 ‘IBK평생설계 플래너’를 배치해 맞춤형 은퇴 상담이 가능토록 하고, 고객들의 퇴직연금이나 자산관리 등 전문 컨설팅을 지원하기 위해 고객관리팀을 신설하며 자산관리 분야에서 점차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 “많은 점포를 가지고 있다는 점이 경쟁력으로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며 “은행 영업의 효율성을 개선하고 다양한 점포 전략으로 최적의 자산관리 능력을 보여주기 위해 은행들이 부산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