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ssue & focus]짐 싸는 외국계 은행들, SC·씨티은행은?
외국계 은행의 ‘탈(脫) 한국’ 조짐이 심상치 않다. 최근 1년간 4곳의 외국계 은행이 한국 시장에서 은행업을 포기했거나 시장 철수를 공언했다. 이 같은 여진은 어디까지 이어질까.

지난 4월 14일과 16일 일본 규슈의 구마모토 현 일대를 대규모 지진이 강타하더니 며칠 뒤 태평양을 건너 에콰도르에서도 규모 7.8의 강진이 발생해 불안감이 팽배하고 있다. 이는 세계 활화산의 75%가 밀집해 있는 환태평양 조산대, 일명 ‘불의 고리’에서 발생한 지진들로 전 세계적으로 불안감을 고조시키고 있다.

다소 비약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최근 외국계 은행들이 한국 시장에서 연쇄적으로 짐을 싸는 모습이 ‘불의 고리’처럼 이어지는 모양새다. 영국계 은행인 RBS, 바클레이스, 골드만삭스와 스위스 UBS 등 최근 1년간 한국 시장을 이탈한 곳만 4곳에 이르니 말이다. 이들에게 한국 시장은 더이상 은행업의 매력이 없는 곳일까. 시장의 우려스러운 시선은 또 다른 외국계 은행인 한국씨티은행과 SC제일은행으로 향하고 있다.

UBS·RBS 등 철수
2015년 스코틀랜드왕립은행(RBS)를 필두로 해 바클레이스가 한국 시장 철수를 발표하더니 골드만삭스와 UBS까지 은행업 인가를 반납하며 그 파장이 어디까지 미칠지 관심을 끌고 있다.

RBS는 지난 2007년 ABN암로은행 인수로 본사가 거액의 부실을 떠안게 되면서 한국 시장 정리가 불가피해진 측면이 있었으며, 영국계 투자은행(IB) 바클레이스는 유럽의 경기 불안과 본사의 구조조정 여파가 서울지점을 철수하는 빌미가 됐다. 골드만삭스 서울지점도 연초 은행 부문 철수를 발표했으며, 스위스계의 UBS은행도 은행업 라이선스를 반납하며, 증권 사업 부문만 남겼다.

사실 이들 유럽계 은행들은 상업은행(CB) 부문이 약하거나 없었던 곳들로 한국에서 소비자금융을 더이상 할 만한 매력을 찾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한국 시장 철수를 결정한 은행들이 대부분 유럽계인 점도 주목된다. 그리스 경제위기와 폭스바겐 사태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유럽계 은행들이 아시아 등 해외사업 부문을 축소하고 있는 것.

독일 최대 은행인 도이치뱅크가 지난 한 해 9000명을 감원하고 2020년까지 10개국에서 사업을 철수하겠다고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다. 한국은 장기간 저금리로 예대마진이 축소되고 있어 중국이나 인도, 동남아시아 등 소매금융과 기업금융이 큰 폭으로 성장하는 지역에 비해 투자 매력이 떨어지는 것도 사실이다.

영국 스탠다드차타드(SC) 본사에서 지난해에 15억2000만 달러(약 1조7500억 원)의 대규모 손실을 기록한 SC제일은행의 철수설이 은행 측의 적극적인 부인에도 불구하고, 시장에서 끊임없이 소문이 번지는 것도 유럽계 은행들의 앞선 행보와 무관치 않다.

외국계 은행들이 한국 은행 시장에서 발을 빼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시장 자체의 수익성이 급감한 이유도 있다. 금융감독원이 집계한 ‘국내 은행의 영업실적’에 따르면 2015년 국내 은행은 총 3조500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해 전년도인 2014년 6조 원에 비해 2조5000억 원(42.6%)이 급감했다. 거의 반 토막이 난 순이익을 은행들이 나눠 갖는 형국인데 같은 해 보험업권이 6조3000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낸 것과도 대비된다. 이 같은 순이익 급감은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주요 국책은행이 조선업 부실의 유탄을 맞고 휘청거린 탓이 컸지만, 외국계 은행들도 답답한 실적을 보인 것은 매한가지였다.

동남아 비해 투자 매력 떨어져
한국씨티은행의 경우 2015년에 전년 대비 95.3% 증가한 2257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시현하며 선방을 했지만 SC제일은행은 2015년 당기순손실 2858억 원을 기록하며 급추락했다. 물론 지난해에 임직원 961명의 특별퇴직을 단행하며 일회성 비용으로 4943억 원이 소요된 부분이 반영됐다고 해도 과거 제일은행(SC제일은행의 전신)이 1994년 한 해 동안만 810억 원을 법인세로 납부하며 국내 1위 기업의 명성을 보였던 점을 떠올리면 씁쓸한 대목이 아닐 수 없다.

한국씨티은행은 전년도보다 나은 실적을 보였지만 전년도 순이익(1156억 원)에 버금가는 1162억 원을 씨티그룹 본사에 배당하면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사실 한국씨티은행의 높아진 순이익은 2014년 대규모 희망퇴직을 단행(650명)한 뒤 줄어든 판관비와 대한주택보증 출자전환 주식의 매각 이익 등이 반영된 영향이 컸다. 은행의 수익성 평가 지표인 순이자마진(NIM)은 전년도 2.73%에서 2.41%로 떨어졌으며, 이자 부문과 비이자 부문의 수익이 전년도에 대비해 각각 11.8%, 39.4% 줄어드는 등 실적의 순도는 좋지 않다.

SC제일은행은 지난해 실적에 일회성 특별퇴직 비용(4943억 원)이 포함돼 순손실을 냈다고 하지만 이를 제외하더라도 순이익은 800억 원 수준에 그친다. 순이자마진은 전년도 2.05%에서 1.73%로 떨어졌고, 연결총자산 규모도 전년도 61조8290억 원에서 56조4317억 원으로 8.73%포인트 쪼그라들었다.

또한 두 외국계 은행은 지방은행의 맹추격을 받고 있다. 지난해 순이익만 놓고 보면 부산은행(3552억 원)과 대구은행(2502억 원)이 이미 따라잡거나 거리를 좁히고 있다. 특히 순이익을 직원 수(2015년 말 기준)로 나눈 1인당 순익을 보면 외국계 은행들의 위기가 감지된다. 부산은행(3286명)과 대구은행(3303명)의 1인당 순익이 각각 1억1000만 원대와 8000만 원대라면 한국씨티은행(3564명)과 SC제일은행(4438명)은 각각 6000만 원과 마이너스(-) 6000만 원대를 보인 것. 최근 한국스탠다드차타드(SC)은행이 ‘제일’이라는 이름을 4년 만에 다시 은행명에 넣은 것도 그만큼 한국 고객들과의 친밀도를 높여 시장에 여진처럼 번지고 있는 외국계 은행의 위기설을 일축시키기 위한 자구책이라는 분석이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일부 외국계 은행들의 한국 시장 철수가 강력한 여진으로 이어질지는 미지수이지만 실적 여하에 따라서는 상당한 압박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고 전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