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권 투자 손익계산서
[한경 머니 기고= 김옥선 SC제일은행 투자자문부 팀장 ]글로벌 경제 성장세가 주춤해지며 위험자산인 주식보다는 안전자산인 채권과 대안투자의 비중이 커지고 있다.

특히 저금리 시대에는 안정적이면서도 예금 금리 대비 높은 수익을 주는 채권 투자가 대안이 될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응답하라~’ 시리즈가 1980, 90년대의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인기를 끌었다. TV 드라마에서 덕선이 아빠가 다니던 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15%가 넘었고, 덕선이 엄마는 정기적금만으로도 내 집을 장만할 수 있다는 꿈을 꾸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고성장·고금리’ 세상은 이렇게 위험을 취하지 않고도 기대수익을 충족시킬 수 있는 아름다운 세상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더 이상 그렇게 아름답지만은 않다. 한국 경제 규모는 과거처럼 빠르게 성장하기에는 너무 커져 버렸고, ‘고성장·고금리’ 시대를 지나 ‘저성장·저금리’ 시대로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시중은행의 정기예금 금리는 1%대까지 내려갔다. 이제는 위험을 취하지 않고는 수익을 낼 수 없는 불편한 세상이 돼 버린 것이다. 그리고 많은 전문가들은 국내 시장금리가 더 하락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저금리는 재앙이 아니다. 성장의 부속물이다. 다만, 금리가 낮아지면 자산관리가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 문제다. 자신이 투자한 돈이 2배가 되는 데 필요한 시간과 수익률을 알아보는 피터 린치의 ‘72법칙’은 자산관리가 얼마나 어려워졌는지를 단편적으로 보여준다.

과거 15% 이자를 주는 예금에 투자할 때 원금이 2배 되는 기간이 약 5년 정도 걸렸던 것에 비해 현재 1%대 예금 금리로는 70년 이상이 걸린다. 즉, 대표적인 무위험 투자 수단인 예금만으로는 노후, 자녀 교육, 내 집 장만과 같은 계획은 생각도 할 수 없는 세상이 도래한 것이다.
채권 등 안전자산 비중 늘려라

문제는 일반인들에게는 이 투자라는 것이 너무 어려운 영역이라는 점이다. 투자 수익을 높이기 위해서는 남들이 모르는 뉴스를 먼저 알아야만 할 것 같고, 세상의 흐름을 누구보다 빠르게 이해하는 동시에 남들이 외면할 때 홀로 투자할 수 있는 용기마저 필요해 보인다.

그러나 실제 투자는 극소수의 현인들이나 남다른 촉을 가진 재야의 실력자만의 몫이 아니다. 투자는 단순히 구체적으로 이뤄야 할 ‘목표’를 정하고 이에 맞춰 ‘전략’과 ‘전술’을 실행하는 것이다.

시장 환경에 따른 전력과 전술을 시행할 때 포트폴리오 구성이 필요하게 된다. 각 국가의 경제 성장 속도, 금리 수준, 그리고 경기 사이클을 고려해 채권, 주식, 원자재, 대안투자 등으로 자산을 배분하는 것이 포트폴리오 구성의 핵심이다.

실제로 전문가들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그러나 이를 최대한 단순화해보면 투자자산을 크게 위험자산(주식, 원자재 등)과 안전자산(채권, 대안투자 등)으로 구분해 경기가 좋을 때는 위험자산의 비중을 늘리고 경기가 그럭저럭 유지되거나 생각보다 좋지 않을 때는 안전자산의 비중을 늘리는 것이 포트폴리오 조정의 핵심이다.

글로벌 경제 성장세가 둔화되자 2016년에는 전년에 비해 대표적인 위험자산인 주식의 비중은 축소되고 안전자산인 채권과 대안투자가 늘어난 것이 확인되고 있다. 특히 2015년에 34%의 비중을 차지하던 채권자산은 올해에는 전체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50%까지 확대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자산 배분의 핵심은 안전자산 즉, 채권의 비중을 얼마큼 갖고 가느냐에 달려 있다. 투자의 핵심이 여러 상황을 입체적으로 고려해 결국 고객의 성향에 부합하는 기대수익률을 얻을 수 있는 최적의 조합을 찾아야 한다는 본래의 취지를 상기하면 특히 그렇다.

이 때문에 채권의 비중을 얼마로 가져갈지에서 출발하는 것은 포트폴리오를 꾸리는 데 있어서 좋은 접근이다. 특히 지금처럼 시장금리가 낮아진 상황에서는 안정적으로 예금 금리 대비 높은 수익을 주는 자산이 필요한데, 채권은 바로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채권(fixed income)이란 단어에서 알 수 있듯이 고정된 현금 수익을 수취할 수 있는 자산이다. 채권은 발행기관인 정부, 기업, 금융기관 등의 신용등급과 기간에 따라 수익률과 리스크가 정해진다.

예를 들어 미국의 대표적인 정보기술(IT) 기업인 마이크로소프트(MS, S&P 신용등급 AA+)가 발행하고 잔존 만기가 1년 남은 채권은 현재 1%가 되지 않는 금리로 거래되고 있는 반면, 투자부적격 등급인 브라질 헤알화 국채(S&P 신용등급 BB)는 11%에 가까운 금리로 거래되고 있다.

결국 신용도가 높은 기관이 발행한 채권일수록, 만기가 짧은 채권일수록 안전하게 원금과 정해진 금리를 받을 수 있는 것이다.
채권 투자 손익계산서
채권 투자 손익계산서
◆채권, 직접투자보다 펀드 활용해라

채권이 주식 대비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하기에 좋은 투자 수단임에는 분명하지만, 개인투자자가 채권 투자 시 반드시 기억해야 할 사항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직접투자보다 펀드를 활용하라. 개인투자자가 자본시장에 뛰어들어 신용등급과 만기가 다른 여러 채권을 조합해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을 불가능하고, 그렇게 해서도 안 된다. 비용도 많이 들 뿐만 아니라 대규모의 자본을 앞세운 기관투자가들 대비 양질의 채권을 받아올 수도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가능성은 낮지만 특정 채권이 디폴트가 날 경우, 개인이 후속 조치를 할 수 있는 방법도 매우 제한적이다. 자산운용사가 신용 분석부터 부도 발생 시 회생 절차까지 다 알아서 해주기 때문에 직접투자보다는 펀드를 활용하는 것이 채권을 안전자산의 대안으로 활용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둘째, 해외 채권으로 투자 범위를 확대하라. 국내 투자자들의 경우 주식과 마찬가지로 채권을 투자할 때도 국내 원화 채권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미국 달러 표시 채권으로 투자 범위를 확대할 때 안정성과 기대수익이 모두 높아진다.

국내 투자적격등급 회사채에 투자 시 약 연 1.7%의 금리를 기대할 수 있지만, 미 달러로 발행된 아시아 투자적격등급 회사채에 투자 시 연 3.2~5%의 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상황이다.

셋째, 채권도 시장 환경에 따라 전술적인 접근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신흥시장 달러 표시 국공채가 가장 매력적으로 보이고, 기대 수익도 높아 보인다. 주요 선진국 통화정책의 완화적 기조, 제한적인 미 달러 강세, 그리고 원자재 가격 안정화 등 신흥시장 국공채에 우호적인 환경이 지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연초 이후 지속된 랠리로 밸류에이션 부담은 소폭 높아지긴 했으나, 여전히 약 5.1%의 높은 금리를 제공하고 있다. 시장 예상이 부합되는 수준의 금리 인상 속도가 지속된다면 신흥시장 달러 표시 국공채에 대한 선호는 지속될 전망이다.

또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 인상을 앞두고 미 달러가 표시된 변동금리채를 편입하는 것도 포트폴리오의 변동성을 낮추는 데 큰 기여를 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시니어론’의 경우 변동금리채이면서 투자등급 회사채 대비 높은 금리를 제공하고 있어 최근 글로벌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는 투자자산이다.

시니어론은 투자등급 미만(S&P 기준 BBB- 미만)에 속하는 기업들이 기업 활동에 필요한 자금을 은행, 금융기관 등을 통해 조달하는 선순위 담보대출 채권인데, 3개월 리보금리에 연동되는 변동금리채권으로 시장금리 상승기에도 투자등급 회사채 대비 양호한 수익을 기록한 바 있다.

마지막으로 채권 투자 시 가장 필요한 덕목은 기다림이다. 금융시장의 변동성은 점점 더 짧은 주기로 반복되고 있어, 그 시점이나 정도를 예측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채권은 주식과 달리 시장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채권 만기까지 디폴트가 발행하지 않는다면, 원금과 이자를 돌려받을 수 있다는 특징이 있다.

당연히 주식보다 기대수익은 낮겠지만, 시간과의 싸움에서 이길 수만 있다면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금리 수익이 쌓이며 적정한 수준의 수익을 지속적으로 낼 수 있다는 의미다.

우리가 인지하든 못하든 저금리 시대는 이미 시작됐다. 일부 주식 종목이나 시장의 흐름에 베팅하는 투자보다는 채권 중심의 포트폴리오를 구성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를 시작할 때가 된 것이다.
김옥선 SC제일은행 투자자문부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