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보어드바이저 vs 인간, 누구에게 돈을 맡길까?
[한경 머니 기고 = 길재식 전자신문 금융산업 전문기자]국내 금융사에서 잇달아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 출시를 예고하며 자산관리 시장은 전운까지 감돌고 있다. 그렇다면 고객 입장에서는 로봇과 인간 중 누구에게 자산관리를 맡기는 것이 현명할까.

지난 100년간 고도의 기술력이나 지식을 요하는 의학, 컨설팅, 재무 설계, 자문 등 서비스업은 급속히 발전했다. 상위 1% 사람들은 궁극적으로 소유한 부를 과시하기 위해 여행이나 기타 활동 일정을 조율하는 컨시어지 서비스를 받거나 개인 비서를 두기도 한다.

은행의 경우 프라이빗뱅커(PB)가 배치돼 모든 투자와 은행 업무에서 1대1 조언자 역할을 하고 있다. 하지만 최근 인공지능(AI)이 부상하면서 전통 금융 인프라와 플랫폼은 종말의 위기에 놓였다. 비단 금융 산업뿐만 아니다. 인간의 비효율성이나 부정확성을 기계가 대체하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로보어드바이저 vs 사람, 수익률은 로봇의 승리

해외 TV 퀴즈쇼 <제퍼디>는 AI가 우리 생활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를 단적으로 보여줬다. 이 프로에는 의사, 간호사에게 암 연구나 치료에 대해 조언하는 IBM 왓슨이 등장한다. 왓슨은 의료 학술지나 사례, 사전, 백과사전, 문학 작품, 뉴스 기사, 다른 데이터베이스(DB)로부터 수백만 건의 문서를 제공받았다.

왓슨은 1990대의 IBM파워 750 서버들로 이루어졌는데, 각 서버는 3.5기가헤르츠 속도를 보유하고 코어별로 4개의 명령처리 체계를 가지고 있다. 종합하면 왓슨 시스템은 300개의 파워7 프로세스 스레드와 16테라바이트 메모리를 갖고 있다. 1000만 권이 넘는 책을 단 1초 만에 읽을 수 있고, 사진을 찍은 듯한 기억력으로 순식간에 요구되는 내용을 기억한다.

이제 금융 분야도 이 같은 AI 등장으로 전통 채널이 붕괴되는 시점이 왔다. 소비자도 사람과 로봇(로보어드바이저) 중 누구에게 돈을 맡길까 하는 선택의 기로에 놓였다. 최근 금융사들이 개인종합자산관리계좌(ISA) 출시에 맞춰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속속 도입하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의 대중화가 머지않았다.

로보어드바이저는 로봇(robot)과 투자자문가(advisor)의 합성어로, 컴퓨터 알고리즘이 고객 데이터와 금융 빅데이터를 분석해 개인별 투자 포트폴리오와 상품을 추천한다.

로보어드바이저 전문 투자자문사 쿼터백이 국내 첫 로보어드바이저 전문 자산운용사를 출범시켜 화제를 모았다. 또 신한·KB국민·우리·KEB하나은행 등 주요 은행권에서도 그룹사와 연계해 온라인 자산관리 서비스를 속속 구축했다. 금융당국도 올해 핀테크(FinTech) 육성을 핵심 키워드로 잡고, 다양한 로보어드바이저 활성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그렇다면 금융권에서 대세로 떠오르고 있는 로보어드바이저의 장점은 뭘까.
먼저 고액자산가들이 주로 이용하는 비싼 PB 서비스를 상대적으로 저렴한 비용으로 보급할 수 있다는 점이 경쟁력이다. 또 인간의 불안정한 직감이 아닌 금융투자 패턴과 정보를 활용한 투자를 하기 때문에 중위험 추구형 투자자들에게 매력적이다.

실례로 올해 1분기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하는 금융사의 투자수익률은 1.5~4%대에 분포해 같은 기간 국내 증시 평균수익률보다 2~3% 정도 높았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자산 배분 알고리즘을 활용한다. 자산 배분 알고리즘이 자산을 분산투자 해 포트폴리오를 만들게 되면 위험을 감소시켜 수익률을 개선하는 효과가 있다.

로보어드바이저는 총 3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포트폴리오만 제시하는 자문형, 포트폴리오는 물론 운용까지 모든 과정을 수행하는 일임형, 컴퓨터가 제시한 포트폴리오를 참고해 PB가 운용하는 하이브리드형이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로보어드바이저를 활용한 금융 자산관리 서비스는 연평균 성장률이 68%에 달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로보어드바이저 vs 인간, 누구에게 돈을 맡길까?
◆금융권 로보어드바이저 속속 도입

신한은행이 국내 은행권 최초로 로보어드바이저를 통한 모바일 자산관리 서비스 ‘엠폴리오’를 출시했다.

은행들은 올 들어 일임형 ISA, 퇴직연금 등의 포트폴리오를 짜거나 개인의 투자 성향을 분석하고 상품을 추천할 때 로보 시스템을 부분적으로 활용해 왔다. 하지만 고객이 직접 모바일로 자산 분배 포트폴리오를 받은 뒤 그대로 상품에 가입하고, 주기적으로 리밸런싱(자산 재조정)까지 받을 수 있는 로보 서비스는 처음이다.

엠폴리오는 적립 금액이 10만 원만 있으면 로보와 전문가로부터 PB 상담 수준의 포트폴리오를 각각 추천받을 수 있다. 엠폴리오 애플리케이션(앱)에 접속해 소득 상황 등 고객의 투자 성향을 판단할 수 있는 설문 항목에 답한 뒤 월 적립 금액을 입력하면 즉시 포트폴리오를 받아볼 수 있다. 해당 포트폴리오에 제시된 다수 상품의 가입도 한번에 가능하다.

다른 은행도 내년 4월 금융당국이 진행하고 있는 로보어드바이저 1차 시범 테스트가 끝나면 로보 자문 시스템을 본격화할 전망이다. 앞서 우리은행과 KB국민은행 등은 인터넷과 모바일을 통해 체험형 로보어드바이저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로보어드바이저 육성을 위한 직접투자도 증가세다. 우리은행과 IBK기업은행이 로보어드바이저 스타트업에 투자한다. 로보어드바이저 전문 기업 파운트는 우리은행, IBK기업은행, 스마일게이트, 이노폴리스 등 벤처캐피털(VC) 2곳으로부터 총 12억 원 규모의 프리 시리즈 A(Pre-Series A) 투자를 유치했다. 앞서 파운트는 이미 지난 8월 신한카드와 신한금융투자로부터 3억5000만 원 규모로 투자를 유치했다.

생명보험사들도 로보어드바이저에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생보업계 최초로 변액보험 상품에 적용되는 로보어드바이저 펀드를 출시한 ING생명은 ‘모으고키우는 변액적립보험 2.0’과 ‘ING Two×Two 변액적립보험’의 운용사 경쟁형 펀드 라인업에 ‘자산배분R형’이라는 이름으로 로보어드바이저 펀드를 각각 추가했다.

◆세계는 금융 AI 열풍, 맹신 리스크도 존재

국내뿐 아니라 이미 해외 글로벌 은행도 로보어드바이저를 채택하기 시작했다. 찰스슈와프는 지난해 자체 개발한 로보 서비스를 개인 고객, 독립 투자자문업자에게 제공하는 플랫폼을 출시했다.

뱅가드도 로보어드바이저 전문 자문사를 자회사로 설립해 다양한 포트폴리오 서비스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미국에만 200여 개 로보어드바이저 기업이 성업 중이고, 한국도 핀테크 산업이 개화기를 맞이하면서 많은 사업자들이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각에서는 “로보어드바이저를 맹신해서는 안 된다”는 우려의 시각도 있다. 데이터에만 의존하는 자산 배분이 변화가 심한 금융시장의 구조적 변화를 적시, 적소에 대응하기란 쉽지 않다는 시각이다. 실제 2011년 미국 정부 폐쇄 등 블랙스완 이벤트 발생 시 펀드매니저들이 적극적인 운용 전략을 편 액티브펀드 수익률이 높게 나온 점도 좋은 사례다.

또한 고객이 자동화된 투자 자문 서비스를 받는 과정에서 정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로보어드바이저가 이를 간파하지 못하고 부적합한 투자 결정을 내리는 사례가 많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로보어드바이저에 적합한 규율 체계가 완비된 것이 아니어서 로보어드바이저에 대한 신뢰성 및 안정성 등에 대한 시장의 우려가 제기되고 있는 상태다.
길재식 전자신문 금융산업 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