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nce 제 139호 (2016년 12월)

트럼프 시대의 한국 경제 활로

제45대 미국 대통령으로 공화당의 도널드 트럼프 후보가 당선됐다. 전혀 예상 밖의 결과였던 만큼 아직까지는 ‘기대’보다 ‘우려’가 앞서는 분위기다. 한국 경제의 활로를 어떻게 찾아야 할 것인가.

가장 궁금한 것은 선거 기간 내내 보여줬던 막말, 음담패설 등에 따른 ‘비체계적 위험’이 집권 기간에는 얼마나 줄어들 것인가 여부다. 정당의 목적은 정권을 잡는 데 있다. 이전과 달리 이번 대선은 양 후보가 결점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최선’이 아니라 ‘차선’의 인물을 뽑는 선거였다. 선거 전략도 ‘네거티브’가 유리해 막장 드라마로 흐를 수밖에 없었다.





미국은 삼권분리 원칙이 비교적 잘 지켜지는 국가다. 인사와 행정도 ‘엽관제(spoil system: 트럼프 당선에 기여한 사람 위주로 채워지는 제도)보다 ‘실적제(merit system: 개인의 능력과 실적에 따라 임용되는 제도)’를 우선하기 때문에 트럼프 당선자가 집권하기 시작하면 비체계적 위험은 줄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트럼프노믹스의 총체적인 기조는 ‘미국 재건(Make America great again)’이다. 오바마 정부가 태생적 한계였던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크게 손상된 국제 위상과 주도권의 반작용에서 나온 캐치프레이즈다. 한 마디로 글로벌 이익과 국익 간 상충될 때에는 후자를 중시하겠다는 것이 핵심이다.

통상정책에서 극단적 보호주의로 흐를 것으로 우려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시각은 과장됐다. 트럼프 당선자는 미국의 무역적자를 대미국 흑자국에 성장과 고용을 빼앗기는 것으로 인식해 왔다. 이 때문에 이들 국가에 대해 통상 압력을 가해 시정하고, 다른 국가와는 공존을 모색하는 ‘차별적 보호주의’로 보는 것이 보다 정확한 시각이다.

내부적으로 미국을 재건하기 위해서는 도로, 철도, 항만 등 낙후된 사회기반시설(SOC)을 복구하는 과제가 가장 적합하다. 통화정책보다 재정정책이 더 선호될 것으로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월가에는 1930년대식 ‘트럼프판 뉴딜 정책’이 추진될 것이라는 기대로 당초 우려와 달리 주가가 연일 상승하고 있다.

법인세, 소득세, 상속세 등 대폭적인 감세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겠다는 정책도 주목된다. 제2차 오일쇼크 여파로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에 물가가 올라가는 현상)’이라는 정책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려운 미국 경제를 구해냈던 1980년대 초반 ‘레이건노믹스(공급중시경제학이라고도 부른다)’를 연상케 한다.


감세정책의 이론적 토대인 ‘래퍼 곡선(Laffer Curve)’을 보면 세율과 재정 수입 간 정(正)의 구간을 ‘표준 지대(normal zone)’, 부(負)의 구간을 ‘비표준 지대(abnormal zone)’라 부른다. 트럼프 당선자는 대선 출마 이전부터 너무 높아 경제효율을 떨어뜨리는 세 부담을 낮춰야 경기가 살아나고 재정 수입까지 늘어날 수 있다고 봤다.

재정 적자 어떻게 감당할까
재정 지출과 감세를 동시에 추진한다면 ‘재정 적자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점에 의문이 든다. 최소한 경기가 살아나기까지 늘어날 재정 적자를 국채로 메운다면 국가 채무가 늘어나고 국채 금리가 빠르게 올라가고 달러 가치도 강세가 될 수 있다. 이 경우 ‘구축 효과(crowding out effect)’가 발생해 경기 회복에도 역행한다.

하지만 트럼프 당선자는 기업인 출신답게 민간자본을 대거 참여시켜 이런 부담을 충분히 줄일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노무현 정부 시절에 추진했던 ‘민자 사업(Build Transfer Lease, BTL)’ 방식과 유사하다. 전제조건인 수익률 보전은 전통적인 민간 투자 수익률이 떨어져 대체투자가 대세인 만큼 오히려 인기를 끌 것이라는 시각이다.

산업정책은 트럼프 당선의 일등공신이었던 저소득 백인층의 일자리 창출에 맞춰 추진될 방침이다. 글로벌 기업보다 내수 기업, 대기업보다 중소기업, 금융업에 있어서는 대형 투자은행보다 지방은행이 선호되고, 국익 확보에 최적 업종인 1차 에너지와 방위 산업에 최우선순위를 둬 추진될 것으로 예상된다. 해외에 진출한 미국 기업을 끌어들이는 오바마 정부의 ‘리쇼오링 정책(re– shoring policy)’은 이어받을 가능성이 높다.


외환정책은 무역정책과 보조를 맞춰 ‘이원화(two track) 전략’이 확실시된다. 미국의 무역적자를 악화시키지 않는 국가의 통화는 원칙적으로 시장에 맡겨 놓겠지만 대미국 흑자국(올해 10월 미국 재무부의 환율보고서에서 중국, 한국, 일본, 대만, 독일, 스위스는 환율감시 대상국으로 지정) 통화에 대해서는 평가절상 압력을 가중시킬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 경제가 어렵다. 지표 경기의 대표인 성장률은 올해 4분기에는 마이너스 수준으로 떨어질 위험에 놓여 있다. 체감 경기 판단 지표인 신경제고통지수(소비자물가상승률+실업률-성장률)는 더 안 좋다. 더 우려되는 것은 외환위기 당시에 나타났던 ‘7가지 위기 징후군’이 재현되고 있다는 지적이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마냐나(Manana) 경제관’이다. 마냐나는 스페인어로 ‘내일’이라는 뜻이다. ‘내일은 태양만 뜬다’는 식으로 한국 정책당국자의 경제관이 너무 낙관적이라는 지적이다. 외환위기 당시 경제 인식의 위기였던 강경식 경제팀의 펀더멘털론(위기는 닥치는데 경제 여건은 괜찮다는 주장)과 같은 시각이다.

경제 현안을 풀어 가는 데에는 정확한 경기 인식부터 선행돼야 한다. 너무 낙관적으로 보면 정책 실기와 땜질식 정책 처방으로 직결된다. 정확한 경기 인식을 갖고 있는 경제부총리를 뽑아 컨트롤타워 기능을 확보해야 한다. 그래야 정책수용층은 경제정책을 믿고 정책당국자의 의도대로 반응할 수 있다.

같은 맥락에서 ‘삶은 개구리 징후군(Boiled Frog Syndrome)’에 빠졌다는 지적도 뼈아프다. 이 용어는 미국 코넬대에서 실시한 비이커 실험에서 유래됐다. 뜨거운 물에 넣은 개구리는 튀어나와 살고, 천천히 온도를 올린 물에 넣은 개구리는 죽었다는 실험이다. 환경 변화 적응의 중요성을 강조할 때 많이 인용된다.

올해 초 스위스 다보스포럼(WEF)에서 처음 제시된 제4차 산업혁명 물결이 1년도 못 되는 사이에 거세다. 제4차 산업혁명 주도 업종은 성수기까지 도달하는 데 3년(제1차 산업혁명 업종 30년, 제2차 산업혁명 업종 15년, 제3차 산업혁명 업종 7년)밖에 안 걸린다. 이 때문에 선도자에게 모든 이익이 집중된다. 미국(AMP), 독일과 중국(Industry 4.0), 일본(재흥전략) 등에서 보듯이 제4차 산업혁명을 주도하겠다는 열기에 비해 한국은 너무 미온적이다.

연구·개발보다 인수·개발에 주력해야
구조조정과 관련해 ‘코브라 역설(Cobra Paradox)’에서 헤어나지 못한다는 지적도 가슴 깊이 파고든다. 영국의 인도 식민지 시절 골치 아픈 코브라 개체수를 줄이기 위해 지급했던 보조금이 오히려 개체수를 늘렸다는 정책 실패에서 유래됐다. 미봉책은 문제 해결보다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는 의미에서 자주 활용된다.

외환위기 이후 수없이 경험했듯이 구조조정의 성공 열쇠는 ‘타이밍과 고통 분담’ 여부다. 대우해양조선처럼 정치적 포퓰리즘으로 정책 시기를 다 놓치고 누구도 희생하지 않는 길을 선택한다면 후에 엄청난 규모의 공적자금이 투입되면서 국민 부담만 늘어난다. 외부 불경제(사적 비용보다 사회적 비용이 큰 경우)의 전형이다.

‘새로운 넛 크래커(New Nut Cracker)’ 국면에 빠졌다는 지적도 피부에 와 닿는다. 넛 크래커는 1990년대 저임의 중국과 기술의 일본 사이에 낀 한국 수출 상품의 위상을 꼬집는 말이었다. 새로운 넛 크래커는 범용 표준화된 기술은 중국, 첨단 기술은 일본이 압박하는 현상으로 오히려 극복하기는 더 어렵다. 중국(Industry 4.0)과 일본(재흥전략)이 제4차 산업혁명에 주력하고 있는 점을 감안하면 앞으로 이 현상은 더 심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새로운 넛 크래커 현상을 탈피하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과 창업보다 인수·개발(M&D=R&D +M&A)로 경쟁력 확보 기간을 단축시켜야 가능하다. 단기적으로는 환율이 불리하게 작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다. 통상 마찰과 원화 절상 요인인 과다한 경상수지 흑자부터 줄이는 것이 급선무다.

당면한 강남 투기 지역의 본질을 잘 지적한 ‘더 큰 바보 이론(Greater Fool Theory)’도  주목해야 한다. 글로벌 투자전략가인 스리 쿠르마는 “강남 아파트에 거품이 낀 것은 알고 있지만 더 사줄 사람이 있다는 믿음 때문에 매입한다”고 주장한다. 1993년 이후 서울의 아파트를 집중 연구해 온 프랑스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의 ‘강남 불패론’과 같은 시각이다.

11월 3일 투기과열지역의 아파트 값을 안정시키기 위한 대책이 발표됐다. 강남 아파트 투기가 부동산 활성화를 통해 경기를 살리겠다는 현 정부의 정책 실패 결과라는 비판을 너무 의식한 ‘본때를 보여 주기 식 대책’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투기의 본질인 기대수준을 낮춰 연착륙시킬 수 있는 대책이 나와야 한다.

경제주체의 위기 인식과 관련해 2가지 경고도 눈에 띈다. 하나는 제임스 버크의 명저에서 유래된 ‘핀볼 효과(Pinball Effect)’ 위기다. 서로 연결돼 있는 볼링 핀에 비유해 위기 징후는 도미노처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아무리 사소해 보이는 위기 징후라도 무시하다 보면 나중에 걷잡을 수 없는 위기로 빠져든다는 경고다.

다른 하나는 다가오는 위기를 애써 외면하는 ‘무각통증(Disregard)’ 위기다. 국회의원은 당리당략으로 경제입법을 미룬다. 노조는 소속 기업이 망해도 거리로 뛰쳐나온다. 있는 계층은 위기가 닥쳐도 ‘나는 괜찮겠지’ 하는 심리가 모두 해당한다. 모든 주체가 경제 살리기에 나서는 ‘프로보노 퍼빌릭코(Probono Publico, 공공선) 정신’을 발휘해야 할 때다.

한상춘 한국경제TV 해설위원 겸 한국경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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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6-12-05 1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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