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세계 경제의 리더로 나서고 있다. 처음으로 다보스포럼에 참석하는 등 자유무역의 수호자를 자처하고 있다. 시진핑 주석의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봤다.
시진핑이 자유무역 수호자?
스위스 그라우뷘덴 주의 다보스는 알프스 산맥 동쪽 자락에 자리 잡은 인구 1만1000여 명밖에 되지 않는 자그마한 도시다. 스키장이 있는 휴양지인 이 도시는 해발 1560m로 유럽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다. 이곳에선 매년 1월이 되면 다보스포럼이 열린다. 다보스포럼은 민간단체인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WEF)의 연차 총회를 말한다.

이 단체는 독일 출신인 클라우스 슈밥 제네바대 교수가 1971년 설립한 비영리 재단으로,유럽과 미국을 중심으로 1200여 개 기업과 단체들이 가입해 있다. 본부는 스위스 제네바에 있으며, 매년 ‘세계 경쟁력 보고서’를 발간한다. 다보스포럼은 당초 유럽경영포럼이라는 명칭으로 시작됐는데, 해마다 규모가 커지면서 1987년부터 세계경제포럼으로 이름이 바뀌었다.

다보스포럼은 각국의 대통령과 총리, 장관들을 비롯해 정치, 경제, 언론, 학계의 지도자들이 모여 국제사회의 주요 현안들을 논의하는 자리가 됐다. 이 때문에 다보스포럼을 ‘경제올림픽’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017년 1월 17~20일 제47차 다보스포럼에 참석할 예정이다. 중국에선 2009년 원자바오 총리, 2015년 리커창 총리가 참석한 적은 있지만, 최고지도자인 국가주석이 참석하는 것은 사상 처음이다. 중국은 그동안 각국 주요 정치·경제 엘리트들의 모임인 다보스포럼에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지난 제46차 다보스포럼만 해도 국제무대에 별로 알려지지 않은 리위안차오 국가부주석과 팡싱하이 증권감독관리위원회 부주석이 참석했었다. 물론 2007년부터 매년 톈진과 다롄을 오가며 하계 다보스포럼을 개최하고 있지만, 실제 무게중심은 ‘보아오(博鰲)포럼’에 맞춰져 있다.

중국판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이 포럼은 아시아 국가들과 협력기구들 간 경제 협력과 교류를 목적으로 한다.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세계은행(WB)과 아시아개발은행(ADB)에 맞서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을 발족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시 주석의 다보스포럼 참석은 상당한 심모원려(深謀遠慮)가 있는 듯하다.

시진핑, 다포스포럼에 참석하는 이유
시 주석의 의도는 브렉시트(Brexit: 영국의 유럽연합 탈퇴)로 인한 유럽연합(EU)의 위상 하락과 극우주의 확산, 보호무역주의를 기치로 내걸은 도널드 트럼프의 미국 대통령 취임 등으로 자유무역을 근간으로 하는 세계경제질서가 흔들리는 상황에서 글로벌 리더로서 중국의 위상을 강화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영국 경제일간지 파이낸셜타임스(FT)는 보호무역주의가 전 세계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시 주석은 중국이 자유무역의 수호국임을 강조하고, 기후변화 대응에서도 주도국임을 보여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실제로 중국은 최근 들어 자유무역과 기후변화 등에 대해 적극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시 주석은 2016년 11월 19일과 20일 페루 리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보호무역주의 대두에 반대 입장을 천명하면서 중국이 글로벌 자유무역협정(FTA)의 수호자 역할을 하겠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또 파리 기후변화협정에 부정적인 트럼프와는 달리 시 주석은 기후변화 대응 강화와 협정 이행을 약속하고 있다.

케리 브라운 영국 런던 킹스칼리지 교수는 “시 주석의 다보스포럼 참석은 중국이 지금 해외에 대해 얼마나 큰 야심을 가지고 있는가를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트럼프가 신(新)고립주의 정책을 추진할 경우 글로벌 무대에서 예상되는 미국의 잠재적 권력 공백을 중국이 채우려는 의도가 있다”고 지적했다.

중국은 무엇보다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무역질서를 자국 중심으로 주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트럼프가 취임 이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탈퇴를 선언하는 것을 계기로 시 주석은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을 강하게 밀어붙일 것이 분명하다. RCEP를 체결하기 위한 협상에는 중국을 비롯해 우리나라, 일본, 호주, 뉴질랜드, 인도, 아세안 10개 회원국 등 모두 16개국이 참가하고 있다.

16개국의 인구는 35억 명으로 전 세계의 50%를, 국내총생산(GDP)은 22조4000억 달러로 전 세계의 30.6%를 각각 차지한다. 교역은 9조6000억 달러로 전 세계의 28.9%나 된다. RCEP는 TPP가 폐기될 경우 세계 최대 경제 블록이 될 수 있다. RCEP는 TPP와 달리 지적재산권, 환경, 노동과 관련한 의무조항이 없고, 관세와 서비스 분야 자유화만 규정하고 있는 자유무역협정이다.

16개국은 2012년 11월 동아시아 정상회의를 계기로 RCEP 협상 개시를 선언했고, 지금까지 16차례 협상을 벌여 왔다. RCEP 협상이 그동안 느리게 진행된 것은 TPP와 RCEP에 모두 참여한 국가들이 TPP에 더 비중을 두고 있었기 때문이다. TPP와 RCEP에 모두 참여하고 있는 국가는 일본,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브루나이, 베트남, 호주, 뉴질랜드 등 7개국이다.

그런데 TPP가 폐기될 경우 당연히 무게중심은 RCEP로 옮겨 갈 수밖에 없을 게 분명하다. 이미 아세안 회원국들은 RCEP로 시선을 돌리고 있다. 호주와 뉴질랜드도 RCEP 타결에 적극 나선다는 입장이다. TPP 참가국인 페루와 칠레도 RCEP 협상에 참여할 의사를 보이고 있다.

중국은 말 그대로 기호지세(騎虎之勢)다. 장제 중국사회과학원 아태·글로벌전략연구원 연구원은 “중국 주도의 RCEP가 TPP를 대체한다면 중국으로서는 호기를 맞게 된다”면서 “아태 지역에서 중국의 영향력이 한층 강화될 것이다”라고 평가했다. 중국은 이와 함께 아시아태평양자유무역지대(FTAAP)를 구축하는 방안도 적극 추진하고 있다. 중국의 의도는 미국 트럼프 정부가 앞으로 추진할 보호무역주의에 대항하려는 것이라고 볼 수 있다.

FTAAP는 APEC 21개 회원국을 하나의 FTA로 묶자는 구상이다. APEC 정상들은 2014년 중국 베이징 정상회의에서 FTAAP 설립에 원론적 동의를 했지만 미국이 TPP에 힘을 쏟으면서 지지부진한 상태였다. 시 주석은 “아태 지역은 보호무역주의의 도전과 성장 정체에 직면해 있다”면서 “FTAAP 구축은 아태 지역의 장기적 번영과 관련이 있는 전략 방안이기 때문에 확고한 결심으로 밀어붙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아무튼 중국은 아태 지역의 경제 주도권 확보를 위해 RCEP 체결과 FTAAP 구축에 역점을 둘 것으로 보인다. 미국 의회 자문기구인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는 최근 발표한 연례보고서에서 TPP가 발효되지 못하고 RCEP가 발효되면 중국이 880억 달러(104조 원)의 경제적 혜택을 얻을 것으로 추산했다.

시 주석이 세계경제질서의 리더로서 자리매김할 경우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과 해상의 실크로드) 프로젝트’에도 날개가 달릴 것으로 보인다. 일대일로 전략은 크게 2가지로 구분된다. 일대(一帶, One Belt)는 육상 실크로드 경제지대(Silk Road Economic Belt)를 말하는데, 중국 서북 지역에서 중앙아시아 및 유라시아 대륙과 유럽을 관통하는 육상 무역통로를 구축하는 것이다.

일로(一路, One Road)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21st Century Maritime Silk Road)로, 중국 동남 연해 지역에서 동남아, 인도양, 중동과 아프리카를 연결하는 바닷길을 말한다. 시 주석의 구상은 육·해상 두 축을 통해 해당 국가들의 교통 인프라를 연결하고 자유무역지대를 만들며 위안화를 결제수단으로 확산시키는 ‘범중화경제권’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이 프로젝트는 64개국, 인구 44억 명, 세계 경제의 40%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된다.

범중화경제권 구축될까
중국 정부는 2017년에 AIIB 57개 회원국을 끌어 모아 ‘일대일로 정상회의’를 개최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홍콩의 영자지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일대일로 정상회의가 개최될 경우 2016년 9월 중국 항저우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규모를 넘어설 것이다”라고 보도했다.

중국이 일대일로 정상회의 개최를 검토하는 이유는 미국 주도의 주요 20개국(G20)에 대항하려는 목적도 있다. G20 회원국들은 대부분 미국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국가들이다. 일대일로 프로젝트는 ‘중국판 마셜플랜’이라고 불리고 있다. 마셜플랜은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 재건을 돕기 위해 시작한 경제원조 계획이다.

마셜플랜에 따라 미국은 1948년부터 4년간 서유럽에 130억 달러를 쏟아 부었다. 이는 현재 가치로 1300억 위안(161조 원)에 달한다. 중국 정부는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중국 국내총생산(GDP)의 9%를 투입할 계획이다. 이는 마셜플랜의 2배에 달하는 규모다. 시 주석이 세계 경제의 새 지도자로 자리매김 할 수 있을지 주목된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