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홀로 영업정지’ 교보생명, 오너리스크 현실화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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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경 머니 =배현정 기자]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이 ‘기사회생’했다. 지난 3월 17일 교보생명은 주주총회에서 신 회장의 3년 재선임을 확정했다. 하지만 자살보험금 사태 속에서 고객과의 신뢰도, 업계와의 동맹(?)도 깨고 ‘오너’인 신 회장 구하기에 골몰했던 탓에 정말 ‘오너’만 구했다는 안팎의 비판에 직면해 있다. 거듭 약속을 지키지 않은 기업공개(IPO)를 둘러싸고 구설수도 끊이지 않는다.

오랜 기간 논란이 됐던 자살보험금 사태는 ‘명분도, 실리도’ 모두 잃은 생명보험사들의 ‘참패’로 일단락됐다. 이 가운데 ‘나 홀로 영업정지’를 받은 교보생명의 추락이 뼈아프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3월 16일 제재심의위원회를 열고 자살보험금 미지급과 관련해 삼성·한화생명에 ‘기관경고’를 결정했다. 하지만 교보생명은 유일하게 ‘영업 일부 정지’를 받게 돼 영업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삼성·한화생명은 기관경고로 신사업 진출이 1년간 금지되지만, 교보생명은 1개월 영업정지에 3년간 신사업 진출이 막히게 됐다. 왜 유독 교보생명이 직격탄을 맞게 된 것일까. 여기에는 대형 보험사들의 담합과 배신, 꼼수의 막장 드라마가 있다.

2013년 ING생명에 대한 금감원의 종합 검사로 적발된 자살보험금 미지급 사건은 “약관이 실수였다”고 생보사들이 맞서며 지루한 공방을 거듭했다. 그러나 지난해 5월 대법원은 “생보사들은 약관에 적힌 대로 자살 시에도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고, 금감원이 미지급 생보사에 대한 중징계를 통보하면서 마무리되는 듯했다. ING, 알리안츠, 동부, 신한, 메트라이프 등 11개 생보사들은 자살보험금 전액 지급을 결정했다.

하지만 생보사 빅 3(삼성, 한화, 교보)는 ‘일부 지급’ 카드를 들고 버티기에 돌입했다. 약관을 지키지 않은 보험사를 제재할 법적 근거가 마련된 2011년 이후 청구 건에 대해서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맞섰다. ‘빅 3’가 의기투합해 중징계를 예고한 금융당국에 대항하기로 한 셈이다.

그런데 교보생명이 막판 홀로 투항하면서 기괴한 ‘빅 3’ 동맹이 깨졌다. ‘빅 3’에 대한 중징계를 결정하는 금감원의 제재심의위원회가 열리기 불과 몇 시간 전 교보생명이 다급하게 ‘자살보험금 전건 지급’을 발표했다. 이에 따라 최대 직무정지 위기였던 신창재 교보생명 회장에 대한 징계는 일신상에 문제가 없는 경징계로 바뀌었다. 교보생명은 “소비자 신뢰 회복 차원에서 대승적으로 고려한 것이다”라고 밝혔으나 ‘신창재 회장 구하기’라는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 없었다.

신 회장은 생명보험사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유일한 ‘오너’다. 대표이사에 대한 중징계가 내려질 경우 경영 퇴진은 물론 교보생명 최대주주로서의 입지도 흔들린다. 전문경영진과 오너경영진의 차이가 낳은 고육지책으로 해석된다.

결국 다급해진 삼성생명과 한화생명도 백기를 들었다. 뒤늦은 투항의 대가는 더 컸다. 교보생명이 자살보험금을 전건, 금액으로는 반액 정도를 지급키로 했으나, 삼성생명과 한화생명은 전액 지급을 결정하면서 물꼬를 돌렸다. 금융당국도 화답했다. 금융당국은 이례적으로 동일 안건에 대해 제재심을 다시 열고, 김창수 삼성생명 사장과 차남규 한화생명 사장에 대한 종전 ‘문책경고’를 연임이 가능한 ‘주의적 경고’로 내렸고, 2~3개월간의 영업정지 처분도 뺐다. 이로써 교보생명은 14개 생명보험사 중 자살보험금 전액을 지급하지 않은 보험사로 남게 됐고, 업계 유일하게 영업정지 제재에 직면하게 됐다. 결국 자살보험금을 절반 정도만 지급하면서 ‘오너’ 구하기에 나섰던 교보생명의 꼼수는 악수(惡手)로 돌아온 셈이다.
‘나 홀로 영업정지’ 교보생명, 오너리스크 현실화하나

연금보험금도 '덜 줬다'

교보생명은 이미 10년 전 자살보험금의 문제를 인지하고도 개선하지 않아 사태를 확대시켰다는 ‘책임론’에서도 자유롭지 않다. 자살보험금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오른 것은 2013년 ING생명 종합 검사 때이지만, 교보생명은 2007년 자살보험금 지급 문제로 고객과의 분쟁 끝에 대법원에서 패소 판결을 받았기 때문이다. 생보업계가 이러한 자살보험금 약관의 문제점을 인지해 자살을 재해사망 지급 대상에서 제외한 것은 2010년이다. 교보생명은 대법원 판결에서 자살보험금 약관 문제점이 드러났음에도 수년간 방치하다 호미로 막을 걸 가래로 막는 사태에 이르렀다.

현재 교보생명의 자살보험금 관련 영업 일부 정지의 범위는 주 계약에서 재해사망을 보장하는 상해보험, 단체보험 등에 국한될 것으로 보는 관측이 많다. 하지만 재해사망 담보가 포함된 모든 상품으로 제한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보험업계 관계자는 “교보생명의 영업정지 기간이 1개월이라 해도 고객 보험금을 지급하지 않은 유일한 보험사라는 낙인이 향후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다”며 “보험사 신뢰도가 흔들리는 데다 당장 영업 제한으로 수수료도 타격을 받게 돼 설계사 이탈이 가속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보험사 영업정지는 실질적으로 보험사보다 보험설계사를 징계한 결과라는 데 반발이 적지 않다. 한 보험설계사는 “안 그래도 소비자들의 보험에 대한 편견이 적지 않은데 영업정지 징계로 더욱 불신을 키우게 될까 봐 걱정이다”라며 “보험사와 경영진의 잘못으로 배가 난파됐는데 경영진만 뭍으로 올라오고 사실상 개별사업자인 보험설계사들만 고스란히 피해를 보게 된 꼴이다”라고 지적했다.

최근에는 생명보험사들이 “연금보험금도 덜 줬다”는 의혹이 제기돼 '제2의 자살보험금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대상은 1990년대 중반에서 2003년까지 판매한 유배당 상품으로, 자산 운용 수익률이 마이너스였을 때 배당이 없으면 0원을 적용해야 하지만 일부 생보사들은 손실분을 고객의 예정이율에서 빼서 배당준비금을 줄였다는 의혹이다. 이기욱 금융소비자연맹 사무처장은 “배당금에 마이너스 적용은 있을 수 없는 논리”라며 “이는 회계부정을 저지른 중차대한 사건으로는 금융당국은 즉각 해당 보험사의 면허를 취소시켜야 할 것이다”라고 비판했다.

자살보험금 교훈(?)으로 생보사들은 이번에는 서둘러 진화에 나섰다. 삼성생명과 교보생명 등 9개 생보사는 최근 과소 적립되거나 지급된 연금보험 배당금을 소급해 추가 적립하고 이미 지급된 경우 추가지급하겠다는 의사를 금융당국에 전달했다. 업계에 따르면 세제적격 유배당 연금저축상품 미적립금으로 삼성생명은 19만 건에 700억 원, 교보생명은 15만 건에 330억 원을 추가 적립할 방침이다. 자살보험금 논란도 아직 완전히 가라앉지 않은 상태에서 잇따르는 의혹으로, 그동안 정도경영을 외쳤던 신창재 회장의 리더십에도 상당한 오점을 남길 수밖에 없다.

교보생명, IPO 압력 거세

‘나 홀로 영업정지’ 교보생명, 오너리스크 현실화하나
교보생명이 자살보험금 미지급 관련, 신창재 회장에 대한 징계 수위는 낮췄지만, 영업정지라는 철퇴를 맞게 되면서 주식시장 데뷔 영향도 민감하게 거론되고 있다.

투자은행(IB)업계에 의하면 박영택 어피너티 회장 등 일부 교보생명 재무적 투자자(FI)들이 최근 신 회장을 만나 기업공개(IPO)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르면 올해 말 상장 추진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재무적 투자자인 어피너티컨소시엄은 지난 2012년 대우인터내셔널이 보유하고 있던 교보생명 지분 24%를 1조2054억 원에 인수하기 위해 만들어진 투자자집단으로, 2015년 말까지 회사를 상장해 엑시트(투자금 회수) 기회를 제공하지 않으면 일정한 가격에 신 회장에게 지분을 되팔 수 있는 풋옵션을 받았다. 당시 신 회장의 경영권이 위협받을 수 있던 상황에서 우호 지분으로 참여한 조건이다.

약속한 상장 기한을 훌쩍 넘겨 교보생명은 지난해 말 IPO를 포함한 모든 자본 확충 방안을 검토해보겠다는 명목으로 ‘최적 자본구조 확충 방안 컨설팅’을 진행했으나 뾰족한 답을 얻지 못했다.

교보생명은 오는 2021년 도입될 국제회계기준(IFRS17)의 불확실성과 저금리 시대 생명보험 업황 악화 등을 이유로 IPO 시기를 미뤄 왔다. 하지만 ING생명이 최근 한국거래소의 상장예비심사를 통과하면서 5월 증시 입성을 앞두자 재무적 투자자들의 압력이 더 거세졌다. 투자자들은 내년 초까지 IPO를 하지 않으면 풋옵션을 행사하겠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교보생명은 IPO에 대해 여전히 말을 아끼고 있다. 오는 5월 IFRS17 기준서가 나온 이후 최적의 자본 확충 방안을 추진할 계획이라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신 회장이 교보생명 상장을 미루는 이유로 경영권 승계를 염두에 뒀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교보생명 최대주주는 지분 33.78%를 보유한 신 회장이다. 사촌 동생인 신인채 필링크 사장의 지분 2.5%를 포함한 특수관계인 지분을 합하면 39.45%다. 우호 세력으로 분류되는 수출입은행(5.85%), 우리사주조합(0.99%)까지 합해도 46.29%로 절반에 못 미친다. 어피너티 등 재무적 투자자들의 지분이 44%가 넘어 신 회장 측 지분과 비슷한 수준이다. 대형 보험사 관계자는 “주식이 상장되면 재무적 투자자들이 보유한 44%가 넘는 주식이 위협받을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신 회장은 올해 65세로 경영권 승계에 신경을 써야 할 시기가 됐지만, 후계 구도는 아직 베일에 쌓여 있다. 신 회장의 장남 중하 씨와 중현 씨는 현재 교보생명 지분이 단 한 주도 없다.
신 회장은 1996년 교보생명에 들어오기 전까지 서울대 병원 산부인과 교수였다. 외환위기 여파로 2000년 5월 대표이사 회장에 취임했을 당시 교보생명은 2540억 원의 적자와 2조4000억 원에 이르는 자산 손실을 내는 등 파산 직전이었다.

그러나 신 회장은 주변의 우려를 뒤엎고 보란 듯이 교보생명을 살려냈다. 취임 당시 3500억 원 수준이던 교보생명의 자기자본은 2016년 3분기 기준 7조7500억 원으로 20배 넘게 불어났다.

그러나 저금리 시대를 맞아 성장 동력의 한계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신 회장이 최근 몇 년 새 우리은행 인수전과 인터넷전문은행 설립을 타진하며 비보험업으로 눈을 돌렸던 이유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요모조모 재다가 막판에 발을 빼는 그의 행보는 구설수에 올랐다. 과도한 신중함으로 “돌다리도 두드려보고는 건너지 않는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다.

현재 업계 불황의 그림자는 교보생명에도 짙게 드리우고 있다. 교보생명은 지난해 3분기 누적 기준으로 순이익 5279억 원을 거뒀지만 전년 같은 기간 대비 7.7% 줄었다. 보험설계사 이탈도 가시화되고 있다. 기업 경영 성과 평가 사이트인 CEO스코어에 따르면 신계약비(계약 체결 비용) 제도가 강화된 2013년 4월 이후 생보사 21곳에서 약 3만 명의 설계사가 보험사 둥지를 떠난 가운데 가장 많은 설계사가 떠난 곳이 교보생명(4700명)으로 집계됐다.

신 회장은 과거 CEO 연찬회에서 강사로 올라 ‘지속 가능한 성장을 위한 변화 혁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비전은 오케스트라 악보와 같은 것입니다. 악보가 없다면 단원들이 지휘자만 쳐다보고, 연주는 뒤죽박죽이 될 겁니다. 황제 경영의 폐해도 그런 것입니다.”
신 회장은 최근 주주총회에서 3년 재선임이 확정됐다. 임기는 2020년까지다. 최근 안팎의 불협화음을 겪은 교보생명의 지휘자로서 새로운 악보를 제시해야 할 때다.

한경 머니 = 배현정 기자 gr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