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B 원조 한국씨티은행, ‘WM 올인’ 통할까
씨티은행, 대규모 영업점 폐점…극단적 WM강화
영업점채널 리셋 수준…노조 반발·업계 반신반의


[한경 머니 = 한용섭 기자]한국씨티은행은 1980년대 개인자산관리(PB) 사업을 국내에 도입한 PB 원조 은행이다. 최근에는 80% 정도의 영업점을 폐점하고, 대규모 자산관리(WM)센터를 개설하는 극단적인 WM사업 강화 전략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과연 PB 원조의 외통수는 시대를 앞선 묘수(妙手)가 될까? 아니면 돌이킬 수 없는 악수(惡手)로 남을까?

국내 은행들은 저금리의 장기화로 이자 수익에 기반을 둔 전통적인 예·적금 영업에 한계를 느끼고 있다. 최근 들어 은행들이 앞다퉈 부동산 자문 및 투자, 신탁 등 자산관리 분야를 강화하고 있는 것도 생존의 활로를 찾기 위한 발버둥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한국씨티은행이 지난 3월 27일 ‘차세대 소비자금융 전략’을 발표하며, 자산관리(WM) 분야에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수순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씨티은행의 행보는 은행권에 다소 파격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기존 133개 영업점 중 80% 정도에 해당하는 101개 영업점을 폐점키로 하고, 100명 이상 직원이 상주하는 대규모 WM센터를 잇따라 개설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평범치 않다.

국내 최대 규모를 자랑하는 한국씨티은행의 WM청담센터를 방문했다는 한 시중은행의 PB센터 관계자는 “마치 설국열차를 탄 기분이었다”고 소회를 털어놨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는 열차 칸마다 계급이 철저히 나눠져 있는데, 청담센터의 층을 오를 때마다 마치 신분이 상승되는 착각마저 들었다는 설명이다.

실제 WM청담센터는 지난해 12월 서울 강남구 중심가에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로 조성됐으며, 상주 직원 수만 70명이 넘는다. 1층에는 일반적인 금융 업무를 볼 수 있는 스마트 존을 마련했고, 2~3층은 씨티골드고객(수신고 2억~10억 원 미만 자산가군), 4~5층은 씨티프라이빗클라이언트(CPC 고객, 수신고 10억 원 이상 자산가군)의 전용 공간으로 사용되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은 반포와 청담에 개설한 이 같은 대규모 WM센터를 3곳(서울, 도곡, 분당)에 더 추가 개설하는 등 WM 부문을 강화해 2020년까지 자산관리 서비스에서 목표 고객 50% 증가, 투자 자산 규모와 수신고는 각각 2배와 30% 상승을 이루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당찬 목표에는 의문 부호도 따라붙는다. 대규모 점포 폐점과 WM센터 집중화 전략이 인력 구조조정을 위한 사전 정지작업이 아니냐는 의혹과 수도권 고액자산가 위주의 WM 사업 비대화에 대한 리스크 우려가 동시에 쏟아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리셋 씨티은행, 채널 실험 시작됐다

한국씨티은행의 차세대 소비자금융 전략은 기존 영업채널을 거의 ‘리셋(reset)’하는 수준이라 평가되고 있다.

실제 한국씨티은행의 영업점 운영 계획에 따르면 소비자금융 영업점 126개(출장소 4곳 포함) 중 101개를 폐점하게 되며, 남는 점포 25개는 서울 13개, 수도권 8개, 지방 4개(광주, 대전, 대구, 부산)로 재편된다. 또 이들 점포는 WM센터(5개), WM지역센터(2개), 여신영업센터(3개), 여신지역센터(1개), 서비스영업점(14개)으로 구분돼 점포별 특성이 분명해진다. 폐점 영업점의 인력은 고객가치센터와 고객집중센터에 흡수시킨다는 것이 한국씨티은행 측의 복안이다.

사실 한국씨티은행이 대대적인 영업채널 변환에 나선 것은 점차 모바일 등 비대면채널의 활용이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기존 대면 창구 영업의 한계점이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이번 소비자금융 전략이 일종의 영업채널 실험으로 비춰지며, 기존 영업점과 인력 재정비를 고민하는 여타 시중은행들의 관심을 끄는 이유다.

하지만 은행권에서는 상대적으로 고객 니즈가 높아지고 있는 자산관리 분야로의 인력 재배치에는 대체적으로 수긍하면서도 직원 100명이 상주하는 대규모 WM센터의 잇따른 개설이나 이 과정에서 인위적인 구조조정 계획이 없다는 한국씨티은행 측의 설명에는 갸우뚱하는 분위기다.

한국씨티은행의 WM 점포 전략은 일반 시중은행들과 다른 행보를 보여 주고 있다. 한국씨티은행의 경우 대규모 인력이 상주하는 WM센터가 주요 거점에 위치하며 인근 고객들을 흡수하는 허브(hub) 전략을 펴고 있는 데 반해 여타 시중은행들은 PB나 WM 서비스의 벽을 낮추고, 고객 근접성을 강화하고 있다.

신한은행은 일반 영업점 VIP 창구에서 통합자산관리 서비스를 해 주는 ‘PWM라운지’를 확대하고 있으며, KEB하나은행은 전 지점에 PB 서비스 전문 직원을 배치해 고객과의 접점을 늘려 나가고 있다.

또 KB국민은행도 금융자산 3000만 원 이상 보유한 고객을 대상으로 한 대중적인 자산관리 서비스 브랜드 ‘스타 테이블(Star Table)’을 강화하고 있으며, 외국계 은행인 SC제일은행 역시 지역 PB센터인 ‘PB클러스터센터’와 함께 각 지점마다 PB 서비스 전담 인력을 배치하는 등 고객 접근성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이와 관련해 한국씨티은행 측은 “대규모 점포의 경우 전문가 그룹을 배치해 서비스의 질을 높이고, 빠른 정보 공유와 상호 직원 간 코칭 등 PB의 전문성 개발에 더 유리한 측면이 있다”며 “WM 점포의 허브화로 고객 접근성이 약화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며, 모바일뱅킹 등 자산관리 분야에서의 디지털화에도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일부에서는 비대해진 WM센터의 업무 효율성 문제를 지적하기도 한다. WM청담센터 인근에 위치한 대형 증권사 WM센터의 한 임원은 “고액자산가를 상대하는 WM 영업의 특성상 아웃바운드 영업이 많은데 강남 요지에 건물 하나를 통째로 쓰는 대규모 WM센터가 과연 투자비용 대비 업무 효용성이 있을지는 의문”이라며 “나이가 지긋한 자산가 상당수는 모바일 등 비대면채널에 익숙지 않아 자산관리 분야에서 디지털 금융의 활용은 아직까지 제한적이다”라고 전했다.
PB 원조 한국씨티은행, ‘WM 올인’ 통할까
◆씨티은행의 변심인가, 역공인가

한국씨티은행의 이번 소비자금융 전략을 놓고 시장에서는 구조조정설이나 고액자산가 위주의 고객 차별론 등 우려와 잡음이 그치지 않고 있다.

이번 대규모 점포 통합과 관련해 가장 많이 제기되고 있는 우려가 바로 대규모 감원설이다. 100여 개의 점포가 폐점되면서 거기에서 쏟아져 나올 1000~1500명 상당의 인력이 과연 제자리를 찾아 갈 수 있겠냐는 것이다.

한국씨티은행은 지난 2014년 점포 56곳을 폐쇄하며 650명의 희망퇴직을 단행한 바 있으며, 당시 경영진과 노조는 3년간 추가 구조조정을 하지 않기로 합의했다. 노사 합의로 정한 기한은 오는 6월 말까지다. 은행 사측이 인위적 구조조정 계획이 없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시장에서 끊임없이 구조조정 가능성을 점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와 관련해 한국씨티은행 노조는 “사측에서 점포 폐점 후 해당 직원들을 서울로 발령 내 콜센터 업무를 하도록 하겠다는데 20~30년가량 영업점에서 근무한 직원들에게 하루아침에 콜센터 업무를 부여하겠다는 어처구니없는 계획”이라며 “이는 인원 구조조정의 사전 포석이다”라고 주장했다.

이 같은 인력 감축 논란에 대해 은행 사측은 “인위적인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고 거듭 밝히며 “지점 통합으로 인해 가용할 수 있는 인력은 자산관리센터, 여신영업센터, 고객가치센터, 고객집중센터를 강화하는 데 활용할 것이며, 급변하는 금융환경과 다양한 고객의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경험이 풍부하고 우수한 인력이 더 많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측에서는 이번 WM 사업 위주의 점포 통합을 영업환경의 변화에 따른 선제적인 대응이라는 입장이지만 노조에서는 은행의 기본적인 여수신 업무를 등한시한 변심으로 폄훼한다.

은행 사측은 “과거 경험을 통해 허브화가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을 확인했으며, WM반포센터나 청담센터의 경우 허브화 후 평균적으로 10% 정도 성과가 증대하는 WM 비즈니스의 성장으로 연계됐는데 이는 씨티은행과 고객이 윈윈(win-win) 하는 결과를 가지고 왔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노조에서는 “은행은 고객의 수신을 통해 여신을 공급해 이자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가장 기본 사업인데 이를 망각하고 WM만을 주된 사업으로 해 대리판매 수수료로 은행의 수익을 창출하겠다는 것은 은행의 본분을 망각하는 매우 위험한 도박”이라며 “편의점에서 로또 판매가 아무리 수익이 잘 난다고 해서 다른 물건을 안 팔고 로또만 전문적으로 판다면 그건 편의점이 아니라 복권방이 아니겠냐”고 성토했다.

노조는 수도권과 고액자산가 위주의 고객 차별화에도 토를 달았다. 노조는 “은행에서 최근 1000만 원 미만의 잔고를 지닌 고객들에게는 계좌 유지 수수료를 부과하고 5000만 원 미만 고객에 대해서는 기존 수수료 면제를 다시 부활하기로 했다”며 “결국 돈 없는 서민들은 지점에 찾아올 생각도 하지 말라는 고객 외면 정책으로 이는 은행의 공공성과 사회적 책임을 외면한 채 한국에서 그저 수익만 창출하겠다는 것이다”라고 비난했다.

사측은 노조의 주장에 다소 억울해 한다는 입장이다. 사측은 “급변하는 디지털 환경과 고객 니즈에 맞추기 위해 전통적인 지점 모델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라며 “이번 전략은 고객 거래 중 95% 이상이 비대면채널에서 일어나는 등 변화하는 고객 니즈에 맞추기 위한 것이 목표다”라고 강변했다.

전통의 영업점 채널 위주에서 벗어나 디지털뱅킹과 여신영업센터 등 새로운 영업채널을 적극 활용해 점포 통합으로 인한 고객 불편을 최소화하겠다는 것이다. 이미 디지털뱅킹 등 비대면 채널을 통한 펀드 매수 비중이 5%, 환매는 10% 이상 발생하고 있고, 고객과 담당 PB가 공간 및 시간적 제약 없이 효율적으로 상담이 가능하도록 화상 상담·채팅 기능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하지만 노조는 은행 사측에서 밝힌 영업점 부족분을 비대면채널로 커버하겠다는 전략에 허점이 있다고 지적한다. 점포 폐점을 하게 되면 지방 고객들은 당장 은행과의 거래를 끊어야 하는데 디지털뱅킹 등으로의 전환은 거래 단절로 인한 고객 불편을 덮으려는 비겁한 변명일 뿐이라는 주장이다. 이번 소비자금융 전략은 어떤 방향으로든 한국씨티은행의 실적에 상당한 변화를 불러올 공산이 크다.

한국씨티은행은 2016년 2121억 원(대손준비금 반영 2303억 원)의 당기순이익을 기록했다. 이는 전년 대비 6.0% 감소한 수치다. 성적표를 좀 더 살펴보면 수익 지표의 하락은 뚜렷해 보인다.

이자수익과 비이자수익은 전년 대비 각각 4.0%와 14.0% 감소해 1조681억 원과 550억 원을 기록했고, 채권 매매이익 등 기타 영업이익도 전년 대비 63.5% 감소한 184억 원에 그쳤다. 또 고객 자산은 개인신용대출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주택담보대출과 전세자금대출이 감소해 전년 대비 9.0% 감소했다.

거의 모든 지표가 감소를 보인 것은 아니다. 개인신용대출은 2.0% 증가하는 등 미세한 약진도 있었다. 한편 한국씨티은행은 올해 1146억 원을 배당하며, 은행권 최고의 배당 성향(49.75%)을 기록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