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카오뱅크, 메기일까 배스일까
[한경 머니=공인호 기자]인터넷전문은행 카카오뱅크의 인기몰이가 예사롭지 않다. ‘국민 메신저’ 카카오톡을 등에 업고 영업 13일 만에 200만 계좌를 돌파하며, 은행권의 ‘태풍의 핵’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올 초 금융권에서는 ‘기울어진 운동장’이 뜨거운 논쟁거리로 등장했었다. 이는 애초부터 공정한 경쟁이 어려운 상황을 빗댄 말로 은행권과 금융투자업계 간 불공정한 규제 환경을 비판하기 위해 활용됐었다.

최근 거대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이 이끄는 인터넷전문은행을 둘러싸고서도 인허가 과정에서의 특혜 의혹과 함께 불공정 경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금융권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다.

앞서 무(無)점포 전략에 기인한 가격 경쟁력과 모바일 기반의 편의성을 가진 1호 인터넷전문은행 케이뱅크가 돌풍을 일으킨 바 있는데, 카카오뱅크의 경우는 4000만 카카오톡 이용자로 인해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이라는 소리까지 듣고 있다.

지난 7월 말 기준 카카오톡의 활성이용자수(MAU)는 4200만 명으로 사실상 ‘국민 메신저’로 통한다. 카카오뱅크가 출범 닷새 만에 100만 계좌를 확보하고 영업 13일 만에 200만 계좌를 돌파하며 ‘태풍의 핵’으로 부상했다는 평가를 받지만 잠재 수요까지 감안하면 금융 판도의 격변을 점치는 관측까지 나온다.

실제 카카오뱅크가 닷새 만에 채운 100만 계좌는 한국씨티은행 전체 고객 수(400만)의 25%에 해당하는 수준이다. 지난 20년 가까이 소매금융의 절대강자로 군림해 온 KB국민은행의 경우 3000만 고객을 보유하고 있지만, 카카오뱅크로 유입될 수 있는 잠재 고객은 이를 훨씬 웃돈다.

카카오뱅크의 파급력은 우리은행이 지난 2015년 국내 처음으로 출시한 모바일 전문 은행인 ‘위비뱅크’와 비교하면 더욱 확연해진다. 우리은행은 지난 2년간 지속적인 마케팅과 캠페인 활동을 통해 2년 만에 200만 위비뱅크 고객을 끌어 모았다. 이는 금융권 최초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인 ‘위비톡’ 효과가 컸다.

서비스 개시 8개월간 200만 이용자를 확보한 위비톡 역시 지난해부터 간편송금은 물론 카카오톡에 비견되는 다양한 특화 서비스를 제공해 왔지만 ‘카톡’의 높은 벽에 가로막혀 외연 확장에 애를 먹고 있다. 금융권에서는 지난 수십 년간 착실히 쌓아 온 고객 기반이 송두리째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마저 감돈다.
카카오뱅크, 메기일까 배스일까
◆인기몰이 카카오뱅크, 자산건전성은 우려

물론 인터넷전문은행의 등장은 금융소비자로서는 반가운 일이다. 카카오뱅크 출범 이후 각 금융사들이 기존 서비스에 대한 가격 경쟁력을 강화하고 대대적인 개편 작업에 착수한 것도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에 따른 ‘메기 효과’로 해석할 수 있다.

하지만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이 긍정적 효과로만 이어질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볼 문제다. 벌써부터 과도한 ‘쏠림 현상’의 부작용이 노출되고 있다.

케이뱅크와 달리 카카오뱅크는 출범 직후부터 이용자 집중에 따른 서버 과부하 및 인력 부족에 따른 운영 미숙을 여과 없이 드러냈다. 이는 수요 예측 실패에 따른 해프닝 정도로 치부할 수 있지만, 더욱 심각한 문제는 혹여나 발생할 수 있는 관리 부실의 후폭풍이다.

시중은행의 까다로운 계좌개설 절차와 달리 인터넷전문은행은 스마트폰 명의만으로 계좌개설이 가능해 ‘대포통장’으로 악용될 가능성이 일찍부터 제기돼 왔다. 무엇보다 검증되지 않은 리스크 관리 능력은 자칫 시스템 리스크로까지 번질 수 있다.

카카오뱅크는 출범 일주일 만에 마이너스대출 한도를 조정했는데, 몰려드는 대출 수요 탓에 예대율(예금잔액 대비 대출잔액 비율)이 급격히 상승한 데 따른 고육지책이었다.

카카오뱅크가 핵심 상품으로 내건 마이너스통장의 대출승인 잔액은 지난 8월 3일 기준 1조 원을 웃돌며 수신 잔액의 2배를 훌쩍 넘어선 것으로 추산된다. 출범과 동시에 자산건전성에 빨간불이 켜진 셈이다.

시중은행 모바일뱅킹 플랫폼의 경우 적정 수준의 점유율 확대를 통해 별도의 운용 노하우를 익혀 온 데 반해 카카오뱅크는 이런 과정이 생략됐다.

여기에 1400조 원에 육박하는 국내 가계부채와 정부의 고강도 8·2 부동산 대책 등 갈수록 심화되는 대내외 불확실성도 인터넷전문은행의 중장기 전망을 어둡게 한다.

물론 일각에서는 글로벌 핀테크(FinTech)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미국과 일본, 중국 등에 비해 한참 뒤처진 경쟁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은산분리 규제 완화 등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하지만 세계 각국의 주요 인터넷전문은행들이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후에 풀린 대규모 유동성을 기반으로 성장해 왔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인터넷전문은행이 태동한 미국에서조차 2000년대 전후에 설립된 인터넷전문은행은 금융위기를 전후로 상당수가 문을 닫았다.

특히 산업자본이 대주주인 인터넷전문은행의 특성상 모기업의 업황 영향에서 완전히 자유롭기 힘들며, 다양한 업종으로 구성된 주주들 역시 언제든 이해상충의 소지가 발생할 수 있는 분명한 한계를 갖고 있다.

최근 주요 20개국(G20) 금융안정위원회(FSB)가 해킹, 사이버 위험 등 핀테크 시장의 급성장에 따른 부작용에 대해 세계 각국의 철저한 모니터링을 강조한 점도 유념할 필요가 있다.

상황이 이런데도 우리 금융당국은 케이뱅크, 카카오뱅크에 이은 제3의 인터넷전문은행 출범을 예고하고 있다. 아직 해소되지 않은 은산분리 문제를 이유로 한발 물러서긴 했지만 이르면 내년께 제3의 사업자 인가 절차에 착수할 태세다.

지난 7월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취임 일성으로 ‘빚 권하는 폐습’을 바로잡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고강도 부동산 대책을 발표한 정부와 함께 가계부채 문제 해결에도 적극적인 행보를 보이고 있다.

시중은행의 팔을 비틀면서까지 가계의 돈줄을 바짝 조이면서도 다른 한쪽에서는 간편하고 쉬운 대출이 가능한 인터넷전문은행을 더 만들겠다는 당국의 행보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지 곤혹스럽다.

금융업 특히 은행업에 있어서 리스크 관리는 그 어떤 이유로도 훼손돼서는 안 된다는 점을 우리는 과거 외환위기 사태와 글로벌 금융위기, 저축은행 사태 등의 뼈아픈 경험을 통해 배워 왔다.

그동안 카카오뱅크에 대해 호평 일색이던 금융투자업계에서도 인터넷전문은행의 리스크 관리 능력과 중장기 성장성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인터넷전문은행이 금융소비자의 후생에 긍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지만 케이·카카오뱅크가 지속 성장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출범 초기 흥행몰이에만 매몰돼서는 안 된다. ‘몰라서 더 값싼 대출을 안 내놨겠나’라는 금융권의 경고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은행, 카드, 보험 등 기존 플레이어들 역시 인터넷전문은행과의 출혈 경쟁보다 인적·물적 자본을 활용한 서비스 차별화와 금융영토 확장의 가속페달을 더욱 깊이 밟아야 한다.

인터넷전문은행이 생태계 교란을 가져올 ‘배스’가 아닌 진정한 메기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금융의 백년대계를 염두에 둔 깊은 성찰과 고민이 선행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공인호 기자 / 일러스트 하라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