락시미 미탈 회장(아르셀로미탈)(왼쪽), 쿠마르 망갈람 비를라 회장(아디트야 비를라 그룹).
락시미 미탈 회장(아르셀로미탈)(왼쪽), 쿠마르 망갈람 비를라 회장(아디트야 비를라 그룹).
락시미 미탈 회장(아르셀로미탈)(왼쪽), 쿠마르 망갈람 비를라 회장(아디트야 비를라 그룹).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인도의 유대인으로 불리는 사람들이 있다. 바로 마르와리 출신의 부자들이다.

인도 20대 대기업 중 9개가 바로 마르와리 출신들이 소유한 기업이다. 7%가 넘는 인도의 눈부신 경제 성장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르와리 출신들의 행보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인도 서북부 라자스탄주를 가면 중동이나 아프리카처럼 사막을 볼 수 있다. 파키스탄과 접하고 있는 라자스탄주의 면적은 34만2239㎢로 인도 전체 29개 주에서 가장 넓다. 인구는 4400만 명이나 된다.

라자스탄주의 타르사막은 여름엔 영상 50도에 달하고 겨울에는 0도 이하로 떨어지는 등 사람이 살기에는 혹독한 곳이다. 이런 척박한 땅에서 세계 최고의 부자들이 속속 배출되고 있다. 이들을 마르와리(Marwari) 출신이라고 부른다.

이들은 엄혹한 환경 속에서 살아남기 위해 장사, 사업, 무역에 대한 노하우를 일찍부터 터득해 인도는 물론 전 세계를 주름잡고 있다. 13억의 인구 중 0.6%(800만 명)에 불과한 마르와리 출신들은 인도의 20대 대기업 중 9개나 소유하고 있을 정도로 뛰어난 비즈니스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인도의 유대인’으로 불리는 마르와리 출신들 가운데 가장 대표적인 부자로는 철강왕 락시미 미탈을 들 수 있다. 미탈은 맨손으로 세계 최대 철강 회사인 아르셀로미탈 스틸을 일군 세계적인 기업인이다.

인도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타지마할이다. 인도 무굴제국의 제5대 황제 샤자한이 1648년 세운 부인 뭄타즈 마할의 무덤 이름이다. 영국 런던에도 타지마할이 있다. 미탈이 살고 있는 세계에서 가장 비싼 켄싱턴 저택의 이름이다. 미탈은 자신의 집을 타지마할과 자기 이름을 합성해 ‘타지미탈(Taj Mittal)’이라 지었다. 미탈은 2004년 왕궁을 뺀 개인 주택으로는 역사상 최고가의 이 집을 7000만 파운드(당시 기준 1460억 원)에 구입했다.

저택의 크기는 영국 평균 주택의 55배이며, 침실은 12개, 방은 18개에 달한다. 바닥과 기둥은 대리석으로 돼 있고, 터키식 목욕탕과 연회실, 지하에 보석 장식이 된 수영장이 있다. 어릴 적에 콘크리트 바닥에서 어렵게 생활했던 미탈의 과거와 현재는 마치 ‘천지개벽’과 같다. 인도 사람들에게 미탈은 신화 속 영웅이나 마찬가지다.

◆‘인도의 유대인’, 마르와리 출신 부자들

미탈은 1950년 라자스탄주 사둘푸르에서 태어났다. 이곳은 1960년대까지 전기가 들어오지 않았다. 그의 할아버지는 공장 근로자였다. 그는 5만 톤 규모의 조그만 전기로 업체를 운영했던 아버지 밑에서 일을 배웠다.

1976년 인도네시아에 부친이 사놓은 땅을 팔러 갔다가 연 6만 톤짜리 철강 업체를 세운 그는 이때부터 자신의 노력과 재능으로 세계 최대의 철강왕국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당시 경영 노하우를 익힌 그는 1989년 4월 트리니다드 토바고의 국영 제철 회사인 이스콧을 인수했다. 가동률이 30%에 불과하고 하루 100만 달러씩 적자를 내던 이 회사는 1년 만에 흑자로 돌아섰다.

그의 노하우는 기업을 인수한 후 인력 감축과 생산효율화 등 구조조정을 통해 경영을 정상화한다는 것이다. 특히 부실기업 인수는 값이 싸다는 것이 장점이다. 미탈은 1995년 카자흐스탄의 한 부실 철강 회사를 사들였다.

당시 사람들은 미탈의 카자흐스탄 기업 인수가 실패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카자흐스탄의 철강 수요가 많지 않은 데다 국영기업 체질을 벗지 못한 노동자들은 품질이나 효율성 향상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미탈은 이런 예상을 깨고 이 회사를 완전 정상화시켰다. 카자흐스탄 자체의 철강 수요는 많지 않았지만, 이 회사는 중국과 가깝게 있다는 지리적 이점이 있었다. 이 회사의 구조조정이 끝났을 때, 중국의 경제개발이 가속화하면서 철강 수요가 급증했다.

이 회사는 1년 만에 9000만 달러의 순이익을 기록했는데 이는 당시 카자흐스탄 전체 국내총생산(GDP)의 9%에 해당하는 규모였다. 이후 그의 발길은 전 세계로 거침없이 뻗어나갔다. ‘2년 내 흑자 전환이 불가능한 회사는 손대지 않는다’는 경영 방침에 따라 부실한 철강 업체를 인수, 아웃소싱 등 구조조정을 통해 알짜 기업으로 변모시켰다.

그는 한번 인수 타깃을 정하면 어떤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목표를 달성해야 직성이 풀리는 성격의 소유자다. 그의 성공에는 파르타(partha)로 불리는 고대 인도의 재무관리 방식도 한 몫 했다.

그는 파르타 방식에 따라 매일 저녁 일과 후 관리자들과 함께 미리 정해진 원가 및 매출 목표를 달성했는지 여부를 점검하는 회의를 갖고 효율성 극대화를 추구했다. 또 모든 구매 주문을 유럽 본사가 취합해 한꺼번에 대량 주문을 내서 원재료 구입비용을 낮췄다.

아르셀로미탈 스틸은 글로벌 철강 수요 침체 영향으로 매출이 2011년 940억 달러에서 지난해 568억 달러로 39.6% 축소되는 등 부진하지만 세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

인도의 대표 기업들 중 하나인 아디트야 비를라 그룹의 쿠마르 망갈람 비를라 회장도 마르와리 출신이다. 아디트야 비를라 그룹은 몇 세대에 걸쳐 상속돼 온 재벌기업으로, 현재 인도 재계 순위 4위다.

비를라 회장은 대기업을 28세 때 물려받아 그룹을 크게 키우는 등 능력을 발휘해 왔다. 비를라 회장은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추진하는 ‘메이크 인 인디아(Make in India: 제조업 육성)’ 정책을 적극 지지해 왔다. 비를라 회장은 “제조업은 인도에 있어서 차세대 큰 물결(big wave)이 돼야 한다”면서 “인도는 재능과 인적자원, 대규모 내수시장 등 모든 조건을 갖췄다”고 강조했다.

아디트야 비를라 그룹은 1857년 인도 뭄바이에 세워져 160년의 역사를 가진 대기업 집단이다. 알루미늄 사업부터 통신과 유통, 보험, 금융에 걸친 폭넓은 사업 포트폴리오를 갖추고 있다. ‘아디트야’는 힌두어로 태양이라는 뜻이다.

비를라 회장은 창업 4세다. 비를라 회장은 1995년 28세의 나이에 부친인 비크람 비를라가 갑자기 사망하면서 경영권을 승계했다. 뭄바이대에서 무역을 공부하고 런던 비즈니스스쿨에서 경영학 석사(MBA) 학위를 받은 비를라 회장은 당시 공인회계사로 활동하고 있었다. 당시 아디트야 비를라의 연간 전체 매출은 20억 달러였다.

비를라 회장은 폭넓은 사업 구조조정을 시작했다. 핵심 사업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 비핵심 분야의 사업은 통폐합했다. 그는 그룹의 내실을 다지며 새롭게 도약할 기회를 찾고 있었다.

그러다 2007년 캐나다의 알루미늄 압연 회사 노벨리스를 60억 달러에 인수하면서 아디트야 비를라는 세계 최대 알루미늄 압연 업체로 도약하게 됐다. 노벨리스는 알루미늄 압연 시장에서 시장점유율 14%를 차지하고 있다. 전 세계 직원은 1만2000명이며 2016 회계연도에 매출 100억 달러를 기록했다.

비를라 회장은 2011년에는 세계 3대 카본블랙 제조업체인 콜롬비아케미컬을 8억7000만 달러에 인수했다. 고무와 인쇄용 잉크의 주요 재료로 이용되는 카본블랙 분야에서도 아디트야 비를라가 세계 최대 생산 업체로 올라섰다.

비를라 회장은 급성장하고 있는 인도 통신 시장에 발맞춰 이동통신사인 아이디어 셀룰러를 설립하고 대대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최근 아이디어 셀룰러와 영국의 유명한 이동통신사인 보다폰의 인도 법인과 합병도 성사시켰다.

내년까지 합병 작업이 마무리되면 보다폰-아이디어 셀룰러는 인도 최대 이동통신 사업자 바르티 에어텔을 제치고 최대 사업자가 된다. 합병 회사는 가입 회원 3억9500만 명, 기업가치는 232억 달러(25조9863억 원)로 평가된다.

오토릭샤(택시와 비슷한 운송수단으로 인도에서 가장 보편적으로 이용되는 삼륜차)로 유명한 바자즈 그룹도 마르와리 출신인 잠날랄 바자즈가 1889년 창업했다. 바자즈 그룹은 40개의 계열사에 걸쳐 3만3000명을 고용하고 있으며, 설립 이후 이륜차, 삼륜차, 보험, 철강 등 다양한 산업에 걸쳐 인도 경제를 이끌어 가고 있다.

바자즈 그룹은 현재 라훌 바자즈 회장이 경영하고 있다. 철강·전력 복합 기업인 진달 그룹도 마르와리 출신인 옴 프라카슈 진달이 만들었다. 진달이 2005년 헬기 추락 사고로 사망하자 부인 사비트리 진달이 그룹 회장을 맡아 왔다.

아홉 자녀 가운데 네 아들은 진달 그룹의 각 부문을 경영하고 있다. 진달 가문은 1984년 하리아나주 히사르에 여자 기숙학교 비디야 데비 진달 스쿨을 세웠다. 진달 스쿨은 부유한 인도 정·재계 인사들의 딸이 다니는 곳으로 유명하다.

최근 인도 부자 순위 10위에 오른 데시 반두 굽타도 마르와리 출신이다. 굽타는 현재 세계 7위, 인도 3위의 글로벌 복제약 생산 업체인 루핀의 창업주이자 최고경영자(CEO)다. 굽타 회장은 30세 때인 1968년 루핀을 설립해 세계 굴지의 복제약 제조업체로 만들었다.

그는 부인에게 5000루피(8만5000원)를 받아 복제약 제조 사업을 시작했다. 초창기에는 결핵 치료약 위주였다. 루핀은 세계 최대 결핵 치료약 제조 회사로 성장했고, 현재 복제약 제조 부문은 미국과 일본 시장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기업으로 주목받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에 따르면 올해 인도 경제성장률은 7.2%, 중국 경제성장률은 6.5%로 예상된다. 세계은행(WB)은 인도 경제성장률이 올해 7.6%, 2018년 7.8%, 2019년 7.8%가 될 것으로 전망한다.

인도 기업들의 올해 이익은 전년 대비 9.5%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2018년에는 21%, 2019년에는 15% 증가할 것으로 관측된다.

인도의 눈부신 경제 성장의 상당 부분은 마르와리 출신 사업가들의 맹활약 덕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앞으로 마르와리 출신 사업가들의 행보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