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중, 신성장 위해 ‘빙상 실크로드’ 추진
[머니 기고=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러시아가 북극 개발에 ‘올인’을 하고 있다. 천연가스 등 에너지 생산을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마련하겠다는 것이다. 중국도 북동 항로를 ‘빙상 실크로드’로 만들겠다는 구상인데 양국 간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면서 북극 개발이 속도를 내고 있다.

러시아 시베리아의 야말로네네츠 자치구 북서부에는 야말반도라는 지역이 있다. 면적 12만2000㎢, 길이 750㎞, 너비 140∼210㎞인 야말반도 대부분은 동토지대로 사람이 거의 살지 않는다.

야말반도의 이름은 현지어인 네네츠어로 ‘땅 끝’이라는 뜻이다. 여름 3개월간을 제외한 260여 일이 눈과 얼음으로 덮여 있다. 겨울은 영하 30~40도로 내려가고 여름에도 0도를 간신히 넘을 정도다. 야말반도에서 최근 세계 최대 규모의 천연가스 개발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천연가스 매장량은 1조2500억㎥로 러시아 전체의 80%, 전 세계의 17%에 달한다. 러시아는 2013년부터 총 270억 달러 규모의 ‘야말 프로젝트’를 야심 차게 추진해 왔다. 야말 프로젝트는 야말반도의 천연가스전에서 가스를 추출해 액화천연가스(LNG)로 만들어 쇄빙 LNG 운반선을 이용해 수출하는 사업을 말한다.

러시아는 야말반도에서 채굴한 가스를 아시아와 서유럽으로 운송할 계획이다. 러시아 최대 민영 가스 기업인 노바텍(지분 50.1%), 프랑스 토탈(20%), 중국 국영기업인 중국석유천연가스공사(CNPC, 20%), 중국 국영 투자 기금인 ‘실크로드 펀드’가 9.9%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러, 북극 개발로 LNG 최대 수출국 노려

야말 프로젝트는 2014년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크림반도 강제병합으로 미국 등 서방이 러시아에 경제 제재 조치를 취하면서 자금 확보에 차질을 빚어 왔다. 노바텍이 미국의 제재 대상으로 지정되면서 미국 내 자산 동결 및 거래 금지 조치로 돈줄이 막혔기 때문이다.

그러자 중국 국영은행인 중국수출입은행과 중국개발은행이 야말 프로젝트에 120억 달러를 대출하기로 결정했다. 중국이 대규모 자금을 과감하게 투자한 것은 북극 지역의 얼음이 지구온난화로 빠르게 녹고 있기 때문이다. 또 다른 이유는 LNG를 안정적으로 수입하려는 의도 때문이다.

야말 프로젝트가 성공하면 연간 생산되는 LNG 규모는 1650만 톤이나 된다. 이 가운데 54%는 아시아 시장에 판매될 예정이다. 중국은 이 중에서 연간 400만 톤을 도입할 예정이다. 에너지 수입대국인 중국이 2016년 총 수입한 LNG가 1612만 톤이다. 중국이 야말 프로젝트에 적극 참여함으로써 확보한 LNG는 전체 수요의 4분의 1에 해당한다. 중국이 앞으로 러시아와 밀월관계를 유지하는 한 LNG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는 수준이다.

특히 중국이 야말반도의 LNG를 들여오는 해상 루트는 북극해를 통과하는 북동 항로다. 이 루트는 야말반도에서 러시아 연안의 해역을 따라 베링해협을 통과해 동해를 거쳐 다롄항으로 운송되는 항로다. 이 항로를 이용하면 LNG를 도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이 16일밖에 되지 않는다. 중동 지역의 LNG를 인도양을 거쳐 말라카 해협을 통과하고 남중국해를 지나 광둥성까지 운송하는 것보다 시간과 거리도 짧고 해상 안전도 확보할 수 있다.

노바텍은 지난해 12월 8일 야말반도에 건설한 LNG 공장의 첫 가동식을 갖고 본격적인 생산에 들어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직접 가동식에 참석해 축사를 통해 “야말 LNG 공장 가동은 가스 채굴 및 액화 분야뿐 아니라 북극 개발과 북동 항로 개척이란 대규모 프로젝트에도 중요한 사건이다”라고 강조했다.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야말 LNG 공장에서 생산된 가스를 첫 쇄빙 LNG 운반선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Christophe de Margerie)’호에 선적하는 가동 단추를 눌렀다. 이 쇄빙 LNG 운반선은 우리나라의 대우조선해양이 건조한 선박이다.

이 운반선의 이름은 2014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토탈의 크리스토프 드 마르주리 전 회장을 기리기 위해 붙여진 것이다. 마르주리 회장은 노바텍과 함께 야말 프로젝트의 기반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이 운반선은 길이 299m, 폭 50m로 최대 2.1m 두께의 얼음을 깨며 나아갈 수 있다. 우리나라 전체가 이틀간 사용할 수 있는 양인 17만3600㎥의 LNG를 운송할 수 있다. 대우조선해양은 야말 프로젝트에서 생산되는 LNG를 수송할 수 있는 선박 15척(총 48억 달러 규모)을 모두 수주했다. 대우조선해양은 나머지 14척의 쇄빙 LNG 운반선을 옥포조선소에서 건조하고 있는데, 2020년 상반기까지 모두 러시아에 인도할 계획이다.

노바텍이 앞으로 야말반도에서 생산할 LNG 규모는 2016년 2월부터 본격적으로 수출을 시작한 미국산 LNG의 연간 수출량의 4.7배에 해당한다.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을 통해 2020년대 말 세계 최대 LNG 수출국 자리를 차지하려는 의도를 보여 왔다. 하지만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1위인 러시아가 야말반도의 LNG를 본격적으로 생산하면서 미국의 야심이 실현될지는 미지수다.

러시아는 현재 2022년 생산을 목표로 북극-2 LNG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 사업이 성공할 경우 연간 최대 수출량은 7000만 톤에 달할 것으로 전망되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앞으로 LNG 최대 수출국이 되기 위해 북극 지역을 대대적으로 개발할 계획이다.
러·중, 신성장 위해 ‘빙상 실크로드’ 추진
◆북극, 국제법 사각지대…자원·항로 개척 치열

전 세계적으로 LNG 수요는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에너지 조사 회사인 블룸버그뉴에너지파이낸스(BNEF)에 따르면 2030년 세계 LNG 수요는 2016년보다 86% 증가한 4억7900만 톤에 이를 것으로 보인다. 특히 중국은 심각한 대기오염 문제를 타개하기 위해 석탄 화력발전소를 대폭 줄이고 가스 화력발전소를 대대적으로 건설하고 있다. 러시아의 LNG 생산과 수출 확대 전략은 이처럼 중국 등 아시아를 중심으로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천연가스 수요를 노린 것이다.

러시아가 야말 프로젝트처럼 북극 개발에 ‘올인’하는 이유는 가장 중요한 자원인 석유의 매장량이 점점 줄어들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만약 러시아가 새로운 유전을 개발하지 못할 경우, 오는 2035년에는 하루 원유 생산량이 100만 배럴가량 감소할 것으로 추정했다. 러시아는 전체 수출액의 60%를 석유에 의존하고 있다. 이런 점을 감안할 때 러시아로선 북극 지역의 석유를 비롯해 천연가스 등 에너지 자원을 반드시 확보해야만 한다.

북극 지역 내 러시아 영토의 원유와 천연가스 매장량은 20조 달러(2경3000조 원)로 추정되며 2050년이면 전 세계 원유의 20~30%가 북극 지역에서 나올 전망이다. 특히 북극해의 해저에는 엄청난 천연자원이 매장돼 있다. 석유는 전 세계 매장량의 13%(900억 배럴), 천연가스는 전 세계 매장량의 30%(47조㎥)가 북극에 묻혀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둘째 이유는 영유권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북극은 남극과는 달리 국제법 규정이 확립돼 있지 않아 ‘미확정의 대륙’으로 남아 있다. 남극은 1961년 발효된 남극조약에 따라 각국의 영유권 주장이 동결됐으며 평화적 이용을 위한 학술적 연구만 허용되고 있다. 반면 북극과 관련된 국제규약은 없다. 유엔해양법 협약이 있지만 각국은 배타적경제수역(EEZ)과 대륙붕 경계 획정 등을 놓고 자국에 유리한 입장만을 주장하고 있다.

북극은 어느 국가의 영토도 아닌 남극과는 달리 개별 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영역과 공해 및 공동수역 등이 얽혀 있는 지역이기 때문에 분쟁이 발생할 경우 해결하기가 어렵다. 러시아 정부는 유엔 대륙붕한계위원회(CLCS)에 로모노소프 해령이 자국의 동시베리아 추코트카반도 대륙붕에 연결됐다면서 120만㎢나 되는 면적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하는 내용의 신청서를 접수시켰다.

해령은 해저 산맥을 말하는데, 로모노소프 해령은 북극해를 횡단하는 길이 1800㎞, 너비 60~200㎞의 해저 산맥이다. 캐나다와 덴마크 정부도 자국의 대륙붕이 로모노소프 해령과 연결됐다는 입장이다.

국제해양법 협약에 따르면 육지 영토로부터 12해리(22.2㎞)까지의 바다는 해당국의 독점적 주권이 미치는 영해이고, 200해리(370km)까지는 자원의 독점적 권리를 주장할 수 있는 EEZ다. 그런데 국제해양법 협약에는 ‘육지가 바닷속 대륙붕까지 연장되면 200해리 이상에서도 권한을 확보할 수 있다’는 예외 조항이 있다. 남중국해와 마찬가지로 영유권 분쟁이 어떻게 결정되느냐에 따라 각국이 국제법적으로 자국 영토에 대한 권리를 행사할 수 있다.

셋째 이유는 북극해가 새로운 항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북극해에선 지구온난화의 영향으로 10년마다 빙하가 거의 10%씩 사라지고 있다. 북극해의 해빙으로 선박들이 현재는 7월부터 10월까지 4개월간 운항할 수 있지만 2030년이 되면 연중 항해가 가능해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북극해가 앞으로 중요한 교통요충지가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나라 부산에서 베링해를 거쳐 러시아 북부 연안을 따라 북극해를 지나가는 북동 항로를 이용해 네덜란드 로테르담까지 운항할 경우 수에즈 운하를 이용하는 기존 항로에 비해 거리는 32%, 운송 기간은 10일을 단축할 수 있다.

오는 3월 18일 실시되는 대선에서 승리해 4선에 성공할 경우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북극 개발에 총력을 기울일 것으로 보인다. 1999년 12월 31일 대통령 권한대행이 된 이후 올해로 18년째 러시아를 통치한 그는 이번 대선에서 승리하면 정권을 6년 연장하게 된다. 그는 구소련의 영광을 부활시키기 위해 ‘강한 러시아’를 만들겠다고 강조해 왔다. 자신의 야심을 실현시키려면 새로운 발전 동력이 필요한데, 에너지 자원이 풍부한 북극 지역을 개발하는 것이 안성맞춤이라고 말할 수 있다.

이런 가운데 중국 정부가 북극의 자원 개발과 항로 개척에 적극적으로 나서겠다는 방침을 공식화했다. 중국 정부는 지난 1월 26일 북극 개발의 기본 정책 방향을 담은 <북극백서>를 최초로 발간하고 항로, 자원, 기후변화, 과학 연구 등의 분야에 전면적으로 참가할 것이라고 밝혔다.

쿵쉬안유 중국 외교부 부부장은 “중국은 북극 문제의 이해당사자”라면서 “앞으로 중국은 북극 개발에 적극 나설 것이다”라고 강조했다. 중국 정부의 최대 관심사는 북극해를 관통하는 항로를 개척하는 것이다.

백서는 “지구온난화로 북극해 항로는 국제무역의 중요 수송 루트로서 유망하다”면서 “관련 인프라 건설과 항해 시험 정기화를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중국 정부의 구상은 북동 항로를 빙상 실크로드로 만들겠다는 것이다. 일대일로(一帶一路: 육상과 해상 실크로드) 프로젝트처럼 북극해를 거쳐 유럽으로 가는 빙상 실크로드를 구축한다는 것이다. 중국은 해외 무역 화물의 90%를 해상 루트에 의존하고 있는데, 북동 항로가 열리면 수송 기간을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으로 보고 있다.

중국 정부가 이 계획을 추진하려면 러시아의 협력이 필수적이다. 러시아 정부는 북극해 연안 지역의 개발을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한 만큼 빙상 실크로드 프로젝트를 추진하겠다는 중국 정부와 적절한 수준에서 협력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중국 정부는 이와 함께 북극 지역의 에너지 개발에도 눈독을 들이고 있다. 중국 정부는 야말 프로젝트처럼 러시아와 컨소시엄 방식으로 북극 지역 개발에 적극적으로 투자할 계획이다. 이처럼 밀월관계를 맺고 있는 러시아와 중국이 북극 개발에 손잡을 경우 앞으로 국제질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