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nce 제 155호 (2018년 04월)

스페인, 자동차 메카로 부상…반전 성장 비결은 ‘노동 개혁’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유로화 경제권의 무덤으로 불리던 스페인이 살아나고 있다. 노동 개혁을 통해 독일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 생산기지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최근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결정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국에서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을 비결은 없을까.

하몽은 돼지 뒷다리를 소금에 절여 숙성한 햄으로 스페인의 전통 음식이다. 특히 이베리코 하몽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국경지대에 있는 이베리아의 산간지방에서 도토리만 먹고 자란 흑돼지로 만든 것으로 세계 4대 진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최근 들어 하몽 가격이 상승하고 있고, 일반 하몽보다 훨씬 비싼 이베리코 하몽의 수요도 날로 늘어나고 있다. 스페인 농무부에 따르면 지난해 이베리코 하몽 kg당 평균 가격은 30.81유로로, 2013년 19.52유로에 비해 2배 가까이 올랐다. 순종 이베리아 새끼 돼지 한 마리 값도 115유로나 된다.

하몽의 가격은 경제 상황에 따라 민감하게 변한다. 불황에는 가격이 떨어지고 호황에는 올라간다. 이 때문에 하몽은 스페인 경제의 바로미터라는 말을 들어왔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와 2011년 유럽 재정위기 등으로 스페인 경제가 침체 상황에 빠지면서 국민들은 소득이 줄어들자 하몽의 소비를 줄였다.

이 때문에 스페인의 돼지 농가도 몸살을 앓았다. 2008년 스페인 전역에서 도축된 돼지는 90만 마리였으나 2013년 36만6000마리로 급감했으며, 하몽 가격도 대폭 하락했다. 스페인 경제가 2014년부터 회복 조짐을 보이면서 서서히 성장하자 하몽 가격도 오르기 시작했다.

◆절망을 딛고 경제 희망을 보다

유로화 경제권의 무덤이자 절망의 상징이라고 불려온 스페인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 국제사회는 포르투갈, 아일랜드, 그리스, 스페인 등 재정위기로 구제금융을 받은 유럽 4개국의 국가 이름의 알파벳 앞 글자를 따 ‘PIGS’라는 별명으로 불렀다.

스페인은 2012년 유로화를 사용하는 국가들 중 네 번째로 구제금융을 신청했다. 당시 스페인은 저축은행 부실로 심각한 재정위기에 직면했었다. 유럽연합(EU)으로부터 1000억 유로 규모의 구제금융을 받은 스페인 정부는 이후 고강도의 긴축정책 등 강력한 경제개혁 조치를 추진했다. 중도 우파인 국민당과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이끌었던 스페인 정부는 2013년 말 구제금융 관리체제를 졸업했다. 하지만 국민당은 국민들에게 고통을 준 긴축정책 때문에 2015년 12월 총선에서 겨우 승리했지만 의회의 과반 의석 확보에 실패하면서 정부를 구성하지 못했다. 국민당은 2016년 6월 실시한 재선거에서도 다수당 지위를 유지하기는 했지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라호이 총리는 오랜 기간 무정부 상태에 부담을 느낀 제1야당 사회노동당의 반대 철회로 다시 총리직을 차지하게 됐다.

우여곡절 끝에 정권을 재창출한 라호이 총리는 스페인 역사상 집권당 의석수가 가장 적은 소수정부를 꾸려 가고 있지만 경제 개혁 정책에 박차를 가해 왔다. 그 덕분에 스페인은 현재 유로존에서 경제성장률이 가장 높은 국가 가운데 하나로 꼽히게 됐다.

스페인의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3.1%를 기록했다. 2013년 26%까지 치솟았던 실업률도 지난해 말 기준 16.7%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국제신용평가사인 피치는 지난 1월 스페인의 정정 불안을 고조시킨 카탈루냐 자치정부의 분리 독립 시도에도 불구하고 스페인의 국가신용등급을 BBB+에서 A-로 한 단계 올렸다. 피치는 스페인 정부의 재정적자 감축 노력 등을 신용등급 상향 조정에 대한 이유로 들었다.

스페인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재정적자 비율은 지난해 3.1%에서 올해 2%로 떨어질 것으로 보인다. 피치는 또 스페인 정부의 일자리 창출 노력도 높이 평가했다. 라호이 총리는 최근 “올해 GDP 성장률은 최소 2.5%를 넘을 것이며 일자리는 40만 개 이상이 창출될 것이다”라고 밝혔다. 루이스 데 권도스 재무장관도 “올해 GDP 성장률이 3%를 기록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스페인 경제가 이처럼 잘나가는 비결은 노동 개혁 때문이다. 라호이 총리는 노동시장 유연화 정책을 강력하게 밀어붙였다. 그는 전년 대비 3분기 연속 매출이 감소할 경우 해고를 가능하게 하고, 산별 교섭권을 제한해 임금과 근로시간 등을 경제나 회사 경영 여건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노동법 개정안을 마련해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개정된 노동법의 핵심은 해고 요건의 완화였다. 또 근로자 50인 이하 사업장을 대상으로 직원 채용 후 1년간 해고 규제를 적용받지 않는 무기근로계약인 ‘적극적 계약’이라는 새로운 근로계약 유형을 도입했다. 기간제 근로자의 계약 기간 2년 상한제도 포함시켰다. 계약 기간 상한제는 실업률 상승에 기여한다는 이유로 2011년 중단됐었다. 이에 따라 경영상 어려움에 처한 기업들은 해고를 쉽게 하면서 경영 부담을 덜게 됐고, 임금과 근로시간을 보다 자유롭게 변경할 수 있게 됐다. 물론 스페인 노조도 고통 분담에 동참하는 차원에서 임금 삭감과 근로시간 연장에 동의했다.

스페인은 이러한 노동 개혁 덕분에 독일에 이어 유럽에서 두 번째로 큰 자동차 생산기지로 부상했다. 스페인은 자국 자동차 브랜드가 없음에도 글로벌 자동차업계의 투자를 끌어들이며 세계 8대 자동차 생산국에 올랐다. 스페인에서 자동차산업은 GDP의 10%와 수출액의 19%를 차지하고 있다. 30만 명이 자동차산업에 종사하고 있으며, 간접 일자리도 200만 개에 달한다. 자동차 생산량도 크게 늘어났다. 스페인 자동차제조협회(ANFAC)는 지난해 자국 자동차 생산량이 289만 대로 전년보다 5.6% 증가했다고 발표했다.

ANFAC는 지난해 생산량이 2008년 세계 금융위기 이전 수준을 회복했다면서 지난해 생산 차량의 84%인 243만 대가 수출돼 금융위기 전해인 2007년보다 수출량이 많았다고 밝혔다. 파이낸셜타임스(FT) 등 국제 주요 언론들은 라호이 총리의 노동 개혁 이후 임금이 싼 동유럽을 생산 거점으로 뒀던 글로벌 자동차 제조업체들이 스페인으로 눈을 돌리면서 자동차산업이 호황을 맞게 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현재 스페인에선 르노, 포드 등 9개 글로벌 자동차 완성차 메이커들의 17개 대규모 공장들이 가동되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회사들은 스페인에 앞 다투어 투자하고 있다. 독일 폴크스바겐이 2015년 스페인 북동부 팜플로나 공장에, 독일 다임러가 스페인 북부 빅토리아 공장에 각각 10억 유로 규모의 투자를 늘렸다. 벨기에 공장을 철수한 미국 포드도 스페인 발렌시아 공장을 유럽 최대 생산기지로 만들기로 하고 2020년까지 23억 유로를 투자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투자가 완료되면 발렌시아 공장은 연간 45만 대를 생산해 포드의 글로벌 생산기지 중 중국 충칭에 이어 두 번째가 된다.

포드는 최근 근로자들에게 새로운 경영 개선안을 받아들이면 쿠가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을 생산하는 설비 투자를 하겠다고 밝혔다. 의료 유급 휴가를 줄이고 야간 근무 때 지급하던 상여금을 동결하는 등의 내용이었다. 노조는 2019~2021년 임금을 0.5~2.5%만 인상하기로 사측과 합의했다. 에두아르도 곤잘레스 독일 콘티넨탈AG 이사는 “스페인은 특화된 부품공급사와 숙련된 노동자들이 있는 곳이었는데, 경기 침체를 겪으며 활력을 잃고 고실업에 허덕였다“며 “유연한 노동시장 덕분에 대규모 정리해고를 피하고 자동차라는 성장 동력을 찾게 됐다”고 밝혔다.

스페인 노사협력도 자동차산업을 이끄는 데 한몫했다. 스페인에 생산기지를 둔 프랑스 르노가 대표적 사례다. 르노는 2009년 인건비가 비싼 스페인 바야돌리드 공장을 철수하고 인건비가 싼 루마니아 등으로 공장을 이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002년까지 연평균 29만 대를 생산하던 이 공장은 2008년 생산량이 3분의 1 이하로 추락했다.

일감이 줄자 사측은 1일 3교대로 근무하던 근로자들에게 1일 1교대를 제안했다. 노조는 이를 거부하며 파업으로 맞섰다. 사측은 2000명을 해고했다. 노조는 고용과 임금 보장을 요구하며 또다시 파업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노조는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양보밖에 답이 없다는 걸 깨달았다. 결국 사측은 공장 폐쇄 계획을 철회하고 고용을 보장하기로 했고, 노조는 임금 동결과 전환 배치, 주말수당 감축 등을 받아들이기로 합의했다. 이른바 ‘고용과 임금 빅딜’이었다.

양측의 타협은 서로 윈윈(win-win)하는 성과를 낳았다. 바야돌리드 공장은 2011년 말 트위지를, 2013년에는 시장규모가 큰 소형 SUV 캡처(한국명 QM3)를 생산했다. 바야돌리드 공장은 또 개정된 스페인의 노동법에 힘입어 생산량을 늘리고 신규 채용까지 했다. 이 공장은 2016 하버리포트 평가 결과, 전 세계 148개 공장 중 생산성 1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생산량도 늘어났다. 2009년 35만 대이던 생산량이 지난해에는 41만 대를 기록했다. 마리아노 세레조 스페인 금속노조연맹 사무총장은 “일자리가 없으면 근로자의 권리도 없어진다”면서 “일자리를 유지하고 미래에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보장이 있다면 우리는 희생하는 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라고 밝혔다.

◆자동차 생산기지 지각 변동, 생존법은 

스페인과는 달리 호주는 노조의 무리한 요구 탓에 글로벌 완성차 3사가 모두 철수하면서 자동차산업 불모지가 됐다. 포드는 2016년, 도요타와 제너럴모터스(GM)는 2017년 호주에서 잇따라 철수하면서 현재 호주의 자동차산업은 완전히 몰락했다.

호주의 경우 광산업으로 인력이 몰리자, 자동차산업은 구인난을 겪으면서 임금이 수직 상승했다. 호주 정부는 2000년부터 2012년까지 5조 원에 달하는 보조금을 지원했지만, 자동차 업체의 경영 상황은 나아지지 않았다. 이런 가운데 2012년 GM 노조는 3년간 22%의 임금 인상을 관철했다. 도요타 노조도 3년간 임금 12% 인상을 요구하며 파업을 벌였다. 호주 정부가 보조금을 폐지하자 자동차 3사는 노조의 임금 인상 요구를 들어들 수 없다면서 공장을 폐쇄하고 호주에서 철수했다.

세계 최대 자동차 수출국이었던 영국도 현재는 몰락한 상태다. 그 이유는 노사 갈등에 따른 비용 상승과 생산성 저하라고 볼 수 있다. 한 회사에 10여 개의 노조가 난립하면서 세력 다툼을 벌였고 생산성은 갈수록 악화됐다. 결국 1980년대 말부터 애스턴마틴, 재규어, 랜드로버 등 영국의 주요 브랜드들은 해외에 매각됐다.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은 2010년부터 임금이 높고 노조가 강성인 서유럽을 중심으로 생산 공장을 폐쇄하는 등 강력한 구조조정에 돌입해 왔다. GM의 산하 브랜드 오펠은 2010년 벨기에 앤트워프 공장과 2014년 독일 보쿰 공장을 폐쇄했고, 포드는 2013~2014년 영국 사우스햄튼, 대그넘 프레스 공장, 벨기에 겡크 공장을 폐쇄했다.

특히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은 임금 수준을 포함해 각국 생산시설의 매력도를 종합적으로 평가해 최적의 장소에 물량을 배치하고, 생산성이 떨어지는 공장들을 더 이상 운영하지 않고 있다. 글로벌 자동차 메이커들의 이런 트렌드를 간파한 스페인 정부는 자국의 자동차산업을 구하기 위해 기업에 더 많은 권한과 융통성을 부여하고 고용을 유연하게 하는 노동법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자동차산업 육성책을 시행했다. 스페인 자동차산업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한국GM 군산공장 폐쇄 결정 등으로 위기에 빠진 한국도 스페인 정부와 자동차산업을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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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03-29 09: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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