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nce 제 156호 (2018년 05월)

성추행·채용비리·비자금…지방은행의 민낯

[한경 머니=공인호 기자] 지방은행들이 안으로부터 곪아 가고 있었다. 지역경제를 뒷받침해야 할 책무는 오간 데 없고 ‘제왕적 리더십’의 폐해가 속속 불거지면서 지역 민심의 극심한 이반 현상을 부추기고 있다. 지역 정관계와의 오랜 유착관계에서 비롯된 적폐의 민낯도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1  지난 2013년 부산시 고위 공무원 A씨는 부산시 금고 선정 과정에서 부산은행 측의 편의를 봐준 대가로 그의 아들을 합격시켜줄 것을 요구했다. A씨 아들은 1차 전형에서 떨어졌지만 A씨의 압박 이후 정식 직원으로 입사할 수 있었다.
#2  박인규 전 대구은행장은 지난 2013년부터 지난해까지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대량 구매한 뒤 현금으로 바꾸는 방식의 ‘상품권깡’을 통해 비자금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한 박 전 행장은 자신을 보좌하던 직원 자녀 채용과 관련해 위법한 지시를 한 의혹 등도 받고 있다.
#3  지난 2015년 광주은행 모 부행장보는 자신의 딸의 면접위원으로 참여한 사실이 밝혀지면서 스스로 자리에서 물러났다. 하지만 이후 2016년 신입 행원 채용 과정에서도 일부 면접관들이 20명의 1차 면접 점수 결과를 조작한 것으로 알려져 파문이 확산되고 있다.

새 정부의 대대적 금융 개혁 칼날이 대형 시중은행을 넘어 지방은행들의 턱밑을 향하고 있다. 최고경영자(CEO)의 비자금 조성 혐의부터 채용비리, 정관계 유착 의혹까지. 사안의 심각성 측면에서는 시중은행을 훨씬 뛰어넘는다.

◆ 지역 밀착에서 유착으로 본분 망각한 지방은행
통상적으로 은행 시스템은 한 나라의 경제 혈맥으로 비유된다. 같은 맥락에서 지방은행은 지역경제 곳곳의 자금 흐름을 책임지는 모세혈관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지역경제와 함께 성장해 온 지방은행들이 그동안 본연의 역할에 충실해 왔는지조차 의문이라는 목소리가 터져 나오고 있다. 지역 도시를 거점으로 한 지방은행은 통상 시중은행과 구분해 쓰이는 개념이지만 주로 여수신이 주된 업무라는 점에서 업무 내용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IMF 외환위기 이전인 1997년까지만 해도 10여 개의 지방은행이 존재했지만 현재는 부산·경남·대구·광주·전북·제주은행 등 총 6개 은행만 남아 있다.

지난 2014년 이후 우리금융지주의 민영화 과정에서 경남은행은 부산은행에, 광주은행은 전북은행에 각각 인수되면서 3대 지방 금융지주(BNK금융, JB금융, DGB금융) 체제를 갖추게 됐다. 이들 지방은행은 영업구역이 특정 행정구역으로 제약받는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시중은행의 경우 전국의 불특정다수가 잠재 고객이라면 지방은행은 해당 지역을 기반으로 한 중소기업과 지역민이 영업 기반인 셈이다. 지속 성장을 위해서는 지역민들의 전폭적인 신뢰가 밑바탕이 돼야 한다. 하지만 지난해부터 이어지고 있는 각종 사건·사고 소식은 지방은행에 대한 신뢰를 급전직하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지방은행의 경우 시중은행에 비해 관리감독이 느슨한 데다 각 지역의 대표 은행이라는 상징성 탓에 정관계와의 유착 가능성에 상시적으로 노출된다”며 “채용비리를 포함해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불법·비위 건수는 훨씬 많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 3월 발표된 금융감독원 채용비리 전수조사에서는 대구은행이 3건으로 지방은행 가운데 가장 많았고, 부산은행 2건, 광주은행 1건이 각각 발견됐다. 대형 시중은행인 KEB하나은행과 KB국민은행 등에 비해서는 적은 숫자지만 이후 진행되고 있는 검찰조사에서 채용비리 의심 건수가 추가로 발견되고 있다.

상황이 가장 심각한 곳은 지방은행 1, 2위를 다투는 부산은행과 대구은행이다. 부산은행은 지난 2016년 말 박근혜 정부의 핵심 인사가 연루된 ‘엘시티 불법 대출’ 의혹으로 곤욕을 치룬 뒤, 지난해에는 BNK금융지주 주가 조작 혐의로 전임 성세환 회장(겸 부산은행장)이 구속되는 초유의 사태를 겪었다. 이 과정에서 불법·비리에 가담한 전·현직 임직원들이 무더기로 징계를 받는 한편, 최근에는 금감원으로부터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에 대한 일부 영업정지라는 중징계까지 받았다. 여기에 부산은행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급격한 실적 악화까지 동반되고 있다. 지난해 기준 부산은행의 당기순이익은 2032억 원으로 전년 대비 38%나 줄었다. 이는 부실 대출이 크게 늘면서 대손충당금이 급격히 늘어난 영향이다.

◆ 성희롱부터 채용비리까지 근본 흔들리는 리더십
대구은행도 창사 이래 최악의 ‘암흑기’를 거치고 있다. 지난해 7월 불거진 은행 내 성희롱 파문이 신호탄으로 작용했다. 당시 대구은행은 중간 간부들이 비정규직 여직원 등을 성추행한 의혹이 불거지면서 지역 시민단체로부터 거센 비난을 샀다. 이에 박인규 전 DGB금융 회장(겸 대구은행장)은 공식 사과에 나서기도 했다. 하지만 은행판 ‘미투(#MeToo) 사건’에 성난 민심은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았고, 대구경북여성단체연합 등 지역 54개 시민단체는 대구은행을 ‘성희롱 기업’으로 규정하고 근본적인 대책 마련을 촉구하기도 했다.

성희롱 사태 이후 잠시 주춤했던 비난 여론은 박 전 회장의 비자금 조성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재차 들끓었다. 박 전 회장은 취임 직후인 2014년 4월부터 지난해 8월까지 법인카드로 상품권을 구매한 뒤 판매소에서 수수료를 제하고 현금화하는 방법으로 비자금 30억여 원을 조성한 혐의를 받고 있다. 검찰은 이 가운데 일부는 개인 용도로 쓴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함께 박 전 회장은 자신을 보좌하던 직원 자녀 채용과 관련해 위법한 지시를 한 의혹도 받고 있으며, 지난 2016~2017년 신입 직원 11명이 부정 채용된 과정에서 박 전 회장의 개입 여부도 초미의 관심사로 등장했다.

부산은행의 ‘엘시티 불법 대출’과 마찬가지로 대구은행에서도 지역 정관계와의 부적절한 유착이 의심되는 사례가 발견되기도 했다. 대구 수성구청은 지난 2008년 대구은행이 운용하는 회사채 펀드에 30억 원을 투자했다가 10억여 원의 손실이 발생하자 은행 측에 원리금 보전 및 이윤 보장을 강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박 전 회장과 일부 임원 10여 명은 자신들의 사비를 털어 구청 손실을 보전해준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확산된 바 있다.

그동안 상대적으로 채용비리 여파에서 자유로웠던 JB금융지주도 검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잔뜩 긴장한 모습이다. 광주은행은 지난 2015년 일부 임원이 자신의 딸의 면접관으로 참여한 사실이 확인됐으며, 이후 2016년 신입 행원 채용 과정에서는 성별, 출신학교별 채용 인원을 조정하기 위해 응시자들의 면접 점수를 조작한 것으로 알려졌다.

◆ 생존 기반 흔들리는 지방은행…CEO 권한 분산 등 자정 노력 통할까
성희롱 사건에 이어 비자금 조성, 채용비리 의혹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각 지방은행들도 자체적인 자정 노력에 나서고 있다. 각 지역의 성난 민심을 그대로 방치했다가는 자칫 생존 기반마저 흔들릴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으로 해석된다. DGB금융은 지난해 하반기부터 금융권 최초의 은행장 직속 ‘DGB인권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이 센터는 사내 성희롱이나 인권침해 관련 상담과 조사, 피해자 구제 및 예방 교육 등을 담당하고 있다. 기존 인사부에서 운영하던 감찰 기능도 강화해 감찰실을 준법감시인 직속부서로 신설하기도 했다.

광주은행도 지난 4월 임직원 간 선물수수와 직장 내 성희롱, 불건전한 사행위를 각각 금지하는 ‘CLEAN(클린) 5 광은 문화’를 선포했다. 이를 통해 행동규범을 보다 명확히 하고 이를 어겼을 경우 강력한 징계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제왕적 리더십’에 기인한 적폐 해소 차원의 지배구조 개편 작업도 본격화되고 있다. BNK금융은 지난해 성 전 회장이 주가 조작 등의 혐의로 리더십 공백이 장기화되자 회장-은행장직을 분리키로 하고 회장직에 외부 출신인 김지완 회장을 영입했다. 다만 은행장에는 경영 연속성을 감안해 내부 출신인 빈대인 행장을 선임했다. 김한 회장이 광주은행장을 겸임했던 JB금융도 지난해 9월 광주은행장 직을 떼어내 내부 출신인 송종욱 행장을 선임한 바 있다.

유일한 겸직 구조였던 DGB금융 역시 박 전 회장의 비자금 사건을 계기로 지주회장의 권력 분산에 나섰다. 특히 DGB금융은 차기 경영진이 자칫 ‘박인규 2기’로 전락할 수 있다는 안팎의 부정적 여론을 감안해 대구은행 설립 이후 최초로 개방형 공모 방식을 선택했다.
은행권 한 관계자는 “지연과 학연이 절대적인 상수였던 지방은행들이 개방형 공모를 선택한 것은 그만큼 지역 여론이 심상치 않다는 반증”이라며 “같은 이유로 외부 출신 회장과 내부 출신 은행장 간 갈등이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점에 주의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일러스트 허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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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8-04-30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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