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법학박사]만약 유언자가 첫 번째 유언장을 작성한 후 그 유언을 철회하는 두 번째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결국 그 두 번째 유언을 철회한 경우 첫 번째 유언은 다시 부활할 수 있을까.

영국에서 1837년 ‘유언법(Wills Act)’이 제정되기 전 ‘관습법(Common Law)’하에서는 “철회는 철회를 철회한다”는 법리에 의해 첫 번째 유언은 유언자의 의사와 상관없이 자동으로 부활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관습법의 원칙을 ‘자동부활의 원칙’이라고도 부른다.

한편 영국 종교재판소에서는 제반 사정을 고려해볼 때 유언자가 부활을 의도한 것으로 보일 때에만 부활을 허용했다. 그러나 유언법은 “부활시키려는 의도를 보여주는 유언장의 재작성이나 유언보충서에 의해서만 부활한다”고 규정했다. 이를 ‘반부활 원칙(anti-revival rule)’이라고 한다.

현재 부활에 관한 법령이 없는 주에서는 대체로 관습법의 원칙이나 종교재판소의 원칙을 따르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대다수 주들은 부활에 관한 법령을 가지고 있는데, 이들 중 3분의 1 정도의 주들은 영국 유언법과 유사한 반부활 규정을 두고 있고, 나머지 주들은 영국 종교재판소의 원칙 또는 다음에서 살펴볼 ‘통일상속법(UPC)’의 규정과 유사한 방향으로 입법을 함으로써 유언법의 엄격한 요건을 완화시키고 있다.

반부활 규정의 문제점
반부활 규정들은 두 번째 유언장의 철회를 둘러싸고 있는 제반 사정들에 대한 탐구를 억제하고 오로지 첫 번째 유언장이 재작성되거나 추완될 것만을 요구한다. 따라서 유언자가 유언장의 잔여재산에 관한 조항을 수정하는 유언보충서를 작성한 후 그 유언보충서를 철회한 경우, 잔여재산에 관한 조항은 부활하지 않고 결국 잔여재산은 ‘무유언상속법’에 따라 상속되게 된다.

그린왈드 유산 사건(In re Estate of Greenwald)에서 유언자는 1973년에 첫 번째 유언장을 작성한 후 1988년에 첫 번째 유언장을 철회하는 두 번째 유언장을 작성했다. 그런데 그녀가 사망한 후 두 번째 유언장은 발견되지 않았고, 결국 유언자에 의해 철회된 것으로 추정됐다.

법원은 ‘반부활’ 규정을 적용해 두 유언장 모두 검인을 승인하지 않았다. 즉, 첫 번째 유언은 두 번째 유언에 의해 철회됐고, 두 번째 유언은 유언자의 행위에 의해 철회돼 결국 유언이 없는 상태가 돼 버린 것이다.

이러한 결과에 대해 아이오와주 대법원(Supreme Court of Iowa)은 1988년 다음과 같이 해명했다. “첫 번째 유언을 철회하는 내용의 두 번째 유언도 철회됐다고 하면서 그 두 번째 유언이 첫 번째 유언을 철회하는 한도 내에서는 효력을 가진다는 결론이 이상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이 법이다. 1988년 유언장이 유효하게 작성됐다는 점에 관해서는 다툼이 없는바, 그로 인해 1973년 유언은 철회됐다. 다만 그 후 1988년 유언장이 사라졌을 뿐이다.”

전부 철회와 일부 철회의 구별
1969년 UPC는 두 번째 유언장이 첫 번째 유언장을 완전히 철회한 경우와 일부만 철회한 경우를 구별하지 않고, 두 번째 유언장이 철회된 경우 첫 번째 유언장의 반부활 추정 규정을 두고 있었다. 그러나 1990년 개정을 통해 부분적으로 부활을 인정했다. 즉 두 번째 유언이 첫 번째 유언을 완전히 철회한 경우에는 반부활이 추정되지만, 부분적으로만 철회한 경우에는 부활을 추정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제반 사정을 고려해볼 때 부활 여부에 관한 유언자의 의사가 분명히 확인된 경우에는 그에 따르도록 하고 있다. 이처럼 전부 철회된 경우와 일부 철회된 경우를 구분하는 근거는 무엇일까.

1990년 UPC의 공식 주석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두 번째 유언이 첫 번째 유언을 부분적으로만 철회한 경우에는 두 번째 유언은 단지 첫 번째 유언의 보충서에 불과하다고 볼 수 있고, 유언자는 첫 번째 유언이 계속 효력을 유지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된다.”

캘리포니아주 법원은 UPC가 개정되기 전에 이미 이와 같은 취지의 판시를 한 바 있다. 즉, 첫 번째 유언이 유언보충서에 의해 부분적으로 철회된 경우 반부활 규정을 적용하지 않았다.
1990년 UPC하에서는, 반부활의 추정을 복멸시키기 위해 즉, 첫 번째 유언을 부활시키려는 유언자의 의사를 확인하기 위해 외부 증거가 사용될 수 있다. 이 외부 증거에는 유언자 자신의 진술도 포함된다.

하이불트 유산 사건(In re Estate of Heibult)에서 유언자는 자신과 함께 살면서 자신을 돌보아주던 아들에게 우호적인 유언장을 작성했다. 그 후 다른 자식들의 집을 방문해 있는 동안 새로운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그 내용은 4명의 자식들에게 재산을 똑같이 나누어준다는 것이었다.

유언자가 사망한 후 두 번째 유언장은 발견되지 않았다. 두 번째 유언은 첫 번째 유언을 완전히 철회했으므로 1990년 UPC에 의하더라도 첫 번째 유언은 부활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다. 그러나 이 사건에서 유언자가 사망하기 전에 자신의 변호사에게 첫 번째 유언의 효력을 계속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말한 사실이 밝혀졌다.

2002년 사우스다코타주 대법원(Supreme Court of South Dakota)은 1990년 UPC 조항과 동일한 주법을 적용해 “유언자가 변호사에게 한 진술은 첫 번째 유언을 부활시키려는 유언자의 의사에 관한 충분한 증거다”라고 판결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1호(2018년 10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