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미 새 무역협정, 中 압박카드 될까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미국, 멕시코, 캐나다는 1994년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하는 새로운 무역협정으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 합의했다. USMCA 타결은 미국이 힘을 바탕으로 새 무역질서를 구축하려는 전략으로, 중국의 경쟁력을 흔들어 놓을 압박카드로 작용할지 주목된다.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nited States Mexico Canada Agreement, USMCA)이 미국을 다시 제조업 강국으로 만들어줄 것이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10월 1일 백악관 로즈가든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북미 3개국이 새롭게 합의한 무역협정을 높이 평가하면서 강조한 대목이다.

USMCA는 1994년 발효된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대체하는 새로운 무역협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대선 운동 기간 중 나프타를 미국의 일자리를 없애고 무역적자를 초래하는 최악의 무역협정이라면서 대통령에 당선되면 나프타를 전면 폐기하거나 재협상할 것이라고 공언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의 강력한 지시에 따라 미국 정부는 지난해 8월부터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나프타 재협상을 벌여 왔다. 미국 정부는 지난 8월 27일 멕시코 정부와 재협상을 타결한 데 이어 지난 9월 30일 캐나다와도 합의를 도출했다. 이로써 나프타는 24년 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지게 됐다. USMCA는 앞으로 3국 정상들이 공식 서명하고 각국 의회의 비준을 거치면 내년 상반기 중 발효될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말대로 앞으로 미국이 USMCA에 따라 제조업 강국이 될 수 있을까. 미국은 나프타가 출범한 1994년 이후 지금까지 줄곧 캐나다와 멕시코를 상대로 한 해도 빠짐없이 무역에서 적자를 봤다. 미국의 적자액은 지난해 기준으로 캐나다와 멕시코에 대해 각각 170억543만 달러, 709억5290만 달러에 달했다.

무역 균형과 제조업 부흥을 주장해 온 트럼프 대통령으로선 이를 절대 용납할 수 없었다. 이 때문에 그는 이번 나프타 재협상에서 캐나다와 멕시코를 강력하게 몰아붙였다. 이에 따라 멕시코 정부는 일찌감치 손을 들었고, 캐나다 정부도 협상 마감 시한까지 버티다가 결국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는 이번 협상에서 나프타의 많은 결함과 실수를 해결했고 우리 농민과 제조업자들을 위해 시장을 크게 개방하도록 했으며, 미국에 대한 무역장벽을 낮추었다”면서 “USMCA는 역사적인 거래”라고 자찬했다.
북미 새 무역협정, 中 압박카드 될까
◆새 협정 타결은 트럼프의 승리?

미국의 시사 종합지 애틀랜틱은 “트럼프 대통령이 이기고 있다”며 “각국이 미국에 저항하다가도 결국은 미국과 협상한다”고 지적했다. 이 잡지는 “USMCA를 볼 때 미국의 득실 계산에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트럼프 대통령으로서는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고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 대통령과 무역대표부(USTR)의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대표에게 주요한 성취가 됐다”고 평가했다. 뉴욕타임스(NYT)도 “나프타가 미국에 호의적인 방향으로 개정되지 않으면 이를 폐기하겠다고 위협해 온 트럼프 대통령의 승리”라고 후하게 점수를 줬다. 제이 티몬스 전미제조업협회(NAM) 회장도 성명을 통해 “3국 협정에서 우리가 요구해 온 것들에 대한 답을 얻어 매우 고무됐다”며 결과를 환영했다.

USMCA의 주요 내용을 보면 미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규정이 만들어졌다. 특히 자동차 산업의 경우 원산지 규정, 역내 부가가치 기준, 북미산 철강과 알루미늄 구매 요건, 노동 부가가치 기준 등이 상당히 강화됐다. 무관세로 수출하는 자동차의 역내 부품 비중을 기존 62.5%에서 75%로 상향했다. 역내 부가가치 기준은 2023년 1월 1일까지 4단계(66%→69%→72%→75%)에 걸쳐 순차적으로 충족하도록 했다.

자동차를 생산하기 위해 구매하는 철강과 알루미늄의 70% 이상은 북미산이어야 한다. 북미산 철강 및 알루미늄 구매 조건을 충족했다는 자동차 생산자의 연간 증명서는 다음 해 생산하거나 수출하는 자동차에 적용된다. 또 2023년 1월 1일부터 승용차의 40%(경·중량 트럭 45%)는 시간당 최저 16달러 이상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가 만든 부품이어야 한다. 미국에 있는 공장이 인건비가 싼 멕시코 등으로 이전하는 것을 막기 위한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새로운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는 승용차는 연간 260만 대까지 ‘무역확장법’ 232조의 국가 안보 등에 따른 25% 관세 부과를 면제받고 무관세로 수출할 수 있다. 새로운 원산지 규정을 충족하지 않지만 기존 나프타 규정을 충족하는 승용차는 연간 160만 대까지, 자동차부품은 연간 1080억 달러까지 최대 2.5% 관세를 부과한다. 이 물량을 초과할 경우에는 232조에 따라 최고 25%에 달하는 고율관세를 물릴 것으로 예상된다.

캐나다 국민들의 커다란 반발을 불러일으켰던 낙농업 시장 개방 문제도 캐나다 정부가 낙농업 시장의 3.5%인 160억 달러 규모를 미국 농가에 개방하기로 했다. 대신 미국이 없애기를 원했던 나프타 19조(분쟁조정 절차 및 기구 규정)를 그대로 유지하기로 했다. 투자자·국가 분쟁해결 제도(ISDS)의 경우 미국은 캐나다와는 단계적으로 폐지하고, 멕시코와는 해당 제도를 축소해 유지하기로 합의했다. 일몰조항의 경우 미국은 애초 5년 단위로 재검토를 해 협정을 연장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파기되는 것을 요구했지만 한발 물러서 최종적으로 6년마다 협정을 재검토하기로 합의했다.

특히 세계 최초로 인위적으로 무역 이익을 위해 환율을 약화할 수 없도록 하는 강제 규정을 포함시켰다. 미국, 캐나다, 멕시코는 이를 위반하지는 않아 왔지만, 자동차업계와 동맹국들은 이러한 규정이 향후 아시아 국가들과의 협상에서도 포함되길 바라고 있다. 또 금융서비스와 디지털 산업 등 신산업 무역에 대한 규정과 지적재산권에 대한 조항이 들어갔다.

그렇다면 USMCA 타결로 미국에서 얼마나 많은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을까. 트럼프 대통령은 “새 협정이 발효되면 미국에서 양질의 일자리 수십만 개가 생길 것”이라고 장담했다. 뉴욕 월가는 불확실성이 줄었다는 점에서 투자심리가 한층 개선될 것이라는 입장이다. 크리스토퍼 스마트 베어링자산운용 글로벌 거시 연구 대표는 “불확실성이 제거됐다는 측면에서는 의심할 여지없이 좋다”며 “변화된 경제 상황을 반영하지 못하는 오래된 합의가 업데이트됐다는 점도 의심할 여지없이 좋은 일”이라고 평가했다. 미국 최대 노동단체인 미국 노동총연맹 산업별 조합회의(AFL-CIO)는 이번 개정 협상으로 저임금의 멕시코나 아시아에 일자리를 뺏기는 걸 막는 데 유리할 것으로 보고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원산지 표시 규정 기준이 높아짐에 따라 멕시코 등에 자동차 공장을 세운 한국과 일본, 유럽 업체들은 상대적으로 곤란을 겪을 것으로 보인다”고 예측했다. 특히 FT는 “최저시급을 16달러로 규정했기 때문에 싼 인건비를 찾아 멕시코와 캐나다로 갔던 미국 기업들이 다시 귀국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반면 USMCA의 수혜를 입을 것으로 예상하는 자동차업계에 의외의 부담이 가중될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저시급 16달러 이상인 미국에서 완성차 공장을 세울 경우 자동차업계와 소비자에게 비용이 전가될 수 있다는 것이다. 조셉 브루셀라스 회계법인 RSM 수석 이코노미스트는 “USMCA로 인해 미국 자동차 제조 분야에서 고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되지 않는다”면서 “오히려 이것은 멕시코의 로봇 등 자동화의 발전을 가져올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런데 이번 USMCA에는 중국을 겨냥한 노림수도 들어 있다. 3개국 중 어느 국가라도 ‘비시장경제(NME) 국가’와 자유무역협정(FTA)을 체결하면 다른 국가들이 이 협정에서 탈퇴할 수 있다는 조항이다. 다시 말해 비시장경제 국가와 FTA를 체결하려는 국가는 협상 초기 단계에서 이를 다른 2개 국가에 통보해야 하며, 실제로 FTA를 체결할 때 다른 2개 국가가 USMCA를 폐지하고 새로운 쌍방 협정을 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서 비시장경제 국가는 중국을 의미한다.

중국 정부의 요청에도 불구하고 미국과 유럽연합(EU) 등 서방 국가들은 중국을 여전히 비시장경제 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비시장경제란 보조금과 불공정한 시장, 조작된 환율 때문에 원가계산 데이터를 믿을 수 없는 경제체제를 뜻한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은 가입의정서 규정에 따라 15년이 지난 지금은 자동으로 시장경제 지위를 부여받아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하지만 미국과 EU 등은 자체 절차에 따라 판단하겠다는 입장을 보여 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 조항은 캐나다와 멕시코가 중국과 FTA 체결을 희망할 경우 미국이 사실상 이에 대해 ‘거부권(veto right)’을 갖는 것이나 다름없다고 분석할 수 있다. 캐나다와 멕시코가 USMCA를 와해시키면서까지 중국과 FTA를 맺기는 사실상 어려울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조항은 중국의 대미 우회수출을 차단하는 수단이 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이 캐나다나 멕시코와 FTA를 맺으면 이들 국가에 무관세나 낮은 관세로 제품을 수출한 후 이를 다시 미국으로 수출하는 ‘우회수출’이 가능하지만, FTA 체결 자체가 어려워진 상황에서는 이 같은 방법을 쓸 수 없기 때문이다.

중국은 캐나다의 제2교역국으로, 양국은 그동안 FTA 체결을 검토해 왔다. 특히 미국이 캐나다, 멕시코에 이어 EU, 일본 등과 비슷한 내용의 합의를 추진할 경우 중국이 FTA 시장에서 원천 봉쇄될 수도 있다. 중국은 지금까지 미국과의 무역전쟁으로 인한 피해를 만회하기 위해 다른 국가들과 FTA를 체결해 수출을 늘리려는 계획을 추진해 왔기 때문이다. 중국은 한국, 호주, 뉴질랜드, 아이슬란드, 싱가포르, 아세안 10개국 등과는 FTA를 체결했지만 미국, 캐나다, 멕시코, 일본, EU 등과는 FTA를 체결하지 않은 상태다.

특히 주목할 점은 USMCA가 ‘세계의 공장’인 중국을 축으로 형성된 글로벌 공급망을 깰 수 있는 수단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의 WTO 가입 이후 미국이 300만 개 제조업 일자리와 6만 개 공장을 잃고, 지난 20여 년간 쌓인 무역적자가 13조 달러에 달했다고 지적해 왔다.

스티븐 배넌 전 백악관 수석전략가는 “트럼프 대통령의 전략은 처음부터 중국으로부터 투자를 빼내 글로벌 공급 사슬을 재구축하는 것이었다”면서 “USMCA는 글로벌 공급망의 자물쇠를 따는 열쇠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트럼프 정부는 중국에 진출한 기업들이 고율 관세로 탈중국을 심각하게 고려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USMCA 타결로 북미는 매력적인 투자처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미국은 USMCA를 발판으로 유럽, 일본, 캐나다 등과 함께 중국에 대항하는 ‘경제동맹’을 결성하려는 새로운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중국 내 인건비 상승과 미국의 고율 관세 부과로 의료, 신발 제조업체 등이 속속 중국을 떠나 동남아시아로 향하는 상황에서 이런 전략은 글로벌 공급망에서 절대적인 지위를 차지하던 중국의 경쟁력을 흔들어놓을 가능성이 높다.

아무튼 USMCA 타결은 트럼프 대통령이 세계 1위의 경제 대국인 미국의 힘을 바탕으로 주요 무역 상대국에 대한 압박 전략을 통해 새로운 무역질서를 구축하려는 전략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 | 일러스트 허라미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2호(2018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