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의 ‘5G 전쟁’, 첫 타깃은 ‘화웨이’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미국과 중국은 바야흐로 ‘기술 냉전시대’를 맞아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특히 미국은 5세대(5G) 통신기술 분야에서 앞선 중국을 견제하기 위해 그 첫 타깃으로 화웨이를 향해 날선 칼날을 겨누고 있다.

화웨이(華爲)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이자 중국의 대표 기업이다. 화웨이는 중국 인민해방군 정보통신 장교로 오랜 기간 복무하면서 총참모부 정보공학부 국장을 역임한 런정페이가 1987년 광둥성 선전에서 설립했다. 주요 사업 분야는 네트워크와 통신장비, 스마트폰 등이다.

회사 명칭인 ‘화웨이’는 ‘중화민족을 위해 노력한다’는 뜻이다. 특히 화웨이는 인민해방군의 프로젝트를 독점 수주해 성장의 발판을 마련했다. 화웨이는 2004년 글로벌 시장 진출 당시 중국 국가개발은행으로부터 100억 달러의 자금 지원을 받기도 했다. 화웨이는 2012년 이후 매년 30%의 이익증가율을 기록하고 있으며, 현재 170개국에 통신장비를 판매하는 등 통신장비 분야에서 22%의 시장점유율로 세계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또 스마트폰 판매에서도 미국의 애플을 제치고 삼성전자에 이어 세계 2위를 기록했다.

화웨이는 2017년 기준 925억 달러의 매출액을 기록해 미국 경제 잡지 포천이 선정한 글로벌 기업 72위를 차지했다. 2018년 매출은 1022억 달러로 예상된다. 종업원 수는 18만 명에 달한다. 이처럼 규모가 엄청난 데도 화웨이는 비상장 기업이다. 기업의 지배구조 또한 남다르다. 창업주인 런정페이는 1.4%의 지분만 소유하고 있으며 나머지 98.6%는 직원 노조의 소유다. 이사회는 공개되지 않고 주주 정보도 베일에 쌓여 있다.

특히 화웨이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자동차 등 4차 산업혁명 분야의 핵심 인프라 기술인 5세대(5G) 통신 분야에서 선두주자다. 미국 정부는 국가 안보 위협을 이유로 화웨이의 자국 내 통신장비 제품 사용을 금지하고 있다. 미국 정부는 화웨이의 제품에는 일명 ‘백도어(back-door)’가 심어져 있다고 지적해 왔다. 실제로 2016년 미국에서 화웨이의 스마트폰에서 백도어가 발견된 적이 있다. 백도어는 인증되지 않은 사용자가 무단으로 시스템에 접근해 메시지, 연락처, 통화 기록, 위치 정보 등을 알아내는 ‘뒷문’ 통로를 말한다.

미국 정보기관들은 화웨이가 중국 정부 및 공산당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고 의심해 왔다. 미국 정부가 5G 통신기술 개발에 앞장서 온 화웨이의 장비 등에 대해 사용 금지 조치를 내린 것은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다.

미국 하원 정보위원회는 2012년 10월 8일 발간한 ‘중국 통신장비 회사 화웨이와 ZTE가 제기하는 미국 국가안보 문제에 대한 조사 보고서’에서 화웨이는 자발적으로 중국 정부와 공산당의 지령을 따라 기밀을 훔치고 지식재산권을 침해하며 미국의 적성국과 수상한 거래까지 하는 기업이라고 규정한 바 있다. 미국 싱크탱크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제임스 루이스 부회장은 “화웨이는 좋은 물건을 만드는 훌륭한 회사이지만 중국 정보기관의 한 조직으로 활동한다”며 “중국 정부가 화웨이를 적극 지원하는 것도 이런 이유 때문이다”고 주장했다.

◆미국이 중국의 ‘5G 굴기’ 제동 건 이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2018년 8월 정부와 공공기관의 보안 위협을 이유로 중국 기업 제품을 사용할 수 없도록 명령하는 2019년 국방수권법(NDAA)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 정부와 공공기관의 화웨이 등 중국 네트워크 장비와 통신 서비스 사용이 전면 금지됐다. 또 미국 정부와 관련 업무를 계약한 모든 기업의 데이터 전송 등 통신 시스템 필수 구성요소에 중국 장비와 서비스 사용이 금지됐다.

미국 정부는 또 안보 동맹국들에 화웨이의 5G 장비를 사용하지 말 것을 요청했으며, 이에 호응해 호주 정부는 8월 화웨이 제품 사용 금지를 결정했고 뉴질랜드가 11월 같은 조치를 내렸다. 영국도 화웨이의 사용 금지를 검토하고 있다. 영국은 이미 운영 중인 3세대(3G)와 4세대(4G) 망에서도 화웨이 장비를 퇴출하기로 결정했다.

호주, 뉴질랜드, 영국 등은 모두 ‘다섯 개의 눈(five eyes)’으로 불리는 동맹국들로 각종 정보를 공유해 왔다. 미국 정부는 이와 함께 자국 군이 주둔하고 있는 독일, 이탈리아, 일본 등에도 화웨이의 5G 장비 사용 금지를 설득해 왔다. 미국 정부의 이런 요청에 부응해 일본 정부도 2018년 12월 7일 정부 부처와 기관 및 자위대 등이 사용하는 5G 등 정보통신 기기에서 화웨이 제품 사용을 배제하기로 결정하고 관련 내규를 개정한다는 방침을 밝혔다.

미국의 국내외 군사 기지들은 특별한 군사 기밀 정보를 주고받을 때에는 자체 위성통신 네트워크를 사용하고 있지만, 평소에는 대부분 민간의 상업 네트워크를 통해 통신을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미국 정부는 화웨이의 5G 장비를 사용할 경우 보안 유지가 어렵다는 입장이다.

미국 정부는 중국 정부와 정상회담에서 90일간 무역전쟁을 중단하기로 합의했음에도 불구하고 화웨이에 대한 압박을 더욱 강화하고 있다. 런 회장의 장녀이자 화웨이의 부회장 겸 최고재무책임자(CFO)인 멍완저우가 미국 정부의 요청으로 캐나다에서 12월 1일 체포된 것도 화웨이에 대한 압박 공세의 일환이다. 멍 부회장은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위반한 혐의를 받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화웨이는 2016년부터 홍콩에 설립한 유령 회사인 스카이콤을 이용해 HSBC홀딩스를 거쳐 이란과 불법 거래를 해 왔다는 것이다. HSBC는 화웨이와 거래하는 여러 개 금융기관 가운데 하나다. 미국 연방검찰은 멍 부회장이 HSBC 계좌를 통해 이란 등과의 거래를 직접 지시하거나 관여한 것으로 보고 있다. 멍 부회장은 범죄인 인도협정에 따라 미국 법원으로 이송돼 재판을 받고 유죄가 인정될 경우, 벌금 최고 2000만 달러와 함께 징역 30년을 선고받을 수 있다.

1972년 출생한 멍 부회장은 런 회장과 첫 부인 멍쥔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로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 영어 이름은 사브리나다. 멍 부회장은 1993년 대학 졸업 후 중국 4대 국유상업은행 중 하나인 건설은행에서 1년 정도 일했고, 1994년 화웨이에 입사했다. 로비 안내원, 타자수, 카탈로그 제작, 전시회 보조 등 허드렛일도 가리지 않았다. 1998년 중국 명문대인 화중과학기술대에서 회계학으로 경영학 석사를 받았다. 이후 멍 부회장은 재무통으로 성장하면서 2011년 4월부터 화웨이 상무이사 겸 CFO를 맡았다.

멍 부회장은 3월 이사회 부이사장직에 오르면서 유력한 차기 후계자로 주목받고 있다. 그의 남편 류샤오쭝도 1991년 화웨이에 입사했는데, 현 이사회 구성원이자 임원급 간부다. 런 회장은 3번의 결혼에서 얻은 1남 2녀를 두고 있다. 멍 부회장의 동생이자 장남인 런핑은 이사회에서 배제된 상태다. 차녀인 야오 안나(영문명 애너벨)는 현재 미국 하버드대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고 있고 2020년 졸업할 예정이다. 차녀도 어머니의 성을 따랐다.

미국 정부가 화웨이를 정조준하고 있는 이유는 중국의 ‘기술 굴기’를 저지하겠다는 의도라고 볼 수 있다. 화웨이는 중국 정부가 추진하고 있는 첨단 산업 육성화 전략인 ‘중국제조 2025’ 계획의 핵심 기업이다. 따라서 화웨이는 미국 정부의 제1 타깃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미국 정부는 2020년으로 다가온 5G 기술 상용화를 앞두고 중국 정부와 눈에 보이지 않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미국 정부는 세계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가 5G 기술 표준이 되는 걸 막는 것이 목표다.

WSJ는 “미국과 중국 간 5G 경쟁은 양국 무역전쟁의 또 다른 전선”이라면서 “미국 정부의 의도는 관세 폭탄보다 더 치명적인 기술 억제를 통해 중국의 도전을 물리치겠다는 것이다”고 지적했다. 다시 말해 미·중 무역전쟁의 본질은 5G는 물론 주요 첨단 산업 분야에서 세계 선두로 도약하려는 중국과 기존의 우월적 지위를 사수하려는 미국과의 기술 패권 전쟁이라고 볼 수 있다.
미·중의 ‘5G 전쟁’, 첫 타깃은 ‘화웨이’
◆중국, 5G 기술 상용화 ‘눈앞’

이런 맥락에서 5G를 놓고 미국과 중국이 본격적인 기술 패권 전쟁을 시작한 셈이다. 미국 이동통신산업협회(CTIA)는 지난 4월 ‘글로벌 5G 경쟁’이라는 보고서를 발표, 미국이 세계 기술 진보를 선도하지 못한다고 경고했다. 보고서는 주요국 5G 이동통신 주파수 분배와 정부 정책, 상용화 수준 등을 종합 검토한 결과 미국이 중국에 뒤졌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중국이 5G 상용화 경쟁에서 가장 앞선 이유로 ‘강력한 정부 주도 정책’을 꼽았다. 중국은 정보기술산업부(MIIT) 주도로 ‘중국제조 2025’ 등 정책을 통해 5G 기술 개발과 상용화를 지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화웨이는 중국 정부의 강력한 지원 덕분에 글로벌 통신장비 시장 30% 이상을 장악했고 5G 특허의 23%인 61건을 보유하고 있다. 화웨이는 5G 장비와 관련해 20개 이상의 사업 계약을 체결했다. 리스크 컨설팅 업체인 유라시아 그룹의 글로벌 기술정책 책임자인 파울 트리올로는 화웨이에 대해 “현재 기지국, 데이터센터, 안테나, 핸드세트와 같은 5G 네트워크의 모든 요소를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회사다”고 평가했다. 이런 추세라면 중국이 세계 5G 시장을 장악할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 미국 정부의 판단이다.

따라서 미국 정부로선 중국과 화웨이의 ‘5G 굴기’를 저지할 수밖에 없는 입장이다. 20세기에는 철강, 석탄, 자동차, 항공기, 선박이 국력의 원천이었다면 21세기는 5G와 같은 최첨단 기술을 개발하고 시장까지 장악하는 것이 경제력과 국가 안보의 동력이라고 말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2018년 12월 6일 백악관에서 구글과 마이크로소프트(MS), IBM, 오라클, 퀄컴 등 미국 첨단 기업 최고경영자(CEO)들과 만나 AI와 양자 컴퓨팅 및 5G 이동통신 등의 분야에서 중국의 도전을 견제할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한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CEO는 “새로 떠오르는 기술들과 관련해 미국의 지도력에 대해 생산적인 논의가 이루어졌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총대를 메고 중국에 맞서 미국의 기술 우위를 유지하기 위한 전략 마련에 나섰다고 말할 수 있다.

중국 정부는 차이나모바일 등 3대 이동통신사에 5G 중저(中低)대역 주파수 시험 운용을 허가하는 등 2019년 시험 상용과 2020년 본격 상용화를 예정대로 이행하겠다는 의지를 과시하고 있다. 세계 최대 이통사인 차이나모바일도 5G 혁신협력회의를 열어 17개 도시에서 전면적으로 상용화를 위한 5G 테스트를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에릭 쉬 화웨이 순환 회장은 미국 CNBC와의 인터뷰에서 “미국은 5G에서 결코 중국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면서 “그 이유는 5G 기술에서 화웨이가 가장 선진적이기 때문이다”고 강조했다. 쉬 회장의 말처럼 미국과 중국은 5G 상용화 시점에서 격렬하게 맞붙고 있지만 자칫하면 중국이 승리할 수도 있다.

아서허먼허드슨연구소의 아서 허먼 수석연구원은 “21세기를 지배하기 위한 패권 전쟁의 승패는 슈퍼컴퓨터, 반도체, AI, 5G, 양자 컴퓨팅 등 5대 첨단 기술 경쟁에 달렸다”면서 “이는 자유시장과 국가주의의 대결이다”고 지적했다. 아무튼 미국과 중국은 바야흐로 ‘기술 냉전시대’를 맞아 치열하게 경쟁할 것이 분명하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 사진 한국경제DB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4호(2019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