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상처 뿐인 총파업, KB국민은행 노조는 왜?
[한경 머니 = 공인호 기자] 새해 벽두부터 전운이 감돈다. 민중가요가 쉼없이 흘러나오고 붉은 띠를 두른 직원들이 발길을 재촉한다. 총파업을 하루 앞둔 KB국민은행의 본점 앞 모습이다.

은행권 노사 갈등이야 하루 이틀 일은 아니라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그동안에는 으름장만 놨었지 국민은행의 총파업이 실제 강행된다면 이는 무려 19년 만의 '사건'이기 때문이다.

진보든 보수든, 정치적 성향을 떠나 '파업' 소식이 들리면 시민들은 그만큼 '절박한 사정'이 있지 않을까 미루어 짐작한다. 수십년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동료 직원들이 대규모로 구조조정을 당한다던지, 피땀으로 일궈온 직장이 한루 아침에 매각(폐쇄)될 처지에 놓인다던지 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번 국민은행의 총파업은 이런 절박함과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그 반대(?)에 가깝다. 노조 측의 주장을 다소 극단적으로 요약하면 '받아낼 수 있을 때 더 받아내자' 정도라면 지나친 해석일까.

현재 국민은행 노사갈등을 극단으로 내몬 최대 쟁점은 '성과급'과 '페이밴드'다. 노조는 허인 은행장이 지난해 '최고의 보상'을 약속했다며 300% 지급을 요구하고 있는 반면 사측은 경쟁사와 비슷한 200% 수준을 제시하고 있다. 노조는 '리딩뱅크'를 탈환한 우리가 왜 신한은행보다 낮은 수준을 받아야 하느냐는 논리를 펴고 있다.

페이밴드 역시 노사간 인식차가 큰 사안이다. 사측은 '성과와 관계없이 매년 연봉이 오르는 구조로는 경쟁력을 갖추기 어렵다'며 신입직원들에 한해 운영하고 있는 페이밴드를 전 직급으로 확대시킨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반면 노조는 신입직원들의 일방적 희생을 막겠다며 백지화를 주장하고 있다.

더불어 노조는 유니폼 폐지로 인해 절감되는 비용을 피복비 명목으로 직원들에게 되돌려줄 것도 요구하고 있다. 노조가 내세우는 논리와 명분은 그럴듯해 보인다. 파업 찬성률이 96%라고 하니 직원들의 심정 역시 매 한가지인 듯 하다.

하지만 모든 갈등의 내막은 동전의 양면과 같다. 한쪽의 일방적 논리만으로는 실체적 본질에 다가가기 어렵다. 이처럼 양측의 인식차가 크다면 당사자가 아닌 제 3자의 시각을 참고해볼 필요가 있다. 바로 시민들의 공감대다. 국민은행의 파업 소식을 접한 열에 아홉은 노조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드러내고 있다.

고객을 볼모로 잡은 '귀족 노조의 전형적 떼쓰기' 수법이라는 비판은 식상할 정도다. 오죽했으면 사측이 스스로 직원 평균연봉(9200만원) 공개했을까. 아예 은행 하나 쯤 문 닫아도 된다는 식의 극단적 목소리도 적지 않다. 피복비의 경우 상식적인 수준을 벗어난 '어이없는' 요구라는 지적도 나온다.

상황이 이런대도 노조는 연쇄파업까지 예고하고 있다. 자신들의 요구만 관철된다면 여론이야 어쨌든 신경쓰지 않겠다는 식이다. 하지만 사측 역시 임원들이 일괄 사의를 표명하면서 쉽게 물러설 뜻이 없어 보인다.

물론 이번 노사갈등은 외생변수가 아닌 내생변수에 기인하고 있다는 점에서 봉합 여부는 시간문제로 보인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의 브랜드 가치 훼손 등의 유무형의 손실은 숫자로 가늠하기 힘들 것이다. 당장 올해부터 은행 수익이 큰 폭으로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이 쏟아지고 있고, 리딩뱅크 10년 위상을 지키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보다 국민은행 직원들이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노조는 '은행 영업점 가본게 언젠지 기억도 안난다', '은행 하나 쯤 없어져도 지장 없다'는 시민들의 목소리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파업으로 인한 혼란과 고객 불편이 예상보다 미미할 경우 갈수록 거세지는 구조조정의 명분만 제공할 수 있다는 점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4호(2019년 0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