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임주명 SC제일은행 외환파생영업부 차장] 외환 딜러로 오랜 시간 일하면서 깨닫게 된 사실 중 하나는 ‘부자들은 항상 달러를 찾는다’는 것이다. 한국 부자들은 왜 달러 자산을 선호하는 것일까?
부자들은 항상 ‘달러’를 찾는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5년 75억 달러에 불과했던 가계의 외화 잔액은 2017년에 160억 달러로 2배 이상 증가했다. 이후 환율에 따라 잔액 변동이 있었지만, 가계 외화 자금은 국내 전체 외화예금 잔액 중 약 20%를 차지할 정도로 그 비중이 커진 것이다. 특히 지난 3년 동안 증가한 외화 자산 9조 원 중 8조에 가까운 자금이 ‘달러’라는 점은 ‘부자들이 달러를 항상 찾는다’는 주장에 주요한 근거가 된다.

은행에 찾아와 달러를 매수하는 고객들의 의도를 모두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필자의 경험에 비추어볼 때 한국 부자들에게 달러는 ‘금’과 같은 안전자산의 수단인 동시에 글로벌 투자의 시발점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달러가 안전자산 역할을 하는 이유
지난 3월 말, 12년 만에 미 국채 10년 금리가 단기물인 3개월 국채 금리를 하회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났다. 미 국채의 장단기 금리 차는 미국 경기의 방향성을 예측하는 선행지표 중 하나이며, 많은 전문가들이 경기 침체의 신호로 인식하곤 한다.

일시적 현상에 그치기는 했지만, 미국의 장단기 금리 차가 역전되면서 금융시장의 돈은 안전 자산에 몰리는 모습을 보였다. 한국도 예외는 아니었다. 장단기 금리 역전으로 ‘R(recession: 경기 침체)의 공포’가 제기된 3월 28일, 위험자산으로 분류되는 코스피 지수는 2100선까지 0.82% 하락했지만,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미 달러는 강세를 보이며 달러·원 환율은 1139.50원까지 5원 상승했다. 올해 달러·원 환율의 연고점을 경신한 것이다.
부자들은 항상 ‘달러’를 찾는다
우리는 여기서 국내 증시와 달러·원 환율이 보이는 역의 상관관계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한국 증시에서 중요한 수급으로 여겨지는 외국인 자금은 수익이 기대되는 시점에만 한국 시장에 머문다. 한국 경기가 좋아지고 한국 기업들의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예상될 경우 달러를 매도하고 원화로 표시된 주식을 매수하는 한편, 국내 기업들의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신호가 발생할 경우 원화 자산을 매도하고 달러를 매수해 한국 시장에서 나가게 된다. 이 과정에서 국내 주식시장(코스피)과 달러·원 환율이 역의 상관관계를 보이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 때문에 외국인의 발 빠른 움직임이 일반 투자자들을 불편하게 만들 수 있겠지만, 부동산 및 주식과 같은 위험자산의 비중이 높은 고액자산가들에게는 달러가 금과 같은 안전자산의 역할을 하게 된다. 실제로 1997년 아시아 외환위기, 2008년 미국발 글로벌 금융위기 등 역사적인 금융위기 당시, 달러가 가지고 있는 안전자산의 속성은 증명된 바 있다. 더 나아가 이러한 위기는 달러를 가진 투자자들에게는 새로운 투자 기회를 제공하기도 했다.

해외 채권에 관심 갖는 한국 부자들
부자들의 달러 보유는 환전에서 그치지 않는다. 최근 고액자산가들 사이에서 미 국채의 인기가 높다. 대표적인 무위험자산인 미 국채를 1년(약 2.4%) 보유 시 달러 정기예금(약 2%)보다 높은 금리를 추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보유 기간 중 가격이 상승할 경우 이익 실현 시점을 유연하게 가져갈 수 있기 때문이다.

국채뿐만이 아니다. 국제신용평가사 기준으로 A등급 이상의 달러 표시 회사채의 경우 연 3~4% 정도의 금리 수익을 제공하고 있어 고액자산가들에게 인기가 매우 높은 편이다. 최근 산업은행 등 한국 공기업이 발행한 외화채권의 경우 물량을 확보하지 못해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 빈번해지고 있다.
부자들은 항상 ‘달러’를 찾는다
이처럼 외화채권에 대한 관심이 높은 이유는 달러를 단순히 환차익의 대상이 아닌 포트폴리오의 일부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한국 부자들은 보유하고 있는 달러를 예금에 묶어 두기보다 좀 더 장기적인 관점에서 자산관리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수익 기회를 찾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달러 자산을 활용해 공격적인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는 것도 가능하다. 아마존, 애플 등 IT 섹터에 투자하는 역외펀드나 글로벌 헬스케어 업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역외펀드를 활용해 중장기 관점의 자산관리 계획을 세우는 투자자들, 하이일드(투자부적격 등급) 회사채 및 신흥국 미 달러 표시 국공채 등 고수익 채권을 활용해 매월 현금흐름을 확보하려는 투자자들도 쉽게 찾을 수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 부자들은 달러를 활용한 해외 투자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질 것이다. 이는 달러가 단순히 안전자산의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투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통화이기 때문이다.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아닌 일반 투자자의 경우 평생을 모아온 자산의 전부를 한 자산에 투자하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다. 모두가 이론적으로 알고 있듯이 주식, 채권, 펀드 다양한 투자 수단에 자산을 배분해 위험을 분산하는 것이 재테크의 시작임을 절대 잊어서는 안 된다. 현재 자신의 투자 자산이 부동산, 주식 등 위험자산에 집중돼 있다면 지금부터는 달러를 재테크의 한 방법으로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 처음부터 달러로 채권을 사고 역외펀드를 가입할 용기가 없다면, 지금 당장 외화예금을 만드는 것부터 시작해보면 어떨까.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68호(2019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