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채무 논쟁 어떻게 봐야 하나

[한경 머니 기고=한상춘 한국경제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최근 한국은 국가채무, 화폐개혁, 금리 인하 등의 문제를 놓고 논쟁이 거세다. 특히 국가채무와 관련해 공무원 급여 등 일반 경직성 항목에 과다 지출돼서는 안 되며, 경기 부양 효과가 큰 투자성 항목에 집중시켜야 한다는 권고를 되새겨야 한다.

‘돈의 향연이 끝나고 반란이 시작된다.’ 5년 전 <머니 볼>의 저자인 마이클 루이스는 “빚의 복수(revenge of debt) 시대가 조만간 들이닥칠 것이다”라고 내다봤다. 저금리 시대가 마감되는 시점에서 그 어느 국가보다 빚이 많은 우리 국민에게 가장 가슴 깊게 파고드는 간담을 서늘케 하는 경고다.

2009년 미국 리먼브러더스 사태 이후 ‘금융위기 극복’과 ‘실물경기 회복’이라는 미명 아래 금리를 제로 수준(유럽, 일본은 마이너스)까지 내리고 돈을 푸는 게 마치 미덕인 것처럼 합리화됐다. 중앙은행은 ‘양적완화(QE)’, 경제주체는 ‘저리의 빚’이라는 수단을 거리낌 없이 사용해 왔다. 그 기간도 10년 이상 길어져 빚의 무서움도 잊혀 갔다.

세계 빚(국가+민간)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국제통화기금(IMF), 국제결제은행(BIS) 등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빚은 우리 돈으로 20경 원에 달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세계 국내총생산(GDP) 대비 230%로 임계치인 200%를 훨씬 넘어선 수준이다. 세계 인구 70억 명을 기준으로 1인당 빚을 계산한다면 3000만 원에 달한다.

문제는 세계의 빚은 더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금융위기 이후 ‘금융위기 극복’이라는 미명하에 돈을 무제한으로 풀었고 금리를 마이너스 수준까지 떨어뜨렸던 ‘중앙은행의 만능 시대’가 끝나 가고 있다. 그 대신 경제정책의 주안점이 ‘큰 정부론’이 국민으로부터 힘을 얻으면서 재정정책으로 넘어가는 분위기다.

선도하는 국가는 미국이다. 2년 전 출범했던 트럼프 정부는 ‘미국의 재건’을 위해 도로, 철도, 항만 등 낙후된 사회간접자본(SOC)을 복구하는 데 주력해 왔다. 케인즈 이론이 태동됐던 1930년대 대공황 당시 루스벨트 정부가 추진했던 정책과 유사해 ‘트럼프-케인즈언 정책’이라고도 부른다.

주목해야 할 것은 2020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미국 학계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현대통화이론(MMT)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매력을 느끼고 있는 점이다. MMT의 핵심은 이렇다. 물가에 문제가 없는 한 재정적자(쌍둥이 이론에 의해 무역적자도 포함)와 국가부채를 두려워하지 말고 달러를 찍어 써도 문제가 없다는 시각이다.

MMT는 달러 가치와 관련해 종전의 ‘트리핀 딜레마’를 정면으로 반박하는 것이다. ‘트리핀 딜레마’란 1947년 벨기에 경제학자 로버트 트리핀이 제시한 것으로 유동성과 신뢰도 간 상충관계를 말한다. 기축통화국인 미국은 경상수지 적자를 통해 통화를 계속 공급해야 한다. 하지만 이 상황이 지속되면 대외 부채 증가로 신뢰도가 떨어져 미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이 골자다.

국가채무 논쟁 어떻게 봐야 하나

◆재정적자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유럽도 올해 하반기부터는 양적완화를 재추진하면서 재정정책과 분담시킬 계획이다. 일본도 ‘금융 완화(하마다 고이치 미국 예일대 명예교수가 이론적 근거 제시)’ 중심의 1단계 아베노믹스를 마무리하고 2단계 ‘재정정책(혼다 에쓰로 영국 대사가 이론적 근거 제시)’으로 이전할 것으로 예상된다.

재정수입 면에서는 대폭적인 감세를 통해 경기를 부양하는 1980년대 초 ‘레이건노믹스’를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감세정책의 이론적 토대인 ‘래퍼 곡선(Laffer Curve)’을 보면 세율과 재정수입 간 정(正)의 구간을 ‘표준 지대(normal zone)’, 부(負)의 구간을 ‘비표준 지대(abnormal zone)’라 부른다. 미국, 독일, 일본, 중국 등 대부분 국가가 법인세를 내렸다.

재정지출과 감세를 동시에 추진한다면 ‘재정적자를 어떻게 감당할 것인가’ 하는 점에 의문이 든다. 최소한 경기가 살아나기까지 늘어날 재정적자를 국채로 메운다면 국가채무가 늘어나고 국채금리가 빠르게 올라갈 수 있다. 한 나라의 금리 체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국채금리가 상승할 경우 정책금리도 인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금융위기 이후 국제 간 자금 흐름은 캐리 트레이드 성격이 짙다. 이론적 근거는 환율을 감안한 어빙 피셔의 국제 간 ‘자금이동설[m=rd-(re+e), m: 자금 유입 규모, rd: 투자대상국 수익률, re: 차입국 금리, e: 환율변동분]’이다. 이 이론에 따르면 미국 등 선진국이 금리를 올리면 한국을 비롯한 신흥국은 자국의 경기 여건과 관계없이 금리를 올려야 금융시장과 경기를 안정시킬 수 있다.

금리와 채권 가격은 반비례 관계다. 트럼프 대통령 당선 이후 국채금리가 단기간에 급등함에 따라 채권 가격은 투자자가 대응할 시간도 없이 ‘순간 폭락(Flash Crash, FC)’ 현상을 보였다. 앞으로 국채금리가 더 상승하면 ‘국채시장→주거용 부동산 시장→신흥국 증시’ 순으로 FC의 전염 효과가 우려된다.

IMF를 비롯한 예측기관이 빚 부담을 연착시키지 못할 경우 세계경제에 복합 불황이 닥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정책금리 등 정책 수단이 제자리에 복귀되지 않은 여건에서 자산 가격이 하락하면 경제주체의 빚 상환 능력과 가처분소득이 더 떨어지고 정책 대응마저 쉽지 않아 1990년대 일본 경제의 전철을 밟을 수 있기 때문이다.

빚 부담을 줄이더라도 반드시 ‘연착륙’시켜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과제는 여건이 따르지 않을 때에는 쉽지 않다. 그 어느 국가보다 우리나라는 가계 빚이 많다. BIS가 민간부채의 건전성을 평가하는 ‘신용 갭’(GDP 대비 민간부채 비율이 호드릭-프레스코트 필터로 구한 장기 추세에서 벗어난 정도)이 3.1%포인트다. 주의(2%포인트 미만 ‘보통’, 2∼10%포인트 ‘주의’ 10%포인트 이상 ‘경고’) 단계다.

단순히 빚이 많다고 반드시 무서운 것은 아니다. 빚 상환 능력, 즉 소득이 받쳐준다면 저금리 시대에는 빚을 잘 활용하는 것이 한 나라의 경기나 개인의 재테크 차원에서 더 좋을 수 있다. 하지만 경기가 받쳐주지 못하는 여건에서 임계치에 도달한 빚을 더 늘려 경기 부양을 모색하는 것은 위험한 발상이다.

국가채무 논쟁 어떻게 봐야 하나

오히려 빚을 줄이는 것이 우선순위다. 이때 주의해야 할 것은 잘못된 정책으로 이미 빚이 늘어난 상황에서는 의욕만 앞세워 과도하게 빚을 줄이면 가뜩이나 안 좋은 경기를 더 침체시킬 수 있다. 지난해 11월 말 대내외 불균형 시정이라는 애매모호한 이유를 들어 금리를 올린 것이 올해 1분기 성장률을 –0.4%(지난해 4분기 대비)로 끌어내렸다.

그런 만큼 가계 빚 대책을 세울 때 가처분소득(총소득-이자 등 각종 비용) 관리에 특별히 신경을 써야 한다. 가계 빚을 줄이는 데만 초점을 맞출 경우 이자 경감분보다 소비 성향이 높은 자산소득이 감소해 경기를 둔화시킬 우려가 높다. 환금성의 높은 아파트의 경우 역자산 효과 계수는 ‘0.23(아파트값 1% 하락 때 소비 0.23% 감소)’으로 높게 나온다.

가계부채에 이어 이번에는 국가채무 논쟁이 거세게 불고 있다. 재정은 민간과 다르다. ‘양입제출(量入制出)’을 지향하는 민간은 흑자를 내는 것이 바람직하지만 ‘양출제입(量出制入)’을 전제로 하는 재정은 적자가 발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국가채무가 발생해도 관리 가능한 수준이면 국민으로부터 세금을 덜 걷고 재정지출도 국민에게 되돌려줘야 한다는 원칙에서 건전하다고 보고 있다.

재정 건전성은 GDP 대비 국가채무 비율로 평가한다. 선진국은 100%, 신흥국은 70% 이내면 재정이 건전하다고 보고 있다. 선진국은 신흥국보다 국가 신뢰도가 높아 재정 운영에 있어서 여유가 많다는 의미다. 일본처럼 최종 대부자 역할이 저축성이 높은 국민에게 있을 때는 국가채무 비율이 250%에 달해도 국가 부도가 날 가능성은 적다.

특정국의 재정이 건전한가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국가채무 개념부터 명확히 할 필요가 있다. 국가채무는 포함 대상과 채무 성격에 따라 3가지로 분류한다. 협의 개념은 중앙과 지방정부의 현시적 채무, 광의 개념은 협의 개념에다 공기업의 현시적 채무, 최광의 개념은 광의 개념에다 준정부 기관, 그리고 모든 기관의 묵시적 채무까지 포함된다.

한국은 3가지 기준에 따라 국가채무 비율이 크게 차이가 나는 것도 특징이다. 협의 개념으로는 40%, 광의 개념으로는 70%, 최광의 개념으로는 140% 내외다. “재정이 건전하다”, “국가부도가 곧 닥친다”라는 극과 극의 주장이 함께 나오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 글로벌 투자은행(IB)과 국제평가사 한국 포스트의 시각이다.

국가채무 논쟁보다 재정을 어디에 쓰느냐가 더 중요하다고 보는 것도 이 때문이다. 국가채무는 후손 세대에게 빚을 지는 만큼 복지 등 단순 이전성 항목이나 공무원 급여 등 일반 경직성 항목에 과다하게 지출돼서는 안 된다. 경기 부양 효과가 큰 투자성 항목에 집중시켜 후손 세대의 채무 상환 능력을 키우는 쪽으로 쓰여야 한다고 권고한다.

한국은 유난히 논쟁이 많은 나라다. 모든 경제 현안이 대상이 될 수 있지만 요즘 들어서는 국가채무, 화폐개혁, 금리 인하, 원·달러 환율 상승 요인 문제를 놓고 논쟁이 거세다. 종전과 다른 것은 4대 논쟁의 출발점이 정책당국과 집권당인 민주당이라는 점도 눈에 띈다. 특히 국가채무와 화폐개혁 논쟁이 그렇다. 국민은 어떻게 보겠는가.

한상춘 한국경제 논설위원 겸 한국경제TV 해설위원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0호(2019년 07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