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nance 제 172호 (2019년 09월)

미·중 ‘무역 치킨게임’의 결론은



[한경 머니 기고=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점입가경이다. 최근에는 양국이 극단적인 치킨게임을 벌이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차량 충돌 직전 핸들을 꺾는 ‘치킨’은 미국의 트럼프일까, 중국의 시진핑일까.   

치킨게임(chicken game)은 1950년대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던 자동차 경주에서 유래했다. 2명의 경쟁자가 한밤중에 도로의 양쪽에서 목숨을 담보로 자신의 차를 몰고 정면으로 돌진하다가 충돌 직전에 핸들을 꺾는 사람이 지는 게임이다. 

이 경우 핸들을 꺾은 사람은 치킨이 된다. 치킨은 ‘겁쟁이(coward)’란 뜻이다. 제임스 딘이 주연한 1955년 미국 할리우드 영화 <이유 없는 반항(Rebel without a Cause)>에 치킨게임 장면이 나온다. 이후 치킨게임은 냉전시대 미국과 구소련의 극심한 군비 경쟁을 비유하는 용어로 사용되기도 했다. 

국제 정치·경제에서는 극단적인 대결에 따른 치킨게임과 같은 상황이 종종 벌어진다. 미국과 중국의 무역전쟁이 갈수록 치킨게임 양상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중국이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식으로 대응하면서 무역전쟁이 환율전쟁으로 비화되고 있다. 양국이 말 그대로 전면적인 경제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미·중의 정면 대결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월 1일 트위터에 올린 분노의 글에서 시작됐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9월 1일부터 3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대한 10% 관세를 부과한다고 트위터를 통해 전격 발표했다. 트럼프 대통령이 6월 29일 일본 오사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별도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정상회담을 갖고 합의한 무역전쟁의 휴전을 깨뜨린 것은 7월 30·31일 상하이에서 열렸던 양국 고위급 무역 협상에서 아무런 합의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미국 대표단은 중국 정부에 대해 지식재산권 강화와 강제적인 기술 이전 금지, 기업에 대한 국가 보조금 중단 등의 구조적 개선과 합의 내용 이행을 담보할 수 있는 법률적 장치를 요구했다. 반면 중국 대표단은 미국 정부에 공정한 합의와 함께 모든 기존 관세를 즉각 철폐하고, 현실적인 수준의 미국산 제품 구매, 통신장비 업체 화웨이에 대한 제재 해제 등을 주장했다.
 
양국 정부의 이런 요구사항들은 변한 것이 없었다. 특히 중국 대표단은 트럼프 대통령이 가장 관심을 보여 온 미국산 농산물 수입 확대 문제에 대해 의사를 표시하기는 했지만, 구체적인 수입 규모 등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았다. 농산물 수입은 트럼프 대통령이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불만을 제기한 사항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2020년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표밭인 팜 벨트(farm belt: 농업 지역)에서 승리하기 위해 중국이 농산물을 대거 수입하기를 희망해 왔다. 협상 내용을 보고받은 그는 “중국이 미국 농산물을 대규모로 사들이기로 합의했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서 “시 주석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고 격노했다. 시 주석이 미·중 정상회담 당시 미국산 농산물 구매를 약속했다는 것이다.

팜 벨트 지역은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의 표밭이다. 이 지역의 주요 농산물은 대두(콩)다. 미국의 콩 생산량 비중은 전 세계의 35%에 달한다. 팜 벨트 지역에서 생산된 대두는 미국 전체의 95%에 달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2016년 대선에서 일리노이와 미네소타를 제외한 팜 벨트 지역 8개 주에서 승리하면서 대권을 거머쥘 수 있었다. 

트럼프 대통령은 백악관에서 열린 참모들과의 회의에서 중국 정부에 대한 보복 조치로 유예하기로 했던 30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1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밝혔다. 미국 정부는 지금까지 2500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25%의 관세를 부과해 왔다.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중국 정부가 무역 협상에서 미국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으면 나머지 3000억 달러 규모 제품에 대해서도 25% 관세 부과를 위협해 왔다. 당시 트럼프 대통령은 피터 나바로 백악관 제조업·무역정책국장을 제외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참모들 모두가 반대했음에도 불구하고 추가 관세 부과 조치를 결정했다. 

◆트럼트의 분노와 환율카드 공세 

미국 정부는 8월 5일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전격 지정했다. 중국에 대한 환율조작국 지정은 1994년 이후 25년 만에 처음이다. 미국 정부의 이런 조치는 또 트럼프 대통령의 분노에서 비롯됐다. 중국 상무부는 8월 6일 오전 0시 15분(베이징 시각) 웹 사이트에 올린 성명을 통해 “중국의 관련 기업들이 미국 농산물 구매를 잠정 중단한다”고 밝혔다. 중국 상무부의 이런 조치는 트럼프 대통령의 10% 추가 관세 부과 예고에 대한 대응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트럼프 대통령은 트위터에 “중국이 자국 통화가치를 역사상 거의 최저 수준으로 떨어뜨렸다”면서 “이것은 환율 조작이다”라는 글을 올렸다. 중국 정부가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인 미국 농민들을 정조준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환율카드를 꺼내든 것이다. 그가 트위터에 글을 올린 지 몇 시간 후에 스티븐 므누신 재무장관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므누신 장관은 트럼프 대통령의 권한으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이번 결정은 행정부 내 의견수렴 과정을 건너뛴 채 트럼프 대통령의 독단적 지시에 따라 전격적으로 이뤄졌다고 말할 수 있다. 실제로 미국 재무부는 사실상 사문화된 1988년의 ‘종합무역법’을 근거로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종합무역법’에 규정된 환율조작국 기준은 현저한 대미 무역흑자,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를 기록한 국가들이다.  

미국 정부는 ‘종합무역법’의 2가지 기준이 자의적이고 개념이 모호하다는 지적에 따라 2015년 ‘교역촉진법’을 만들어 환율조작국의 기준을 새롭게 설정했다. 환율조작국 지정 기준은 △현저한 대미 무역수지 흑자(200억 달러 초과) △상당한 경상수지 흑자(GDP 대비 3% 초과) △환율시장의 한 방향 개입 여부(GDP 대비 순매수 비중 2% 초과) 등 3가지다. 이 기준을 모두 충족하는 경우 심층분석대상국, 즉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다. 중국은 무역흑자가 200억 달러를 초과해 한 가지 기준에만 해당됐다. 

이 기준대로라면 중국은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 재무부가 ‘종합무역법’에 따라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강경한 지시에 따른 것이었다. 

그러자 시 주석도 맞불을 놓았다. 미국의 환율조작국 결정은 중국 전·현직 지도부가 모여 국정 방향을 논의하는 ‘베이다이허(北大河) 회의’가 한창 열리던 중에 내려졌다. 공산당 지도부가 모두 모인 자리에서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기습 공격을 당한 시 주석으로선 절대 물러설 수 없는 입장이었다. 

중국 정부는 위안화 가치가 달러당 7위안 아래로 떨어지는 이른바 ‘포치(破七)’를 용인하면서 위안화 평가절하를 공식화했다. 중국 중앙은행인 인민은행은 8월 8일 기준 환율 성격의 중간 환율을 달러당 7.0039위안으로 고시했다. 중간 환율이 달러당 7위안을 넘은 것은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했던 2008년 5월 15일 이후 11년 3개월 만이다. 

인민은행은 이후에도 포치를 지키기 위한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추가 관세 부과 예고에 따른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위안화 평가절하를 계속 추진할 것이 분명하다. 중국 정부의 이런 조치는 자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한 미국 정부와 환율전쟁도 불사하겠다는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중국 정부가 포치를 용인한 것은 위안화 약세 기조를 이어갈 것이란 신호를 보낸 것”이라며 “중국 정부는 미국 정부의 추가 관세 부과 충격을 상쇄할 수 있는 수준인 달러당 7.5~8위안까지 위안화 가치를 떨어뜨릴 것이다”라고 분석했다.

◆중국, 보복카드로 희토류 꺼내나 

게다가 중국 정부는 희토류를 미국에 대한 보복카드로 꺼내 들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중국 내 300여 개 희토류 채굴 및 처리 업체를 회원사로 둔 중국희토류산업협회는 8월 8일 성명을 통해 “우리의 산업 지배력을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무기로 쓸 준비가 돼 있다”며 “미국 정부에 대한 중국 정부의 맞대응을 결연히 지지한다”고 밝혔다. 이 협회의 이런 성명은 중국 정부의 입장을 반영한 것이다.
 ‘4차 산업혁명의 쌀’로 불리는 희토류는 원소기호 57번부터 71번까지 17개의 원소를 말한다. 희토류는 스마트폰, 반도체, 전기자동차, 광학렌즈, 특수 자석, 석유화학 촉매제 등을 만드는 데 반드시 필요한 소재다. 또 스텔스 전투기, 미사일, 레이더, 야간투시경, 레이저 등 각종 군사용 장비와 무기를 제조하는 데도 사용된다. 중국의 지난해 희토류 생산량은 12만 톤으로 전 세계 생산량의 71%를 차지했다. 미국은 연간 기준 1만1000톤 규모의 희토류를 수입하는데, 중국이 이 중에서 80%를 공급하고 있다. 

이에 맞서 미국 정부는 8월 13일 화웨이 등 중국 5개 업체의 장비를 정부 물품 조달 대상에서 배제하는 조치를 내렸다.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와 중싱통신(ZTE), 영상감시장비 제조업체인 하이크비전, 다화, 하이테라 등의 장비 구매에 연방정부 재원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한 것이다. 

이번 조치는 미국 정부가 지난 5월 화웨이를 국가 안보 이유로 블랙리스트에 올린 것과는 별도로 지난해 의회를 통과한 2019 회계연도 ‘국방수권법(NDAA)’에 따른 것이다. 이번 조치를 적용받는 대상에는 정부 기관은 물론 정부의 예산 지원을 받는 수혜자 및 수혜기관까지 포함된다. 미국 정보 기관은 중국 업체들의 장비를 통해 미국 정부 및 정부 기관의 정보가 중국으로 흘러들어갈 수 있다고 의심해 왔다.  

중국 정부는 미국에 대한 또 다른 보복 조치로 미국산 원유 수입 중단 카드를 꺼내 들 가능성이 있다. 미국 에너지정보국(EIA)에 따르면 중국의 미국산 원유 수입은 지난 5월 하루 24만7000배럴을 기록하며 9개월래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이후 감소세를 보이고 있다.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인 중국은 올 상반기만 하더라도 많은 양의 원유를 미국으로부터 수입해 왔지만 하반기 들어 대폭 줄이고 있다. 주목할 점은 중국이 미국의 이란 원유 거래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이란산 원유를 계속 수입하고 있다는 것이다. 

반면 트럼프 대통령은 9월 재개될 무역 협상에서도 중국 정부가 버티기를 계속할 경우 초강수를 둘 수도 있다는 말이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초강력 카드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산 제품에 45%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말한다. 게다가 미국 상무부는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된 만큼 중국산 제품을 수출 보조금이 지급된 불공정 상품으로 판정해 상계관세를 부과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버티기를 계속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의 의도는 무역전쟁을 장기전으로 끌고 가는 것이다. 시 주석은 출혈을 감수하더라도 트럼프 대통령을 낙선시키고 미국의 새 정부와 협상하겠다는 목표를 설정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이 무역과 환율 문제에서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국제사회는 누가 치킨이 될지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장훈 국제문제 애널리스트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2호(2019년 09월)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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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9-08-27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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