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하나은행 '파생상품 쇼크'...리스크관리 역량 시험대
[한경 머니=공인호 기자] "'키코(KIKO) 사태'와 판박이다." 최근 일파만파 확산되고 있는 '파생결합증권(DLS) 사태'를 두고 나온 말이다. 금융권에서 가장 안전하게 자금을 관리해야 할 시중은행에서 수천억 원대 고객 손실이 발생하면서 은행권의 리스크 관리 능력이 또 한 번 시험대에 올랐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최근 문제가 불거진 해외 금리 연계형 파생결합상품(DLF, DLS)의 판매 잔액은 총 8224억 원 수준으로 판매 규모는 우리은행(4012억 원), KEB하나은행(3876억 원), KB국민은행(262억 원), 유안타증권(50억 원), 미래에셋대우증권(13억 원), NH증권(11억 원) 순이다. 8월 7일을 기준으로 영국미국 CMS 금리 연계 상품은 판매 잔액(6958억 원) 중 5973억 원(85.8%)이 손실 구간에 진입했고, 독일국채 10년물 금리 연계 상품은 판매 잔액(1266억 원) 전체가 손실 구간에 이미 진입한 상태다. 만기까지 현재 금리 수준이 유지될 경우 두 상품의 예상손실률은 각각 56.2%와 95.1%에 달한다. 개인투자자(3654명)가 투자한 금액(7326억 원)이 전체 판매 잔액의 89.1%에 달하는 만큼 일반 고객들의 피해 규모가 상당할 것으로 보인다.

반복되는 대규모 손실 사태
사실 시중은행발(發) '사태'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할 때면 어김없이 반복돼 왔다. 멀게는 과거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 무분별한 기업대출로 인해 대형 은행들이 도미노처럼 쓰러졌다. 그나마 연명에 성공한 은행들은 정부의 구제금융, 즉 국민의 혈세 덕분에 살아남았다. 그 주인공들이 KB국민은행을 비롯해 신한·우리·하나은행 등 국내 금융권을 호령하는 대형 시중은행들이다.

물론 국내 시중은행들의 대내외 경쟁력은 외환위기 당시와 비교해 확연한 차이를 보인다. 당시 '조상제한서(조흥, 상업, 제일, 한일, 서울)'로 불렸던 부실 은행들이 잇따라 현재의 4대 은행에 흡수·합병되면서 덩치도 커졌고, 동남아 일부 국가에서는 시티그룹, HSBC 등 글로벌 플레이어를 제치고 외국계 1위 은행에 오를 정도로 내부 역량도 강화됐다. 4대 은행을 중심으로 해외 진출에도 탄력이 붙으면서 '우물 안 개구리'라는 오명도 벗어 가고 있다.

하지만 금융 불안기마다 반복되는 대규모 손실 사태는 시중은행의 핵심 역량인 '리스크 관리'능력에 대한 의구심을 자아내기에 충분해 보인다. 투자자들이 증권사나 저축은행이 아닌 대형 시중은행을 찾는 이유는 '안전하다'는 신뢰 때문이다. 금리가 다소 낮더라도 '손해 볼 일은 없을 것'이라는 믿음이 은행을 거래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은행들 역시 증권사 대비 상대적 안정성을 앞세워 투자 상품을 팔아 왔다.

하지만 시중은행들은 고객들의 이런 신뢰를 번번이 저버렸다. 무려 10년째 분쟁이 이어지는 '키코 사태'가 대표적이다. 키코는 환율이 일정 범위 내에서 변동할 경우 미리 약정한 환율에 약정금액을 팔 수 있도록 한 파생금융상품인데,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 환율 급등으로 수출 기업 700여 곳이 큰 손실을 봤다. 추산 금액만 무려 3조 원에 달한다. 이는 환율이 약정된 상한선을 넘어설 경우 행사가격과 실제 환율 간 차액의 2배를 물어줘야 한다는 조건이 붙은 탓이다.

평상시에는 문제가 없지만 예상치 못한 대내외 악재나 지금과 같은 불확실성 국면에서는 대규모 손실 가능성을 내포한 상품으로, 고객들이 손실을 일방적으로 떠안는 구조다. 현재 키코 사태는 일성하이스코, 남화통상, 원글로벌미디어, 재영솔루텍 등 4개 기업들을 중심으로 분쟁 조정이 진행 중인데, 추후 결과에 따라 은행들이 막대한 규모의 추가 배상책임에 직면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근 논란이 된 DLS 손실 역시 유사한 구조의 파생금융상품이라는 점에서 '제2의 키코 사태'로 불리고 있다. DLS는 주가와 주가지수는 물론, 이자율, 통화, 실물자산 등을 기초자산과 연계해 수익률을 결정하는 파생금융상품으로, 기초자산이 일정한 범위 내에서 움직이면 약정한 수익률을 제공하지만 상하한에서 벗어날 경우 기하급수적으로 손실 폭이 커지는 특성을 갖고 있다. 기업고객이 대상이었던 키코와 달리 개인고객들이 주로 가입했다는 점 외에 상품 구조는 거의 판박이다.

우리은행이 판매해 수천억 원대 평가 손실이 발생한 DLS(독일국채 10년물 금리 연계) 외에도 하나은행(영미 CMS 금리 연계)과 신한은행, 국민은행 등도 다양한 기초자산과 연계된 DLS를 판매해 적잖은 수수료 수익을 올려 왔다. 현재 논란이 된 DLS는 독일 10년물 채권금리와 연동된 파생금융상품으로, 해당 금리가 -0.2% 이상을 유지하면 연 3~5%대의 수익을 지급하지만, 그 이하로 떨어지면 0.1%포인트 초과 하락 시마다 원금의 20%씩 손실이 발생하는 구조다.

앞서 우리은행의 경우 지난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당시에도 '파워인컴펀드 사태'와 '부채담보부증권(CDO) 사태'로 홍역을 앓은 바 있다. 금융위기 직전 판매된 파워인컴펀드 역시 편입된 종목이 일정 가격 아래로 떨어지면 손실이 급격히 커지는 구조였는데, 당시 원금 대부분을 날린 고객들은 3년여에 걸친 '불완전판매' 관련 소송을 통해 일부 금액을 배상받기도 했다. 아울러 우리은행은 당시 외국계 투자은행(IB)이 내놓은 CDO와 신용부도스와프(CDS)에 투자해 1조 원에 가까운 대규모 손실을 기록해 당시 최고경영자(CEO)들이 금융당국으로부터 중징계를 받기도 했다.

과열 경쟁, 사모 쏠림 등 DLS 사태 원인
현재로서는 DLS 사태의 추이를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해당 상품에 가입한 고객들은 우리은행 등을 상대로 법적 소송에 나선 상태이며, 금융감독원도 상품 설명 부족 등 불완전판매 여부에 대한 판단을 앞두고 있다. 고객들은 '원금 손실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은행 측 설명만 듣고 가입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은행 측은 해외 IB 등의 전망치를 기초 자료로 제공했고 별도의 원금 손실 위험성에 대해서는 충분히 설명했다고 반박하고 있다.

실제 올 초까지만 해외 IB를 비롯해 국내 시장 전문가들은 미국의 금리 인상 기조가 유지될 것으로 전망했지만, 심화되는 미중 무역분쟁과 글로벌 경기 둔화 조짐이 감지되면서 금리 인하 가능성이 고개를 들었다. 여기에 미국 연방준비제도(Fed)를 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금리 인하 압박이 노골화되면서 지난 7월 미국의 기준금리가 전격적으로 인하됐고, 이후 시장금리가 하락 기조로 굳어진 상황이다. 시장금리 하락이 예견됐던 시점에서도 DLS 판매가 지속됐다는 점에서 논란의 여지가 남지만, 은행 측이 '평판 리스크'를 최소화할 목적으로 투자 손실의 일부 보존을 결정할 경우 투자자의 자기 책임 원칙을 훼손하는 선례를 남길 수 있다. 또 금융사들의 상품 개발 역량을 퇴보시키는 결과로도 이어질 수 있다.

DLS의 손익 설계상 국내 발행사와 판매사가 큰 수익을 볼 수 있는 구조도 아니다. 통상 파생금융상품의 경우 해외 상품을 그대로 가져와 상품명만 바꾼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은행이 판매한 독일국채 금리 연계 DLS 역시 하나금융투자, IBK투자증권, NH투자증권 등 국내 증권사들이 설계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금리 하락에 베팅한 해외 IB들이 대규모 수익을 올리는 구조다.

다만 금융 불안기 때마다 대규모 손실 사태가 반복돼 온 만큼 국내 금융사들의 자기반성은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특히 대규모 손실 사태가 우리은행 등 일부 은행에서 반복되고 있다는 점에서 리스크 관리 체계에 대한 재정비가 불가피해 보인다. 또 이번 사태가 고액 투자자인 자산관리(WM) 고객들에게 집중됐다는 점에서 WM 시장에서의 경쟁 과열도 원인으로 지목된다. 실제 국내 4대 은행을 비롯해 WM 사업을 영위 중인 금융사들은 해외 진출과 IB, 디지털과 함께 WM 부문에 대한 적극적인 외형 확대에 나서 왔다. 이자이익 증가세가 정체되자 위험성 높은 비은행 상품 판매에 무리하게 나선 것 아니냐는 지적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은행장을 비롯해 1~2년에 불과한 임원진의 짧은 임기가 근본 원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짧은 임기 중에 눈에 띄는 실적을 올리려다 보니 중장기 플랜보다 단기 실적주의에 매몰될 수밖에 없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다는 것. 이번에 논란이 된 DLS 역시 평가 손실에 대한 회복이 어려울 정도로 만기(4~6개월)가 짧다는 점도 고객 니즈를 반영한 측면도 있지만, 수수료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금융사들의 이해관계가 맞물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아울러 금융당국 역시 이번 사태의 책임에서 자유롭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국내 WM 시장의 경우 상대적으로 고위험고수익 상품인 사모펀드의 규모가 급격히 커졌는데, 이는 공모펀드에 대한 인기가 갈수록 시들해진 데 따른 영향이 크다. 최근에서야 공모펀드에 대한 과도한 규제를 완화하려는 움직임이 감지되고 있지만, 이미 WM 고객들 사이에서는 사모펀드 선호 현상이 갈수록 심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 외국계 은행 고위 관계자는 "국내 은행들의 경우 고액 자산가들을 붙잡기 위해 고위험 고수익을 제공하는 사모펀드 출시에만 열을 올리고 있는 상황"이라며 "사모 쏠림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10% 룰' 등 공모펀드에 대한 규제 완화에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2호(2019년 09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