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권, 투자 상품 고객 손실에 ‘극약처방’

[한경 머니=공인호 기자] 금융권이 연이은 악재로 금융소비자들로부터 신뢰를 잃고 있다. 일부 은행의 파생결합상품(DLS·DLF) 대규모 손실에 이어 라임자산운용의 펀드 환매 중단 사태까지 겹치면서다. 이번 파생결합증권(DLS) 사태의 재발 방지 및 신뢰 회복을 위한 대책 마련 움직임도 분주하다.


최근 발생한 사모펀드 사태를 바라보는 원인을 둘러싸고는 이해당사자 간 시각은 다소 엇갈린다. 상품 설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불완전판매’가 사태의 핵심이라는 게 금융당국의 시각이라면, 금융사들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불확실성’에 기인한 예기치 못한 돌발 악재를 주된 원인으로 돌리며 억울해하는 분위기다. 반면 금융노조는 금융당국의 ‘금융규제 완화’ 및 금융 노동자들에 대한 성과주의 압박을 근본 원인으로 내세우고 있다.


조만간 사모펀드 종합방안 발표
다만 이번 사태가 고객이 아닌 판매 수수료 중심의 단기 성과주의에 기인했다는 인식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각 은행들이 저마다 자산관리(WM) 영업의 초점을 고객 수익률 중심으로 바꿔 나가겠다고 공언하고 나선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그동안 예대마진 위주의 대규모 이익을 놓고 수익 다변화를 강조해 온 금융당국의 입장도 일부 변화가 감지된다. 최근 은성수 금융위원장은 “예대마진으로 돈을 버는 것이 은행의 전통적인 역할”이라며 “그러나 매년 경영 실적이 나올 때마다 은행이 이자 장사로 돈을 번다는 비판이 나오다 보니 이자가 아닌 것으로 수익을 내다가 그런 것 아니겠나”고 반문했다.


다만 은 위원장은 감독 소홀과 함께 사모펀드에 대한 규제 완화도 영향을 미쳤다는 세간의 비판을 수용해 조만간 사모펀드 종합방안을 내놓겠다는 계획을 밝히기도 했다. 대규모 고객 손실을 초래한 시중은행들 역시 최고경영자(CEO)인 은행장 명의의 사과문 발표와 함께 내부 통제 방안 마련에 적극 나서고 있다.


독일 국채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손실로 거센 비판을 받고 있는 우리은행은 일부 확인된 불완전판매에 대한 ‘조속한 배상’과 함께 자산관리 영업 체계, 인프라, 영업 문화, 핵심성과지표(KPI) 전반에 걸친 ‘핀셋 혁신’을 약속했다. 먼저 외부 전문가로 구성된 상품선정위원회를 구성하는 한편, 현재 WM그룹과 신탁연금그룹의 자산관리 업무를 상품 조직과 마케팅 조직으로 분리하기로 했다. 상품 선정 과정에서부터 객관성을 확보해 상품의 판매 수익에만 매몰되지 않도록 하겠다는 것이다.


상품 판매 단계에서도 프라이빗뱅킹(PB) 전담 채널 확대 및 PB 검증제도를 신설하고 채널과 인력별로 판매 가능 상품에 차등을 두기로 했다. 특히 DLS·DLF처럼 원금손실형 상품의 경우 고객별·운용사별 판매 한도를 두기로 했으며, 이런 내용의 체계가 마련될 때까지 초고위험 상품 판매를 중단한다는 방침이다.


이후 사후관리 단계에서는 자체 검증→리스크 검증→준법 검증의 3중 통합 리스크 관리 체계를 구축하고, 고객 사후관리 강화를 위한 ‘고객케어센터’도 신설하기로 했다. 또 유선 외에 온라인 해피콜을 도입해 고령 고객 등 금융취약계층에 대해서는 판매 즉시 해피콜을 의무화하는 등 불완전판매 방지 시스템도 추가로 마련키로 했다.


우리·KEB하나銀 자체 혁신안 발표
판매 확대 중심의 영업 문화 역시 대대적인 손질에 나선다. 우선 ‘투자 숙려 제도’와 ‘고객 철회 제도’ 도입을 통해 고객의 자기결정권을 강화하기로 했으며, 어려운 용어를 최대한 배제하고 쉬운 용어와 그림, 표 등을 활용해 상품 구조에 대한 이해를 돕기로 했다.


영국 이자율스와프(CMS) 금리에 연동된 DLF 손실로 물의를 빚은 KEB하나은행도 자산관리 업무 혁신안을 발표했다. 혁신안은 크게 불완전판매 원천 차단을 위한 프로세스 혁신, 고객 중심의 영업 문화 확립, 자산관리 역량 강화 등 세 갈래로, 우리은행과 마찬가지로 고객 신뢰 회복에 방점이 찍혔다.


세부 항목별로는 불완전판매 방지 방안으로 투자 상품 리콜제(책임판매제도), 고위험 상품 판매 후 전문가 리뷰, 완전판매 프로세스 준수를 위한 전산 시스템 개발, 딥러닝 인공지능(AI) 기술을 활용한 필체 인식 시스템 도입, 상품 도입 절차에 리스크 관리 강화 등 5가지가 제시됐다.


여기에 내부적으로 프라이빗뱅커(PB) 평가에서 투자 수익의 배점을 대폭 강화하기로 했으며, ‘몰빵 투자’를 막기 위해 고객의 전체 금융자산에 대한 고위험 투자 상품 한도를 설정하는 맞춤형 포트폴리오를 지원하기로 했다. 추후에는 고객 수익률 평가를 일반 영업점으로 확대 시행하고 불완전판매에 대한 KPI를 개선하는 등 고객 중심의 인사 평가 제도를 운영한다는 방침이다. 더불어 자산관리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투자 전략의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손님투자분석센터’를 설치하고, 개인금융, 기업금융, 글로벌금융, 투자금융(IB) 등 금융 전반에서 고도의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PB의 선발 기준과 교육 과정을 확대해 나가기로 했다.


한편, 이번 DLS·DLF 사태에서 자유로운 신한은행의 경우 이미 올 하반기부터 사모펀드 판매가 많은 일부 PB센터에 한해 KPI 제도를 개편·적용해 오고 있다. 대상은 최상위 PB 브랜드인 프리빌리지(PVG)센터로, 현재 신한은행은 강남과 강북에 각각 한 곳의 PVG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은행 측은 올해 운영 성과를 바탕으로 고객 수익률 중심의 KPI 제도를 점차 확대해 나간다는 방침이다.


이와 별도로 신한은행은 투자 상품 출시 및 판매 전략과 관련해 ‘투자상품협의회’와 ‘투자상품위원회’ 등 최상위 의사결정 기구를 두고 있는데, 두 기구는 각각 투자 상품 개발을 총괄하는 IPS본부장과 신한금융 계열사 자산관리 전반을 총괄하는 WM그룹장이 위원장을 맡아 매분기 1회 이상 회의를 진행하고 있다. 특히 투자상품위원회는 투자 상품의 유형별, 지역별, 기초자산별 쏠림 방지는 물론, 투자상품협의회에서 선정, 발의된 안건에 대해 최종 의결함으로써 투자 손실 방지를 위한 이중의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다.


KB국민은행도 수익률 중심의 KPI 개편 등 금융상품 판매·서비스 체계를 일부 개선하기로 했다. 또한 투자 상품 판매심의 단계를 기존 3단계에서 4단계로 확대하고 투자 상품 전문가로 구성된 사전협의체를 운영하는 등 심의 절차를 강화한다는 계획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74호(2019년 11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