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ecial] 흔들리는 경제, ‘언택트’여야 산다

[한경 머니=공인호 기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지구촌 경제 생태계를 뒤흔들고 있다. 글로벌 경제를 지탱해 온 세계가치사슬(GVC)의 붕괴와 함께 그동안 우리가 당연하게 여겨 왔던 일상의 질서까지 송두리째 뒤바꿔 놨다. ‘언택트’ 현상도 코로나19로 가속화된 대표적인 변화 가운데 하나다. 일상의 크고 작은 변화는 경제와 산업구조의 급격한 변화와 혁신을 불러오기도 한다.


코로나19발(發) ‘사회적 거리 두기’가 불러온 일상의 변화는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벅찬 수준이다. 우리 주위의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해도 과하지 않을 정도다. 우리가 불편함을 무릅쓰고 일상의 변화를 받아들이는 가장 큰 이유는 ‘안전’이지만, 이 과정에서 기업들로선 ‘생존’이 달린 절박한 문제로 비화하기도 한다. 우리의 경제·산업구조가 코로나19 이전과 이후 시대로 양분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물론 코로나19는 시기의 문제일 뿐 언젠가는 종식될 가능성이 크다. 세계 각국이 코로나19를 겨냥한 바이러스 백신과 치료제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가운데 과거 흑사병과 스페인독감, 신종플루와의 전쟁도 결국에는 막을 내렸다. 하지만 현재의 코로나19 사태가 이전과 다른 점은 ‘4차 산업혁명’의 혁신이 진전되는 과정에서 발생했다는 점이다. 경제·산업구조에 크고 작은 변화를 초래해 온 4차 산업혁명과 우리의 생활양식을 완전히 뒤바꿔 놓은 코로나19 사태가 맞물리면서 변혁의 파고가 갈수록 거세지고 있는 것이다.

[special] 흔들리는 경제, ‘언택트’여야 산다

‘홈코노미 시대’ 본격화
코로나19가 불러온 일상 속 가장 큰 변화는 ‘언택트’ 현상이다. 언택트는 부정 접두사 ‘un’과 접촉을 의미하는 ‘contact’의 합성어로 무인결제 및 비대면 소비를 선호하는 사회·경제적 현상이다. 정부 주도의 ‘사회적 거리 두기’와도 일맥상통한다. 체감도 측면에서 가장 큰 변화는 홈코노미(home+economy)의 본격화다. 가장 안전한 내 생활 공간이 소비생활의 중심이 됐고, 일터와 생활 공간의 경계가 모호해지며 재택근무도 확산되고 있다.


당장은 코로나19의 확산을 막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지만, 생산성 저하 등 재택근무를 둘러싼 부정적 인식이 크게 해소된 데다 클라우드 기술의 보편화로 원격근무가 가능해진 것도 재택근무 확산에 일조했다. 이미 SK그룹을 비롯해 상당수 기업들이 ‘스마트 워크’ 체제를 도입했고, 사무실 인력과 재택근무 인력을 분리해 운영하는 분산근무제를 운영하는 기업들도 늘어나고 있다. 재택근무 수요가 증가하면서 원격접속, 화상회의, 팩스, 문자 서비스 등의 재택근무 통합 패키지도 속속 출시되고 있다.


이에 더해 국내 대표 정보통신기술(ICT)기업인 카카오와 네이버, SK텔레콤, 넷마블 등은 간헐적 재택근무와 유연근무제를 내재화하려는 움직임에도 나서고 있다. 사실 재택근무는 미국과 유럽 일부 나라에서는 정보기술(IT) 기기를 활용한 일반적 업무 형태로 자리 잡은 지 오래다. 국내 역시 일부 기업들이 직원들의 ‘워라밸(work & life balance)’ 보장을 위해 유연근무제를 속속 도입하면서 재택근무 활용도가 높아졌지만, 코로나19 사태가 홈코노미 확산의 불쏘시개 역할을 하고 있다.


언택트 현상은 채용 시장으로 확산될 조짐이다. 많은 기업들이 채용 계획을 줄줄이 연기한 가운데 카카오, LG전자, 뱅크샐러드 등은 면접 절차를 화상으로 대체했고, 삼성그룹과 SK그룹도 대규모로 진행해 온 채용설명회를 온라인으로 대체하는 방안을 확정했다. 특히 SK이노베이션은 화상면접 이후 필기전형까지 온라인으로 치루는 ‘언택트 채용’을 진행해 눈길을 끌기도 했다.


금융권에서는 신한은행이 디지털·ICT 및 기업금융 분야에 한해 언택트 수시채용을 실시하기로 했다. 신한은행 역시 온라인으로 접속해 질문에 답하고 미션을 수행하는 인공지능(AI) 역량평가와 실무자 화상면접을 실시하는 등 전 과정을 비대면으로 진행한다. 이 같은 채용 방식은 코로나19 사태에 기인한 영향이 크지만, 이미 국내 주요 기업들이 전사적으로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DT)을 추진해 왔다는 점에서 언택트 채용의 확산세는 더욱 빨라질 것으로 보인다.


실제 구인구직 매칭 플랫폼인 ‘사람인’이 국내 기업 372곳을 대상으로 온라인 채용 전형 도입을 조사한 결과, 전체의 31.2%가 현재 온라인 채용 전형을 진행 중이거나 도입할 계획이 있는 것으로 답했다. 특히 온라인 채용 진행의 주된 이유로 ‘지원자들의 부담을 줄여 주기 위해서’라는 답변이 45.7%로 ‘코로나19 확산의 영향’(37.2%)보다 많은 가운데, 젊은 층의 높은 온라인 활용도(31.9%), 관리 편의(19.8%), 비용 절감(15.5) 등의 순으로 집계돼 기업들 역시 온라인 채용에 대한 장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special] 흔들리는 경제, ‘언택트’여야 산다

진화를 거듭하는 언택트 소비
온라인 유통 시장의 급격한 성장세도 코로나19가 불러온 커다란 변화 중 하나다. 주로 젊은 층의 활용도가 높았던 온라인 경제활동은 정부 주도의 ‘사회적 거리 두기’를 계기로 중장년층으로 빠르게 확산하는 모습이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지난 2월 온라인 유통업체 26곳의 전체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4%나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이는 2016년 관련 통계 작성 이후 최대 폭이다. 반면 같은 기간 대형 마트, 백화점 등 오프라인 매출은 7.5% 감소한 것으로 집계됐다.


다만 대형 마트와 백화점 역시 고가의 가구와 가전, 신선식품의 온라인 매출의 신장세는 지속되고 있다. 신세계백화점의 2월 온라인 가전과 침대 매출은 각각 25%, 148% 증가했는데, 특히 신선식품은 380%가량 폭증한 것으로 집계됐다. 과거와 달리 제품의 가격대와 상관없이 온라인 쇼핑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도 ‘코로나19의 팬데믹(세계적 대유행)화에 따른 산업별 영향’ 보고서를 통해 언택트 소비가 불필요한 대면 접촉을 최소화하는 새로운 구매 패턴으로 자리 잡을 것으로 내다봤다. 보고서에 따르면 코로나19 사태 이후 생필품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비율과 택배 물동량은 30% 가까이 급증한 것으로 나타났는데, 연구소 측은 온라인 배달 서비스(음식, 음식료품) 침투율이 지난해 8.7% 수준에서 올해 14.8%로 2배 가까이 성장할 것으로 예상했다.


연구소 관계자는 “미국 아마존의 경우 최근 언택트 기술 중 하나인 무인매장 기술을 활용한 식료품점을 오픈했는데, 이를 통해 관련 기술을 상품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며 “코로나19 확산으로 언택트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국내에서도 관련 변화가 가속화될 것이다”라고 전망했다.


유통·서비스업체뿐 아니라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고 있는 제조업체들도 언택트 기술을 활용한 판로 확보에 적극적이다. 최근 현대기아차는 4세대 쏘렌토와 7세대 아반떼를 국내외 포털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최초로 공개해 눈길을 끌었으며, 해외 브랜드 역시 온라인 주문 시 가격을 대폭 할인해 주는 이벤트가 잇따르고 있다. 또 삼성전자와 LG전자는 언택트 트렌드를 반영해 영화, 스포츠 등 다양한 콘텐츠업체들과의 제휴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

[special] 흔들리는 경제, ‘언택트’여야 산다

언택트 바람이 불러온 ‘명과 암’
이처럼 언택트가 일상을 뒤바꾸는 거대 트렌드로 급부상하면서 관련 산업에 대한 관심도 고조되고 있다. 대표적인 언택트 산업으로는 인터넷, 클라우드 컴퓨팅, 이커머스, 온라인 교육, 원격의료 등이 거론된다. 특히 트렌드 민감도가 높은 대형 마트의 경우 자율계산대를 증설하고 있으며, 오프라인 매장 운영이 불가피한 프랜차이즈업체는 무인 결제 시스템인 키오스크 렌탈을 확대하는 등 기기 제작 및 결제 시스템 관련 업계의 수혜도 기대되고 있다.


반면, 한때 4차 산업혁명을 이끌 혁신 모델로 꼽혀 온 ‘공유경제’는 코로나19 사태로 존폐의 기로에 선 모습이다. 재택근무의 확산은 ‘위워크’ 등 공유 오피스 시장의 위축을 가져왔고, 세계 각국의 이동 제한령은 ‘에어비엔비’ 등의 숙박 공유 산업에 직격탄이 되고 있다.


다만 공유경제에 대한 전망은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목소리가 엇갈리고 있다. 일각에서는 코로나19 이후 일상에서 공유경제라는 개념을 찾아보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암울한 전망을 내놓고 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독립성’ 보장이 가능한 공유경제는 앞으로도 유망하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실제 코로나19 사태 이후 ‘나 홀로’ 즐길 수 있는 공유 자전거와 대면 접촉을 최소화한 등산, 캠핑 등 ‘솔로 액티비티’가 인기를 끄는 것도 이런 관측에 무게를 싣는다.


‘숙박 공유’라는 부정적 시각을 불식시키기 위한 국내 업체들의 발 빠른 대응도 이어지고 있다. 여가 플랫폼회사 ‘야놀자’가 개발한 클라우드 기반의 호텔, 객실 관리 시스템 솔루션인 ‘와이 플럭스(Y FLUX)’의 경우 체크인부터 체크아웃까지 비대면, 비접촉으로 가능하도록 지원하고 있는데, 객실키 역시 QR코드를 이용해 수령할 수 있도록 했다.


국내 주요 리조트 호텔들 역시 언택트 휴식을 강조한 패키지 상품들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 제주신라호텔은 다른 투숙객과의 접촉을 최소화하며 삼림욕을 즐길 수 있는 패키지 상품을 출시했고, 워커힐 호텔앤리조트도 객실에서 식사까지 할 수 있는 ‘인룸’ 패키지 상품을 출시해 투숙객 감소에 적극 대응하고 있다.

[special] 흔들리는 경제, ‘언택트’여야 산다
코로나19의 직격탄을 맞은 미술관과 갤러리도 신기술을 활용한 혁신에 적극적으로 나서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관람객들이 단독으로 전시를 볼 수 있는 온라인 사전예약제를 운영하는가 하면, 전시장 방문을 꺼리는 관객들을 위해 가상현실(VR) 기술을 활용한 영상 콘텐츠도 제공하고 있다.


또 코로나19로 휴관 중인 국립현대미술관은 유튜브 채널을 활용한 작품 설명회를 진행하고 있으며, 하반기로 예정된 일부 전시회는 VR 영상으로도 제작한다는 방침을 정했다. 서울시립미술관도 소셜미디어 활용을 대폭 확대하는 한편, 미술관 소장품 소개 및 교육 프로그램의 생중계 진행을 계획 중이다. 아시아 최대 미술 장터로 꼽히는 아트바젤 홍콩은 디지털 플랫폼 ‘온라인 뷰잉룸’을 마련했으며, 아라리오갤러리, 학고재갤러리 등 국내 주요 갤러리들도 해당 플랫폼을 활용해 출품작을 소개할 예정이다.


[본 기사는 한경머니 제 180호(2020년 05월)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