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을 만든 고전들_열세 번째 이청준 ‘눈길’

모두가 가난했던 1970년대 한국 사회, 따뜻한 마음은 얼음장처럼 굳어버렸다. 부모를 등지고 홀로 지내야 했던 청춘의 시간에 대한 서러움, ‘눈길’의 ‘나’가 보여주는 이 가난한 마음은 해방 후 태어난 세대들이 공유하는 마음의 생태학이다.
[GREAT TEACHING] 허기와 가난의 고향, 그리고 어머니
1970년대 지붕 개량 사업이 전국적으로 전개되던 그 즈음, 한 노인의 마음이 바빠지기 시작한다. 노인이 살고 있는 동리의 태반이 초가지붕에서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잇몸이 주저앉았을 때에도, 그리고 치질로 배변이 시원치 않을 때에도 꿈쩍 하지 않던 그이지만 지붕을 개량하는 일만큼은 유독 마음이 쓰인다. 물론 노인도 이 일이 쉽지 않다는 것쯤은 안다. 초가지붕을 버티고 있는 엉성한 흙기둥으로는 슬레이트 지붕을 떠받치기 힘들다는 얘기를 익히 들어서다. 그렇지만 노인의 마음속에서 계속 똬리를 틀고 있는 것은 ‘그렇지만, 그렇지만’ 하며 지붕을 개량하고 싶은 마음이다. 그 어느 것에도 혹하지 않던 노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마음이 쉽게 가라앉지 않는다.

그러던 어느 날 아들 내외가 노인을 찾아온다. 지붕 개량과 상관없이 어머니를 뵈러 온 것이다. 물론 이 아들은 언제나 맘속에서 어머니를 ‘노인’이라고 칭한다. 어머니를 어머니로 부를 수 없는 다른 사정이 있어서가 아니라 어머니에 대한 오래된 감정 때문이다. 이제는 번듯한 직장을 가지고 결혼까지 한 중년의 남자이지만, 이렇게 살아내기까지 인생이 만만치 않았다. 아니, 죽을 만큼 힘들었다. 소년시절 집안에 큰형이 있기는 있었지만 매일 매일 주사와 주벽으로 집안의 재산을 몽땅 팔아 해치웠고 목숨을 부지하지 못한 채 이생의 인연을 끊어냈다. 한국전쟁에서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렇게 죽도록 육신에 술을 퍼붓는 형의 심정과 사정을 이해해줄 수 없었다. 자신 또한 겨우 어린 학생일 뿐이었다. 그 누구도, 아니 어머니도 자신에게 해준 것이 없었다. 그러므로 그 어느 누구도 자신에게 요구할 수 없다고 자꾸 되뇐다.


자식을 지켜주지 못한 늙은 어미의 설움
그런데 아내가 자꾸 ‘노인’에게 옛날 일에 대해 물어본다. 이미 묻어버린 이야기. 고향집에서 보낸 마지막 날의 이야기다. 먼 친척 집에서 자신이 고등학교를 다닐 때의 이야기다. 어머니로부터 한번 집에 들르라는 짧은 편지가 왔다. 편지를 받은 순간부터 그는 심장이 콩닥콩닥 하며 불안했다. 어머니가 편지를 보낸 것은 뭔가 일이 터졌다는 신호이기 때문이다. 버스가 흙먼지를 뿌옇게 날리며 제 갈 길을 가버리고 난 뒤에도 그는 쉽게 집 쪽으로 선뜻 발을 내밀지 못했다. 무슨 일일까. 더 이상 터질 일도, 벌어질 일도 없는데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이런 마음도 한순간, 집 안이 여전히 예전 모습 그대로다. 마당도 마루도 깨끗하다. 한 칸짜리 방도 여전하고, 그렇게 여전히 그대로인 집 안의 모양새를 두루두루 둘러보며 조마조마했던 마음을 다독여 놓았다. 특별한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어머니는 그렇게 한 칸짜리 집에서 여전히 제 한 몸 간신히 가누면서 살아가고 있지 않은가. 그렇게 안도하며 어머니의 저녁상을 받아 어머니와 한 끼를 나누었다. 내일이면 나는 나대로 어머니는 어머니대로 원래 그곳으로 돌아가서 살아가면 될 것이다. 그런데 뭔가 이상하기도 했다. 밥상이 너무 가지런한 건 그렇다고 하지만, 옷 한 벌 허투로 놔둔 것이 없어 불안하기도 했다. 그런 마음도 잠시 그 이불 한 채를 펴고 어머니와 누워 하룻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해가 아직 뜨기 전에 어머니와 집을 나섰다. 밤새 내린 눈으로 온 세상이 온통 하얀 눈길을 어머니와 걸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된 일이지만 집은 이미 다른 사람 손에 넘어간 상태였으며, 외지에 나가 있는 어린 아들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 없어 집주인에게 하루 말미를 얻은 뒤 집 안의 유일한 가구인 옷궤를 가져다놓은 채로 아들을 기다렸다는 얘기다.

그 후 그는 돌아갈 집도, 그리고 어머니의 품도 잃었다. 홀로 그 청춘의 고된 시간을 견뎌냈다. 혼자서 고단한 운명과 대적하는 동안 그 어느 누구도 자신의 옆자리에 있어 주지 않았다. 한없이 원망스러웠다. 집안을 거덜 낸 형님이 미웠고, 그런 형에게 휘둘려 집안의 가산을 탕진한 어머니도 원망스러웠다. 그러므로 노인은 그 어떤 것도 자신에게 요구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이 험한 세상 속에 자신을 그대로 내버린 것, 그 원망이 켜켜이 쌓여 있다. 그래서 그는 어머니를 노인으로 부르며 어머니에게 따뜻한 말 한 마디 건네지 않는다. 원망과 설움, 미움과 애틋함의 그 감정의 항아리가 터질까 조심스럽기만 하다. 그럴 때마다 ‘나는 노인에게 빚진 것이 없다’는 말만 되풀이한다.

그래서 어머니가 ‘나’에게 어떤 요구도할 수 없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가. 어린 아들이 어떻게 살아왔는데…. 그런데 오늘따라 어머니의 말이 길다. 아니 노인의 말이 너무 길어지고 있다. “그래, 그때 어머님 마음이 어떠셨어요?”라고 묻는 아내의 얘기에 “팔린 집이나마 거기서 하룻밤 저 아그를 재워 보내고 싶어 싫은 골목 드나들며 마당도 쓸고 걸레질도 훔치며 기다려온 에미였는디, 더운밥 해 먹이고 하룻밤을 재우고 나니 그만 해도 소원은 풀린 것 같구나”라는 말. 익히 알고 있는 말이다. 이미 ‘나’도 어느 정도는 알고 있는 그 얘기다. 방문 밖으로 잠시 나와 있던 그는 묻어버린 그 끈끈한 얘기가 나올까 봐 심장이 터질 듯하다. 그러면서 ‘어머니에게 빚진 것이 없는데’라는 말을 자꾸 되뇌어본다. 자신과 다르게 방 안에서 들려오는 어머니의 목소리는 그런 떨림이 없이 옛날 이야기하듯 차분하다. 그럼에도 노인은 온통 눈길 위에 또렷하게 남아 있는 발자국 얘기에서 쉽게 빠져나오질 못한다. 그렇게 한참을 머뭇거리다가 하는 말, 그때의 기억. 두 개의 발자국을 보면서 “내 자석아, 내 자석아, 너하고 둘이 온 길을 이제는 이 몹쓸 늙은 것 혼자서 너를 보내고 돌아가고 있구나”라는 말을 꺼내놓는다. 그러면서 “그 아침 동 터 오르는 눈길 위에 햇빛이 한없이 부끄러웠다”고 말한다. 집을 잃어서도, 돌아갈 집이 없어서도 아니라 ‘내 자석’을 지켜주지 못한 늙은 어미의 설움 때문이다. 그가 미처 알지 못했던 것, ‘내 자석’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이다. ‘노인’의 마음이 아니라 ‘어머니’의 마음으로 지붕 개량을 생각하고 있던 것, 어머니의 장례를 치르러 온 아들이 묵을 방 한 칸 없어 다시 떠돌 것을 염려하고 있는 것이다. 다시 그 예전의 상처를 반복할까 봐 걱정하는 어머니, 어느새 늙어버린 아들은 이런 말과 감정이 힘들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그 시절의 허기
이미 중년에 접어든 이 남자, 팍팍한 삶 속에서 외로웠고 그래서 힘들었다. ‘빽’과 연줄이 난무하는 1970년대 한국 사회 속에서 ‘따뜻한 마음’은 얼음장처럼 굳어버렸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그래서 피도 눈물도 없이 살았으며 앞으로도 그렇게 살아갈 것이다. 그러나 그런 그가 자꾸 반복하는 ‘빚이 없다’라는 말은 조금은 안쓰러워 보인다. ‘빚 없다’는 다짐은 실상 그가 무엇을 원하고 기다렸는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간절함의 다른 이름일 뿐이기 때문이다. 부모를 등지고 홀로 지내야 했던 청춘의 시간에 대한 서러움, 소설 ‘눈길’의 ‘나’가 보여주는 이 가난한 마음은 해방 후 태어난 세대들이 공유하는 마음의 생태학이다. 허기와 가난으로 늘 앞을 향해 돌진하며 성장했던 이들, 지독하게 가난했던 그 시절의 허기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어쩌면 단지 배고픔만의 문제는 아닐지도 모른다. 이 웅크린 마음들의 허기가 더 크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어쩌면 그들이 걸어갔던 그 차갑고 험난한 길 속에는 이들을 생각하며 함께 걷고 있었던 누군가가 있었을지도 모른다.

이미 지나간 역사라서 잠시 잊고 있었다면 그 시절 같은 길을 걸었던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어보아도 좋을 일이다. 아마도 ‘내 자석’이 타고 간 버스를 멀리서 지켜보던 누군가가 있었을 것이고, 또 어쩌면 말간 햇살 속의 시린 눈들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아들과 어머니가 걸었던 눈길, 혹은 무수한 사람들이 홀로 걸었다고 생각하는 그 길은 생각만큼 외롭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지독히 배고팠고 또 그만큼 외로웠지만 누군가가 그 사실을 아직도 가슴 아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아마도 그럴 것이다.

※이 글에는 ‘눈길’의 저본이 된 ‘새가 운들’의 내용이 일부 포함돼 있다.


박숙자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