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라! 더 높은 곳을 향해

경사면을 자유자재로 오르내리는 다이내믹한 움직임, 온몸을 이용해 목표 지점까지 도달했을 때의 성취감. 만성피로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직장인과 자신감을 잃어버린 중년들이 ‘암벽’에 매달리는 이유다. 실내 운동은 재미가 없다는 편견을 부숴주는 클라이밍.

일단 한 번 도전해보시라.
[HEALTHY LIFE] 아찔·짜릿 스포츠클라이밍의 세계
1월 5일 서울 성동구 성수동에 위치한 K2클라이밍&피트니스센터(C&F) 내 실내 암벽장, 로프에 몸을 묶은 채 올려다보기만 해도 아찔한 12m 높이의 벽에서 인공 손잡이(홀드)를 잡고 한 발 한 발 중력을 거슬러 올라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흡사 ‘스파이더맨’을 연상케 한다. 실내에서 즐기는 익스트림스포츠클라이밍이 최근 인기를 더하고 있다.

경기도 의정부에 거주하는 김영미(47) 씨는 10년 차 베테랑 클라이머다. 젊은 시절부터 등산을 좋아했던 김 씨는 남편의 사업 실패로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우울증에 시달렸지만 암벽등반을 하고부터 건강을 되찾았다. 그는 “오로지 목표 지점 한 곳만 바라보고 격렬하게 몸을 움직이다 보면 머릿속에 잡념이 없어진다”며 “전신운동을 하니 살이 빠지는 것은 물론이고 정신적인 치유에도 상당한 도움을 받았다”고 말했다.
K2클라이밍&피트니스센터 내 실내 암벽장에서 클라이머들이 운동하는 모습.
K2클라이밍&피트니스센터 내 실내 암벽장에서 클라이머들이 운동하는 모습.
정보기술(IT)업체를 운영하는 박종억(59) 씨 역시 2년 전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스포츠클라이밍을 시작한 이래 지금은 일주일에 2~3번씩 실내 암벽장을 찾는 마니아가 됐다. 클라이밍을 위해 몸을 날렵하게 만들어야 했는데, 그 덕분에 술, 담배도 끊을 수 있었단다. 그는 “골프, 수영, 테니스, 헬스 등 그동안 안 해본 운동이 없지만 스포츠클라이밍만큼 자신감과 정복감을 느끼게 해주는 운동은 없었다”고 말하며 엄지를 치켜세웠다.

스포츠클라이밍은 산에서 즐기던 암벽등반을 실내로 끌어들인 운동이다. 경사벽(90도 이하), 수직벽(90도), 오버행 벽(90도 이상)처럼 암벽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합판 등의 구조물에 홀드를 설치해 놓고 손과 발만을 이용해 벽면을 따라 이동하는 방식이다.
[HEALTHY LIFE] 아찔·짜릿 스포츠클라이밍의 세계
1976년 구소련에서 최초로 열린 속도등반(speed climbing)대회를 본떠 1985년 이탈리아 아르코에서 국제클라이밍대회가 열렸고, 이를 계기로 스포츠클라이밍에 대한 관심이 점차 확산됐다. 우리나라에는 스포츠클라이밍 부문 여자 세계 랭킹 1위인 김자인(더 자스산악회) 선수가 10여 년 전부터 국내 대회를 휩쓸면서 클라이밍 마니아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서형찬 K2C&F 팀장은 “국내에 실내 암벽장만 약 200개, 동호인 수도 10년 전에 비해 급격하게 늘어 200만 명에 육박한다”며 “남녀노소 구분이 없지만 40~50대 여성 수강생이 가장 많다”고 말했다.


‘삼지점’ 자세로 온몸 근육 고르게 발달, 치매 예방에 도움
스포츠클라이밍의 매력은 무궁무진하지만, 무엇보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모든 신체 부위를 사용하는 온몸운동이라는 점에서 많은 중년들이 도전한다. 클라이밍의 기본은 ‘삼지점’ 만들기. 벽 위에서 몸을 삼각형으로 만들며 이동해야 한다. 즉, 양손을 모으고 다리를 벌려 손과 다리가 삼각형이 되도록 자세를 만들고 왼손을 옮겨 다른 쪽의 홀더를 잡고 왼발과 오른발을 옮긴 뒤 오른손을 왼손이 있는 홀더로 옮기는 식이다. 이 삼지점 자세를 유지하며 암벽을 타기 위해서는 어깨와 팔, 배에 고르게 힘이 들어간다. 헬스가 특정 부위의 근육을 키운다면 클라이밍은 고르게 전신 근육을 만들어 균형 잡힌 몸매를 만들 수 있는 것이 특징이다. 실내 스포츠 가운데 스릴과 정복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운동이기도 하다. 10여 분간 실내 암벽등반을 마치고 내려온 50대 클라이머 이호정 씨는 “처음 시작할 때는 공포감이 컸는데, 지금은 오히려 짜릿함을 즐기게 됐다”며 “벽을 오를 때의 긴장감, 스트레스, 불안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성취감과 자기 만족감이 배가된다”고 말했다.

스포츠클라이밍에는 12.5m 이상의 암벽을 안전장비를 착용한 채 2인 1조가 돼 등반하는 ‘리드’와 4~5m가량의 코스를 안전장비 없이 등반하는 ‘볼더링’, 똑같은 코스를 누가 더 빨리 오르느냐를 겨루는 ‘스피드’등 크게 세 종류가 있다. 리드의 경우 암벽에 설치된 퀵드로라는 고리에 로프를 걸어가며 위로 올라가는 것으로 경기 시간은 6~8분 정도 걸린다. 가장 높은 홀드에 도달하는 선수가 이긴다. 볼더링은 경기당 네다섯 개 정도 코스로 구성되는데 누가 가장 많은 코스를 완등하느냐로 순위를 가린다. 이때 ‘문제’라고 불리는 각 코스의 미션을 깨야 해 순발력과 두뇌 싸움이 필요하다. 서 팀장은 “예전에는 ‘볼더링’을 자연 암장에 나가기 전 연습 코스 정도로 인식했으나 요즘에는 볼더링장이 따로 신설될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며 “볼더링은 루트를 풀기 위해 뇌를 끊임없이 써야 한다는 측면에서 바둑을 두는 것에 비견되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실제 볼더링은 칼로리 소모량이 분당 10kg에 이를 정도로 체력 소모가 크다.

기자가 직접 로프와 안전벨트를 매고 12m 리드벽 등반에 도전했다. 땅에서 올려다볼 때는 자유자재로 벽을 타는 클라이머들이 마치 ‘인간 스파이더맨’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암벽에 올라보니 홀더를 딛고 일어서는 것조차 쉽지 않았다. 5m도 못 가 손에 힘이 빠지고 복부 근육이 당겼다. 10m 정도 오르자 두려움이 엄습했다. 로프에 의지하고, 전문가가 아래에서 확보자 역할을 하고 있었지만 다리는 한없이 후들거리고 등줄기를 타고 내리는 식은땀은 멈출 줄을 몰랐다. 그 순간, 머릿속은 하얘지고 오로지 ‘정상까지 올라가는 것’만이 목표가 됐다. 무사히 마지막 홀더를 디딘 후에 루프를 타고 미끄러져 내려왔다. 몸은 쑤셨지만, 스파이더맨들이 말하는 ‘집중력’과 ‘성취감’이 무엇을 뜻하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초보는 3개월간 스트레칭을 겸한 볼더링 교육을 받으면 본격적인 리드 클라이밍에 도전할 수 있다.
[HEALTHY LIFE] 아찔·짜릿 스포츠클라이밍의 세계
이윤경 기자 ramji@hankyung.com│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