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주의 제왕(The King of Beers)’이라 불리며 미국 맥주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던 버드. 한때 버드와이저를 생산하던 앤호이저부시(Anheuser Busch)는 미국 맥주 시장의 50%를 점유했을 뿐 아니라 세계 판매량 1위의 맥주 회사였다. 그러나 ‘미국의 자존심’ 버드는 이제 미국 기업이 아닌 벨기에의 인베브(InBev)가 소유하고 있다. 2008년, 미국인들의 엄청난 반발 속에 인베브의 적대적 인수전이 시작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전격적으로 인베브로 넘어갔기 때문이다. 세계 1위 기업이 어쩌다 자신보다 작은 인베브에 넘어가게 됐을까. 이 드라마틱한 이야기의 중심에는 앤호이저부시를 지배하던 부시가(家)의 흥망성쇠가 숨어 있다.
[FAMILY BUSINESS CONSULTING] 오너리스크가 불러온 美 맥주 제왕의 몰락
1860년, 에버하르트 앤호이저(Eberhard Anheuser)가 미국 세인트루이스에서 문을 연 앤호이저부시는 그의 아들 거시 부시(Gussie Busch)와 손자인 어거스트 부시 3세(August Busch III)를 거치며 미국 최대 양조 회사로 성장했다. 이들이 만든 버드와이저가 ‘맥주의 제왕’으로 거듭나는 데는 부시 3세의 광고 전략이 주효했다. 그는 회사를 맡은 1977년 이후 13년 동안 일선에서 비즈니스를 완벽하게 통제하며 미국 내 시장점유율을 22%에서 50%까지 끌어올렸다. 누구도 부시 3세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았다. 그는 회사에서 군주처럼 군림했다. 그러나 인간적으로는 매우 폐쇄적이고 괴팍한 경영자였다.

그는 장남인 어거스트 부시 4세를 못 미더워했다. 부시 4세는 늘 아버지 앞에서 위축됐고, 어떤 사안에서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 그러나 후계자로 다른 대안이 없었기 때문에, 2006년 부시 4세가 앤호이저부시의 최고경영자(CEO) 자리에 올랐다. 그러나 부시 3세는 승계 후에도 여전히 회사에 남아 사무실을 지켰고, 자신의 절대 권력을 조금도 놓지 않았다. 그는 아들 위에서 회사를 통제했다. 앤호이저부시의 이사들은 항상 둘 사이의 긴장관계 속에서 눈치를 살펴야 했다.

부시 4세가 CEO가 됐을 당시, 앤호이저부시의 황금시대는 저물어가고 있었다. 세계적으로 맥주 소비가 감소하면서 이미 다른 맥주 회사들은 글로벌 인수·합병(M&A) 등으로 연합해서 적극적인 공세를 시작했다. 하지만 앤호이저부시의 이사회는 ‘우리는 세계에서 가장 큰 양조 회사다. 누구도 우리같이 큰 회사를 인수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는 안이한 생각에 빠져 외부 위협을 감지하지 못했다. 부시 4세는 아버지에 비해 맥주산업에 대한 사고가 글로벌화돼 있었다. 그는 다른 기업과 M&A를 해 해외에 진출하고 규모를 키우려 했지만, 부시 3세의 반대를 통과하지 못했다.

2006년 앤호이저부시는 인베브의 맥주를 미국 내에서 독점 판매하는 파트너십 협상을 시작했다. 부시 3세는 아들을 협상에 내보냈지만 어떤 의사결정권도 주지 않았고, 아들은 아버지를 설득하거나 거부하지도 못했다. 협상은 약 1년 6개월간 지속되다가 결국 결렬됐다. 그러나 인베브로서는 손해날 게 없었으니, 협상 과정에서 앤호이저부시를 속속들이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인베브의 어드바이저들은 부시 3세가 1980년 기업을 상장시킨 후 자신의 지분이 경영권을 장악하기에 미흡한 수준이었는데도 불구하고 경영권 방어를 위한 아무런 조치도 돼 있지 않다는 것을 알고 경악했다. 그리고 가족기업으로 운영됐지만 가족 간에 협조나 협력도 없었고 CEO인 아버지와 아들 관계도 갈등으로 점철됐으며, 이사회도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인베브 이사회는 일사불란하게 인수 계획을 마련했다. 그 결과 150년 역사의 거대 기업이 적대적 인수전이 시작된 지 불과 한 달여 만에 쓰러지고 말았다. 인베브는 기업을 인수한 뒤 사명을 앤호이저부시 인베브(AB InBev)로 바꾸고 즉각적인 인원 감축과 공격적인 자산 매각 등을 통해 유동성 확보에 나섰다. 앤호이저부시의 직원 1400여 명은 하루아침에 실업자 처지가 됐다.


아버지와 아들의 갈등으로 파국
그렇다면 이번에는 인베브로 시선을 돌려보자. 이 다윗 기업은 어떤 강점으로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었을까. 인베브는 2004년 벨기에의 인터부르(InterBrew)와 브라질의 엠베브(AmBev)가 합병해서 만든 가족기업이다. 그런데 이 합병을 주도했던 인터부르의 행보가 주목할 만하다. 그들은 5대를 이어오는 동안 가족들이 소유권을 100% 가지고 있었는데 1988년 아주 중대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 여러 가족들이 경영에 참여하면 서로 이해관계가 달라지고 경쟁하게 되므로, 가족 모두가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한 것이다. 그들은 전문경영인을 채용하는 대신 가족 대표들이 이사회에 들어가 기업을 지배했다. 전문경영인은 외부를 대표하는 역할을 하고, 주요 의사결정은 가족들이 참여하는 이사회에서 이루어졌다. 그 결과 1988년부터 2005년 사이 7명의 CEO가 교체되는 혼란을 겪었지만 회사는 중심을 잃지 않고 더 크게 성장했다.

그들은 세계화 전략으로 이머징마켓, 동유럽, 캐나다 등지의 맥주 회사를 인수하며 공격적으로 기업을 확장해 나갔다. 1998년에는 한국의 오비(OB)맥주를 인수했다가 2009년 앤호이저부시의 인수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오비맥주를 팔고 한국을 떠났다. 2000년에 인터부르는 세계 14개국에서 각국의 1~2위 맥주 회사를 소유한 세계 3위의 맥주 회사가 됐다. 그리고 그해 벨기에 주식시장에 상장했다. 그러나 상장 후에도 전체 지분의 66%는 가족재단을 통해 가족들이 보유했다. 가족주주는 약 70명으로 대부분 창업자의 5, 6대 가족들로 구성됐다.


인베브, 가족 결속으로 효과적인 기업 지배
2000년 이후 인터부르는 세계시장 진출에 더 적극적으로 나섰다. 2004년에는 브라질의 가족기업인 엠베브와 합병해 회사명을 인베브로 바꾸었다. 이로써 그들은 세계 2위의 맥주 회사로 한 단계 올라섰다. 전체 지분은 벨기에 가족이 28.3%, 브라질 가족이 약 24.7%를 가지고 있어 이들 두 가문의 기업지배력이 53%에 달했다. 합병 후 양측의 모든 가족주주들은 향후 20년 동안 가족주주 누구도 주식을 매도하거나 개인적으로 추가 매입을 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골자로 하는 주주협약을 체결했다. 또한 의결권은 벨기에와 브라질 가족이 50%씩 동등하게 나누며, 이사회는 벨기에 가족대표 4명, 브라질 가족대표 4명, 사외이사 4~8명으로 구성하고 의장은 사외이사가 맡았다. 이사회에는 감사, 재무, 인사위원회를 두고, 이사회에서 전략, 마케팅, 세일즈, 회사 설립 및 M&A 등에 관한 주요 의사결정을 하고 있다.

설명으로 알 수 있다시피, 인베브는 벨기에와 브라질 가족들의 결속과 상호협약을 통해 효과적으로 기업을 지배해 왔다. 그리고 마침내 2008년, 앤호이저부시를 인수하며 세계 1위의 맥주 회사 자리에 올라섰다.

앤호이저부시의 M&A 사례가 우리에게 주는 교훈은 무엇일까. 이들은 최고의 제품, 높은 시장점유율,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갖고 있었음에도 왜 인베브의 공격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는가. 앤호이저부시의 실패는 비즈니스의 실패라기보다는 오너의 독단적 경영, 세대교체 문제, 가족문제, 지배구조 문제 등과 같은 ‘인간적 측면의 실패’였다. 그중 가장 큰 문제는 오너의 독단적 경영에 있었다. 그는 지나치게 미국 시장에만 집착했고, 낡은 전략에 빠져 세상의 변화를 수용하려 하지 않았다. 사외이사들은 부시 3세의 결정을 승인해주는 거수기였을 뿐 경영감독이라는 제 역할을 다하지 못했다. 결국 이러한 인간적인 차원의 문제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부정적 시너지를 냈고, 결국 앤호이저부시를 실패로 이끌었다.

앤호이저부시의 사례는 기업이 아무리 최고의 제품, 높은 시장점유율, 최고의 브랜드 가치를 갖췄더라도 가족문제나 세대교체 문제, 지배구조 문제 등을 간과한다면 얼마든지 실패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가족 간의 ‘인간적 신뢰’가 기업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두 맥주 회사의 사례는 우리나라 기업에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김선화 한국가족기업연구소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