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의용 국민대 교수

대기업에서 홍보맨으로 27년간 일하다 생활 커뮤니케이션 연구소를 세웠다.
말하기, 글쓰기 전문가가 돼 명강연자로 이름을 날리더니 지금은 강단에서 학생은 물론 교수를 가르치는 교수가 됐다. 이의용(61) 국민대 교수의 인생 2막이다.
[Second act] 매일 인생 1막처럼
‘누구나 오래 살기 바라지만 아무도 늙으려고 하지는 않는다.’

가톨릭 성인인 베르나르디노의 이 전언은 노년이 우리 삶에 어떤 얼굴의 모습으로 다가오는지를 여실히 보여준다. 젊음이 어떠한 노력 없이도 우리 삶에 다가왔듯이 노년의 주름살도 지난 젊은 날의 과오가 아닌 것이다. 나이 드니 알아주는 사람이 없고 가뭇없이 사라져 버린 지난 영광의 뒤안길만 바라보는 이들이 노년이라면 기자가 만난 이의용 국민대 교수는 60대를 맞은 꾸러기 소년 같았다고나 할까.

성곡미술관 근처 카페에서 만난 이 교수는 커뮤니케이션 전문가다운 시원시원한 언변으로 살아온 지난 이야기를 들려줬다. 육십 평생 세상을 살아온 이야기였지만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가 말한 것들은 ‘현재 진행형’이었으며 다음 챕터를 향해 활짝 열려 있기까지 했다.


“조직을 떠나고 나면 남는 건 내 몸뚱이 하나”
이 교수는 원래 쌍용그룹에서 27년간 홍보맨으로 직장생활을 했다. 1976년 쌍용그룹 생산 공장 총무과에 입사한 뒤 홍보팀으로 스카우트됐다. 홍보팀에서 사보 제작 업무를 맡으며 ‘커뮤니케이션’과의 인연이 시작된 셈이다. 전에 없던 사보를 기획, 제작해 업계에서 ‘사보 선구자’로 주목받기도 했다. 또 “하고 싶은 건 다 해봤다”면서 열정적으로 보낸 27년 직장생활을 자신 있게 갈무리했다. 대기업 홍보맨으로 사보를 열심히 만들다 보니 작가로, 강연자로 서게 됐다. 48세로 남들보다 이른 나이에 직장생활에 종지부를 찍을 때 이미 28권의 책을 써냈다. 회사를 나와서는 생활커뮤니케이션 연구소를 차렸고 지금은 대학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는 교수가 됐다. 인생 2막에 대해 묻고자 인터뷰를 청했지만 기자가 만난 이 교수는 매일 매일 인생 1막의 커튼을 올리는 중이었다. 한 번도 무대의 막을 내려보지 않은 것처럼.


교수님을 ‘생활커뮤니케이션 전문가’라고 하는데 정확히 무슨 뜻인가요.
“우리 삶 자체가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살아가는 데 누군가와 소통 없이 살 수 없잖아요. 그걸 제대로 해보고 싶었어요. 대학에서도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치는 학과가 있지만 이론에만 너무 치우쳐 있어요. 가정, 직장, 학교에서 어떻게 하면 ‘소통’이 잘 될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겁니다. 회사를 그만두고 생활커뮤니케이션 연구소를 차렸던 이유도 돈 벌려는 목적이 아니라 제대로 된 커뮤니케이션을 연구해서 많은 사람들에게 보급하려 했던 것이죠.”


커뮤니케이션이라는 콘텐츠를 강연, 책으로 전달하는 ‘1인 지식기업’이라 할 수 있겠어요.
“요즘 그렇게들 표현하더군요. 1980년부터 사람들 앞에 서서 강의했으니 35년이 됐네요. 제가 가진 걸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싶고 여러 사람들과 공유하기 위함이죠. 직장 다니면서 ‘일 년에 한 권씩 책을 쓰자’ 결심을 했는데 퇴사할 때 28권 책을 냈으니 스스로 약속을 지킨 셈입니다. 그 약속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요.”


직장생활을 하면서 매년 책을 낸다는 게 쉽지 않은데 가능한가요.
“남들 사는 대로 똑같이 살면 불가능하겠죠. 퇴근하고 술 마시러 우르르 몰려다녔다면 책 못 냈을 겁니다. 방패막이 같은 조직도 떠나고 나면 남는 건 제 몸뚱이 하나입니다. 그렇다면 결국 나중을 위해 저 자신을 늘 준비시키는 게 중요합니다. 흔히 최고의 자기개발이 독서라고 하는데 제 생각에는 그보다 더 좋은 것이 저술입니다. 책 한 권 쓰면서 배우는 게 아주 많습니다.”


사보 매뉴얼을 직접 만든 일화 등 당시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사보를 제작해야 하는데 선배들이 전혀 방법을 알려주지 않았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제가 독학으로 익힌 뒤 그 자료를 모아 저만의 자료처럼 만들었습니다. 하나의 매뉴얼 북이 돼서 후배들에게 전해줬어요. 내용이 좋으니 삼성 같은 다른 기업 홍보실에서도 얻어가곤 했죠. 그래서 아는 인쇄소 사장님께 책으로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어요. 후에 제대로 출간하게 되면 사장님께도 이득이니 몇백 권 공짜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게 제가 처음으로 만든 책이 됐어요. 책 안에 사보란 무엇인지, 역할, 편집, 기사 작성법 등을 담았습니다. 후에 총 네 권의 사보에 관한 책을 냈고 그중 한 권은 지금 대학에서 교재로 쓰이고 있습니다.”


직장생활을 열심히 하신 것이 교수님께 커다란 자산이 된 셈이네요.
“사실 저는 노는 기분으로 회사 다녔습니다. 무슨 말인가 하면 회사를 설득해서 저 하고 싶은 걸 다 해봤어요. 사내 행사가 있으면 제가 늘 마이크 잡고 사회를 보고 사내 합창단도 조직해서 지휘도 했어요. 계열사 합창대회도 만들었죠. 회사생활을 보람 있게 하려고 늘 새로운 제안을 하고 끊임없이 시도를 했어요. 월급 받은 만큼 일하면 직업이고 월급 받는 것을 넘어서서 일하면 사명이 됩니다. 직장생활을 잘 해내고 회사에 기여해야 한다는 생각을 늘 했습니다.”


하지만 교수님처럼 열심히 살아온 베이비부머는 불황의 여파로 ‘반퇴 세대’로 몰리고 있는 상황인데요.
“그러니 직장 다니면서 언제 나가더라도 자립할 수 있는 힘을 키워야 합니다. 시대를 잘못 타고 났다거나 운이 없다고 말하는 분들에게는 고깝게 들릴 수 있겠지만 정말 조직생활 열심히 하고 자기 관리를 제대로 했는지 묻고 싶습니다. 그래서 직장에 도움이 되면서도 내 꿈을 이루는 두 가지 접점을 찾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들 좋은 대기업 들어가길 원하지만 자신의 삶은 누구하나 책임져주질 않아요. 자신에게 기회가 왔다 생각하고 일 자체를 승화시켜야 합니다. 조직 내에서 성과를 내는 것은 분명 자신의 인생에도 보탬이 됩니다.”


‘스승의 날 반성문’으로 핫이슈, 진정성이 결국 ‘답’
1992년 1월 세상에 첫선을 보인 쌍용그룹의 사보 ‘여의주’는 지금까지도 업계에서 ‘잘나가는 사보’로 꼽힌다. 기업 홍보, 광고는 일절 배제하고 사회 미담 기사로만 이뤄진 형태의 사보는 혁신 그 자체였고 잘나가던 때에는 26만 부를 인쇄하기도 했다.

“회사를 홍보하지 않고 홍보하는 방법을 생각해보자”는 이 교수의 당시 역발상이 사보의 바이블을 만든 셈이 됐다. ‘따뜻한 특종’만으로 가득 찬 사보 ‘여의주’의 생명력이 이어져 지금까지도 휴먼다큐멘터리 방송작가들의 문의 전화가 끊이지 않는다. 경기가 어려울 때 부서 존폐, 예산 삭감의 칼바람이 가장 먼저 불어 닥치는 곳이 홍보팀이다. 하지만 회사가 어려울 때도 사보만은 걱정 말고 내라는 그룹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받을 정도로 이 교수가 승승장구했던 때다. 하지만 회사생활과 함께 꾸준히 해 온 책 쓰기와 각종 강연을 병행하던 중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다. 또 대학 졸업 후 미뤄 둔 대학교수의 꿈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오십이 채 되지 않은 이른 퇴직을 위해 사무실 책상 서랍에 늘 넣어 두었던 사표를 제출하고 명강연자로, 작가로 길을 닦다 현재는 국민대 교양학부 교수의 옷을 입게 됐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보수적이고 권위적인 곳으로 꼽히는 상아탑 대학의 교수라는 직함은 홍보맨 이의용의 색깔을 덮어씌우지 못했다. 역발상, 모험과 시도, 다르게 생각하기의 대명사 이 교수가 다시 주목받은 것은 2년 전 스승의 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스승의 날 반성문’ 때문이다. ‘학생을 제자가 아닌 수강생으로 대해 온 것을 반성합니다’라고 시작되는 이 반성문은 40가지 잘못을 고백한 글로 대학 사회의 병폐를 고스란히 담고 있어 학생들의 뜨거운 반응과 함께 교수 사회에도 적잖은 경종을 울린 계기가 됐다. 그날 KBS 9시 뉴스 프로그램의 톱뉴스로 방송됐을 정도다.


2년 전 페이스북에 올린 글이 화제였었죠. 왜 올리셨는지 궁금해요.
“아유, 그 글을 올리고 당시에 다른 교수들한테 미안해서 한동안 점심을 학교 밖에서 먹었어요. 그때 올린 ‘스승의 날 반성문’이 200여 개 매체에 실렸으니 말이에요. 그런데 누군가는 먼저 해야 할 일이었어요. 선생님이 먼저 학생을 섬기자는 마음을 표현한 겁니다. 교수들이 아이들한테 ‘요즘 젊은 애들은 선생을 몰라본다’고 말하는데 그런 식으로는 관계에 진전도 없고 소통도 되지 않아요.”


올해 스승의 날은 어떻게 보내셨나요.
“(휴대전화를 꺼내 저장된 사진을 찾다가) 제가 직접 스승의 날 학교 이곳저곳에 붙인 플래카드를 만들었어요. ‘더 뜨겁게 사랑하고 더 잘 가르치겠습니다!’, ‘제자들아, 사랑해! 더 좋은 스승이 될게요!’ 같은 배너를 학생들 보라고 걸었습니다. 스승의 날 교수들이 도리어 학생들에게 먼저 사랑을 표현하면 아이들이 얼마나 좋아하겠어요. 아이들이 찾아와서 ‘저희가 해야 할 말인데 감사합니다’라며 감동하더라고요.”


학생들에게 인기가 많은 교수님이시겠어요. 수업 방식도 기발하고 재밌다죠.
“아이들 이름 부를 때 저는 그 앞에 형용사를 붙여서 부르고 저도 그렇게 부르라고 했어요. ‘아름다운 미화야’, ‘잘생긴 재윤이’ 이렇게 부르다 보니 아이들과 격의 없이 지내게 됩니다. (휴대전화를 꺼내 문자 메시지를 보이며) 며칠 전 학생이 보낸 건데 ‘학생밖에 모르는 이의용 교수님, 늘 창의적인 답변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라고요. 답장으로 ‘내가 살면서 가장 좋은 칭찬을 들었다. 고맙다’고 했어요. 학생밖에 모르는 교수라는 표현이 얼마나 좋습니까. 수업 방식도 체험, 놀이, 게임 위주로 ‘노는 것처럼’ 하는 게 제 신조입니다. 실컷 놀았는데 끝나고 나면 뭔가 느껴지고 배운 것처럼요.”
[Second act] 매일 인생 1막처럼
학생들에게 어떤 것을 가장 중요하게 가르치시나요.
“지금까지 혼날 만큼 혼난 아이들입니다. 늘 상대평가에 시달리고 경쟁만 하던 아이들이죠. 수업시간에 아이들에게 거울을 나눠주고 거울에 비친 자신에게 말을 하라고 하면 몇몇 아이들이 웁니다. 자기 자신에게 미안해서요. 그래서 저는 자꾸 격려하고 칭찬해주려고 해요. 아이들이 늘 못하는 걸로 혼나다 보니 자신을 비하하고 자신감이 없습니다. 이들의 강점을 찾아주고 그것을 키워주도록 옆에서 도와주고 싶어요. 아이들이 섭씨 98도 온도에서 멈춰 있다면 100도가 돼서 끓을 수 있도록 제가 옆에서 돕는 거예요. 그렇게 자신감, 자기 긍정이 있으면 사회에 나가서 직장생활도 잘하게 돼 있어요. 삶에서 본질에 충실하도록 가르치는 겁니다. 어떻게(how)보다 왜(why)가 삶의 방향을 좌우하기 때문이죠. 이건 제 나이 또래에게도 중요한 말이에요.”


결국 자신에 대한 확신, 목적의식이 분명해야겠네요.
“돈 벌려고만 회사 다니면 얼마나 고역입니까. 돈 이상의 의미를 찾아야 안팎으로 발전하는 거죠. 결국 진정성이에요. 제가 말하기, 글쓰기 잘하는 비결을 물을 때 하는 말이 ‘기술적 공부는 소용없다’라고 잘라 말합니다. ‘믿자명친’ 네 가지를 얘기하는데 상대방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돼야 하고, ‘자’기 자신을 스스로 믿고, ‘명’확하게 말하고, ‘친’절하게 말하라고 합니다. 말발이 부족해도 네 가지를 갖추면 말하기, 글쓰기에 성공하는 겁니다. 상대방 마음 헤치지 않고 서로 신뢰가 기초해 있으면 말 좀 버벅거리는 게 대수겠습니까.”


은퇴 이후 인생의 새로운 장을 여는 이들에게도 적용이 될 것 같습니다.
“자기가 지금까지 누려 왔던 걸 내려놔야 합니다. 지우개로 다 지우고 새로 태어났다 생각해야죠. 방송인 송해 씨를 생각하면 됩니다. 나이 아흔이 넘어서도 지금까지 일하시죠. 요즘 50대에 은퇴하는 이들이 많은데 따져보면 앞으로 살날이 40년도 더 남았어요. 과거 인생 1막을 잘 보내서 그걸 활용하면 좋지만 아니라면 다시 1막이라 생각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남과 비교해서 잘하는 걸 찾지 말고 자신이 무엇을 잘하는지 강점을 찾아야죠. 저도 손녀가 있지만 우리 세대가 손주들에게 부끄러운 할아버지가 되면 되겠습니까? 저희 집안에 교수는 제가 처음입니다. ‘우리 할아버지, 학교에서 학생들 잘 가르친대’ 하는 소리 들어야죠.”


기획 박진영 기자│글 이지혜 객원기자│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