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일로에 서 있는 기업을 떠안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비록 아버지가 평생을 바쳐 일궈 온 회사일지라도. 곽계녕 라이마스 대표는 위기의 순간 ‘하면 되지!’ 하는 특유의 근성을 발휘, 수년간의 적자를 단번에 흑자로 전환시킨 ‘젊은 2세’가 됐다.
[Successor]곽계녕 라이마스 대표 “적자 기업 물려받아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죠”
1973년 문을 연 ‘삼일조명’은 우리나라의 1세대 조명 업체다. 창립자 곽세근 전 대표는 일생동안 ‘성실·근면’을 신조로 삼아 온 사업가다. 조명 회사를 운영하던 다른 형제들이 사업을 접는 동안 삼일조명은 서울 원남동에서 묵묵히 ‘실용적인 조명’을 만들어 왔다.

아들 곽계녕 라이마스 대표는 그런 아버지를 ‘무던하신 분’이라고 표현한다. 좋은 일이 생겨도, 어려운 일이 닥쳐도 감정에 큰 기복이 없는 무덤덤한 아버지를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그렇게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던 아버지가 어느 날 갑자기 “사업을 접어야겠다”고 말을 꺼냈으니, 아들은 충격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마침 다니던 건축 회사에서 나와 유학을 준비하던 그는 고민 끝에 가업을 이어가기로 결심, 몇 년 동안의 적자를 흑자로 전환시켰다.

라이마스 사옥에는 간판 두 개가 나란히 걸려 있다. 한쪽에서 보면 삼일(SAMIL), 다른 한쪽에서 보면 라이마스(LIMAS)다. 곽계녕 대표가 취임 후 가장 먼저 심혈을 기울였던 일은 ‘브랜드 리뉴얼’이었다.

“물론 아버지는 싫어하셨죠. 왜 이름을 네 맘대로 바꾸느냐고. 삼일조명의 상호는 창립 당시 가장 높은 건물이었던 삼일빌딩에서 따온 거래요. 우리만을 위한 새로운 이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조명’ 식으로 작명된 일반적인 조명 회사의 상호도 탈피하고 싶었고요. 그래서 생각한 것이 ‘삼일’ 영문명의 순서를 거꾸로 뒤집은 ‘라이마스’예요. 새롭게 태어난다는 의미도 있고, ‘라이트(light)-라이프(life)-라이마스’ 이렇게 운율도 떨어지니 딱이다 싶었죠.”

평소 즐겨 듣던 일본 뮤지션 ‘누자베스(Nujabes)’의 본명이 이름을 거꾸로 한 ‘세바 준(Seba Jun)’이었다는 사실도 힌트가 됐다. 라이마스의 메인 슬로건은 ‘Change your light, change your life’. 이름을 바꿔 라이마스의 인생도 새로운 전환을 맞았으니, 그렇게 잘못된 선택만은 아니었던 셈이다.

수년간 적자가 지속되던 라이마스의 운명을 바꾼 것은 2012년 출시한 ‘에어(Air)’다. ‘Less is more’란 신념으로 탄생한 에어는 라운드 모서리에 알루미늄으로 곡선 처리가 들어간 사각형의 방등. 이후 발광다이오드(LED) 버전까지 추가하며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다. 지금은 펜던
트 등의 판매 실적이 에어를 앞질렀지만, 소위 라이마스의 첫 번째 효자 상품임은 분명하다.

“에어가 젊은 세대에게만 어필할 것이란 제 예상이 완전히 어긋났어요. 남녀노소, 세대와 성별에 상관없이 다양한 분들이 사랑해주셨거든요. 모던하고 미니멀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이죠. ‘라이프스타일’에 대한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고민이 점점 일상이 돼 간다는 뜻이 아닐까요?”

‘One chiar is enough’를 내세우는 핀란드의 가구 브랜드 아르텍(Artek)처럼 라이마스의 신념도 크게 다르지 않다. 하나의 조명을 만들어도 제대로 된 것, 좋은 것을 만들자는 것. 그래서 그는 ‘디테일’에 신경을 쓴다. 일견 비슷비슷한 조명 사이에서 ‘마감’이 차이를 가른다고 믿기 때문이다. 패키지 박스 디자인에 특별히 신경을 쓰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Successor]곽계녕 라이마스 대표 “적자 기업 물려받아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죠”
청개구리 기질이 빛을 발하다
곽 대표가 아버지로부터 사업을 물려받은 것은 2012년의 일이다. 아마 에어의 성공이 후계자로서의 아들을 신뢰하게 된 결정적인 계기가 아니었을까.

“1985년부터 있었던 지금 이 건물, 지하 1층 책상에 앉아 계시던 아버지. 놀러갈 때마다 항상 같은 자리에 같은 모습으로 앉아 계셨었죠. 공휴일에 아버지랑 함께 보낸 기억도 없고, 가업이라지만 조명이 매력적이라고 느껴본 적도 없었어요. 오히려 옆에서 고생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조명만은 하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했었죠.”

1남 3녀 중 막내인 곽계녕 대표는 본인이 ‘고분고분한 막내’는 아니라고 고백한다. 부모님의 말에 “네”라는 대답 대신 “왜?”라는 질문을 즐겨했다. 그 덕분에 그의 성장기는 언제나 모험과 투쟁이었다. 그리고 그런 청개구리 기질은 대학시절, 등록금 400만 원을 들고 떠난 건축기행에서 정점을 찍는다.

“르 코르뷔지에(Le Corbusier)라는 스위스 건축가를 좋아해요. 그런데 대학에 가니 슬라이드로 사진만 주구장창 보는 거예요. 그래서 한 학기 등록금을 들고 직접 유럽으로 날아갔어요. 63일간 매일 하나씩, 가보고 싶은 건물은 다 가봤죠. 특히 라 투레트 수도원(La Tourette)에 들어서자마자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그 아름다운 콘크리트 건축물은 감동적이었죠.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 소중한 경험이죠.”

그렇게 열정적이던 건축학도가 사회인이 돼 건축가로 일할 무렵, 순탄한 줄로만 알았던 아버지의 약한 모습을 보게 된다. 그제서야 진지하게 아버지의 삶을 되돌아봤다는 곽 대표는 본인의 가업승계 과정이 일반적이지는 않았다고 회상한다. 재정적으로 좋은 상황도 아니었고, 시간적으로도 촉박하게 이루어졌기 때문. “만약 삼일조명이 승승장구하는 상태였다면 해외 유명 대학으로 디자인 유학을 다녀왔을 것이다”라고 말하며 웃는 그의 모습에서 약간의 아쉬움이 묻어났다.

“어느 날 잡지를 보는데 패션화보에 우리 조명이 나오더라고요. 길을 가다 음식점에 우리 조명이 걸려 있는 걸 보기도 하고요. 제가 만든 조명을 누군가 산다는 것, 지금은 엄청 짜릿하고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아버지도 요즘은 주변에 은근히 아들 자랑 하시는 것 같아요.”
[Successor]곽계녕 라이마스 대표 “적자 기업 물려받아 1년 만에 흑자로 전환시켰죠”
라이마스, 그리고 곽계녕의 꿈
라이마스의 목표는 공간에 어울리는, 그러면서도 누구나 편하게 즐길 수 있는 퍼블릭한 조명을 만드는 것이다. 이는 곽 대표가 “나는 아티스트가 아니다”라고 강조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2011년 다음커뮤니케이션 제주 사옥에 ‘디 펜던트(D-Pendant)’ 조명, 2014년 인천 신진말 프로젝트에서 브론즈 버전의 ‘사이공’ 조명 작업을 하며 ‘공간을 생각하는 조명’이 주는 짜릿함이 깊어졌다. 그 와중에 강진 산내들어린이센터에 ‘물고기’ 조명을 제작하는 등 재능기부를 하기도 했다.

“조명은 어떤 집이든 기본으로 달려 있기 때문에 놓치기 쉬운 부분이에요. 벽과 바닥은 신경 써도 천장은 신경 쓰지 않잖아요. 그렇지만 ‘빛이 나는 모빌’이 조명이라고 생각해보세요. 천장이 왜 버려지는 공간이어야 하나요. 평면을 단숨에 입체로 바꾸는 마법이 숨어 있는 걸요.”
조명 하나가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역설하는 곽 대표. 밤에는 밤다운 빛을 즐겨야 한다고 주장하는 그의 말처럼, 좀 더 다양한 조도(照度)를 즐겨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저보다 더 ‘센’ 자식이 태어나서 라이마스를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타협 대신 어려움을 뛰어넘는 3세가요. 제가 적당히 타협했다면 라이마스는 없고 삼일만 있다가 사라졌을 것 같아요. 길은 반드시 있어요. 다만 힘들 뿐이죠.”


이현화 기자 leehh@hankyung.com
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