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 1년 전, 한 50대 여성이 손으로 꾹꾹 눌러 쓴 편지를 필자에게 보내왔다. 정기 건강검진 과정에서 갑상선암을 발견했고 의사의 권유대로 수술을 받았다. 수술로 암은 제거했지만 목에 흉터가 남았고, 목소리가 변하고 기력이 떨어지는 등 삶의 질은 과거보다 떨어졌다. 다른 의사에게 들어보니 굳이 수술이 필요한 상황은 아니었다는 내용이었다. 그 여성은 과잉 검사로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없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얼마 전 필자도 건강검진에서 비슷한 경험을 했다. 복부 초음파 검사 도중에 목 부위도 검사를 받았는데, 서비스 차원이라고 병원 측은 설명했다. 이런 식으로 갑상선에 작은 혹이라도 발견되면 병원은 환자에게 수술을 권한다. 암이라는 말에 환자는 의사의 말을 따를 수밖에 없다.

이와 같은 환자의 불안 심리와 잘 맞아 떨어진 것이 건강검진 패키지 상품이다. 병원들은 최소 수십만 원에서 1000만 원에 이르는 건강검진 패키지를 앞 다퉈 내놓고 있다. 비싼 패키지일수록 온몸을 샅샅이 훑을 수 있어 더 좋은 건강검진인 양 홍보한다. 부자나 사회 지도층은 서민과 차별화된 명품 건강검진 패키지를 받고 있다는 말로 일반인의 허영심을 자극하기도 한다.

비싼 건강검진일수록 호화로운 환경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는다. 그러나 건강검진으로 사망률이 낮아졌다는 근거는 거의 없다. 오히려 환자 수만 늘려 놓았을 뿐이라는 게 연구로 밝혀졌다. 실제로 정부는 암을 조기에 발견해 사망률을 낮출 목적으로 10여 년 전 암 조기 검진 사업을 시작했다. 그러나 2000년과 2012년의 대장암, 유방암, 폐암은 1.7~2.8배 증가했고 사망자 수도 비례해 늘었다.

정부, 7가지 암 검진 가이드 발표

무분별한 건강검진에 대해 불필요한 비용과 시간 낭비, 과도한 방사선 노출, 검사에 따른 고통과 불안을 일으킨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표적인 사례가 갑상선암이다. 국내 갑상선암 환자는 연간 증가율 23.7%로 세계 의료 역사상 유례를 찾을 수 없을 정도로 급증했다.

2000년에 3000명도 안 되던 갑상선암 환자가 2014년에는 5만 명 이상으로 증가했다. 여성 환자의 경우 일본의 16배, 미국의 5배 규모다. 의학계와 외국 언론이 왜 한국에서 갑상선암이 급증하는지 관심을 가질 정도다. 갑상선 검사를 너무 많이 한 것이 원인이었다.
[health] 중년의 건강검진
암을 조기에 발견하려는 이유는 완치 가능성을 높이기 위함이다. 그런데 갑상선암은 건강검진으로 일찍 발견해 수술하건, 나중에 발견하건 간에 생존율에 큰 변화가 없다. 오히려 암이라는 말에 불안과 공포만 키운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결국 정부는 갑상선암 등 한국인이 잘 걸리는 일곱 가지 암(갑상선암, 유방암, 자궁경부암, 간암, 폐암, 위암, 대장암)에 대한 검사 기준을 수정했고 지난 9월 국립암센터가 발표했다. 자신이 특정 암의 검사 대상인지, 어떤 검사를 언제 받아야 하는지를 알아두면 불필요한 검사로 고생하지 않아도 된다.

우선, 과잉 검진 논란이 된 갑상선암에 대해서는 ‘증상이 없으면 초음파 검진을 권하지 않는다’는 결론을 냈다. 물론 조기에 발견하면 수술 범위, 호르몬제 투여 등에서 그 강도를 낮출 수 있다. 그러나 과도한 진단과 갑상선 수술로 목소리 변화, 부갑상선 기능 저하와 같은 부작용을 무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 목에 혹이 만져지는 등 증상이 있으면 초음파 검사를 포함한 적절한 검사를 받아야 한다.

갑상선암을 제외한 여성 암 가운데 유방암 발생률은 14.7%(2012년)로 가장 높다. 따라서 뚜렷한 증상이 없더라도 40~69세 여성은 2년마다 유방 촬영술을 받도록 권고했다. 70세 이상 여성은 의사와 상담한 후 자신에게 맞는 검사법을 택하는 게 바람직하다. 임상 유방 진찰과 유방 초음파 검사는 검진 효과에 대한 근거가 불충분하다는 이유로 권고하지 않았다. 증상이 있거나 고위험군 여성은 임상 유방 진찰, 유방 초음파 검사 등 추가 검사 여부를 의사와 논의하면 된다.

자궁경부암 검사는 만 20세 이상 여성은 증상이 없어도 3년마다 세포 검사(자궁경부세포도말검사 또는 액상세포도말검사)를 받아야 한다. 검사 주기가 2년에서 3년으로 늘어났는데, 2년이나 3년이나 검진 효과에 큰 차이가 없다. 임신이나 인유두종바이러스(HPV) 예방 백신 접종 여부와 관계없이 자궁경부암 검진을 꾸준히 받을 필요가 있다. 자궁경부암 원인인 인유두종바이러스에 대한 검사는 선택 항목이다.

한편 최근 10년 이내에 자궁경부암 검진에서 연속 세 번 이상 음성으로 확인된 경우, 75세 이상에서 자궁경부암 선별검사를 권고하지 않는다고 정했다.

간암 검사는 B형·C형 간염 보유자 대상

건강한 사람은 간암을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40세 이상 B형·C형 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는 매 6개월 간격으로 간초음파 검사와 혈청알파태아단백 검사를 받아야 한다. 간암 고위험군인 만성 B형 간염 환자에게 6개월마다 혈청알파태아단백 검사와 간초음파 검사를 시행한 결과 정기검진을 시행하지 않은 경우에 비해 간암 사망률이 무려 37% 감소한 임상 결과가 있다. 그러나 간 섬유화가 진행되지 않은 만성 C형 간염 환자는 간암 발생의 위험이 낮다. 의사와 상담한 후 검진을 결정하는 편이 바람직하다.

폐암 검진은 30년 이상의 흡연 경력이 있는 55~74세 고위험군이 권고 대상이다. 이들에게 저선량 흉부 컴퓨터단층촬영(CT)을 이용한 폐암 선별검사를 매년 시행할 것을 권고했다. 단 금연 후 15년 이상 지난 과거 흡연자는 예외다. 30년 이상 흡연 경력을 가진 고위험군에 저선량 흉부 CT를 이용한 폐암 검진을 시행했을 때 흉부 엑스선(X-ray) 검사를 받은 사람보다 폐암 사망률이 약 20% 감소했다는 근거가 있다.

그런데 국내에 저선량 흉부 CT 검사의 판독 경험이 풍부한 전문가가 많지 않다. 따라서 큰 병원에서 검사받는 것이 이로울 것 같다. 흉부 X선 검사와 혈청 종양 표지자를 이용한 폐암 선별검사는 권고하지 않았다. 아울러 가이드라인은 금연을 적극적으로 권고하고 금연 보조 약물 등을 이용해 흡연자의 금연을 돕는 것이 더욱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위암 검사로는 위내시경이 탁월하다. 40~74세 성인은 증상이 없어도 2년마다 위내시경 검사를 받도록 권고했다. 위내시경 검사로 위암 사망률이 약 54% 감소한 데 따른 결정이다. 기존에는 위내시경과 위조영 검사를 선택할 수 있었다. 위조영 검사는 개인별 위험도에 따라 추가로 받을 수 있는 선택 검사로 남았다. 검진 대상자 연령에 상한선을 둔 이유가 있다. 75~84세는 검진의 효과가 불충분하고, 85세 이상의 경우 검진을 받은 그룹의 사망률이 검진을 받지 않은 그룹보다 높아지기 때문이다.

대장암은 대장내시경 검사 대신 분변잠혈 검사(대변에서 소량의 혈액을 검출하는 검사법)를 1차 검사로 권고했다. 증상이 없어도 1~2년 간격으로 분변잠혈 검사를 시행하라는 것이다. 대장내시경 검사는 출혈이나 천공 등의 위험이 비교적 커 선택 항목이 됐다.

검진의 시작 연령은 기존보다 5세 앞당겨진 45세로 설정했으며 종료 시점은 80세까지로 정했다. 80세 이후부터는 검진의 효과가 불충분하므로 권고 대상이 아니다. 분변잠혈 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나오면 대장내시경 검사를 받아야 한다.

노진섭 시사저널 의학전문기자
[health] 중년의 건강검진
※ 수면내시경 검사 비용 10만 원 선이 적절
여러 편리성 때문에 수면내시경 검사를 선호하는 사람이 늘었다. 그런데 수면내시경 검사는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아 병원마다 가격 차이가 심하다. 국내 대형 병원들의 위·대장 수면내시경 검사비가 최대 9배 이상 차이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싼 곳은 평균 3만 원 정도이고 비싼 곳은 27만 원이 넘는다. 보건의료 분석평가 전문 사이트인 팜스코어가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의 비급여 진료비 정보(2015년 9월 11일 기준)를 분석한 결과다.
종합병원 이상의 314개 의료기관(종합병원 272곳, 상급종합 42곳)의 위·대장 수면내시경의 평균 검사비를 산출했더니 10만5927원으로 집계됐다. 한 대학병원 내과 교수에 따르면 최저가 3만 원과 최고가 27만 원 모두 비정상이다. 최저가는 환자에 대한 관리가 부실하고 최고가는 장삿속이라는 지적이다. 수면내시경 검사는 10만~15만 원 사이가 합당한 비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