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호 PMG 회장

[CEO]  ‘평생 CEO’ 비결은 '좋은 만남’
글로벌 기업 IBM은 ‘Think’, 애플은 ‘Think Different’가 슬로건이다. 한국그런포스펌프 대표이사를 지낸 후 PMG라는 벤처기업으로 인생 2막을 시작한 이강호(64) 회장의 경영 철학은 ‘Think People’이다. ‘사람 생각’이라는 그 신념에는 여느 글로벌 기업 못잖은 묵직한 울림이 있다.

‘모든 잎이 꽃이 되는 가을은 두 번째 봄’이라는 알베르 카뮈의 말처럼 인생 2막은 찬란한 젊음이 사라졌어도, 삶에서 얻은 통찰이 깊은 여운을 주는 시기다. 이강호 PMG 회장의 인생 후반전도 그와 같다. 비록 규모는 크지 않은 벤처기업일지라도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경영을 추구하는 그의 새로운 도전이 기대되는 이유다.

누구에게나 젊은 시절은 빛나는 시기이겠지만, 그는 특히 ‘잘나갔다’.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뒤 대위로 예편한 그는 만 30세에 건설사의 현지법인장으로 미국 뉴욕에 가서 성공 신화를 썼다. 그의 표현대로라면 ‘바퀴벌레가 들끓는 뉴욕 빈민가’에서 첫발을 내디뎠지만, 굵직굵직한 건설 프로젝트의 건자재 납품 계약을 잇달아 거머쥐며 대표이사로 금의환향했다. 만 38세에는 덴마크계 펌프회사인 그런포스와 60세까지 무려 22년 동안의 사장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 그러고도 몇 년을 더 대표이사를 지내다 은퇴했다. 한국그런포스펌프에서의 25년을 비롯해 무려 반평생을 대표이사(CEO)로 살아온 것. 그가 말하는 성공 비결은 간명하다.

“성공은 무엇에서 시작되는가 묻는다면 제 답은 ‘만남’입니다. 좋은 만남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 면에서 저는 인복이 있었던 거죠.”

이렇듯 30년 넘게 대표이사의 경험을 두둑한 밑천 삼아 새롭게 선택한 사업의 테마는 크게 두 가지다. ‘인성검사 프로그램’과 ‘서서 일할 수 있는 높이조절 책상’이다. 언뜻 생각하기에는 서로 동떨어진 이질적 사업 분야인데, 이에 대한 그의 정의는 간단하다. 각각 건강한 정신과 육체를 위한 사업 테마란다.
[CEO]  ‘평생 CEO’ 비결은 '좋은 만남’

인생 2막에서 어떻게 인성검사 분야에 주목하게 됐나요.

“경영을 오래하다 보니까 성패가 결국 사람에게 달렸더라고요. 좋은 사람을 많이 모이게 하면 성공하는 거죠. 글로벌 기업들은 그래서 인성 평가 툴을 다 갖고 있어요. 다행히 한국그런포스펌프에서 20여 년 동안 인성검사 프로그램을 활용해봐서 유용성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처음 배워서 하면 쉽지 않았을 거예요. 우리나라의 기업들은 이제 도입 단계잖아요. 미개척 분야이니 도전하기에 더욱 신나죠.”

기업 인성검사 프로그램인 PI(Predictive Index, 예측지수)는 얼마나 유용한가요.
“우리나라 기업들은 직원을 채용할 때 이력서 보고 몇 가지 질문만으로 면접이 끝나잖아요. 그렇다 보니 통계적으로 성공 확률이 6%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하지만 인성검사 프로그램을 활용하면 성공 확률이 8배나 올라가요. 기존 직원들의 부서 배치에도 유용하고요. 과묵하고 내성적인 사람은 혼자 연구·개발(R&D) 하는 업무가 적합하죠. 그런 사람한테 영업을 하라고 하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겠죠. 반면 융통성 있고 적극적인 성향의 사람은 비즈니스에서 거절을 당해도 상처를 별로 안 받아요. 이런 특성을 알고 적재적소에 배치하면 기업의 생산성도 올라가게 되지요.”

고급 인재를 채용하는 헤드헌터 분야에서도 요긴한 프로그램이겠네요.
“헤드헌터 분야의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합니다. 하지만 남용되면 안 됩니다. 인재 1명을 잘 채용하면 1만 명을 먹여 살릴 수 있어요. 반대로 그런 사람을 떨어뜨릴 수도 있잖아요. 인성 평가를 잘못 활용하면 한 개인의 인생이 틀어지고 기업의 인재 발탁이 실패할 수 있겠지요. 그래서 반드시 전문가 교육을 받고 나서 신중하게 인성검사를 활용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최근 화제를 모으는 ‘서서 일할 수 있는 높이조절 책상’ 사업도 의외입니다.
“스칸디나비아에선 법으로 하루 2시간 이상 서서 일하도록 돼 있어요. 서서 일하면 목이나 허리가 아프지 않고 생산성도 올라가거든요. 글로벌 기업들에선 이미 대부분 스탠딩 책상을 쓰고 있는데 국내에는 보급이 유독 더딥니다. 그런 면에서 최고경영자(CEO)들의 생각이 변해야 합니다. 책상 가격보다 직원의 건강과 업무 효율성을 먼저 고려하는 문화가 아쉽습니다. 임직원은 소중하잖아요.”

‘사람에 대한 투자’에 다들 공감하지만, 실천은 쉽지 않은데요.
“사업보국(事業報國), 인재제일(人材第一)이라는 삼성그룹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회장의 철학에 큰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러한 철학이 있기에 오늘날의 삼성이 있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R&D 투자는 자랑스럽게 얘기하면서도 사람에 대한 투자는 그렇게 얘기하지 못하죠. 저는 사람에 대한 투자도 수치로 얘기하고, 예산에 넣어야 한다고 믿어요.”

실제 출산 후 재택근무 제도를 도입할 예정이라고요.
“출산 후 재택근무에는 전제조건이 있습니다. 재택근무를 해도 월급을 똑같이 주되 이전보다 생산성을 높여야 한다는 조건입니다. 주변에 재택근무에 대한 성공 가능성을 물었더니, 충분히 가능하다고 보더군요. 시대도 바뀌었고 컴퓨터와 모바일로 얼마든지 소통할 수 있는 시대니까요.”

오랜 기간 CEO로서 자기관리를 철저히 해 온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육군사관학교에 다녔던 것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의 바탕이 젊어서 길러진 데 감사하고 있습니다. CEO를 하다 보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만큼 스트레스를 받을 때가 적지 않은데 이러한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매주 스포츠와 예술을 즐깁니다. 젊어서부터 스텝 에어로빅을 해 왔고, 스키를 특히 좋아해 겨울이 가는 것이 아쉬울 정도죠. 우리의 소리인 판소리도 잡념을 잊게 도와줍니다. CEO가 아니더라도 공부는 평상시 꾸준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학습하지 않으면 지식의 배터리가 방전돼 그 시대를 살아갈 수 없을 만큼 뒤떨어지게 될 테니까요. 무엇보다 고전 공부가 으뜸이라고 봅니다. 경영적 측면에서도 가치 있고, 개인의 삶에 있어서도 ‘주인공으로 살고 있는지’ 성찰하게 해줍니다.”

30년 넘게 CEO를 해 왔는데, CEO로서의 이정표는 어디에 있나요.
“한 기업인의 70세 생일에 마을 사람 2000명이 횃불을 들고 집 앞으로 모여들었다고 합니다.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서 온 마을 사람들이 2~3km를 걸어온 거죠. 일부러 사람들을 동원하기도 힘든 스칸디나비아에서요. 그만큼 존경을 받는 것이고, 평소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해 온 것이죠. 제가 꿈꾸는 CEO로서의 목표도 그와 같습니다. 성공한 기업가로서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더불어 사는 삶을 실천하고 싶습니다.”

배현정 기자│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