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focus]혼외자 상속권 허용한 미국
혼외자의 상속 차별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미국 역시 1977년 미국 연방대법원의 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혼외자의 상속권을 제한했기 때문이다.

보통법(common law)에서는 혼외자(nonmarital children) 또는 사생아(illegitimate children)는 ‘누구의 아이도 아닌 아이(the child of no one)’로 간주돼 부모를 비롯한 어떤 직계존속이나 방계혈족으로부터도 상속을 받을 수 없었다. 혼외자의 유일한 혈족은 자신의 직계비속뿐이었다. 부모의 혼인 중에 태어난 아이는 설사 혼인 전에 포태(胞胎)됐을지라도 적출자(legitimate child)로 간주됐지만, 부모의 혼인 전에 태어난 아이는 그 후 부모가 혼인했더라도 적출자로 인정되지 않았다.

1970년대까지도 미국의 많은 주법들이 혼외자의 상속권을 제한했다. 일반적으로 혼외자와 어머니(및 모계혈족)와의 상속 관계는 인정했지만, 아버지(및 부계혈족)와의 상속 관계는 원칙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러한 차별적인 법령들에 대해 미국 연방대법원이 위헌심사에 들어갔다. 이에 관한 대표적인 판결이 미 연방대법원(Su-preme Court of the United States)의 1977년 ‘트림블 브이 고든(Trimble v. Gordon)’ 사건이다. 이 사건에서 위헌심사의 대상이 된 법령은 일리노이주법이었다. 당시 일리노이주법은 혼외자가 어머니로부터 상속 받을 권리는 인정했지만, 아버지로부터 상속 받을 권리는 오직 부모가 혼인하고 아버지가 그 혼외자를 인지한 경우에만 인정하고 있었다.

이 사건에서 피상속인인 셔먼 고든(Sherman Gordon)은 사망하기 전에 공개적으로 혼외자인 데타 모나 트림블(Deta Mona Trimble)을 자신의 아이로 인지했고 데타 모나를 부양했다. 그러나 데타 모나의 어머니인 제시 트림블(Jessie Trimble)과 혼인하진 않았다. 따라서 데타 모나는 피상속인으로부터 상속 받을 수 없게 됐다. 연방대법원은 이 법령이 헌법상의 평등보호원칙에 위반돼 위헌이라고 결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혼외자에 대한 차별은 ‘엄격한 심사 기준(strict scrutiny test)’을 적용해야 하는 ‘의심스러운 차별(suspect classification)’은 아니지만, ‘중요한 공익(important state interest)’과 ‘실질적으로(substantially)’ 관계가 있어야 한다. 이 사건 일리노이주법의 목적은 부성에 대한 신빙성 있는 증거를 획득하는 것이라고 인식된다. 그러나 혼외자가 아버지로부터 상속 받을 권리를 박탈하는 것은 이러한 목적과 실질적으로 관계가 없다.”

이 판결의 선고는 역사적으로 오랫동안 심한 차별을 받아온 혼외자에게 상속에 있어서 평등권을 선언한 기념비적 사건이었다. 이 판결의 영향으로 인해 혼외자를 차별했던 많은 주법들이 개정됐고, 혼외자들은 적출자들과 동등하게 그들의 아버지로부터 상속 받을 수 있게 됐다.

혼외자, 부성 입증은 어떻게?
오늘날 무유언상속법은 적출자와 혼외자 사이의 명시적인 차별을 하지 않는다. 미국의 통일상속법(UPC)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다. “사람은 친부모의 혼인 여부와 상관없이 친부모의 자식이다.” 혼외자의 상속에 어떠한 장애가 있다면 그것은 보통 부성(paternity) 입증의 어려움 때문이다. 그리하여 1973년에 공포된 통일친자법(Uniform Parentage Act)과 2000년에 개정된 통일친자법은 부성 입증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몇 가지 추정을 하고 있다.

이에 따라 혼외자의 어머니와 혼인하고 그 혼외자가 혼인 중에 또는 혼인 해소 후 300일 이내에 태어난 경우, 혼외자의 출생 후 2년 동안 혼외자와 같은 집에서 살면서 그 아이를 자신의 아이라고 공개적으로 인정한 경우, 서면에 의해 혼외자를 인지하고 그 서면이 부모에 의해 서명된 후 출생신고를 담당하는 행정기관에 의해 수리된 경우에는 남자는 혼외자의 아버지로 추정된다.

아버지로 추정되는 사람이 있는 경우, 부성 입증을 위한 소송은 혼외자의 출생 후 2년 이내에 제기돼야 한다. 그러나 아버지로 추정되는 사람이 없는 경우, 혼외자는 언제라도 부성 입증을 위한 법적 절차를 진행할 수 있다. 그리고 법원은 혼외자와 혼외자의 아버지로 지목된 사람, 또는 필요한 경우 다른 친족들의 유전자 검사를 명할 수 있다. 심지어 이미 사망한 사람에 대한 유전자 검사를 시행하는 경우도 있다.

많은 법령들은, 설사 부성이 입증되더라도 아버지가 혼외자를 자신의 아이로 공개적으로 인정하거나 그 아이를 부양하거나 하지 않았다면 아버지 또는 부계혈족이 혼외자로부터 상속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UPC와 N.Y. EPTL(New York Estates, Powers and Trusts Law)가 대표적인 예다. 또한 대부분의 법원들도 이와 같은 입장을 표명해 왔다. 예컨대 미시시피 주 대법원(Supreme Court of Mississippi)의 1989년 ‘인 레 에스테이트 오브 포드(In re Estate of Ford)’ 사건에서 혼외자였던 하티 포드(Hattie Ford)의 아버지는 하티가 자신의 아이임을 공개적으로 인정하지 않았고, 어머니와 외할머니가 하티를 길렀다. 법원은 하티의 부계혈족이 하티로부터 상속 받을 권리가 없다고 판결했다.

특히 UPC는 아버지와 부계혈족뿐 아니라 어머니와 모계혈족도 동일하게 규정하고 있다. 즉 어머니가 혼외자를 자신의 아이로 공개적으로 인정하거나 그 아이를 부양하거나 하지 않은 경우, 어머니 또는 모계혈족이 혼외자로부터 상속 받는 것을 금지하고 있다. 부모가 부모로서의 의무를 위반한 경우에는 그 자녀로부터 상속 받을 자격이 없다는 정의 관념의 표현인 것이다. 이것은 일종의 상속결격(장애) 사유로 볼 수도 있다.
김상훈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