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focus]인공수정 자녀의 상속권
상속권의 시간적 한계는 어디까지일까. 미국의 매사추세츠 주 대법원은 피상속인이 사망한 이후 보관 중인 정자를 이용해 태어난 아기의 상속권과 관련해 명쾌한 법리를 제시해 눈길을 끌었다.

유복자(posthumous children)라 함은, 아버지의 사망 전에 포태되고 아버지의 사망 후에 출생한 아이를 말한다. 상속인으로서 자격을 얻기 위해서는 피상속인의 사망 시에 생존해 있어야 하므로 피상속인의 사망 시에 아직 태어나지 않은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상속을 받을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유복자에게 대단히 불합리하기 때문에, 유복자가 살아서 태어난 경우에는 피상속인의 사망 시에 이미 태어난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재산법 분야에서는 결국 살아서 태어난 아이(태아)에게 이익이 되는 경우에는 언제라도 그 태아를 이미 태어난 것으로 취급하는 것이 일반 원칙인데, 상속법 분야에서 이 원칙을 적용한 것이다.

보통법(common law)에서는 잉태로 추정되는 기간을 280일로 한다. 따라서 상속 개시 후 280일 이내에 태어난 아이는 상속 개시 당시에 이미 태어난 것으로 추정된다. 한편 현대의학의 발전으로 인해 남자가 자신의 정자를 정자은행에 보관해 놓고 나중에 그 정자를 이용해 자식을 낳는 일이 가능해졌다.

그리하여 아내가 남편이 사망한 후 미리 보관해 두었던 남편의 정자를 이용해서 임신하고 아이를 낳는 경우도 생겼다. 이 경우는 전통적 의미에서 유복자는 아니다. 그 아이는 아버지 사망 전에 포태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아이에게도 피상속인의 재산을 상속 받을 수 있는 권리를 인정할 수 있을까.

피상속인 사망 후 태어난 아기의 상속 조건
이 문제에 대한 사법부의 대답이 우드워드 대(對) 사회보장위원회(Woodward v. Commissioner of Social Security) 사건에 관한 매사추세츠 주 대법원의 판결(2002년)이다. 부부인 워런 우드워드(Warren Woodward)와 로런 우드워드(Lauren Woodward, 원고)는 혼인 후 3년 6개월 뒤인 1993년 1월경에 남편인 워런이 백혈병에 걸린 사실을 알게 됐다. 이들 부부 사이에는 아직 자녀가 없었다. 워런이 백혈병 치료수술을 받으면 불임이 될 수도 있다는 의사의 충고를 듣고서, 부부는 워런의 정자를 정자은행에 보관해 두었다. 그러고 나서 워런은 골수이식수술을 받았는데 수술이 성공하지 못했고, 1993년 10월에 사망했다.

남편 사후인 1995년 10월에 로런은 워런의 정자를 이용해 쌍둥이 딸을 낳았고, 1996년 1월에 사회보장연금(social security)을 신청했다. 미국의 사회보장법(Social Security Act)에서는, 사회보장보험에 가입한 사람이 사망한 경우 생존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들을 위해 유족연금(survivor benefit)을 지급한다.

그런데 유족연금을 받을 수 있는 생존배우자와 미성년 자녀들의 확정은 무유언상속법에 따른다. 따라서 유족연금을 받기 위해서는 우선 연금신청자가 사망한 보험가입자의 상속인이라는 점이 입증돼야 한다.

그러나 사회보장국(Social Security Administration)에서는 쌍둥이가 워런의 딸이라는 증명이 없다는 이유로 로런의 신청을 거부했다. 이에 로런은 이러한 거부처분결정을 취소해 달라는 취지로 이 사건의 소를 제기했다.

로런은 쌍둥이와 워런 사이에 유전적 관계가 있으므로 워런의 상속인이 될 수 있다고 주장했고, 사회보장국(주정부)에서는 쌍둥이가 워런의 사망 시에 존재(잉태)하지 않았으므로 쌍둥이를 매사추세츠 주법에 따라 워런의 자녀라고 볼 수 없어 워런의 상속인이 될 수 없다고 반박했다.

이에 대해 매사추세츠 주 대법원은 유전적 관계만 입증되면 언제나 상속권이 인정돼야 한다는 원고의 주장도 옳지 않고, 자녀가 피상속인의 사망 시에 존재하지 않으면 언제나 상속권이 인정될 수 없다는 피고의 주장도 옳지 않다고 하면서 이 분야에 관한 교과서적 지침이 될 중요한 판시를 남겼다.

대법원은 판결에서 “매사추세츠 주 무유언상속법은 단지 ‘사후에 태어난 아이(posthumous children)’라고만 규정하고 있을 뿐이지 사망 시에 자궁 안에 존재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지 않다. 따라서 피상속인의 사망 시에 아이가 잉태해 있어야 한다는 것은 법률 해석상 필연적인 해석이 아니다”라고 봤다. 또 “성교(coitus)로부터 분리된 생식행위를 통한 사후 출산은 무유언상속법의 목적 및 기존에 확립된 이해관계들과 배치될 수 있는 다양한 문제들을 야기한다. 따라서 유전적으로 관계가 있다고 해서 언제나 무제한적으로 상속권을 인정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이 이 문제와 관련해 고려해야 할 사항으로 꼽은 것은 3가지 중요한 이익이다. 첫째는 아이의 이익인데 이것이 최우선적인 이익이다. 입법부는 그동안 기술적 생식의 다양한 형태들을 적극적으로 지지해 왔고, 사후에 태어난 아이의 범위를 좁히는 방향으로 법을 제정하지 않았다. 따라서 부모의 성교가 아닌 기술적 생식 방법에 의해 태어난 아이의 권리를 무조건 박탈해서는 안 된다. 둘째는 상속재산을 질서정연하게 관리하려는 주(state)의 이익이다. 더 많은 사람들에게 상속권을 부여하는 것은 상속인들 사이에 더 많은 분쟁을 야기한다.

상속 문제를 조기에 해결하기 위해서는 조기에 상속인을 특정해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상속권 주장에 대한 시간제한이 필요한 것이다. 셋째는 유전적인 부모의 생식에 관한 선택권이다. 생식은 진정성(integrity)이 있어야 하고 강요된 생식은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한다. 피상속인의 침묵이나 애매한 암시는 생식에 관한 동의로 해석될 수 없다. 정자를 은행에 보관해 두었다는 사정만으로는 사후 생식에 관한 동의로 이해하기에 부족하다. 자신이 생존해 있는 동안에 인공적인 생식을 위해 정자를 보관해 둘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대법원은 “3가지 중대한 이익을 모두 고려할 때, 피상속인의 사후에 잉태된 아이는 제한된 조건에서만 피상속인의 자녀로서 상속권을 향유할 수 있다고 해야 한다. 여기서 제한된 조건이라 함은 첫째, 생존한 부모 또는 그 아이의 법정대리인이 그 아이와 피상속인 사이의 유전적 관계를 입증하고, 둘째, 피상속인이 생전에 ‘자신의 사후에 자녀를 잉태하는 것’과 ‘그 자녀의 부양’에 적극적으로 동의했다는 사실을 입증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조건이 모두 충족될지라도, 생존한 부모가 태어날 아이를 대리해 아이의 상속권을 주장하는 것은 시간제한에 걸릴 수 있다”고 판시했다.

이어 대법원은 “원고가 잉태와 부양에 관한 남편의 동의를 입증할 수 있다면 원고의 자녀들을 위한 사회보장연금을 청구할 수 있다”며 이 사건을 사실심 법원으로 환송했다.

이 판결은 피상속인의 사후에 잉태된 아이의 상속권에 관한 선도적 판결로서 매우 의미가 크다. 이 문제에 관한 기존의 선례가 어디에도 없었기 때문에 매사추세츠 주 대법원은 판결문 작성과 관련해 대단히 고심을 하고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사후에 잉태된 아이의 상속권을 시간적으로 제한한 대표적 법률이 캘리포니아 주법인데 피상속인의 사망 후 2년 이내에 자궁 안에 존재해야만 상속권을 주장할 수 있다.

김상훈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