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원익 한국중견기업연합회 상근부회장

[Special interview]반원익 “중견기업에 성장과 성공 DNA 있다”


경제대국 독일은 작지만 강한 기업 ‘히든 챔피언’을 주축으로 글로벌 시장을 호령하고 있다.
한국의 ‘히든 챔피언’을 꿈꾸는 중견기업들이 써 내려갈 ‘글로벌 시장 도전사’가 궁금해지는 대목이다.

연구·개발(R&D)을 통해 신약 대박 신화를 일궈낸 한미약품, 56년 전통의 대한민국 필기구 대명사 모나미, 세계 4위의 발광다이오드(LED) 생산 기업인 서울반도체.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중견기업이라는 것이다.

이들 기업을 대표하는 한국중견기업연합회(이하 중견련)는 2014년 7월 22일 ‘중견기업 성장 촉진 및 경쟁력 강화에 관한 특별법’이 시행됨에 따라 3800여 개 중견기업의 권익을 대변하는 법정단체가 됐으며, 비교적 단기간에 경제 5·6단체로 자리매김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이라는 이분법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중견기업이라는 이름이 다소 낯설 수 있다. 중견기업은 대기업이 아닌 기업 중 자산 총액 5000억 원 이상이거나 업종별로 3년 평균 매출 400억~1500억 원을 초과한 기업을 지칭하며, 한국 경제의 성장 사다리 역할을 하고 있다.

눈여겨볼 대목은 2015년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각각 11.1%, 6.6%씩 수출 실적이 감소한 반면 중견기업은 3.2% 성장을 달성했다는 점이다. 더구나 2013년 기준으로 중견기업은 전체 기업의 0.12%(3846개)에 불과하지만 총 고용의 9.7%(116만1000여 명)를 담당하며 한국 경제의 버팀목이 되고 있다.

지난 2월 연임이 확정된 강호갑 중견련 회장과 함께 중견련을이끌고 있는 반원익 상근부회장은 ‘중견기업 전도사’로 불린다. 반 부회장은 “중견기업 중 상당수가 이미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으며,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성과를 일궈낸 ‘성장과 성공의 DNA’가 있는 기업들이 대부분이다”라며 중견기업의 역할론을 강하게 역설했다.

반 부회장은 만년필 마니아로도 유명한데 ‘섬세하게 펜촉을 직접 다듬어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필기도구’라는 매력이 그를 전문가 수준의 마니아로 만들었다고 한다. 재밌게도 거의 유일한 취미가 된 만년필 사랑은 그의 업무 스타일과도 많이 닮아 있다.
강 회장이 선 굵은 리더십으로 중견련의 법정단체화를 이끌었다면 반 부회장은 차분하게 그 뒤를 받치며 중견기업들이 명문 기업으로 역사를 이어 쓸 수 있도록 세심하게 펜촉을 다듬어준 셈이니 말이다.

4월 초 박근혜 대통령의 해외 순방 때 경제사절단의 일원으로 멀리 멕시코까지 다녀와 여독이 다 풀리지 않은 반 부회장을 만나기 위해 4월 11일 서울 마포구에 위치한 중견련 사무실을 찾았다. 피곤함에도 불구하고 해맑게 맞이해주는 그에게서 중견기업들의 밝은 미래를 읽을 수 있었던 자리였다.

멕시코는 잘 다녀오셨나요.
“(웃음) 예. 잘 다녀왔습니다. 중견기업인들과 해외에 나가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죠. 불경기 속에 과연 기업들이 어떻게 활로를 찾아야 하고 무엇을 대비해야 할지가 주 관심사였어요. 중국 기업들이 국내 기업과의 기술 격차를 줄이며 낮은 원가로 세계 시장에 진출하는 데 대한 우려가 나왔다. 특히 국내 기업의 기술 유출 문제에 대해 걱정을 많이 했어요. 오랫동안 기술을 쌓아 왔지만 그것을 잃어버리는 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으니까요.”

중견련이 2014년 7월 법정단체로 승격된 이후 비교적 단기간에 국내를 대표하는 경제단체로 자리매김을 한 것 같은데 지나온 발자취를 더듬어주시죠.
“2014년 7월 특별법이 시행되며 그동안 민간 사단법인으로 운영해 왔던 중견련이 법정단체로 정식 출범하게 됐죠. 이후 대통령 해외 방문 사절단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만큼 대외적 위상이 크게 높아진 것 같아요. 실제 글로벌 이슈에서는 경제 5단체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법정단체 출범 이후 명문장수기업센터, 인수·합병(M&A) 지원센터, 중견기업연구원 등을 통해 독일의 히든 챔피언에 버금가는 중견기업 육성과 합리적 정책 대안을 제시하기 위해 애쓰고 있어요. 중견기업이 글로벌 경쟁력을 갖기 위해서는 연구·개발(R&D)이 필수적인데 전문 인력 부족 등으로 어려움이 많아요. 이에 글로벌 전문 기업으로 도약하기 위한 전진 기지로 활용할 수 있도록 중견기업계 자체적으로 글로벌 R&D복합센터를 설립하는 일도 추진하고 있어요.”

한국 중견기업을 대내외에 알리는 ‘중견기업 전도사’로 정평이 나 있는데 중견련과 어떻게 인연을 맺게 되신 거죠.
“강호갑 회장과는 대학 동기(고려대 경영대 74학번)로 43년 지기예요. 강 회장과 저는 각각 자동차부품 제조사인 신영과 기계식 주차설비 회사인 시마텍을 경영했죠. 기업을 경영하다 보니까 어느 날 대기업으로 분류되면서 정부 지원 등에서 어려움을 많이 겪게 되더라고요. 중소기업이 중견기업으로, 다시 대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어야 하는데 대한민국 산업 생태계가 그렇지 못한 거죠. 강 회장과 함께 ‘이걸 바꿔보자’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겁니다. 저도 이탈리아 포탱그룹으로부터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과 판매망을 가진 기계식 주차설비 계열사인 시마파크를 사들여 글로벌 기업이나 대기업과 경쟁을 했는데 기업인들의 애로사항을 절실히 느꼈죠. 그래서 정부, 대학교수, 연구소, 학회 등과 인연을 맺고 중견기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인식시키는 작업을 했고, 연합회의 필요성을 느껴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겁니다. 특별법을 제정하기 위해 6번이 넘는 세미나를 열면서 중견기업의 애로사항을 알리려고 노력했는데 2013년 12월 26일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법이 통과되던 때를 정말 잊을 수가 없어요. 또 2014년 7월 22일 중견련이 법정단체로 정식 출범할 때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오셔서 축하를 해주셨는데 그날 식사 때도 깨끗이 한 그릇을 다 비우시더라고요.(웃음) 참 기분이 좋으신가보다 생각했죠.”

중견기업이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틈새에 끼어서 제대로 된 성장 엔진을 달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현재 중견기업들이 가장 많이 호소하는 어려움은 무엇인가요.
“중견기업을 잘 키워 장수기업으로 가야 세계적으로 경쟁력이 있는 기업이 되잖아요. 해외에는 100년이 넘는 회사들도 많은데 20~30년 만에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기는 쉽지 않으니까요. 세계 수준의 기업을 지향하려면 좋은 사람들이 회사에 올 수 있도록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게 현실이에요. 수도권에 소재하지 않은 중견기업의 70% 이상이 인력난에 시달린다는 분석도 있으니까요. 또 중견기업들이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는 R&D, 좋은 기술과 판로를 가진 해외 기업의 인수를 위한 M&A 등에 대해서도 정책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중견기업은 법인세 33조 원 중 8조 원(전체 25%)을 부담할 만큼 높은 경제적 위상을 자랑하지만 합리적인 법과 제도, 정책이 뒷받침이 되지 않아 성장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죠. 공정거래, 조세, 판로 등과 관련해서는 어려움을 많이 호소합니다. 일례로 중견기업을 일반 기업에 포함시켜 대기업과 동일한 과세기준율을 적용하는데 이는 중견기업의 법인세 실효세율을 높이고 과세 형평성을 저해할 우려가 있어요. 중소기업 적합 업종도 취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역할 분담인데 중견기업까지 규제 대상에 포함시켜 중견기업의 판로를 규제하는 성장 억제 정책으로 변질됐어요.”

흔히 중견기업을 ‘대한민국 경제의 허리’라고 말하잖아요. 특히 고용 측면에서 그 역할이 중요하다는 평가를 듣고 있는데요.
“고용 문제에 국한해 단적으로 말한다면 중견기업 수가 전체의 1%만 돼도 우리 경제의 고질적인 청년 실업 문제뿐 아니라 고령화에 따른 고용 문제를 해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봅니다. 실제 2013년 기준 중견기업은 전체 기업의 0.12%에 불과하지만 총 고용의 9.7%를 담당했으니까요. 중견련에서는 청년구직자들을 대상으로 근무 환경이 우수한 중견·중소기업에 대한 인식 개선 사업을 수행하고 있어요. 구인난이 심각한 지역 기업을 위해 지역 인재들이 지역 기업에 취업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운영하고 있죠. 이밖에 ‘희망이음 프로젝트’를 비롯해 ‘일학습병행제’, ‘강소 청년취업인턴제’ 등 다양한 사업을 추진, 중견기업 인적자원 개발을 위한 지속적인 노력도 기울이고 있습니다.”
[Special interview]반원익 “중견기업에 성장과 성공 DNA 있다”
반 부회장님의 업무 스타일이 궁금한데요. 업무 외에 좋아하는 일들을 통해 유추해볼 수 있을 것 같네요.
“강 회장처럼 술을 잘 마시지 못하지만 끝까지 술자리는 지키는 편이에요.(웃음) 골프나 낚시 등 일반적인 취미는 없지만 어릴 때부터 만년필을 좋아했죠. 파카, 몽블랑, 워터맨, 펠리컨 등 100개 이상의 만년필을 가지고 있는데 일과가 끝난 뒤 조용히 방에서 성경을 필사하는 일을 좋아합니다. 볼펜이나 연필이 애초 주어진 끝으로 글씨를 쓴다면 만년필은 내가 내 것으로 만들 수 있어요. 저는 제 글씨체가 나오도록 두꺼운 펜촉을 사서 제 식으로 변형을 하죠. 몇백만 원을 호가하는 촉에다가 줄을 대고 사포를 들이대는 사람이 누가 있겠어요. 제가 지금 쓰는 만년필도 1시간 넘게 제가 다 손을 댄 것인데 제가 원하는 글씨가 나옵니다. 만년필은 자신만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필기도구라고 생각해요. 이런 생각도 해봤죠. 만년필을 포함한 필기구 회사 중에 파버 카스텔이라고 있죠. 창업한 지 250년이 넘었고 8대째 경영을 이어오고 있는데 이처럼 어떤 한 분야에서 업력이 오랫동안 쌓여서 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물건들이 있어요. 우리 중견기업들도 결국 그런 기업이 되고 싶은 거죠.”

중견련의 중·단기적인 계획이 궁금하네요.
“우리가 컴퓨터 설정에 들어가서 무엇인가 탁 누르면 전체가 다 바뀌잖아요. 저는 특별법 제정으로 모든 법에 중견기업에 대한 부분이 바뀐 줄 알았는데 전혀 그게 아니에요. 특별법이 시행된 지 2년 가까운 현재까지도 중소기업과 대기업이라는 이분법적 인식에 고착된 법·제도, 정책이 바뀌지 않았는데 이에 대한 개선 작업을 진행하는 게 우선적인 목표죠. 또 우여곡절 끝에 닻을 올린 명문장수기업 확인제도에서 업력 기준을 45년에서 30년으로 조정하는 등 더 많은 기업들이 지원받을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했지만 현재는 중소기업으로 대상이 한정돼 있어요. 내년부터는 중견기업으로 확대될 수 있도록 중소기업청과 함께 중견기업특별법 개정을 추진할 계획입니다. 덧붙여 중견기업들의 애로사항 중에 하나가 바로 가업승계예요. 현행 가업상속공제의 활용 건수는 최근 5년 평균 59건에 그칠 만큼 매우 저조한데 중견기업의 경우 매출액 3000억 원 미만인 기업만 해당되기 때문에 활용도가 낮다고 보고 있어요. 향후 적용 대상과 한도 금액 확대, 사전 및 사후 관리요건 완화 등 정책적 개선이 이뤄져야 할 것으로 보고 있어요.”

앞으로 중견기업들의 미래는 밝다고 보시나요.
“중견기업 중 상당수가 이미 해당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요.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성과를 일궈낸 ‘성장과 성공의 DNA’가 있는 기업들이 대부분이죠. 중견기업들에 불편했던 규제들을 조금만 풀어주면 세계적으로 대단한 자리매김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사실 불과 2년여 전까지만 해도 중견련이라는 단체는 민간단체였을 뿐이지만 이제 경제 5·6단체까지 올라섰지 않습니까. 이 같은 속도로 본다면 향후 5~10년 이후에는 중견기업군이 국민으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는 기업군으로 올라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반원익 중견련 상근부회장은…
1953년생으로 영주시 영광고등학교와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삼익건설에 입사해 사업부장, 관리담당이사, 수주총괄 이사 등을 역임했으며, 1994년에는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2대 사무총장을 지내기도 했다.
1995년에는 기계식 주차설비 회사인 시마텍의 대표이사 사장으로 취임했으며, 1996년에는 이탈리아 시마파크를 인수해 사장을 겸임했다. 이후 중소기업중앙회 이사, 공정거래 위원회 자문위원 등을 거친 뒤 2013년 한국중견기업연합회 대외협력 부회장으로 중견련과 인연을 맺고 현재 상근부회장을 맡고 있다.

한용섭 기자 poem1970@hankyung.com │사진 서범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