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cond act] 안용섭 전 금감원 부국장, 인기 금융강사로 제2 전성기
은퇴 후 전문 금융 강사로 인생 2막을 새롭게 연 안용섭(58) 전 금융감독원 부국장. 그는 기자를 만나자마자 자신의 프로필과 기사, 은퇴 후 작성한 논문 등이 담긴 서류뭉치를 꺼냈다. 은퇴 전후, 치열한 고민과 노력의 흔적이었다. “저는 원래 말하면서 힘을 얻는 타입이에요. 금융 강사는 그런 면에서 제게 딱이었죠. 은퇴 후 천직을 찾은 것 같습니다.”

안용섭 전 금융감독원 부국장이 성공적으로 인생 2막에 안착할 수 있던 것은 비단 금감원 출신이라는 든든한 배경 때문만은 아니었다. 금융 강사로 완벽히 변신한 그에게 한 지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아름다운 변신’이란 코멘트를 달았다.

전직 금감원 부국장의 행복한 변신
“수강자에게 맞춤 교육을 하는 것이 제 강의 신조입니다. 단순히 지식만 전달한다면 1시간, 1시간이 정말 무의미해지거든요.”

금감원 시절부터 시작해 지난해 6월 은퇴한 이후 지금까지 금융 교육만도 600여 차례. 그만큼 그의 강의를 듣는 청중도 다양했다. 초등학생부터 중·고등학생, 대학생 등 학생들은 물론 노인, 다문화가정, 교도소 수감자 등 사회적 약자들까지 금융 교육은 어느 한 계층을 빼놓지 않고 이뤄졌다.

딱딱한 금융 교육을 노래로 시작하는 안 전 부국장의 강의는 이미 입소문을 탔다. 연세가 지긋하신 할머니, 할아버지 앞에서는 ‘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라는 노래를 부르거나 ‘쑥대머리’를 열창한다. 손을 지압하는 건강 박수 치기도 노인들에게 인기다. 노래를 부르며 흥을 돋우다 보면 청중들은 어느새 안 전 부국장의 입만 쳐다보고 있게 된다. 그때 자연스럽게 강의를 시작한다.

아이스 브레이크나 스폿 등 청중의 호기심을 일깨우기 위한 강의 기술도 익혔다. 일례로 장 폴 사르트르의 명제 ‘인생은 B(Birth), C(Choice), D(Death)다’를 금융에 맞게 바꿨다.
“금융은 P, Q, R입니다. 금융은 가난함(Poor)에서 시작(Queue)해 부자(Rich)가 되는 것이죠. 이렇게 말하니 머리에 쏙쏙 들어오죠?”

알기 쉬우면서도 수업이 끝난 후에도 뇌리에 남게 하는 것, 그의 강의 노하우였다. 안 전 부국장은 이번에는 직접 노래를 불러 보였다. ‘반짝반짝 작은 별’의 음계에 자신이 직접 가사를 붙여 ‘7전 8기 행복론’이라는 노래를 만들었다. ‘벌기, 쓰기, 모으기, 불리기, 빌리기, 갚기, 지키기, 나누면 행복합니다’라는 가사의 노래는 주로 초등학생들을 교육할 때 부른다. 소비, 지출, 대출, 상환 등 어려운 한자어 대신 누구나 이해하기 쉬운 우리말로 금융의 원칙을 설명한다. 이 간단한 노래에는 금융 철학과 교육의 열정도 오롯이 담겨 있다.

“학생들이 이 노래를 기억해 일생 동안 돈에 대한 어려움 없이 살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만들었습니다. 돈이란 게 잘 지키고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행복을 좌우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는 학생들에게 강의할 때에는 SM엔터테인먼트나 JYP엔터테인먼트 같은 회사를 예로 든다. 그러면 처음에는 관심 없어 하던 학생들도 어떤 얘기가 나올지 호기심 어린 눈으로 바뀐다. 적절한 투자와 아티스트 양성을 통해서 큰돈을 벌 수 있었다는 내용을 일러준다. 빌 게이츠나 오프라 윈프리, 유일한 박사 등 부를 축적한 후 사회에 공헌한 사람들의 얘기도 빼놓지 않는다. 돈을 가치 있게 사용하는 법도 가르치기 위함이다.

교도소 재소자를 교육할 때는 돈을 모으는 사례를 들려주거나 이미 출소한 이들의 성공담을 수집하는 수고도 기울인다. 이들에게는 동기 부여와 용기가 그 누구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강의를 듣고 난 재소자들은 출소 후에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꿈이 어렴풋이 생기게 된다. 그의 교육은 단순히 지식을 전하고, 돈을 버는 노하우만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었다. 그의 노력은 수강자를 향한 애정까지 엿볼 수 있게 했다. 그는 금융 교육에 보다 큰 꿈을 그려내고 있었다.

“저는 금융 지식과 금융 민원에 대한 경험, 현장 지식 등이 어우러져 보다 복합적인 금융 강의를 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요. 그게 다른 금융 강사들과는 차별점이라고 생각해요. 앞으로 금융 교육을 다양한 교육의 영역으로 접목하고 싶습니다. 또 은행, 보험, 증권 등 다양한 금융 회사와 기관들의 네트워크도 필요합니다. 금융 교육은 어느 한 분야에만 치우칠 수 없거든요.”

‘7전 8기 행복론’이라는 노래 만들어
이제는 금융 교육에 대한 구체적인 꿈을 그려내고 있지만 금감원 재직 시절만 해도 은퇴는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는 “은퇴는 생각만 해도 황무지에 홀로 서 있는 듯한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도 그럴 것이 30여 년을 몸담았던 직장이었다. 금감원은 안 전 부국장 자신은 물론 가족들에게까지 울타리 같은 존재였다. 은퇴를 앞둔 50대 중반, 세 명의 자녀 중 두 아이는 아직 학업이 남아 있었다. 이들을 뒷바라지 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었다. 금감원은 공직자 윤리법에 의해 3년간 재취업마저 제한되니 그의 고민은 더욱 깊어졌다.

은퇴에 대한 막연한 고민에 빠져 있을 때 유치원 교사 자격증이 있는 아내는 집에서 어린이집을 열자고도 제안했다. 그는 아내를 고생시키는 것만 같아 선뜻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고심을 거듭하자 막내아들이 직언을 날렸다. 전혀 새로운 것에 도전할 생각 말고 하던 것을 계속 하라는 것. 아들이 무심결에 던진 말이었지만 그 말은 안 전 부국장에게 적절한 조언이 됐다.

“금감원 재직 시절부터 하던 금융 교육을 보다 구체화해 전문 강사로 활동하자고 마음먹었죠. 저만 노력한다면 자본이 들어가지 않고 제가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기도 했고요.”

이후 그는 자신의 은퇴를 차근차근 준비해 나갔다. 은퇴 5년 전부터 전문 강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밟았다. 금융교육국으로 발령받은 이후에는 보다 철저히 금융 교육을 준비했다. 금융교육국 재직 시절 자신이 발간한 교육 자료만 모아도 책 한 권을 펴낼 수 있을 정도였다. 금감원에서 실시한 금융 교육 강사 자격증도 땄다. 은퇴 전 이미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금융 교육을 수백 회 진행했다. 인생 2막을 열 준비를 은퇴 전부터 다져놓은 셈이었다.

“한국은행과 금감원 출신이라는 프리미엄도 있었겠지만 제가 은퇴를 위해 기울인 노력들도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특히나 전직의 노하우를 그대로 교육 업무에 적용할 수 있으니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케이스죠.”

자신의 미래를 차분히 다져간 그의 얘기를 들으며 과연 공직자가 가진 철저함이 드러나는 듯했다. 하지만 그의 답은 달랐다. 그는 금감원 재직 시절 커리어 관리를 잘 못했다고 털어놓았다.

“제가 금감원에서 국장을 달지 못하고 은퇴했잖아요. 물론 그것에 대한 후회는 없어요. 다만 일을 하면서 현재에만 충실할 뿐 미래를 준비하면서 일하지는 않았다는 생각이 들어요. 한국은행에서 일할 때 올림픽조직위원회로 파견 갔던 적이 있었는데 월급 10만 원을 더 준다고 했기 때문이었어요. 커리어를 생각했다면 그렇게 가서는 안 됐죠.(웃음)”

멋쩍게 웃어 보이며 그는 예전 얘기를 덧붙였다. 장학금을 받아야만 대학에 진학할 수 있었던 가난했던 시절이 몸에 배어 하루하루를 사는 데만 열심일 뿐 미래를 준비하지 못했다는 얘기였다. 첫 직장으로 한국은행을 삼은 것도 누구나 선망하는 직장, 월급을 많이 주는 직장이었기 때문이었다고 회상했다. 은퇴한 이후에는 보다 구체적으로 꿈을 그려 가기로 했다. 그런 삶이 재미있고 만족스럽다.

그래서 누가 시키지 않아도 강의 자료를 만들기 위해 파워포인트는 물론 동영상 편집 프로그램까지 배웠다. 온라인상에 수많은 강의 자료가 있지만 보다 질 좋은 수업을 위해 시청각 자료까지 직접 만든 것이다. 50대 중반의 나이, 컴퓨터에 앉아 새로운 프로그램과 씨름하는 것이 녹록지는 않았을 터였다. 그럼에도 청중들이 재밌게 강의를 듣고 그에 대한 피드백이 자신의 삶에도 긍정적으로 작용함을 느꼈다.

“이렇게 열심히 준비하는 것치고 수입은 물론 많지 않아요. 하지만 제가 보람 있게 일하면서 돈까지 받고 있으니 수입은 적으나마 덤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이란 게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또 살아지거든요.”

그는 ‘낙선불권(樂善不倦)’을 인생의 좌우명으로 삼았다고 했다. 선을 즐기는 사람은 권태로움이 있을 수 없다는 맹자의 ‘고자’ 편에 나온 말이다. 그의 지인이 했던 ‘아름다운 변신’이라는 말의 의미를 알 것만 같다. “저는 그 말이 참 좋습니다. 제가 열심히 베푼 만큼 메아리로 돌아올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문혜원 객원기자│사진 이승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