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njoy] 행복 중독에서 벗어나기
“이성적으로 생각할 때 감사한 것들은 많은데 마음은 행복하지가 않아 답답하다”며 한 직장인이 고민 사연을 보내왔다. 행복한 삶을 살려면 느낌보다 삶의 내용 즉 가치에 더 비중을 두는 훈련을 하는 것이 필요하다. 행복한 느낌이 없어도 가치 있는 행복 활동을 하고 있다면 내 삶은 행복한 것이다. 가치가 아니고 너무 느낌에 의존해 내 행복 여부를 판단하면 감정이 목적이고 행복 활동이 수단이 돼 버리는데, 감정은 그 특징 자체가 변덕이 심해 내 행복 지수도 들쑥날쑥하게 된다.

행복은 행복한 삶의 내용과 그것에 대한 주관적인 감정 반응으로 나누어진다. 행복을 빈다고 할 때는 행복한 삶의 내용이 많았으면 하는 것이다. 행복에 젖다, 행복을 느끼다라고 할 때는 행복한 삶의 내용 때문에 주관적인 기쁨과 흐뭇함을 느끼는 것이다. 여기서 행복은 주관적인 감정 반응이다. 보통 우리는 행복한 삶의 내용이 있으면 느낌도 행복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는 않다. 예를 들어 필자가 수년간 칼럼 연재를 통해 독자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은 소중한 인생의 행복 콘텐츠다. 그러나 항상 그 행복감을 느끼는 것은 아니다. 시간에 쫓겨 원고를 쓰다 보면 스트레스도 받고 그때는 행복감이 아니라 오히려 초조 불안감이 찾아온다. 그렇다면 그 순간에는 칼럼을 쓰는 것이 불행한 삶의 콘텐츠가 되는 걸까.

우리 마음이라는 것이 엉뚱해 행복을 목표로 뛰면 오히려 행복감을 느끼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인생의 목표가 무엇인지 물으면 “행복이다”라고 대답하는 분들이 많다. 행복이 인생의 목표인 것, 나빠 보이지 않는다. ‘사장이 되겠다’, ‘장관이 되겠다’란 성취 위주의 목표보다 소박하고 진솔한 삶을 사는 느낌도 든다. 그런데 사실 인생 목표가 행복인 것은 굉장히 높은 수준의 목표를 설정한 것이다. 사람이 행복을 느끼려면 인생 목표에 도달해야 하는데 행복을 인생 목표로 삼으니 오히려 행복하기 어려운 황당한 일이 발생하는 것이다.

왜 행복이 높은 수준의 목표일까. 앞에서 행복은 행복한 삶의 내용과 그것에 대한 주관적인 감정 반응으로 나누어진다고 했는데 보통 우리가 ‘행복하고 싶다’ 하면 행복감을 느끼는 것을 이야기할 때가 많다. 행복이 인생의 목표라는 것은 행복감을 느끼는 것이 인생의 목표라는 것인데, 행복감을 계속 유지하는 것이 의외로 굉장히 어렵기 때문에 행복이 높은 목표라는 것이다.

행복감을 계속 유지하기 어려운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뇌의 적응이다. 행복한 삶의 내용이 생기면 행복감이 찾아온다. 문제는 이 행복감이 계속 유지되지 않고 점점 옅어진다는 것이다. 이것을 적응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결혼식을 막 마친 부부의 마음엔 이제 함께할 수 있음에 행복감이 밀려온다. 그러나 그 결혼식에 대한 행복감이 수년간 지속되는 경우는 없다. 자연스럽게 옅어질 수밖에 없다. 그런데 행복감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되면 ‘내가 결혼을 잘못한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어 불행한 마음이 찾아오게 된다. 결혼을 잘못해서가 아니라 워낙 감정이라는 것이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는 것이 자연스러운 현상이라 그런 것인데 말이다.

행복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뇌의 회전 속도를 낮추어야 한다
행복감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되면 적응을 넘어서는 더 강한 자극을 뇌가 좇게 된다. 이게 중독 현상이다. 소소한 자극에는 뇌가 행복감을 못 느끼게 되는 것이다. 행복감을 목표로 뛰는데 행복이 느껴지지 않으니 마음은 불안을 느끼고 불안은 뇌의 생존 회로의 가속페달을 더 밟게 된다.

행복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뇌의 회전 속도를 낮추고 내가 할 수 있는 행복한 활동에 몰입하는 여유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 행복한 느낌을 좇는 것보다는 감정이 좋든 말든 여유를 갖고 행복 활동에 집중하다 보면 슬쩍 행복감이 찾아온 것을 느낄 수 있다. 행복감을 느끼기 위해서 행복 활동을 하는 것보다 행복 활동이 가치가 있어서 하다 보니 행복감이 찾아오는 것이다. 비슷한 듯하나 큰 차이가 있다. 삶의 목적, 행복의 판단 기준이 주관적인 느낌이냐, 아니면 삶의 가치 있는 내용이냐이기 때문이다.
[enjoy] 행복 중독에서 벗어나기
글·사진 윤대현 서울대학교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