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lobal Focus]상속권 박탈의 조건
상속자라고 해서 무조건 상속권이 주어지지는 않는다. 미국에서는 피상속인에 대한 살인 행위 등에 대해서는 상속재산을 받을 수 없도록 하는 등 엄격한 잣대를 정해 놓고 있다.

상속결격이라는 것은 법정(法定)된 결격 사유가 있는 상속인의 상속권을 박탈하는 것을 말한다. 미국은 법으로 피상속인에 대한 살인 행위, 상속인으로서의 의무 위반, 포기 등을 상속결격 사유로 정하고 있다. 한국 민법에서는 고의로 직계존속, 피상속인, 그 배우자 또는 상속의 선순위나 동순위에 있는 자를 살해하거나 살해하려한 자, 고의로 직계존속 또는 피상속인과 그 배우자에게 상해를 가해 사망에 이르게 한 자, 사기 또는 강박으로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 또는 유언의 철회를 방해한 자, 사기 또는 강박으로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을 하게 한 자, 피상속인의 상속에 관한 유언서를 위조·변조·파기 또는 은닉한 자 등을 상속결격 사유로 규정하고 있다.

먼저 피상속인에 대한 살인 행위에 대해 살펴보면 미국의 거의 모든 주법은, 피상속인을 살해한 사람은 유언에 의해서든 무유언상속법에 의해서든 피상속인의 재산을 받을 수 없다는, 이른바 ‘살인자조항(Slayer Statute)’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자신의 악행 그 자체로부터 이익을 얻어서는 안 된다는 정의 관념의 표현일 뿐 아니라, 살해된 피상속인의 의사 추정이기도 하다. 또한 악행을 단념시키려는 법정책의 일환으로 볼 수도 있다. 미국 통일상속법(UPC)은 단순히 유언 또는 무유언상속법에 의한 상속재산뿐 아니라 배우자 유류분, 누락된 상속인의 상속분, 주거수당, 면제재산, 가족수당 등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모든 이익을 박탈하고 있다. 박탈된 상속재산은 살인자가 자신의 상속분을 포기한 것처럼 취급돼 다른 상속인에게 이전된다.

살인자가 상속자일 때 법원 판단은
그렇다면 주법에 살인자조항이 없거나, 있더라도 살인자조항의 적용 범위를 벗어나는 사건의 경우에는 어떻게 할까. 적용할 법률이 없는 한 살인자라는 이유만으로 법원이 임의로 상속으로부터 배제시킬 수는 없다는 이유로 살인자의 상속권을 인정한 판결도 있다.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펜실베이니아 주 대법원의 타를로 유산사건(In re Tarlo’s Estate, 1934년 Supreme Court of Pennsylvania)이다.

이 사건에서 앨버트 타를로(Albert Tarlo)는 아침에 일어나 같은 방에서 자고 있던 아내를 총으로 살해하고 나서 곧장 딸의 방으로 가서 딸마저 총으로 살해한 후 자살했다. 딸은 유언을 남기지 않았는데 딸의 재산이 부계혈족(앨버트의 혈족)에게 상속되는 것이 옳은지 아니면 모계혈족에게 상속되는 것이 옳은지가 쟁점이었다.

당시 펜실베이니아 주의 살인자조항은, 살인죄로 유죄의 확정판결을 받은 경우에만 희생자로부터 상속을 받을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앨버트는 이미 자살했기 때문에 유죄판결을 받을 수 없었다. 펜실베이니아 주 대법원은 의회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법률의 문언을 법원이 함부로 확장시킬 수 없으며, 이 사건과 같은 상황까지 적용하기 위해서는 의회가 법률을 개정해야 한다는 이유로 딸의 재산을 부계혈족에게 귀속시켰다. 그러나 이 판결에 대해서는 7인의 대법관 중 3인이 다수의견에 반대했다. 이 사건 판결 이후 펜실베이니아 주의 살인자조항은 유죄판결을 요구하지 않는 방향으로 개정됐다.

그러나 이러한 결론은 정의 관념에 부합하지 않기 때문에 형평법적 의제신탁(Equitable Constructive Trust) 이론을 통해 살인자로부터 상속재산을 박탈하기도 한다. 이에 따르면 상속인 또는 수증자가 피상속인을 살해한 경우 그 상속인 또는 수증자는 정당한 수익자를 위한 신탁의 수탁자로 간주된다. 결국 피상속인을 살해한 상속인 또는 수증자는 의제신탁의 수탁자가 됨으로써 신탁재산(상속재산)을 신탁의 수익자에게 넘겨주어야 할 의무를 지게 된다.

살인자는 빈껍데기뿐인 법률상의 소유권만 취득하게 되는 것이다. 미국 사법부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법관으로 칭송받는 벤저민 카르도소 연방대법관은 이 이론을 다음과 같이 높이 평가했다.

“법적 소유권을 살인자에게 이전시키면서도 의제신탁의 구속을 받게 함으로써 법적 일관성이 유지됐고 정의가 논리를 얻었다는 찬사를 받을 수 있게 됐다. 의제신탁은 단지 형평법에 따른 양심을 표현한 공식에 불과하다. 법률상의 소유자는 양심상 수익자로서의 이익을 누릴 수 없다는 조건하에서만 재산을 취득하게 된다. 살인자의 행위에 대한 불승인을 표현하기 위해서 형평법은 살인자를 수탁자로 전환시킨 것이다.”

비의도적 고살, 상속권 유지될까?
현대의 살인자조항은 의도적인 중죄살인의 전형인 ‘모살(murder)’뿐 아니라 ‘의도적 고살(voluntary manslaughter)’까지도 포함시키고 있다. UPC도 ‘중죄의 방식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felonious and intentional)’ 피상속인을 살해한 사람은 피상속인의 재산에 관한 모든 이익을 몰수당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만약 살인자에 대한 유죄판결이 없는 경우에는, 민사법원이 이해관계인의 청원에 기해 살인자가 ‘중죄의 방식으로, 그리고 의도적으로’ 피상속인을 살해했는지 여부를 결정해야 한다. 이처럼 의도적 살인과 비의도적 살인을 구별하는 법리는 버몬트 주 대법원의 마호니 유산사건(In re Estate of Mahoney. 1966년 Supreme Court of Vermont)에서 구체화됐다.

이 사건에서 피상속인인 하워드 마호니(Howard Mahoney)는 1961년 5월에 어떠한 유언도 남기지 못하고 그의 아내인 샤를로트 마호니(Charlotte Mahoney)에 의해 살해당했다. 샤를로트는 1962년 3월에 ‘고살(manslaughter)’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하워드는 자식이 없었고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자신을 살해한 아내만을 남겼다. 유언검인법원은 의제신탁 이론에 따라 샤를로트를 하워드의 부모를 위한 의제신탁의 수탁자로 결정하고, 하워드의 잔여 재산을 아버지와 어머니에게 동등한 비율로 분배할 것을 명했다. 그러자 샤를로트가 상소를 했다.

이 사건이 제기됐던 버몬트 주에서는 살인자조항이 없었다. 버몬트 주 대법원은 “살인자조항이 없더라도 형평법적 의제신탁 이론에 의해 살인자를 상속으로부터 배제시킬 수는 있으나, 이러한 이론을 모든 살인의 경우에 일률적으로 적용시킬 수는 없다. 의도적인 살인과 비의도적인 살인은 구별해야 한다”고 판시하면서, 샤를로트의 살인이 의도적인 것인지 비의도적인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해 사건을 사실심으로 환송시켰다.

이러한 구별에 따르면 의도하지 않고 우연히 사람을 죽인 사람은 ‘비의도적 고살(involuntary manslaughter)’로 유죄판결을 받더라도 상속을 받을 수 있다. 예컨대 펜실베이니아 주 대법원의 클라인 유산사건(In re Estate of Klein, 1977년 Supreme Court of Pennsylvania)처럼 아내가 술에 만취한 남편의 자동차에 치여 사망했더라도 그 남편은 아내의 재산을 상속 받을 수 있다. 이 사건에서 판결문을 작성했던 로버츠 대법관은 다음과 같이 판시했다. “우리 의회가 살인자조항을 채택했을 때는 비의도적 고살보다 높은 정도의 범죄에 이를 적용하고자 한 것이다. 자동차 사고를 일으켜 아내를 죽음으로 이끈 남편의 행위가 비의도적 고살로 유죄판결을 받은 이상 살인자조항을 적용할 수 없다.”

미국의 거의 모든 주법은, 피상속인을 살해한 사람은 유언에 의해서든 무유언상속법에 의해서든 피상속인의 재산을 받을 수 없다는, 이른바 ‘살인자조항’을 가지고 있다.
김상훈 법무법인(유한) 바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