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부 국적과 증여세
[한경 머니 기고 = 고연기 상무·임준규 변호사 EY한영회계법인 세무본부 상속·증여전담팀]부부가 모두 미국 시민권자이거나 한 사람만 한국 국적인 경우 부부간 재산의 무상이전에 대한 증여 판단은 전혀 다른 결과를 불러올 수 있다.

# 이 씨와 김 씨는 미국 유학시절 만나 사귀게 됐고, 둘은 1988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하고, 1991년 드디어 결혼을 했다. 이 부부는 혼인 이후 미국 텍사스 주에서 직장을 가지고 현재까지 살고 있다. 2000년경 남편 이 씨가 직장생활을 하며 번 돈으로 서울에 있는 주택을 자신의 명의로 취득하고, 다른 사람에게 임대했다. 아내 김 씨는 2015년 4월, 한국에 있는 빌라를 매매대금 15억 원으로 매매 계약을 체결했다. 아내 김 씨는 빌라 매매대금을 지급하기 위해 서울에 있는 남편 이 씨 명의의 주택을 임대하고 받은 전세보증금 6억 원 중 4억 원을 2015년 10월 남편 이 씨 명의의 계좌에서 아내 김 씨 명의의 계좌로 이체를 받아 사용했다. 즉, 미국 시민권자인 남편 이 씨가 소유한 한국 소재의 부동산에서 발생한 임대보증금 중 일부 금액을 미국 시민권자 아내 김 씨 소유의 부동산 취득에 사용한 것이다.

과세관청은 최근 외국 국적을 가지고 있는 부부간에 이루어진 국내 재산의 증여는 증여세 부과대상이고 아내 김 씨가 남편 이 씨로부터 4억 원을 증여받았다는 이유로 부부에게 증여세 부과를 고지했다. 이에 부부는 과세관청의 증여세 부과처분에 대해 불복절차를 밟아 법원에 증여세 부과처분 취소의 소를 제기했다.

이는 실제 판례를 각색한 것인데 과세관청의 과세 논리는 무엇이었을까? 민법 제830조 제1항은 “혼인 중 자기의 명의로 취득한 재산은 그 특유재산으로 본다”고 규정하고 있다. 과세관청은 이 규정을 근거로 남편 이 씨 명의의 주택은 이 씨의 소유이며, 아내 김 씨 명의의 주택은 김 씨의 소유라고 보았다.

특유재산(separate property)이란 혼인 중 자기 명의로 취득한 재산과 혼인 전부터 가지고 있던 재산을 말한다. 간단히 말하자면 부부 각자가 단독으로 소유한 재산이라는 뜻이다. 특유재산은 부부가 각자 관리, 사용, 수익할 수 있다. 이는 공유재산(community property)과 반대되는 개념이다.

따라서 남편 이 씨 명의 주택의 임대차보증금은 임대인 남편 이 씨 소유이며 이러한 임대차보증금 중 일부인 4억 원을 아내 김 씨 명의 빌라의 매매대금으로 사용한 것은 남편 이 씨가 아내 김 씨에게 4억 원을 증여한 것이라는 게 과세관청의 주장이었다.

요컨대, 과세관청은 남편 이 씨 명의 주택과 아내 김 씨 명의 빌라가 부부 일방이 혼인 중 단독 명의로 취득한 재산으로써 부부 각자의 특유재산으로 추정돼 남편 이 씨가 아내 김 씨에게
4억 원을 증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美 국적 부부 재산은 본국법 우선 적용

이에 대해 법원은 과세관청의 증여세 및 가산세 부과처분을 취소했다(서울행정법원 2014. 11. 24. 2014구합60207 판결, 서울고등법원 2015. 7. 7. 2015누30212 판결, 대법원 2015. 11. 17. 2015두49337).

법원은 “원고들은 미국 국적을 가진 부부이고, 국제사법 제38조 제1항은 ‘부부재산제에 관해서는 제37조의 규정을 준용한다’며, 같은 법 제37조는 ‘혼인의 일반적 효력은 다음 각 호에 정한 법(제1호: 부부의 동일한 본국법)의 순위에 의한다’라고 각 규정하고 있으므로, 원고들 재산의 귀속과 관련해서는 부부별산제를 원칙으로 하고 있는 민법 규정이 아니라 원고들의 동일한 본국법 규정이 우선 적용된다”고 했다.

원고들의 거주지인 미국 텍사스 주 가족법(Family Code)을 보면 ‘양 배우자들이 혼인 기간 중 취득한 재산은 부부 공유재산으로 추정되고, 배우자가 혼인 이전에 소유했던 재산, 혼인 기간 중 증여, 유증, 상속을 원인으로 취득한 재산은 특유재산이다’라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에서 정한 재산(property)에는 부동산 및 동산과 채권 등이 포함된다. 이 국제사법 제38조 제1항, 제37조, 미국 텍사스 주 가족법 등의 규정에 비추어보면,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미국 국적(텍사스 주 거주)의 부부인 원고들이 혼인 기간 중에 취득한 이 사건 관련 부동산과 빌라, 관련 부동산을 임대하고 수령한 임대차보증금은 원고들 공유에 속한다고 봄이 상당하다고 판단했다.

또 법원은 “비록 원고 남편 이 씨 단독 명의로 이 사건 관련 부동산을 임대하고 임대차보증금을 수령했다고 하더라도, 원고들 사이에서는 임대차보증금이 부부 공유재산이므로 원고 아내 김 씨가 원고 남편 이 씨로부터 임대차보증금 중 일부인 이 사건 쟁점 금액을 증여받았다고 볼 수 없어 이와 다른 전제에 선 이 사건 처분은 위법하므로 취소돼야 하고 이 점을 지적하는 원고들의 주장은 이유 있다”며 증여세 부과처분을 취소했다.

이와 같이 법원은 국제사법 제38조 제1항, 제37조 제1호를 근거로 미국 시민권자인 부부가 미국 텍사스 주 가족법에 따라 부부의 혼인 기간 중 취득한 재산은 부부 공유재산으로 추정된다고 판단해 부부 사이에 증여가 없다는 취지로 판단했다.

그렇다면 부부가 동일한 외국 국적을 가진 경우, 부부 간의 재산관계를 판단하는 기준은 무엇일까? 국내법에 따르면 외국 국적의 부부 간에 이루어진 국내 재산의 증여는 증여세 부과처분의 대상이 된다(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조, 제4조의2).

그러나 부부간 재산 무상이전이 ‘증여’인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우선 부부 명의 재산이 부부 중 누구 소유인지를 판단해야 한다. 또 같은 외국 국적을 가진 부부 명의 재산의 소유자가 누구인지를 판단함에 있어서는 외국의 가족법에 의해 판단해야 한다.

그러면 부부가 국적이 다른 경우에는 어떨까? 만약 부부가 국적이 다른 경우에는 국제사법에 의해 부부의 동일한 상거소지법에 따라 판단할 것이며, 상거소지가 동일하지 않다면 부부와 가장 밀접한 관련이 있는 곳의 법에 의해 판단하게 된다(국제사법 제38조, 제37조 각호). 여기서 상거소지를 알 수 없는 때에는 그의 거소가 있는 국가의 법에 의한다(국제사법 제4조). 상거소지란 사실상 생활의 중심지로 일정 기간 지속된 장소를 말한다.
고연기 상무·임준규 변호사 EY한영회계법인 세무본부 상속·증여전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