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자녀에게 증여 시 유류분은?
[한경 머니 기고 = 고연기 상무·임준규 변호사 EY한영회계법인 세무본부 상속·증여전담팀]상속액의 일정 부분을 법정상속인의 몫으로 남기도록 한 유류분(遺留分)제도는 상속 분쟁의 불씨가 되기도 한다.

그렇다면 한 세대를 건너뛰어 손자세대에게 재산을 증여하는 경우 유류분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

지난해 모 그룹 회장 사망 이후 회장의 혼외자가 유류분반환청구를 한 사건을 통해서 ‘유류분’에 대한 관심이 크게 증가했다. 이 사건에서는 삼남매가 회장으로부터 증여받은 재산이 있는지, 만약 있다면 그 재산이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에 해당하는지 여부 등이 문제가 됐는데, 현재는 소송에서 양측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이 사건 이외에도 다양한 유류분 관련 분쟁이 많이 발생하는데 상속인의 권리를 보호해준다는 측면이 강조돼 온 유류분제도에 대습상속(代襲相續)이 얽히게 되는 경우 피상속인의 의사를 더 존중하는 판결이 있어 각색해 소개한다.

# 박거부(박예쁨의 할아버지)가 2009년 6월 1일경 사망했다. 한편 망인 박거부의 사망 이전에 박거부의 자녀 박금수, 박유류 중 박금수(박예쁨의 아버지)가 1995년 7월 12일경 먼저 사망했다. 망인 박거부는 박금수의 사망 이전인 1991년 6월 12일경 박금수의 딸이자 위 상속관계 목록의 대습상속인 손녀 박예쁨에게 서울 근교 임야를 증여했다. 피상속인 박거부가 아들 박금수 사망 전에 박금수의 자녀인 손녀 박예쁨에게 임야를 증여한 사안으로, 다른 상속인 삼촌 박유류가 박예쁨을 상대로 유류분반환청구를 했다.

유류분을 산정함에 있어서 증여받은 임야가 박예쁨의 특별수익에 해당해 유류분 산정을 위한 기초재산에 포함되는 것으로 보아 유류분을 산정해야 하는지가 문제였다.

◆“대습 원인 발생 전 증여, 특별수익 아니다”

1, 2심은 증여받은 임야가 특별수익에 해당해 유류분 산정을 위한 기초재산에 포함된다고 보며 박유류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대법원은 “민법 제1008조는 공동상속인 중에 피상속인으로부터 재산의 증여 또는 유증을 받은 특별수익자가 있는 경우 공동상속인들 사이의 공평을 기하기 위해 그 수증재산을 상속분의 선급으로 다루어 구체적인 상속분을 산정함에 있어 이를 참작하도록 하려는 데 그 취지가 있는 것인바(대법원 1995. 3. 10. 선고 94다16571 판결 등 참조), ‘대습상속인이 대습 원인의 발생 이전에 피상속인으로부터 증여를 받은 경우 이는 상속인의 지위에서 받은 것이 아니므로’ 상속분의 선급으로 볼 수 없다.

그렇지 않고 이를 상속분의 선급으로 보게 되면, 피대습인(박예쁨의 할아버지)이 사망하기 전에 피상속인(박예쁨의 아버지)이 먼저 사망해 상속이 이루어진 경우에는 특별수익에 해당하지 아니하던 것이 피대습인이 피상속인보다 먼저 사망했다는 우연한 사정으로 인해 특별수익으로 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한다”고 판단했다.

이어 대법원은 “따라서 대습상속인의 위와 같은 수익은 특별수익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봄이 상당하다. 이는 유류분제도가 상속인들의 상속분을 일정 부분 보장한다는 명분 아래 피상속인의 자유의사에 기한 자기 재산의 처분을 그의 의사에 반해 제한하는 것인 만큼 그 인정 범위를 가능한 한 필요최소한으로 그치는 것이 피상속인의 의사를 존중한다는 의미에서 바람직하다는 관점에서 봐도 더욱 그러하다(대법원 2014. 5. 29. 선고 2012다31802 판결)”고 판단했다.

박예쁨이 자신의 아버지 박금수 사망 전에 할아버지 박거부로부터 받은 재산이 특별수익에 포함되지 않아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지 않는다고 하면서 2심을 파기 환송했다. 대법원은 박예쁨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이 사건에서 대법원은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의 범위를 엄격하게 해석하면서, 대습상속인이 될 자의 지위에 있을 때 증여받지 않았으므로, 아버지 박금수 사망 전에 박예쁨이 할아버지 박거부로부터 증여받은 서울 근교 임야는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만약 박예쁨의 아버지 박금수가 할아버지 박거부 사망 시까지 살아 있어서 박금수가 할아버지 박거부로부터 상속을 받은 경우에는, 박예쁨은 상속인이 아니기 때문에 박예쁨이 할아버지 박거부로부터 증여받은 임야는 유류분 계산에 있어서 특별수익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대습상속의 경우 대습 원인 발생 전 즉 박예쁨의 아버지 박금수 사망 전에 이루어진 할아버지 박거부의 박예쁨에 대한 증여에 대해서도 위와 동일하게 봐야 한다는 취지다.

대법원의 판결 취지를 해석해보면 이 사건의 사실관계와 다르게 박예쁨의 아버지 박금수가 사망한 후 즉, 대습상속 원인이 발생하고 난 뒤에 박예쁨이 할아버지 박거부로부터 임야를 받았더라면, 임야가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에 포함돼 더 많은 재산을 다른 상속인들에게 반환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유증이나 증여 시에 위와 같은 유류분 문제를 신중히 고려할 필요가 있다. 덧붙이자면 할아버지가 손자녀에게 증여 시 증여세가 증여재산가액의 30%(미성년자인 손자에게 20억 원 이상 증여하는 경우 40%) 가산해 과세되는 점(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57조)과 유류분제도를 회피하기 위해 손자녀에게 증여가 필요한 경우가 있는 점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용어 설명
‘유류분 제도’는 유증이나 증여로 인해 상속재산이 없게 돼 상속받지 못하거나, 상속받은 재산이 유증이나 증여가 없었다면 상속받을 수 있었던 재산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 상속인을 보호해주기 위한 것이다. ‘유류분반환청구권’은 피상속인(사망한 자)이 생전 증여나 유증을 통해 재산을 처분하는 경우, 상속 개시 후 일정한 상속인(직계비속, 배우자, 직계존속, 형제자매)이 유증이나 증여를 받은 자에게 자신의 상속분의 일정 비율(2분의 1이나 3분의 1)에 해당하는 재산을 반환 청구할 수 있는 권리다.
‘대습상속’은 상속인이 될 자가 피상속인보다 먼저 사망한 경우, 상속인의 자(아들, 딸), 배우자가 상속인을 대신해 피상속인으로부터 상속인의 상속분만큼 대습해 상속받는 제도다. 상속인이 될 자가 사망할 때에 대습 원인이 발생한다.
유류분을 산정함에 있어서 유류분 산정의 기초가 되는 재산 중 ‘특별수익’이 있다. 유류분으로 반환받을 수 있는 대상을 산정하는 기초가 되는 부분으로 상속인이 유증이나 증여받은 재산이다. 특별수익이란 상속인이 피상속인으로부터 유증이나 증여를 받은 재산으로, 유류분 계산의 대상이 되는 ‘유류분 산정의 기초재산’에 포함된다. 상속인들이 피상속인으로부터 증여받거나 유증받은 재산을 유류분 계산에 포함시켜 유류분반환청구권자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제도다.
고연기 상무·임준규 변호사 EY한영회계법인 세무본부 상속·증여전담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