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heritance 제 141호 (2017년 02월)

가업승계의 열쇠는 창업자의 경영철학

가업을 승계한다는 것은 단순히 물리적인 기업만을 승계하는 것이 아니다. 창업자의 이념이나 철학, 즉 정신적인 것까지 포함해 계승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과거 회사를 이끈
가장 중요한 신념이고 현재도 중요하며 미래에도 회사를 이끌 가장 중요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성공적인 가업승계를 위해 계승해야 할 경영철학에는 어떤 것들이 있을까.


지난해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한 서점이 온라인과 모바일 시대를 역행하는 새로운 시도로 주목을 받았다. 5만여 년 된 대형 소나무로 만든 100인용 독서 테이블을 서점 한가운데 놓은 것. 그리고 서가 곳곳에 책을 읽을 수 있는 작은 테이블과 소파를 마련해 보고 싶은 책을 골라 도서관이나 북카페처럼 편하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을 마련했다. 온라인 시장의 확장으로 오프라인서점이 위축됐지만, 오히려 서점을 단순히 책을 사기 위해 들르는 공간이 아닌 손님이 ‘오래 머무르고 싶은 공간’으로 바꾼 것이다. 그 주인공은 바로 국내 대형 서점의 선두주자인 ‘교보문고’다.

교보문고 측은 이번 변신에 대해 “오프라인 서점의 역할은 서점으로 찾아와서 책을 읽고 머무르는 문화를 체험하게 하는 곳”이라며 “공간디자인을 할 때, 독자들이 머무르게 하는 요소들을 생각해 꾸민 것이다”라고 밝혔다.

그런데 이러한 변신에는 ‘책을 파는 것이 아니라 책이 읽히도록 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는 고(故) 신용호 회장의 창업 정신이 깃들어 있다. 신 회장은 어렸을 적 교육을 받지 못했지만 배움에 뜻이 있어 독학으로 공부를 하며 독서가 곧 사람을 만든다는 것을 일찍이 깨달았다. 그는 매일 교보문고 매장을 돌아보며 다섯 가지 지침을 정리해 직원들에게 알리고 이를 실천하게 했다. 1981년 교보문고 개점 초 직원들에게 내린 지침은 아직까지도 전 사원을 대상으로 교육되고 있다고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모든 고객에게 친절하고 초등학생에게도 반드시 존댓말을 쓸 것
❖ 책을 한곳에서 오래 서서 읽는 것을 절대 말리지 말고 그냥 둘 것
❖ 책을 이것저것 빼보기만 하고 사지 않더라도 눈총 주지 말 것
❖ 앉아서 노트에 책을 베끼더라도 제지하지 말고 그냥 둘 것
❖ 간혹 책을 훔쳐 가더라도 도둑 취급하면서 절대 망신 주지 말고
    남의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데려가 좋은 말로 타이를 것

여기에는 단순히 ‘책을 판매하는 것을 넘어 책을 읽게 하자’는 그의 경영철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교보문고의 설립 초기에는 돈이 없어 책을 사지 못하는 청소년들이 책을 볼 수 있는 도서관과 같은 기능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경영 환경은 급격하게 바뀌고 있지만 창립자의 설립 취지, 즉 경영이념은 30년이 넘은 지금까지도 회사 운영의 기본이 되고 있다.

100년 장수기업의 비결
현재 가장 많은 장수기업을 보유한 나라는 일본이다. 일본에는 100년 이상 된 기업이 약 5만여 개가 있고 200년 이상 된 기업도 3000개가 넘는다. 왜 일본에는 유독 장수하는 중소기업이 많을까. 연구에 따르면 여기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 창업자 후손들이 가업의 계승과 기업이념의 실현을 목표로 경영해 왔기 때문이다. 즉, 가족으로 이어지는 후계 경영자들이 창업자의 경영철학과 기업이념을 실현하기 위해 노력해 온 것이 장수기업이 된 가장 큰 이유다.

둘째, ‘전통의 계승’과 ‘혁신’을 동시에 추구해 왔기 때문이다. 전통이라는 것은 고객제일주의, 품질본위, 종업원을 소중히 여기는 정신, 지역사회 공헌 등 근본적인 가치를 말한다. 혁신은 시대와 고객의 니즈에 맞는 신상품이나 새로운 서비스 개발, 신시장 개척, 신사업 진출 등을 말한다. 즉, 정신적인 부분은 100년이 넘도록 지켜오면서 생산 기술, 시장 개발, 상품 개발 등의 물리적, 기술적 부분은 끊임없이 혁신해 온 것이다.

이러한 조사 결과를 보면, 가족기업의 장수 비결은 창업자가 보여줬던 기업가정신과 경영철학이 어떻게 꾸준히 후대로 대물림 돼 발휘되느냐에 달려 있다. 물론 이러한 것이 단지 장수기업들의 얘기만은 아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창업기의 기업도 기업의 정신이 확립돼 있는 기업은 그렇지 못한 기업에 비해 성장성이나 수익성 등이 높으며 생존력이 강하다.

‘경영의 신’의 기업정신
사람은 누구나 자신만의 관점이나 철학, 인생관이나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개인의 성향은 그 사람의 고유 정신, 즉 가치관이다. 사람들은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자신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돈과 시간을 쓰고 의사결정을 한다. 개인의 가치관에는 자신이 살아온 경험이나 환경, 그리고 타고난 성향 등이 반영돼 있다. 결국 각자가 가진 고유한 가치관이 자신의 인생을 지배하는 셈이다. 그런데 한 개인이 경영자가 되는 경우, 자신의 성향이나 가치관을 반영해 기업을 이끌게 된다. 이것을 명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기업이념과 경영철학이다.

기업이념이란 창업자가 사업을 통해서 시장과 사회에 어떤 공헌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를 다짐하는 경영자의 생각으로 기업의 사회적 존재 이유와 경영 활동의 방향을 결정 짓게 하는 회사의 고유한 정신이다. 경영철학은 창업자가 가진 업에 대한 생각, 고객에 대한 생각, 직원에 대한 생각 등 경영 활동을 해나가는 데 있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사고방식으로 기업의 특성이나 정체성을 나타낸다.

일본에서 ‘경영의 신’으로 불리며 가장 존경받는 경영자 중 한 사람은 마쓰시타전기의 창업자인 ‘마쓰시타 고노스케’ 회장이다. 우리나라의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 등 1세대 기업인들뿐만 아니라 잭 웰치나 마이클 포터 교수 등 세계적으로 성공한 많은 경영의 구루들이 그를 롤모델로 삼았다고 한다. 그는 1918년 기업을 설립하고 60년에 걸쳐 사업을 하면서 기업이념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고, 저서 <위기를 기회로>를 통해 그 중요성을 강조했다.

“사업을 경영하는 데 기술, 판매, 자본, 인재 등은 모두 중요한 요소다.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근본이 되는 요소는 바로 경영이념이다. 즉, ‘우리 회사는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경영의 목적은 무엇인가’, ‘어떻게 경영을 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확고한 신념이 있어야 한다. 경영이념이 근본에 바로 서 있어야만 다른 경영 요소가 진정한 가치를 발휘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회사의 경영이념은 전쟁 전후를 막론하고 기본적으로 큰 변화가 없었다. 이렇게 초지일관 한 가지 경영이념에 입각해 경영해 온 결과 사회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고, 오늘날처럼 발전할 수 있었다.”

경영철학과 이념의 체계화
모든 창업자가 기업이념이나 경영철학을 체계화하고 있을까. 그렇지는 않다. 필자가 그동안 만나봤던 창업자들을 보면 대체적으로 세 가지 유형으로 구분된다.
첫째 유형은 창업자가 경영철학이나 이념을 분명히 하고 그것을 임직원들과 공유해서 기업문화로 발전시킨 경우다. 이런 창업자들의 경우 대부분 창업 초기부터 확고한 철학과 이념을 가지고 시작한 경우가 많다. 그들은 오랜 세월 동안 자신의 일관된 신념에 따라 기업을 운영할 뿐만 아니라 구성원들과 함께 이를 실천하는 조직문화 구축에도 열의를 보인다. 창업자가 신념을 가지고 기업을 이끌어 가면 직원들은 따르기 마련이다.

창업 후 40여 년 동안 단 한 번의 구조조정도, 노사분규도 없었던 회사가 있다. 1973년 창업한 범우연합이다. 현재 전 직원 약 800명, 매출액이 약 4000억 원에 이른다. 이 회사는 불황에도 매년 20% 이상 성장하고 있는 회사다. 건강만 허락한다면 60세가 넘어도 일할 수 있는 회사, 인재를 데려오는 게 아니라 평범한 사람을 뽑아 인재로 키우는 회사, 직원들에게 모기업 주식의 21%를 증여한 회사다. 과연 이 회사의 창업자는 어떠한 철학으로 기업을 운영하고 있을까.

창업자인 김명원 회장은 1950년대 후반 서울공고 재학생 대표로 기업을 배우기 위해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 박사를 찾았다. 그는 기업이 무엇인지, 경영이란 어떤 것인지를 물었고 유 박사는 친절하게 자신의 가치관과 기업관을 설명했다. 그러면서 “자네는 훌륭한 기업인이 될 자질이 있으니 나중에 사업으로 보국하게나”라고 격려했다. 이 말 한마디가 그의 인생 항로를 결정했다. 그는 유 박사를 평생의 사표로 삼았다. 사람이 중요하다는 ‘인본’과 공을 세워 사회에 보답한다는 ‘공헌’이라는 사훈도 이렇게 만들어졌다. 김 회장이 가장 아끼는 물건 중 하나가 40년이 넘은 빛바랜 공책이다. 여기에는 1973년 5월 7일 창업하면서 직원들에게 얘기한 내용이 달필의 글씨로 적혀 있다.

‘우리 범우화학은 인간을 위한, 인간에 의한, 인간의 기업으로, 유일한 선생의 기업정신을 본받아(이하 생략)’라는 내용이 아직도 선명하다. 창업 초부터 확고한 이념을 가지고 시작한 경영이념을 회사 운영에 철저하게 반영해 온 덕분에 이 기업은 창업 이후 단 한 차례의 감원도 없이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가고 있다.

둘째 유형은 회사에서 내세우는 경영이념이나 경영철학이나 가치관은 있지만 임직원과 공유되지 않아 기업문화로 발전시키지 못한 경우다. 즉, 구호는 있지만 임직원들이 제대로 의식하고 있지 못해 조직문화로 발전시키지 못한 단계다.


‘사원을 가족처럼 회사 일을 내 일처럼’,
‘인간 존중을 바탕으로 인류 건강 증진에 기여하는 신뢰받는 기업’.

따뜻함이 느껴지는 오래된 기업의 사훈과 사명감이 느껴지는 기업의 경영이념이다. 앞의 것은 기업 회장이 직원에게 폭행과 막말을 해서 물의를 일으킨 기업의 사훈이고, 뒤의 것은 젊은 영업사원이 아버지뻘 되는 대리점주에게 욕설을 해서 물의를 일으킨 기업의 경영이념이다. 두 사건은 한국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110년 기업의 명예와 업계 1등 기업의 자존심을 땅에 떨어뜨리고 사람들의 분노와 질시의 대상이 되게 만들었다.

그 이유는 그들이 기업정신과 반대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내세우는 경영철학을 리더와 직원들이 행동으로 보여주지 못하거나 역행한다면 오히려 회사 운영에 독이 될 수도 있다는 전형적인 사례다.

일단 창업자가 경영이념을 정립했다면, 가장 먼저 창업자 자신이 행동으로 보여야 한다. 그리고 다양한 제도와 시스템을 구축해서 이것이 조직문화로 정착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회사에서는 훌륭한 기업이념이 액자에 갇혀 명목 그 자체가 돼 있다. 
마지막, 셋째 유형은 경영자가 스스로 경영철학이나 이념이 명확하지 않아 기업 운영의 원칙과 기준이 모호한 경우다. 수많은 기업들이 여기에 속한다. 대체로 이런 기업들은 명확한 의사결정 기준이나 행동지침이 없어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임기응변으로 의사결정을 하기 때문에 기업 운영 방식에 있어 일관성이 결여된다.

더구나 기업의 목적이나 방향성 또한 불명확하기 때문에 직원들에게 일에 대한 가치를 부여하지 못한다. 물론 이런 기업들은 대부분 위임이 잘 안 되고, 오너가 모든 것을 통제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창업자나 임직원들 모두 사업을 단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으로만 여기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만난 40대 중반의 한 중소기업 창업자는 직원들에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리고 자신과 친하게 지내는 다른 기업의 창업자는 사람 복이 많다며 부러워했다. 그는 친구 회사의 직원들은 일을 알아서 잘하고 책임감도 강한데, 자기 회사 직원들은 시키는 일만 간신히 하고 이직률도 높다며 중간 간부들을 탓했다. 그런데 필자가 두 회사를 방문해 직원들을 만나 보니 그는 셋째 유형의 경영자였고 그의 친구는 첫째 유형의 경영자였다. 결국 문제는 직원들이 아니라 경영자에게 있었다.

이 세 가지 유형의 기업 중 어느 기업들이 더 좋은 성과를 내겠는가. 당연히 첫째 유형의 기업들이다. 같은 업종에 있어도 어떤 기업들은 ‘경기가 좋지 않아 회사가 어렵다’고 하지만 어떤 기업은 지속적인 성장을 경험한다. 그 차이는 어디에서 날까. 이 또한 기업에 내재돼 있는 기업의 정신과 그에 따른 기업문화가 다르기 때문이다. 리더가 자신의 신념이나 철학을 체계화한 후 임직원과 공유하고 한 방향으로 전진하는 기업들이 그렇지 못한 기업보다 성과가 좋은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는가.

사실 거의 대부분의 기업들은 승계를 생각하기도 전에 실패한다. 거기에는 다양한 원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실패 원인은 한 가지로 귀결된다. 바로 ‘경영철학’의 부재다. 사람들은 경영이라고 하면 사람, 돈, 기술을 가장 먼저 떠올리지만, 무엇보다 먼저 기업의 정신을 바로 세우고 이를 회사 전체에 녹아들게 하는 것이 경영의 기본이다.

리더가 경영의 목적과 가치가 명확하게 정리돼 있지 않는 한 기업을 한 방향으로 성공적으로 끌고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 무엇보다, 경영이념이나 경영철학은 가족과 기업, 사회 모두에 좋은 것이어야 한다. 그리고 액자 속에 넣어 걸어두기만 하지 말고 온갖 활동과 사업 전략의 밑바탕에 두고 지속적으로 회사에 전파하고 선두에 서서 실천해 나가야 한다. 결국 좋은 회사가 될지 나쁜 회사가 될지는 창업자에게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선화 가족기업연구소장
일러스트 허라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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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일시 : 2017-02-03 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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