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권 포기한 혼전계약 법적 효력은 어디까지?
[한경 머니 기고=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법학박사)]혼인 전에 계약을 통해 부부가 이혼을 하거나 배우자가 사망했을 때 재산을 어떻게 나눌지 미리 정해 놨다면 이는 법정상속분을 침해할 수 있을까. 미국에서는 혼전계약의 ‘최소한의 선의’는 인정하면서도 엄격한 요건을 두어 상속권의 침해는 철저히 막고 있다.

법정상속분이나 배우자 유류분 등 생존배우자의 권리를 당사자 간의 계약, 특히 혼전계약(premarital agreements, prenupti-al agreements)으로 미리 포기할 수 있는지 문제가 된다. 혼전계약은 나중에 부부가 이혼을 하거나 배우자 일방이 사망했을 때 재산의 분배와 처리에 관해 혼인 전에 미리 정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약정을 혼인 중에 할 수도 있다. 이것을 부부계약(marital agreements)이라고 한다.

이러한 종류의 계약에 대해 미국 법원은 전통적으로 우호적이지 않은 태도를 보여 왔다. 그러한 계약이 이혼을 조장하고 공익에 반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혼과 재혼의 급증으로 인해 혼인 당사자들은 그들의 재산을 새로운 배우자의 권리 주장으로부터 해방시켜서 이전의 혼인으로 인해 생긴 자녀들에게 남겨주기를 원하게 됐다.

이 같은 사회적 욕구로 인해 오늘날 지배적인 학설과 판례에 따르면, 이러한 계약은 그것이 공정하고 합리적이라면 집행이 가능한 것으로 보고 있다. 1983년에 제정된 ‘통일혼전계약법(Uniform Premarital Agreement Act)’도 혼전계약의 집행 가능성을 인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혼전계약이나 부부계약은 당사자 간의 비밀스런 관계로 인해 사기, 강박 등의 잠재적 위험성이 상존한다. 이 때문에 법원은 이러한 계약에 대해서는 특별한 주의를 기울여서 면밀히 조사한다.

많은 주에서 배우자 일방의 재산권에 관한 ‘장래의 포기(prospective waiver)’의 집행 가능성을 제한하는 법령을 시행하고 있다. 즉 이러한 법령들은, 포기에 관한 계약을 집행하기 위한 전제로 재산에 대한 ‘완전하고 공정한 공개(full and fair disclosure)’를 요구한다.

◆혼전계약, 어디까지 유효할까

과거에는 당사자 일방이 진정한 재정 상태를 공개하지 않은 것만으로는 혼전계약의 효력을 부인하기 위한 충분한 근거가 아니라는 판결(웰링턴 v. 러그 사건, 매사추세츠 주 최고법원, 1992년)도 있었다.

오늘날 생존배우자로서의 권리 포기가 유효하기 위해서는 적절한 재산 공개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에 있어 학설과 판례가 거의 이견을 보이지 않고 있다. 이에 관한 리딩 케이스가 바로 ‘후크 v. 후크 사건’(오하이오 주 대법원, 1982년)이다.

이 사건에서 아그네스 후크(Agnes Hook, 원고이자 피상고인)와 도널드 후크(Donald Hook)는 1970년 12월 23일에 혼인했는데, 혼인하기 이틀 전에 변호사를 만나 혼전계약과 서로를 위한 유언장 작성을 준비했고, 결혼식 당일 아침에 혼전계약서에 서명했다.

혼전계약의 내용은, 상대방의 재산에 대한 모든 법률상의 청구권을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서로 동일한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그 내용은 생존배우자에게 모든 재산을 남긴다는 것이었다.

도널드는 1977년 5월에 새로운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그 내용은 그의 재산을 아그네스에게 전혀 남기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도널드는 1977년 10월에 이혼소송을 제기했고 그가 사망할 때까지 재판은 계속됐다.

도널드가 사망하자 아그네스는 혼전계약의 효력을 저지시키기 위해 유언집행인과 수증자들(상고인들)을 피고로 해 이 사건 소송을 제기했다. 혼전계약만 없다면 아그네스는 오하이오 주법에 따라 도널드의 유언과 상관없이 생존배우자로서 상속재산의 2분의 1을 받을 수 있었다.

유언검인법원은 도널드가 혼전계약서를 작성하기 전에 아그네스에게 그의 재산의 성질과 범위, 가치 등을 제대로 공개하지 않았다고 하면서 원고 청구를 인용했다. 항소심도, 혼전계약이 선의(good faith)와 적절한 공개(adequate disclosure) 없이 체결됐다고 하면서 1심 판결을 지지했다.

그러나 오하이오 주 대법원은 혼전계약이 유효하다고 하면서 항소심 판결을 취소했다. 당시 오하이오 주 대법원은 “오하이오 주에는 혼전계약을 통해 배우자 일방의 사망 시 다른 배우자가 상속재산 분할에 참여하는 것을 완전히 배제하는 것을 금지하는 어떠한 공익이나 법령 또는 판례도 없다(즉, 완전히 배제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대법원은 “그렇지만 최소한의 선의(minimum levels of good faith)는 충족돼야 하며, 만약 제반 사정에 비추어 혼전계약이 불공정하거나 불합리하다면 그것은 무효가 될 것이다”라고 판단했다.

더불어 대법원은 “아그네스는 도널드가 그의 재산에 관해 자신에게 제대로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제반 증거에 비추어볼 때, 도널드의 재산에 관해서는 적절한 공개가 이루어졌다고 판단되므로 혼전계약은 유효하다”고 판결을 내렸다. 이 판결에 따르면 혼전계약은 ‘최소한의 선의’만 충족하면 유효하게 상속을 배제시킬 수 있게 된다.

미국 통일상속법(UPC)에 따르면 생존배우자의 상속권과 법정수당에 관한 권리는 혼인 전후에 전부 또는 일부를 포기할 수 있다. 그러한 포기는 문서에 의한 합의나 생존배우자의 서명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나 생존배우자가 ‘자발적으로 포기한 것이 아닐 때’나 ‘포기가 부도덕하게 이루어지고 포기를 하기 전에 피상속인의 재산과 부채에 대한 공정하고 합리적인 공개가 이뤄지지 않아 적절한 지식을 가지지 못했고, 재산과 부채에 대한 공개를 요구할 권리를 명백하게 문서로 포기하지 않았다’는 점을 입증할 경우 생존배우자의 포기는 법적 효력이 없다.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