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류분 없는 미국의 자녀 보호
[한경 머니=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법학박사) ]미국의 대다수 주에서는 유류분(상속인을 위해 법률상 유보한 상속재산의 일정 부분)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미국에서는 부모의 유언에서 배제된 자녀들의 상속권 보호를 위해 어떤 장치를 마련해 두고 있을까.

부모로부터 상속받지 못한 자녀, 특히 미성년 자녀에 대한 관심이 지속되고는 있지만, 현재 미국 루이지애나 주를 제외한 어떠한 주에서도 자녀를 위해 유류분(Forced Share)제도를 도입하지 않고 있다.

루이지애나 주를 제외한 미국에서는 피상속인의 의사에 따라 자녀를 상속으로부터 철저히 배제시킬 수 있다. 생존배우자에 대해서는 그렇게 할 수 없는 것과 대조적이다.

이 점이 바로 대륙법계 상속법과의 중요한 차이점이다. 대륙법은 피상속인과 가까운 가족 구성원이 피상속인의 재산 중 고정된 지분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유류분을 인정한다.

직접적으로 자녀를 보호하는 유류분제도 대신 미국의 법원은 ‘누락된 상속인(Omitted Heirs)’ 법리를 동원해 일정한 자녀들을 위해 우회적인 방식으로 상속재산 분할에 개입한다. 즉, 유언을 하면서 자녀를 위한 언급이나 재산을 제공하지 않은 부모는 부주의로 인한 실수로 그렇게 했을 것이라는 다소 억지스러운 가정을 한다.

대부분의 주에서 이러한 가정에 입각한 법령을 시행한 덕분에, 정말로 자녀를 유언으로부터 배제시킬 의도를 가진 부모는 유언장에 그러한 의사를 명백히 표시해야만 했다.

이러한 방식으로 누락된 상속인을 구제한 대표적인 판례 중에 하나가 바로 고프 v. 고프 사건(미주리주대법원, 1944년)이다. 찰스 고프(Charles Goff)는 사망하기 5주 전에 유언장을 작성했는데, 그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았다.

첫째, 형제인 사일러스 고프(Silas Goff)에게는 1000달러를 남기고 또 다른 형제인 조지 고프(George Goff)에게는 5달러를 남기며, 잔여 재산은 두 명의 조카들에게 동등하게 나누어준다.
둘째, 나는 혼인을 하지 않았고 자녀도 없다.
셋째, 나의 유언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에게는 1달러만 준다.

◆유언에서 배제된 자녀들의 구제책은?

그런데 찰스에게는 조 고프(Joe Goff)라는 아들이 있었고, 조는 찰스보다 먼저 사망했지만 슬하에 마저리(Marjorie)와 딘(Dean)이라는 두 자녀(이 사건의 원고들)를 남겼다. 찰스는 유언장에서 조를 배제시키면서 그가 의도적으로 그와 같이 했는지에 관해서는 명시하지 않았다. 원고들은 찰스가 자신들의 존재를 알지 못해 실수로 자신들을 유언으로부터 누락시켰으므로 상속재산에 대해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찰스는 생전에 조가 자신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믿지 않았다. 그러나 법원은 여러 증거들을 통해 그가 조의 아버지라고 확신했다. 미주리주대법원은 원고들이 무유언상속법에 따라 상속 받는 것을 허용했다. 찰스가 자신이 조의 아버지라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조나 원고들을 유언으로부터 배제시키지 않았을 것이라는 가정이 판단의 근거였다.

유언으로부터 배제된 자녀가 유언장 작성 당시 생존해 있었던 경우에도 누락된 상속인으로 보호받을 수 있는 것인지, 아니면 유언장 작성 이후에 출생한 경우에만 누락된 상속인에 해당되는 것인지에 관해서는 법역에 따라 다른 태도를 보인다.

일부 주법에 따르면 부모가 자녀를 비의도적으로 유언으로부터 누락시킨 경우에는 출생 시기와 상관없이 누락된 상속인으로서 보호를 해준다. 매사추세츠 주와 오클라호마 주가 그 대표적인 예다. 즉, 이러한 경우에 누락된 상속인들은 유언자가 마치 유언을 하지 않고 사망한 것처럼 무유언상속법에 따라 상속재산을 분배받는다.

예컨대 크럼프스 유산(Crump’s Estate) v. 프리먼(Freeman) 사건에서, 유언자인 크럼프(Crump)는 자신보다 먼저 사망한 유일한 아들의 세 손자녀들을 위한 유언신탁을 설정하면서 오직 손녀인 탐세이 프리먼(Tamsey Freeman)에 대해서만 유언을 하지 않았다.

유언장에는 프리먼에 관한 언급이 없었고, 그녀를 유언으로부터 배제한다는 어떠한 의사도 표시돼 있지 않았다. 이에 오클라호마주대법원이 프리먼이 누락된 상속인에 해당한다고 하면서 “누락이 의도적인 것이 아니고 우연히 또는 실수로 일어난 일이라면, 누락된 자녀는 유언자가 유언 없이 사망했을 경우 받을 수 있었을 몫을 받아야 한다”고 판시했다(오클라호마주대법원, 1980년).

그러나 미국 통일상속법(UPC)을 위시한 대부분의 주법들은 단지 유언장이 작성된 이후에 출생한 자녀만을 누락된 상속인으로 보고 있다. 예컨대 아즈컨스(Azcunce) v. 아즈컨스의 유산(Estate of Azcunce) 사건에서 유언자인 르네 아즈컨스(Rene Azcunce)는 1983년 5월에 그의 생존배우자와 그 당시 이미 태어나 있었던 세 자녀들을 위한 유언신탁을 설정했다.

그 유언장에는 유언장 작성 이후에 태어난 자녀를 위한 어떠한 규정도 두지 않았다. 유언자는 1983년 8월과 1986년 6월에 각 유언보충서(codicil)를 작성했는데, 이 유언보충서들은 유언 처분에 관해 어떠한 수정도 하지 않았고 유언장 작성 후에 태어난 자녀에 관한 어떠한 규정도 두지 않았다.

첫 번째 유언보충서가 작성된 후인 1984년 3월에 유언자의 딸인 패트리샤(Patricia)가 태어났다. 유언자는 1986년 12월에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인해 3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유언장과 유언보충서에 대한 유언검인이 승인되자 패트리샤는 누락된 상속인으로서 상속재산에 관한 무유언상속분을 주장하며 이 사건의 소를 제기했다.

이에 플로리다 주 법원은 1991년 패트리샤의 청구를 기각하면서 “두 번째 유언보충서가 최초의 유언장과 첫 번째 유언보충서를 명시적으로 추완한 이상, 두 번째 유언보충서가 작성될 당시 이미 출생해 있었던 원고는 누락된 상속인이라고 볼 수 없기 때문에 무유언상속분을 받을 권리가 없다”고 판시했다.
김상훈 법무법인 바른 변호사(법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