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 머니 기고 = 김선화 가족기업연구소장]글로벌 경영 컨설팅 회사 매킨지의 보고서에 따르면 1975년에는 30년이던 기업 수명이 2005년에는 15년으로 줄어들었고 2020년에는 10년으로 단축될 것으로 예측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적으로 100년 또는 200년 이상 생존하는 기업들이 많이 있다. 기업들의 장수 비결은 무엇일까?
좋은 기업보다 좋은 정신을 남겨라
세계적으로 200년 이상 된 가족기업 경영자들의 친목 모임 레 제노키앙(The Henokiens)이라는 단체가 있다. 현재 이 모임은 1731년 창업한 이탈리아 기업의 대표가 회장을 맡고 있는데, 그녀는 자신의 회사가 400년 가까이 생존한 비결이 “윤리적 경영과 창업 초기부터 전수된 회사의 가치를 지켜온 것에 있다”고 했다. 이 단체의 회원들 대부분도 “사회와 조화를 이루는 회사의 지배적인 가치와 기본 원칙을 지켜온 것이 장수의 비결이다”라고 했다.

그렇다면 핵심가치란 무엇인가? 이는 회사를 운영하는 데 기준이 되는 신념이나 원칙으로 창업자의 경영철학에서 나온다. 세계적인 장수기업들이 가장 많이 꼽은 가치는 ‘품질’이다. 그다음은 근면과 정직이다. 그 밖에도 기업가 정신, 최고 지향, 혁신 등 다양한 가치가 장수기업들이 지켜온 핵심가치로 언급됐다.

중요한 것은 그들은 수익보다 기업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에 따라 행동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것을 핵심가치(core values)라고 한다. 장수기업의 핵심가치는 세대를 이어 계승되며 가족과 기업을 하나로 묶어주는 정신적인 DNA가 되는 것이다. 기업을 나무로 본다면, 핵심가치는 뿌리에 해당한다. 뿌리가 튼튼할수록 나무가 오랜 세월을 견딜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기업의 정신이 잘 정립될 때 기업은 오랫동안 생존할 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이 아니라서 간과되기 쉽고, 설령 회사에서 내세우는 핵심가치가 있다고 하더라도 일부만 알고 있다거나 대부분 형식적인 문구에 지나지 않는다. 핵심가치가 무엇이고 왜 중요한지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핵심가치에 대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핵심가치는 창업자에게서 나온다
가업승계 컨설팅을 하면서 필자가 가장 우선적으로 하는 일은 기업의 정신 즉, 경영철학과 핵심가치가 잘 정립돼 있는지 점검하는 것이다. 그런데 중소·중견기업의 경우 이러한 가치 체계가 잘 수립돼 있는 경우는 흔치 않다.

그래서 임직원들을 대상으로 핵심가치 워크숍을 자주 하게 되는데, 그때 필자는 핵심가치의 개념을 소개하기 위해 참석자들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진다. 예컨대 “테레사 수녀님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는 무엇일까요” 그러면 어렵지 않게 “사랑”이라는 대답을 얻는다. 한 번도 그녀를 만난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참석자들 모두 그녀가 ‘사랑’이라는 가치에 자신의 삶을 헌신했다는 것에 동의한다. 그렇다면 이순신 장군은 어떠한가? 우리는 그가 ‘충(忠)’, 즉 국가에 대한 충성의 가치에 자신의 인생을 바쳤다는 것 또한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일반적으로 상대가 직접 이야기해주지 않는 이상 다른 사람들의 가치관을 알 수 없다. 하지만 오랫동안 사람들의 행동을 지켜본다면 상대방의 가치관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존경 받는 인물들의 공통점은 한결같이 어떤 원칙에 있어 강한 신념을 갖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한결같이, 특정 가치에 대해 절대로 타협하지 않는 자세를 지켰다. 그것은 그들이 중요하게 여기는 가치다. 그렇다면 우리는 여기에서 어떤 교훈을 얻을 수 있는가?

사람들은 뭔가를 강력하게 믿는 사람, 그 믿음을 지키기 위해 무엇이든 할 자세가 돼 있는 사람을 존경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신뢰받는 리더가 되려면 먼저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관을 분명히 하고, 말한 대로 행동해야 한다.

한 개인이 기업을 시작하면, 의식하든 의식하지 못하든 자신의 가치관에 따라 기업을 경영하게 된다. 그리고 궁극적으로는 창업자의 가치관이 기업의 가치관이 된다. 경영자가 자기의 가치관을 명확히 한다는 것은 직원들에게 회사가 어떤 원칙을 가지고 사업을 해 나갈지를 분명히 밝히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이는 마치 험난한 항로를 헤쳐 나갈 나침반과 같다. 또한 의사결정과 행동의 지침으로 임직원들이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구분하는 기준이 된다. 강력하게 가치를 추구하는 사람이나 기업은 당장 기업에 이익이 되는 일이라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와 맞지 않는다면 쉽게 ‘아니오’라고 한다. 그리고 때로는 고통이 따르는 책임이라도 자신들이 추구하는 가치에 부합하면 기꺼이 ‘예’라고 한다.

예컨대 ‘정직’의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기업이라면 아무리 능력이 있는 직원이라도 정직하지 못한 행동을 할 때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지 모두가 정확히 알고 있다. 만약 ‘품질’의 가치를 최우선으로 두는 기업이라면 원가 절감을 위해 품질을 떨어뜨리는 타협을 절대 하지 않을 것이다. 이처럼 핵심가치를 명확히 하면 기업 내 갈등이 줄어들고 의사결정이 신속하고 일관성 있게 이루어져 조직 내 신뢰도가 높아진다.

만약 핵심가치가 명확하게 규정돼 있지 않다면 가업승계 시 가장 먼저 해야 하는 일은 가치 체계를 명확히 하는 것이다. 만약 창업자의 철학이나 가치가 체계화되지 않은 상태로 승계가 이루어져 2세대가 기업을 운영하는 경우라면, 후계자가 창업자의 정신을 되새겨 정리한다거나, 창업자의 어록이나 기업의 역사와 전통을 기반으로 창업 시대부터 기업 내에 내재돼 있는 가치를 찾아 시대적 상황에 맞게 재정립해야 한다.

일반적으로 가치는 한 단어의 키워드나 핵심 문구로 나타나며 기업의 핵심가치는 보통 3~5개 정도의 가치로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먼저 다음의 질문을 통해 자신이 회사 운영에 있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생각나는 대로 적어보라.

1. 과거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원칙은 무엇인가?
2. 현재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끄는 데 필요한 원칙은 무엇인가?
3. 미래 기업을 성공적으로 이끌어 갈 원칙은 무엇인가?
좋은 기업보다 좋은 정신을 남겨라
핵심가치를 명확히 하기 위해서는 위의 3가지 질문을 통해 적은 키워드를 우선순위에 따라 재배열하라. 만약 정직, 창의와 도전, 성실, 품질 등 여러 개의 키워드가 있다면, 중요도가 높은 것에서 낮은 것으로 순위를 매겨라. 이와 같이 강제로 자신의 선호도를 매기도록 하면 각각의 가치에 대해 자신이 얼마나 상대적으로 비중을 두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리고 최종 핵심가치를 3~5개 정도로 좁힌다.

가치가 정립되면, 가치에 대한 공통의 이해를 위해 선정된 가치 각각의 의미를 정의해야 한다. 예컨대 핵심가치 중 하나가 ‘정직’이라면 사람마다 정직에 대한 정의가 각기 다를 것이다. 우리 조직에서 정직이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이에 대해 전 직원이 통일된 생각을 가질 수 있도록 핵심가치의 의미는 구성원들과 함께 정리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핵심가치는 일방적인 선언보다는 합의의 과정을 거칠 때 보다 수월하게 조직 공통의 가치관으로 구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가치관에 대한 통일된 목소리는 결국 수많은 대화로부터 나온다.

핵심가치와 그 의미가 정해지면 리더는 가치에 따라 의사결정을 하고 행동하는 모범을 보임으로써 직원들을 리더의 길에 동참시켜야 한다. 리더가 핵심 원칙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리더의 신념’은 ‘우리의 신념’으로 탈바꿈하게 되며, 조직의 가치가 통합되면서 조직에 엄청난 에너지가 솟아난다.

특히 개인의 가치관과 조직의 가치관이 일치하는 경우 직원들은 조직에 보다 충성하게 된다. 최근 기업들이 핵심가치를 중심으로 기업의 인재상을 수립하고 그것에 걸맞은 직원들을 선발하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에서다.

핵심가치의 개념에 대해 한 가지 명심할 점은 영속 기업이 되는데 특별히 ‘올바른’ 핵심가치는 없다는 것이다. 세계적인 경영학자인 짐 콜린스는 성공하는 기업들을 연구한 그의 저서 <성공하는 기업들의 8가지 습관>에서 영속하는 위대한 회사에 있어 핵심가치는 필수적이지만, 그 핵심가치가 뭐냐 하는 건 문제가 되지 않다고 했다.

중요한 것은 어떤 핵심가치를 갖느냐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핵심가치들을 갖는 것, 그게 무엇인지 스스로 아는 것, 그것들을 조직 속에다 명확하게 불어넣는 것, 그리고 오랜 기간 그것을 보존하는 것이다. 자신의 핵심 이념과 가치를 지킨다는 것은 영속하는 위대한 회사들의 핵심적인 특징이며, 거기에서 제기되는 문제는 그 핵심을 어떻게 보존하고 변화하는 세상에 그것을 어떻게 적용시키느냐 하는 것이다.

100년을 준비하는 기업
100년 기업을 꿈꾸는 한 기업이 있다. 바로 ‘한국콜마’다. 이름이 다소 생소한 사람도 있겠지만 한국콜마는 우리나라 국민들이 거의 매일 쓰다시피 하는 화장품과 의약품을 생산하는 글로벌 제조자개발생산(ODM) 기업이다.

1990년 농협중앙회를 거쳐 대웅제약 부사장 자리까지 올랐던 윤동한 회장은 40대 초반 오로지 자신의 꿈을 위해 돌연 사표를 내고 회사를 나와 일본콜마와 합작해 화장품, 의약품 연구·개발 조제 전문 기업을 설립했다. 설립 당시 매출액 10억 원이었던 콜마는 25년 만에 매출액 1조 원에 육박하는 건실한 기업으로 성장했다. 그리고 지식경제부가 시행하는 ‘월드클래스300’ 프로젝트에서 화장품 산업을 대표하는 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한국콜마의 성공 뒤에는 창업자인 윤 회장의 4성 5행, ‘유기농 경영’, ‘우보천리 경영’의 철학이 자리 잡고 있다. 유기농 농산물은 농약 등 화학 성분을 사용한 일반 농산물보다 공급이 적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 이익이 많이 남는다. 이를 기업 경영에 적용해 작지만 강한 기업을 만들겠다는 ‘유기농 경영’은 윤 회장의 대표적인 경영 철학이다.

윤 회장의 유기농 경영은 ‘원칙과 기본에 충실하면서 환경에 맞게 개선하고 창조하는 것’, ‘원칙을 지키되 변화의 끈을 놓지 않는 것’, ‘인위적 환경(비료)에 의해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근본 자생력(퇴비)을 높이는 것’으로 요약된다. 윤 회장은 경영을 하며 매출 증대에 대한 유혹으로 마음이 흔들릴 때마다 자신의 ‘유기농 경영론’을 되뇌며 스스로를 다잡아 왔다고 했다.

윤 회장은 ‘유기농 경영’의 실천 키워드로 ‘4성 5행(四性五行)’의 핵심가치를 제시하고 있다. 4성은 ‘창조성’, ‘합리성’, ‘적극성’, ‘자주성’을 일컬으며 이는 직원들이 일할 때 모든 판단의 근거가 되는 잣대이고 회사가 일관되게 지켜온 전통이다.

‘창조성’은 항상 열정과 호기심으로 사물을 살펴보고 ‘개선’하거나 ‘개량’할 수 있는 부분이 엿보이면 그것을 탐구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한다는 뜻이다. ‘합리성’은 원칙과 기본을 지키면서 최선의 방법을 선택해 윈-윈(win-win)하는 것을 모색하는 것이다. ‘적극성’은 주도면밀한 계획과 과감한 실천으로 가능성을 실현하는 태도를 말한다. ‘자주성’은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보람된 일터를 스스로 만들어 나가는 것으로 조직원들의 주인의식을 말한다. 이상의 4가지 4성이 한국 콜마 기업문화의 기초가 되는 기업의 가치관, 즉 핵심가치인 셈이다.

핵심가치를 지키기 위해 임직원들이 갖춰야 할 행동규범으로는 ‘독서’, ‘근검’, ‘겸손’, ‘적선’, ‘우보’가 있다. 이것은 단지 구호가 아니라 한국콜마 기업문화의 근간이 된다. 예컨대, 이 회사는 임직원들의 인문적 소양과 자기계발의 일환으로 독서를 적극 권장한다. 이를 위해 KBS(Kolmar Book School) 독서 장려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고경영자부터 신입사원까지 ‘매달 1권 책 읽기’ 문화를 통해 매년 6권 이상의 독후감을 등록해 전 직원이 공유하고 있다.

그리고 ‘적선’의 행동규범 역시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고 있다. 초기 사업장이 위치한 ‘전의면’ 지역에 있는 노인회관과 요셉의 집을 방문해 청소와 식사 준비, 목욕 봉사로 시작한 봉사활동은 회사가 성장하고 사업장이 곳곳으로 확장되면서 지역과 대상을 구분하지 않고 더욱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봉사활동은 다양한 형태로 발전하고 있으며 전 임직원이 연간 2만 시간의 봉사활동을 통해 따뜻한 손길을 전하는 ‘사랑의 릴레이’로 확산 중이다.

한국콜마의 공장 입구에는 ‘우보천리’라고 새겨진 대형 머릿돌이 놓여 있다. ‘우보천리’는 ‘소걸음으로 가더라도 멀리까지 멈추지 말고 가자’는 의미로 원칙을 지키면서도 변화의 끈을 놓치지 않는 정도 경영으로 100년 기업을 꿈꾸는 윤 회장의 철학이 담겨 있다. 이 회사의 신입사원들은 회사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우보천리’의 정신을 배운다. 신입직원 교육 중 충남 연기군에 있는 본사에서 온양 온천에 이르는 30km 행군을 하루 동안 걷는 프로그램으로 윤 회장은 항상 이 행군에 동참한다.

창업 CEO와 함께 걸으며 신입사원들은 사회 초년병으로서의 굳은 의지를 다지고, 기업의 철학을 몸소 체험한다. 이 행사는 해마다 시행하지만 그동안 낙오자가 단 한 명도 없었다. 윤 회장은 칠순을 바라보지만, 직원들과 소통하고 싶어 해마다 산행을 강행한다.

그는 사업을 하면서 빠른 단기 성장보다 꾸준한 노력으로 얻을 수 있는 가치가 많다는 것을 깨달았다. 자칫 단기 성과에 매몰되면 장기 성과를 놓칠 수 있기 때문에 윤 회장은 매출에 대해 잘 묻지 않는다.

윤 회장은 말한다. “소의 걸음은 느린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소는 절대로 뒷걸음치지 않거든요. 오래 가는 것이 결국 가장 빨리 가는 것임을 한국콜마 임직원들은 항상 명심하고 있습니다.” 어느 회사이든 정도를 걷는 기본과 원칙이 없으면 기업은 쉽게 무너지기 마련이다. 그것이 진리다.